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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중이 좋은 사람 (에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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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에스더 10장 1절에서 3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나중이 좋은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단어 하나를 바꾸면 '끝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됩니다. 너와 내가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처음에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사이 좋게 지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관계가 아주 나빠져 원수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닙니까? 끝이 나쁜 경우입니다. 그런가하면 처음에는 원수처럼 좋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점점 좋아져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좋습니까? 나중이 좋은게 좋지 않습니까? 너와 나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의 경우를 두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평생을 살아가는데 처음에는 아주 잘 나가고 좋습니다. 그러다가 끝에 가서 즉 나중에 가서는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인생은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까? 처음에 잘 나가다가 나중이 안 좋은 것보다는 처음에는 안 되는 것 같고 또 심지어 안 좋더라도 나중이 점점 좋아지는 사람, 즉 끝이 좋은 사람, 이 경우가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모르드개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처음에는 아주 별 것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점점 더 좋아졌고 더 이상 좋을 것이 없다 할 정도로 그렇게 좋아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나중이 좋은 사람, 혹은 끝이 좋은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I. 좋은 기록을 남깁니다 (1-2)

끝이 좋은 사람이 좋은 기록을 남깁니다. 끝이 나쁜 사람은 좋은 기록을 남길 것이 없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10남매를 다 잃어버리고,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못 고치는 병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잃을 것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첫째로 욥은 가정을 못 지킨 사람입니다. 둘째로 재산을 못 지킨 사람이고, 셋째로 건강을 지키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끝까지 붙들고 지켰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욥이 곤경에 처했을 때 수아사람 빌닷이 세 가지로 충고를 합니다(욥8:5-7). 첫째로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라고 충고합니다.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라는 말씀을 새겨 봐야 합니다. 여기서 구하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사업하는 사람이 밑천이 떨어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자금, 즉 돈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10년 공든 사업이 다 무너지게 생겼습니다. 자금을 구해서 채워 넣어야 사업이 잘 돌아갈 수 있기에 자금을 구하러 다니게 됩니다. 그처럼 하나님 자신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구했으면 이제는 하나님께 빌라고 충고합니다. 즉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구했으니 다 끝났다 하지말고 그 하나님과 끊임없는 대화, 끊임없는 기도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기도는 열심히 하면서도 부정직하면 즉 정직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욥에게 줄 것이 없다고 충고합니다. 즉 청결하고 정직하라고 합니다. 도덕적인 인간이 되라고 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로 권고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권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십니다. 첫째로 뒤를 봐 주십니다. 즉, 돌보아 주시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뒤를 보아주고 밀어주신다면 그 이상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복음성가에도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둘째로 형통케 하십니다. 삐뚤어진 것이 있으면 바로 잡아 주시고, 막힌 것 있으면 뚫어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두 번째 복을 주시는 것이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창대하는 복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였기에 시작은 별 볼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나중이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욥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그 엄청난 고난 속에서 다 잃어 버렸지만 끝까지 믿음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을 구하며 빌고, 정직하게 살았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사 욥의 끝을 너무 좋게 하셔서 갑절의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기록을 보고 우리가 얼마나 은혜 받고 힘을 얻습니까? 