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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느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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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일본의 아오모리 현에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3살 되던 해는 그에게 엄청난 시련의 해였습니다. 소아마비로 인해 양다리를 쓸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오른손의 기능도 거의 마비가 되어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생모조차 사망하는 슬픔을 맞이했습니다. 9살 무렵 양모의 등에 업힌 채 '이 아이는 커서 결혼도 할 수 없겠어요'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는 엄청난 절망을 하였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수도 없어서 집에서 독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네의 아이들은 병신이라고 놀렸기 때문에 거의 집 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불행한 소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비관적이었던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비록 불구의 몸이지만 자신의 삶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신앙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21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27세가 되던 해에 간호대학을 다니던 유끼고라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와의 사랑으로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둔 며칠 전에 그녀의 오빠가 그를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여 자네의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하는가?'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그였지만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두 가지 말씀이 그의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시편 23편 1절의 말씀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로마서 8장 31절의 말씀이 기억난 것입니다. 그 말씀으로 그녀의 오빠에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신실한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날 그는 어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국내외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인생의 여정을 아름답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쯔하시 가스토시입니다.
부족함 없는 곳으로 이끄시는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만일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외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사람은 이런 고백을 결코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경험되고 있습니까? 어떤 하나님을 여러분은 믿고 사십니까?
오늘 저희들이 읽은 말씀은 1절에서 6절이지만 오늘은 9장 전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9장을 읽어 가시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8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감격하면서 여호와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이래 처음으로 초막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초막을 지었습니다. 그 초막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살면서 하나님께서 그 옛적에 광야의 삶을 통해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제대로 들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결국 삶이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그 초막절을 지킨 후 백성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여러분 보시겠습니까? 8장 17절 후반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즐거움이 그들에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사실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때문에 고민하기도 하고 고통스러워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만족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겉절이 만족이 아닌 참된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 여호와의 말씀과 말씀을 행함으로 생기는 참된 기쁨이 있는 시카고 한인 연합장로교회 공동체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초막절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제는 계속되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듣기도 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경배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9장 전체의 내용입니다. 어쩌면 성경에서 가장 긴 경배의 기도일 것입니다. 이 경배의 기도 모두는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께 대한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섬겨온 하나님, 존귀와 송축을 받으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7절을 제일 먼저 보십시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셔서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셔서 인도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이 시카고 한인 연합 장로교회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가야 할 길이 어딘지를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미리 예비해 놓으신 땅에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너무 익히 보던 말씀 아닙니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셨사오며'
하나님은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새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경배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변화되고 말 것입니다.
인디언에게 죽임을 당한 선교사 짐 엘리엇의 선교 일기에는 이런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나는 사람이 나에게 왔을 때 어떤 것을 결정하는 갈림길의 선택을 발견하게 되기를 원한다.' 엘리엇 선교사의 마음속에 담겨 있었던 하나님을 우리도 만나게 된다면 우리 인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참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바꾸어 놓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황금을 주시지 않고 금이 섞인 광석을 주신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순금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금이 섞인 광석으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광석은 하나님의 제련소에서 몇 번이고 불 속에 담겨지고, 다시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서서히 정제되어 황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사실은 하찮은 광석이 아닙니다. 당장 보기에는 그럴런지는 몰라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광석이 아니라 황금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광석으로만 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셔서 황금으로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내의 자치국인 카라칼팍스탄에서 사역하는 정성헌 선교사님의 편지는 인도하시고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때문에 다르게 사는 사람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선교사님 가정이 그 곳 선교를 위해 우즈벡의 타쉬켄트에 거처를 정했습니다. 얼마 후에 한국에서 가져온 식용유가 떨어져서 주위의 고려인 아주머니에게 식용유를 좀 얻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목화유를 주시면서 '닦아 먹으라' 하셨답니다. 별 생각없이 받아들고는 며칠 뒤 그 목화기름으로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어서 두 아이와 함께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난 후 두 아이들이 잠자리에서 대소변을 하며, 토하고 고열과 설사증세로 완전히 환자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현저하게 마르기 시작했고 걷기조차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내도 닭살이 돋고 가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침이면 밤새 두 눈에서 흘러내린 고름이 엉겨 눈을 뜰수가 없었습니다. 선배 선교사들에게 문의해 보고 처방을 써보았지만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선배 선교사를 돕는 통역인과 함께 시장에 갔는데 그가 값비싼 외국산 식용유를 사기에 값싼 목화유가 많은데 왜 굳이 비싼 식용유를 사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통역인은 깜짝 놀라면서 '목화유를 먹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우즈백은 세계 3대 면화 생산지 중의 하나인데 기계 수확이 용이하도록 목화를 수확하기 바로 전에 고엽제를 뿌려 잎을 떨어뜨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씨에서 추출되는 면실유는 다량의 고엽제 성분과 농약 성분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화유의 화학 성분을 없애기 위해 강한 불에 두 세시간 끓여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작업을 고려인들은 '닦는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이해 못한 엄청난 결과를 그들이 겪은 것입니다.
