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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느헤미야의 성전건축 (느 0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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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에 우리는 느혜미야가 유대총독으로 온 후에 10절에 달갑지 않게 여기며 계속 방해하는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암몬지역의 부총독 도비야와 ,아라비아의 부총독 게셈이 동맹을 하여서 느헤미야의 성벽건축을 방해합니다.그런 이 방해는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대적하는 방해,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를 참고하여 3가지의 방해의 악의 세력에 대해 살펴보았었습니다.(1) 공중의 권세잡은 자며 성도를 미혹하며 참소하는 사탄입니다.
(2) 죄악의 향략의 세력이라고 했고, (3)세상의 돈의 세력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악의 세력의 공격에 방패역활을 해주는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씀드리면서 ,최소한 다섯가지믿음은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1)구원받는 믿음. (2)사 죄 의 믿음 (3)인도하심의 믿음 (4)기도 응답의 믿음. (5)승리의 믿음. 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이 바로 악한자의 화전을 막는 방폐와 같은 역활을 한다고 말씀드리면서, 이 믿음을 갖기위해서는 두가지, (1)말씀을 부지런히 듣거나 읽어야 하며, (2)기도를 해서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말씀이 씨앗이 되고 은혜가 비료가 되서 믿음이 무럭무럭 자라 악의세력을 능히 이기고도 남게 되는것입니다.
11절부터 계속해서 느혜미야서를 살펴보면서 성경에서 주는 교훈을 생각하면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1-12을 읽어보면 '내가 예루살렘에이르러 거한 지 삼일에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고요히 삼일간 지내는 중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라고 하며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감화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감화를 받자 마자 느헤미야는 즉시 순종을 합니다. 그것은 밤에 일어나서 두어 사람과 더불어 말을 타고 무너진 성벽과 소화된 성문을 둘러 보는것이였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가 무엇을 해야 할지 먼저 보게 하신것입니다. 느헤미야에게 온 이 하나님의 감화는 신약에도 있었고,오늘날 성도들에게도 있는것입니다.
 
누가복음2장 22절이하에 보면,
예루살렘에 경건하고 성령이 함께 있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죽기전에 그리스도를 볼것이라는 성령의 지시'(26)를 받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누가복음2장 27절에 보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데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아기 예수가 성전에 모친에 품에 안겨 들어오실때 시므온으로 하여금 성령께서 빨리 성전으로 가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감동에 시므온은 즉시 순종합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막 들어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 시간이 정확하게 맞습니다. 시므온이 너무기쁜 나머지, 그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외칩니다.
시므온을 감동하신 성령은 다름 아닌 오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 속에 내주하여 계시는 바로 동일하신 그 성령님이십니다.
그 성령께서는 오늘날도 성도들로 성령의 감동이 있게 하시고,또한 성령 충만케도 하십니다.
 
한번은 스펄젼 목사님이 어려운 고아원재정을 돕기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세군데서 설교를 하고, 그 결과 75달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평안한 마음으로 침실에 들어와 누워 있는데 어디선가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음성은 ' 그 돈을 죠지 물러에게 주어라'라는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스펄젼은 '이 돈은 내 가 생각하고 있는 고아들에게 주려고 하는것인데요 줄 수없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소리는 또 말했습니다.
'그 돈을 죠지 물러에게 주어라' 스펄젼은 그 돈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돈이였지만 죠지물러에게 주라는 그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그다음날 돈을 들고 죠지 물러를 찾아 갔습니다.
마침 그때 죠지 뮬러는 성경을 펴놓고 기도 중이였는데 스펄젼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스펄젼은 가지고 온 돈을 꺼내 주자 그는 깜짝놀라면서 '내가 지금 꼭 그만한 액수를 구하고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죠지물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스펄젼에게 성령의 음성을 들려 주어 그의 기도에 응답의 도구로 스펄젼을 사용한것입니다.
스펄전이 받은것은 마치 느혜미가 하나님의 감화를 받은것과 같은 바로 그 성령의 감동하심입니다.
 