욥은 한때 형편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나중이 좋았기 때문에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욥이 그런 권고를 저버리고 망했다고 하면 우리가 곤경을 당할 때 얻을 힘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욥이 이렇게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나중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처음도 좋고 나중도 좋으면 그 이상 좋을 것이 없겠지만 비록 처음이 좋지 않아도 끝이 좋고 나중이 좋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생애에 아름답고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절에서 2절을 보면 '아하수에로왕이 그 본토와 바다 섬들로 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왕의 능력의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모르드개라고 하는 사람은 별로 볼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베냐민지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왕족도 아니고 귀족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가 망할 때에 바벨론으로 많은 사람이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그때 잡혀간 포로 청년입니다. 형편이 말이 아니었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시작되었던 그가 나중에 대궐문에 앉았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왕은 바벨론 왕이 아니라 파사 왕입니다. 바벨론 나라가 메대나라에 망하고 메대가 파사에 합병이 되면서 파사 시대가 됩니다. 그러니까 시대의 순서는 바벨론 시대를 이어 메대와 파사 시대가 됩니다. 이 아하수에로 왕은 파사 사람입니다. 바벨론 시대에 포로로 잡혀간 모르드개가 파사 시대에는 대궐문에 앉았습니다. 대궐문에 앉았다는 것은 대궐의 문지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당시 대궐문에 위에는 넒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제법 지혜가 있고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백성들이 하소연 할 것이 있거나 재판을 받고 싶으면 찾아오는 곳입니다. 백성들의 모든 사연을 듣고 처리해 주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서 왕궁에 알려 왕으로 하여금 정책에 잘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대궐문에서 하는 일입니다. 이쯤 되면 모르드개는 포로된 사람으로써 제법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르드개는 대궐 밖의 일도 알고, 대궐 안의 일도 잘 압니다. 그러는 중에 내시 두 사람이 역모를 합니다. 즉 반역을 모의했습니다. 내시 두 사람이 어떻게 반역을 꾀하겠습니까? 그 뒤에는 배후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모르드개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에스더였습니다. 에스더는 자기 삼촌의 딸로 삼촌과 숙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고아가 되었으므로 에스더를 자기 딸같이 키웠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모르드개가 그 역모의 사실을 에스더에게 알렸습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알렸고 왕이 사실을 알아 봤더니 반역이 사실인지라 모든 것을 처리하고 평정을 시켰습니다. 그 사건이 왕의 일기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열왕의 일기'라고 하였습니다. 모르드개에 대해서 나쁜 것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이상에서 언급한 내용이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왕의 일기에 기록을 남기고 그냥 넘어갔는데 아하수에로 왕이 밤에 잠을 자다가 잠이 오지 않아서 일기책을 펴 보았습니다. 모르드개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불러 '모르드개에 대해서 어떤 보상이 있었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아무 보상이 없었다고 하자 '당장 불러다가 크게 상을 내리라'고 명하여 크게 상을 내렸습니다. 나중에는 그 파사 제국의 제 2인자 즉 왕의 다음이 됩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수상이요,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잘 될 수가 없지 않았습니까? 나중이 잘 되었습니다. 수상이요,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것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상이 된 후에도 왕을 잘 보좌하여 나라를 얼마나 잘 다스렸는지 그 모든 사실이 열왕의 일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형편없었지만 끝이 좋은 사람이 이렇게 좋은 기록을 남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열왕의 일기에 좋은 기록을 남겼다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성경에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 얼마나 더 아름답습니까? 우리가 에스더서를 통해서 얼마나 힘을 얻고 은혜를 받습니까? 끝이 좋은 사람은 이렇게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처음이 좋으면 좋지만 처음에는 고생스럽고 실패의 연속이었다 할지라도 나중이 잘 되어서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여러분들의 생애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조선 왕가의 왕손 중에 목사가 된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조금만 일찍 태어났으면 고종황제보다는 이 분이 황제가 될 뻔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왕의 족보가 고종쪽으로 이어져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이름은 이재형입니다. 이 분은 풍기군수를 지냅니다. 그 당시 왜놈들이 들어와서 득세를 하는지라 그 꼴을 보지 못하겠다 하여 군수 자리를 내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을사보호제약이 체결될 때 '나는 왕손의 특혜를 깨끗이 포기한다'라고 하면서 왕손에게 주어지는 모든 특혜를 다 포기해 버리고 자유로운 평민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아내에게 땅 문서 얼마를 남겨 두고 그 나머지 재산은 정리를 해 가지고 방랑생활로 떠납니다.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때 왕손이었기에 가진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내다 보니 모든 재산을 다 없애고 아무것도 없는지라 친구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부인이 사람을 보내어 '당신이 나에게 200석 지기를 주고 간 것을 잘 늘려서 지금 500석 지기가 되어서 먹고 살만 하니 들어오십시오'라고 전하면서 돌아오기를 독촉하였고 그는 돌아 왔습니다. 자기 선영이 충주에 있는지라 선영을 찾아가고 싶어서 마부를 불렀습니다. 그 마부가 예수쟁이었습니다. 지금의 경동제일교회에서 영수로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영수제도가 없어졌지만 그 때에는 교회 안에 있던 제도입니다. 