그 후 정선교사님의 아내는 자녀의 건강에 대한 심한 죄책감과 불안으로 자주 흐느껴 울었습니다. 다행히 주님의 은혜로 3, 4개월이 지나자 아이들은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시름에 빠진 어느 날, 다섯 살 난 딸이 볼멘소리로 '아빠, 우리 언제 서울 집으로 갈거야? 타쉬켄트 여행이 너무 길잖아!' 그날따라 인접한 공항의 비행기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왔습니다. 다음날 딸이 또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빠 우리가 왜 여기 왔어?' 어쩔줄 몰라주저하면서 적막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딸이 난데없이 자기가 대답을 했습니다. '아빠 그것도 몰라? 전도하고 선교하고 예수님 전하러 왔지!' 순간 그 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 딸의 음성은 곧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은 이런 내용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곳의 사역이 일년반이 되면서 카라칼팍에서 영적인 부름이 들린다... 그 땅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 우리가 순종하여 간 그곳에서 주님은 지난 반년동안 그리고 지금도 주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신다.'
여러분, 선교사님에게 변화된 환경이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동일한 땅입니다. 그러나 그 땅이 달라져 보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환경보다 더 먼저 우리를 바꾸어 놓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뀌고 나면 환경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나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 질 것인가를 기대하십시오. 인도하시고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15절 전반부를 보실까요? '저희의 주림을 인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주시면 저희의 목마름을 인하여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은 모자람을 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적절하게 정확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입니다. 20절 이하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주의 만나로 저희 입에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의 목마름을 인하여 물을 주시사 사십년 동안을 들에서 기르시되 결핍함이 없게' 하셨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번 모자란다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주님 주신 것이 너무 많은데 받지 않았다고, 우리 가정에는 이것과 저것을 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적절하게 주십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여자 성도 여러분에게 제가 질문하나 드릴까요? 가장 적절한 이유시기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4개월 이후입니다. 물론 그 이상도 모유를 먹이지요. 그러나 모유를 먹여도 반드시 4개월 이후에는 이유식을 함께 해야 합니다. 왜 그런지 들어본 적이 있으세요? 어머니의 모유에는 철분이 없습니다. 만일 모유에 철분만 있다면 모유는 영양학상 완벽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기들은 모유만 4개월이상 먹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에게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엄마는 장기간의 수유를 하게되면 철분등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산모의 건강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유시기인 4개월까지 공급될 수 있는 만큼의 철분의 양을 간에 저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4개월 이후부터는 비록 모유를 먹인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유식을 해서 철분을 공급해주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서 산모의 건강과 아이의 건강을 함께 유지하게 하셨습니다. 알맞게 다 공급해주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와 그냥 그렇게 관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때를 따라 적절한 은혜를 공급하시고 결핍함이 없게 하시는 관계로 우리와 맺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들에게 얼굴을 돌리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30절과 31절은 이렇게 하나님을 그려놓았습니다. '주께서 여러 해 동안 용서하시고... 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주는 은혜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용서가 없다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일까요? 만일 하나님의 모습중에 용서함이 없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허물이 있습니다.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며 격려가 되는지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어제 저에게 편지 하나가 날아왔습니다. 뜯어보니 'Collection Agency'에서 온 편지였습니다. 저는 지불했다고 생각한 잡지의 구독료를 내지 않았다고 제 이름을 그 회사로 넘긴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편지의 첫 번 문장이 'We all make mistakes.'-우리 모두는 실수하는 사람들입니다-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실수와 허물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용서하는 일과 용서받음이 없이는 아무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제사장들이 기도하면서 '주님은 우리를 여러해 동안 용서하셨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여러해 동안,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길게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만할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선한 척하고 용서해 주기를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하나님의 요구이며 귀중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았듯이 우리도 남이 준 상처를 용서할 수 있다면, 우리를 핥기고 간 상처를 용서하면서 잊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평온하게 지낼 수가 있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서도 용서하지 못하는 아픔과 고통 속에 지낸다면 그것은 너무 불행한 것입니다. 원한에는 잊어버리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용서해 버리십시오. 상처를 극복하고 행복의 문을 열기 위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방법은 용서입니다. 이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하시는 분으로 다가 오셨습니다. 나의 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나의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는 손길로 다가오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더 중요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채,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매달려 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우스운 사람입니까? 한 사람이 백화점을 왔습니다. 물건을 사고 값을 치르려고 지갑을 꺼내다가 그만 지갑에서 일불짜리 동전과 쿼러 몇 개가 떨어져 굴러갔습니다. 급한 마음에 그 동전을 집으려고 자신도 모르게 백불짜리 지폐가 든 지갑을 카운터 위에 놓고 동전을 줍기 위해 동전이 구른 쪽으로 갔습니다. 주워 돌아오니 지폐가 꽤 든 지갑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적은 것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관심을 보이다가 정말 중요한 일은 놓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중요한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결코 포기해버려도 좋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인도하시고 변화시키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황금을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금이 들어있는 고귀한 광석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줄 모르고 사는 연약한 우리들을 인도하셔서 결국은 아름답게 바꾸시는 하나님, 그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더 소중하고 능력있는 하나님을 만나고 사십시오. 이런 하나님을 믿고 무엇인가 다르게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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