얼마전에 저희 교구의 한 구역의 심방을 갔었을 때입니다. 그때 그 구역의 같은 동에 사는 권찰님이 같이 심방을 갔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성도님이기에 예배를 정성껏드리고 기도를 간절히 해드리고 나옵니다. 같은 동에 사는 권찰님이라서 정문까지 나와서 인사를 나누고 권찰님은 자기 집으로 올라가고 전도사님과 저는 차를 타고 앉았는데 ,그냥가지 말고 권찰집에 들려서 기도를 하고 가라는 감동이 계속 오는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사님 한테 말씀을 드리고 같이 다시 올라가서 권찰님의 집문의 벨을 눌리자 문을 연 권찰님이 깜짝놀라면서 막 우시는것입니다.목사님이 그냥가시길레 마음이 너무 서운했다고 하면서, 성령께서 뜻하시면 목사님을 다시 올려 보내주실것이라는 마음을 갖고 계셨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국민학교 다니는 딸의 얼굴근육이 자꾸 비뜰어져 돌아가는 현상이 눈에 띄어 한약방에 가서 침도 맞고 약도 지어 먹는데 한의사는 계속 더 할것이라고 했다고 해서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배를 간절히 드리고 마침 그 딸의 집에 있어서 예배후에 얼굴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권찰회에서 만났습니다. 그날 예배드린후에 더 심해진다고 한 한의사의 처방처럼 더 심해지지도 않고 그냥 나아 버렸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어머님의 주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믿음을 그 눈빛속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어머님의 믿음이 그 딸을 고치게 한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차 안에 탔을때고 그냥갈 수 도 있지만 가지 말고 꼭 들려서 기도해주고 가라는 마음에 강한 감동은 누가 주신것일까요? 성령님께서 주신것이리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날도 성령께서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시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충만으로 성도들을 인도하고 계시는것입니다 . 사도행전 5장 32절'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감동도주시고 충만도 주시는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늘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싶거나,또는 성령충만을 받고 싶으시다면 먼저 순종할 마음의 자세부터 갖추고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감동으로 인도하실때 만약에 순종을 안하면, 성령의 감동하심이 소멸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하라고 하실때는 곧 바로 순종해서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9절에 말씀처럼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합니다.
순종하지않으면 그 성령의 인도하심이 소멸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느헤미아는 하나님의 감화가 오자 마자 그날밤에 당장 순종을 합니다.
이런 느헤미야의 순종의 모습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줄압니다.
 
하나님의 감화를 받고 순종하면서 느혜미야가 한 밤에 무너진 성벽을 살펴 본 결과 성의 파괴는 생각보다 훨씩 더 심각했습니다.
특히 14절에 보면 샘문과 왕의 못 부근에는 무너져 내린잔재때문에 말이 지나갈만한 길조차도 찾아 볼 수 없을정도였다고 했습니다. 다 돌아보고 그날밤에 처소로 돌아오자 방백들이 어디에 갔다가 왔는지, 무엇을 하였는지를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 느헤미야의 마음에는 성벽재건에대한 불타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방백들을 모아놓고 취임연설을 하면서 바로 공포를 했어야 할것입니다.그러나 그때도 침묵이였고 성벽을 둘러 보고 온 후에도 얼마간 침묵했습니다.
그 침묵속에 저는 하나님 하고의 시간을 먼저 갖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봅니다.
그 침묵가운데 하나님하고의 같이 하는 시간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감화를 받는 참신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참신앙의 사람은 사람 앞에 말하기전에 시편 62:8절에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편 39편2절에 '사람 앞에서 특별히 말을 삼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1장 19절에 '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한다'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의 모습속에서 참신앙인의 모습을 보게 되는것입니다.
 
느헤미아는 드디어 이제 하나님으로 받은 성벽재건의 사명을 실행으로 옮겨야 할때가 &46124;습니다. 본문 17절-18절에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다음 두가지를 말합니다.
(1) '예루살렘 무너진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 받지 말자'라는것입니다.
그 시대에 성은 그 나라의 주권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이 적에게 무너진것은 그 나라에 주권이 처절히 밟힌것을 의미합니다.그것은 그 민족의 수치입니다.그래서 17절에 느헤미야는 '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 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받지 말자 '라고 말합니다. 느헤미아는 짓밟혀 온갓 수치로 얼룩진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 자존심에 호소를 한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좀더 넒게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정 ,내 교회만 보기 전에 우리 민족전체를 볼줄아는 민족의 아픔을 갖고 민족에 가슴에 호소하는 느혜미야의 외침이 오늘날 교회의 믿는자들의 사명이 아닌가 합니다.
말로도 외쳐야 하지만 삶으로도 외쳐야 합니다.
 