충주에 갔다 오는 동안에 그 영수가 전도를 합니다. '나으리 예수 믿으시지요?' '예수를 왜 믿지?' '예수를 믿으면 영생의 복이 있습니다' '영생이 무엇인데?' '복중의 최고의 복입니다' '아니 그럼 자네는 그렇게 예수를 믿고 최고의 복을 받았다고 하면서 마부 노릇을 왜 하는가?' '나으리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마부 노릇을 하다가 집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마부 노릇을 더 잘 하는 것입니다' 그는 마부와 이야기를 하면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기 마누라가 살고 있는 집이 승동교회와 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승동교회의 열심히 있는 교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그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고 자기 아내의 권면도 있는 터에 교회에서도 계속 모시러 오곤 하였습니다. 하루 저녁 나아가 보자 하여 교회에 나아갔습니다. 교회에 나갔더니 생각 밖에 그 마부가 와 있었습니다. 멀지만 옛날에는 부흥회라면 참석하곤 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반갑게 만났습니다. 일주일 동안 부흥회를 하는데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거기에서 예수 믿기로 결심을 하고 결국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4년에 승동교회 장로가 되었습니다. 4년후 1918년에 평양신학교 제11회 졸업생으로 졸업을 하고 목사가 되어 남대문교회 목사, 승동교회 목사를 지냈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 이런 좋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왕손이어서 혜택을 좀 받으면 무엇합니까? 차라리 그것을 깨끗이 포기하고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구원 얻은 하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훌륭한 기록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끝이 좋은 사람, 나중이 좋은 사람이 되어서 좋은 기록을 많이 남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II. 민족의 존경을 받습니다 (3상)

야곱의 아들 요셉은 우리 나이로 열아홉 살, 그네들의 나이로 열여덟 살 때 옷도 다 벗기고 벌거벗은 몸으로 형들에 의해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 때 얼마나 형들에게 한 번만 살려달라고 애걸했을까?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형들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컸을까도 생각해 보십시오. '딴 사람 아닌 형들이 나를 팔아먹다니! 언제 내가 자유의 몸이 되지!' 그 탄식은 또한 얼마였겠습니까? 팔려간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종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열심히 노예로써 봉사를 했는데 오히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으니 한이 맺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하나님을 져버릴 사람이 있다면 바로 요셉일 것입니다. 요셉 이상의 고난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또 요셉처럼 그렇게 억울하고 분통터져 못살겠다 싶은 경우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럴 수가 있는가?'라고 요셉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버렸다면 요셉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엄청난 고난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는 줄을 알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억울한 일, 정말 분통터지는 일이 생기거든 그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계시는 줄 알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연속적인 고난을 통해서 요셉을 훈련시켰고, 키웠고, 결국에는 애굽의 국무총리로 삼으셨습니다. 당시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이 요셉의 고난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7년 풍년 때에 양식을 많이 저장했다가 이어서 오는 7년 흉년에 애굽뿐만 아니라 그 주변 나라가 굶주릴 때 곡간을 열어 먹여 살리지 않습니까? 결국 자기 형제들도 그 덕을 입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때 이 요셉에 대한 열국의 존경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형제들과 가족들에게서 존경을 받고 열국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게 시작되었으나 나중이 좋고 끝이 좋은 사람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반대로 처음은 좋았는데 끝이 좋지 않았다 할 때 받을 존경이 뭐가 있겠습니까? 남에게 줄 혜택이 뭐가 있겠습니까? 나중이 좋아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절 상반절을 보면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라고 하였습니다.

존대하여 굄을 받고 그 엄청난 존경을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에게만 받았습니까? 유대인들에게는 그렇게 존경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날 한시에 하만의 계교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모르드개가 중심이 되어 유대인들이 함께 3일을 금식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오히려 역전을 시키고 승리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쯤 되었으니 유대인들이 그를 존경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큰 뜻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파사 나라는 그 주변의 여러 나라를 점령하고 대제국을 건설했기 까닭에 그 파사 나라는 하나의 백성, 하나의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그 많은 민족 중에 '모르드개가 왕 다음이 되고'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다른 백성들에게까지 심히 존대하게 되고 굄임을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내 민족, 네 민족, 내 형제 네 형제에게 전부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포로 청년이 이렇게 되기까지 끝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았습니까? 끝이 좋은 사람에게는 많은 존경이 있는 법입니다. 여러분들의 끝이 잘 되고 여러분들의 나중이 심히 잘되기를 바랍니다.