저가 대학다닐때 대학생들이 한참 데모를 많이 할때입니다. 전대통령당시라 학생들이 그저 어깨에 어깨에 스크럼을 짜고 운동권노래를 부르며 전경대원들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보도불럭을 빼어 깨진 조각들을 던지는 혼란스러운때엿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정부의 그릇된정책과 학교 당국의 잘못된점을 파혜치는데 과감했습니다. 그러나 켐퍼스 벤치 곳곳의 널려진 담배꽁초나 휴지를 줍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학생이 열심히 담배꽁와거리에 널려진 휴지를 줍는 모습을 보고 저는 참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학생이 그렇게 줍는것을 그 후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학생을 찾아가서 좀 사귀자고 했습니다. 휴지 줍는 한 학생의 삶은 스크럼을 짜고 돌을 돈지는 수많은 학생들보다 더 큰 신선한 충격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을 회상하면서 주님말씀처럼 부패해지는곳에가서 소금으로 ,어두운곳에 가서 빛으로 말씀데로의 삶을 산다면 아마 이 민족에 곳곳에서 신선한 충격이 곳곳에서 일어나며 이 민족이 수치와 상처들이 곳곳에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날것이라 여겨집니다.
 
느헤미야의 외침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수치를 싸매자는 ,민족의 수치에서 회복하자는 외침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2), 간증을 합니다.
18절에'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엿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셨던 일'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왕이 자신에게 이른 말도 같이 말해 줍니다. 간증이란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던 생생한 체험'을 다른사람에게 말해주는것입니다. 느헤미아는 이 간증을 자신의 민족에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하는 동기가 바로 신앙에 있음을 확고히 합니다.
백성들은 깊은 감화를 받습니다.그리고 모두 떨쳐일어나서 '일어나 건축하자' 라고 외치며 이 일에 자신들을 던지는 모습을 봅니다.
 
저는 느혜미야의 모습속에서 전도 방법의 원리를 봅니다.
(1)느헤미아처럼 침묵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때는 바로 하나님하고 깊은 기도의 시간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는것입니다
누구를 전도할까요? 누구누구를 어떤 방법으로 전도할까요? 그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래 기도하다보면?
 
(2)성령의 도우심을 받는것입니다.
전도를 하고 싶은 사람이 막 떠오르거나, 이미 정해진 사람이면 그 사람에게 전도할 방법에 대한 지혜를 받는것입니다.
 
(3)전도 할 사람의 현재의 고통하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것입니다.
6-7번 깊은 애정으로 만나다 보면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 속에 그 사람이 격고 있는 아픔을 듣게 됩니다. 고통없는 사람 한 사람도 없기에 누구에게나 있을것입니다. 혹시나 병원에 입원했을때나 ,가정에 큰 슬픔을 당했을때가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때 그 아픔에 관심을 갖어주고 같이 아파하며 느헤미아가 자신의 민족의 아픔을 그 민족과 더불어 아파한것과 같이 하는것입니다.
 
(4)간증을 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셨던 일을 간증하면서 이 아픈문제를 하나님께 갖고 나가면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나도 과거에 이와 비슷한 아픔을 겪다가 교회에 나가 주를 영접하고 난다음에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렇게 받은적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당신도 도와 주실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한번 꼭 나오세요.
보통 이런 권면을 받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통계입니다.
복음을 이해하고 나오는 사람은 실로 얼만 안된다고 합니다.
 
(5)복음을 제시하는것입니다..
느헤미야가 8장에서학사 에스라을 불러 말씀을 구체적으로 공부시키듯이.성경을 가르쳐 주는것입니다.
 
그럴때 그 영혼이 은혜를 받으면 떨쳐 일어나 하나님에게로 달려 나와 구원을 받아 자신의 평생을 주를 위해 던지는 사람이 되는것입니다
느헤미아가 자신의 민족을 치료하는 방법이나 오늘날 성도들이 고통받고 있는 불신영혼을 치료하는방법은 그 원리상으로는 같은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느헤미야처럼 민족을 수치를 치료하는 이 민족에게 빛과 소금이 되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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