이순신 장군은 세종대왕과 함께 쌍벽을 이루어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처음에는 별로 볼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미관 말직에서 헤매고 있을 때 류성룡 대감의 천거를 받았습니다. 류성룡 대감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까지 지낸 유명한 분입니다. 이번에 영국여왕이 방한하여 하회마을에 다녀가지 않습니까? 그 마을에 가보면 류성룡 대감의 형과 류성룡 대감의 집이 주축을 이루어 화회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숭실대학교 교목실장인 류순하 목사가 그 후손 중에 한 사람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류성룡 대감의 천거를 받아 전라도에 있는 수군절도사가 됩니다. 쉽게 말하면 전라도 지역에 있는 해군을 총 지휘하는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경상도 지방을 총 지휘하는 사령관은 원균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원균은 쫓기고 쫓겨서 연전연패를 당했습니다. 이순신은 이기고 또 이겼습니다. 원균이 나중에는 전라도까지 쫓겨오는 입장이 되었지만 합세하여 왜군을 격파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군대를 모두 수습하여 이제는 좀 안정이 되었습니다. 이 때 누구를 삼도의 수군절도사로 삼아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이순신이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대등한 관계에 있던 원균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습니다. 이순신은 모함을 당하여 서울로 압송이 되고 감옥에서 죽지 않을 정도로 맞았습니다. 28일 만에 혐의를 벗고 다시 해군에 복귀를 하나 백의종군합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는지라 삼남에 있는 모든 해군을 통제하는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량대첩을 치르면서 왜군을 격파하고 나중에는 총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원균도 그 전선에서 죽었습니다. 나중에는 영의정에 추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미관 말직에서 감옥에 갇히고 죄인 취급을 받는 어려운 지경에 있었지만 나중이 점점 잘 되고 끝이 좋더니 오늘날 민족에게서 얼마나 추앙받는 성웅이 되었습니까? 처음이 좋고 나중이 형편없었다면 존경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이 좋으면 좋고 처음이 안 좋다 할지라도 나중이 잘되고 끝이 좋아서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III. 끝까지 봉사를 합니다 (3절하)

본문으로 돌아가서 3절 하반절을 보면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여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파사 제국 안에 있는 모든 백성이 이제는 하나의 제국을 이루어 그 백성이 되었기에 따지고 보면 내 백성, 네 백성이 모두 파사 제국의 백성이 된 겁니다. 물론 내 백성이 있고, 네 백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의 대제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왕의 다음이 된 국무총리 모르드개는 내 백성에게만 잘 한 것이 아니라 네 백성에게도 잘 했습니다. 절대 편을 가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본문을 보면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는 말씀을 이스라엘 12지파 종족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종족들 중에 12지파가 있지 않습니까? 그 12지파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똑 같이 안위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입니다. 자신이 베냐민 지파라고 해서 베냐민 지파를 더 잘 봐 주었습니까? 다른 지파를 깔보고 소외시켰습니까? 12지파를 똑같이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족을 파사 제국 안에 있는 여러 다른 종족을 가리킨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내 백성과 네 백성을 똑같이 그렇게 잘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에서 저 민족까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즉 끝까지 봉사를 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끝이 좋은 사람이 되려면 차별 없는 봉사 그리고 끝나기 봉사를 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경상도 사람이 되지 않은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또 이런 의미에서 전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지금 전라도와 경상도가 얼마나 암투를 벌이고 야단입니까? 그렇기 까닭에 저는 경상도도 아니고, 전라도도 아니고 이북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서 편을 가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광성교회처럼 조화를 이루는 교회는 쉽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는 이북 사람만 모인다, 어느 교회는 전라도 사람만 모인다, 어느 교회는 경상도 사람만 모인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성교회에 이북 사람만 모인다고 합니까? 전라도 사람만 모인다고 합니까? 경상도 사람만 모인다고 합니까? 우리 교회처럼 각도에서 골고루 모여서 조화를 이루고 하나같이 협력을 잘하면서 잘 해나가는 교회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을 보십시오. 이북 사람이 몇 이나 됩니까? 거의 전라도 경상도 사람이 아닙니까?

본문을 보면 모르드개가 내 백성 아닌 네 백성, 내 지파가 아닌 네 지파까지 골고루 조화를 이루어 잘 봉사를 했습니다. 끝이 좋은 사람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잘 봉사하는 사람은 끝이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끝이 좋은 사람, 끝까지 봉사하여 나중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을 짓습니다. 나중이 좋은 사람은 첫째로 좋은 기록을 남깁니다. 처음보다 날이 갈수록 나중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둘째로 민족의 존경을 받습니다. 모르드개는 몸을 던져 민족을 구원하고 민족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셋째는 끝까지 봉사를 합니다. 모르드개는 네 편 내 편을 가르지 않고 봉사했는가 하면 끝까지 봉사하였습니다. 나중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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