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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캔들 피하기 (룻 0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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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피하기 (룻 3:14-18)

지난 번 한국의 총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신상이 자세히 공개되면서 유행어가 하나 생겨났습니다.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지요. 똑같은 사건이라도 스캔들로 매도될 수도 있고 로맨스로 미화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여러 종류의 스캔들에 휘말려 낙천과 낙선의 고배를 마신 사람들이 많았지요.

타작마당에서 자고 있던 보아스의 잠자리에 룻이 왔다 갔다는 것은 100% 스캔들감입니다. 어쩌다가 이것이 소문이라도 나는 날에는 베들레헴 아낙들이 모인 곳마다 이런 대화가 오고가게 될 것입니다.

'여리고댁, 소문 들었어? 그 모압 기집애가 글쎄 보아스의 잠자리에 찾아왔었대.'
'어머, 그게 정말이야? 흐이그, 순결한 체는 혼자 다 하더니 뒤로 호박씨 까고 있었구만.'
'맞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대잖아?'
'누가 아니래 글쎄? 그 기집애가 보아스네 밭으로 이삭 주우러 다닐 때부터 내 알아봤다니까.'
'쯧쯧, 보아스 영감님만 안됐지 뭐야. 그 여우 꼬리치는 것에 그만 홀딱 빠져가지고...'

자, 이렇게 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룻의 정절과 명예는 땅에 떨어지게 되지요. 룻은 가난해서 먹고 살 일이 캄캄했을 때 남의 추수하는 밭에 나가 이삭줍는 데까지 낮아지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괴롭게 하셨는데 너희가 나를 어찌 나오미라 부르느냐?'라고 했던 시어머니의 믿음을 본받았던 룻도 하나님이 낮추신다면 얼마든지 낮아질 수 있었습니다. 도산 안창호 하면 우리 한국 사람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민족의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 가서 해야 했던 일은 화장실 청소였습니다. 한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서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끼니를 이어야 할 만큼 낮아졌지만, 그분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했던지 사람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려면 안창호 선생을 특별히 찾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그분은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은 첫째도 정직이요 둘째도 정직이요 셋째도 정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자존심을 포기하고 화장실 청소하는 데로 낮아지는 것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자신의 성실과 정직을 포기하고 속임수와 거짓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지요. 룻이 바로 그렇습니다. 가난해지는 것도 참을 수 있고, 자존심 버리고 이삭 주우러 나가는 것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로서 지켜야 할 정절과 명예가 짓밟혀지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지요.

보아스는 이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4절에 보아스가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을 보면 마치 보아스 자기 입장이 곤란해질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밤에 찾아온 여자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면 보아스의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어떤 여자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여자가 밤에 보아스에게 왔었대.' 하면 '보아스 나쁘네'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여자가 밤에 보아스에게 왔었대.' 하면 나쁜 사람은 누가 되는 겁니까? 그 여자지요? 그럼 여기서 보아스의 말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그냥 '어떤 여자가 왔었대.' 식으로 되어 있지요?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자라는 단어에 관사가 붙어 있는데, 이것이 정관사이냐 부정관사이냐에 따라 의미가 많이 달라질 상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히브리어 문법에는 관사가 하나뿐이에요. 정관사와 부정관사의 구별이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정관사가 되기도 하고 부정관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해석이 어려운 거지요.

제가 영어성경 몇 가지를 찾아봤는데,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권위를 가지고 사용되었던 KJV와 현재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NIV는 a woman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보아스가 자기 입장을 걱정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16세기 영어로 쓰여진 KJV을 현대어로 다시 다듬은 NKJV에서는 the woman이라고 번역했어요. 또 최근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고 있는 NRSV나 가장 최근에 나온 NCV에서도 정관사로 번역해서 보아스가 룻의 입장을 염려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히브리어 자체가 정관사와 부정관사의 구별이 없으니까 아무렇게나 번역할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쪽을 선택한다고 해서 이단이 되는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문맥과 상황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겠지요?

지금 상황에서 보아스는 자기 입장을 염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룻의 입장을 염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물론 두 가지 다일 수 있어요. 그러나 보아스가 했던 말을 보면, '나의 성읍 백성이 모두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 아느니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룻을 염려해 주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베풀려고 하는 보아스의 마음이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보아스가 자기 입장을 염려하고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동네 어른으로서의 자기 체면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겠지만, 지금 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룻의 명예와 정절을 지켜주는 일이지 않겠어요? 그래서 젊은 과부 룻이 밤중에 남자 혼자 자고 있는 곳에 다녀갔다는 것이 소문나지 않게 하려고 보아스는 애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룻이 보아스에게 왔다 갔다는 사실이 소문나서는 안되는 다른 이유는 보아스가 말한 것처럼 그가 가장 가까운 친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룻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아직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우선권을 가진 사람이 그 권리를 포기할 때에야 비로소 보아스 차례가 되어 룻과 결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사실이 공개된다면 그야말로 스캔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부도덕한 사람들로 몰리게 되고, 그 우선권을 가진 사람은 이것을 구실로 자기 의무를 면하면서 남을 비난할 근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일이 잘못 돼서 의인들이 궁지에 몰리고 악인들이 득세하고 큰소리를 치게 되는 일이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나고 있지요? 특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 보기에 스캔들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똑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안 믿는 사람들은 용납되고 잊혀지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더욱 공격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통째로 비난을 받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스캔들 거리를 만들지 않아야지요. 스캔들 없이 깨끗하게 사는 분들은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처신함으로써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제로는 스캔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악의적인 음모나 오해에 의해 스캔들의 희생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아스와 룻의 경우가 그렇지요.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감추었다고 해서 보아스와 룻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할 수 있습니까? 정직해야 한다고 해서 그날 밤에 일어난 일을 공개해서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만들어 부끄럽게 할 필요가 있나요?

보아스와 룻은 스캔들이 될만한 비행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오해의 소지가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보아스와 룻은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소문나면 안되니까 누구 보기 전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 밤중에 연약한 여자 혼자 내보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또 어떻게 되겠어요? 현재 자신의 책임과 보호 아래 있는 이 여자를 어둠 속으로 내보는 일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지요. 그래서 새벽까지 머물도록 합니다. 책임이 있는 사람과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교회의 멤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서약하게 될 것인데, 그럼으로써 우리는 주사랑교회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지게 되는 것이지요. 만약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책임이 없는 사람 같으면 '내가 알 게 뭐야?' 하는 식이겠지만, 책임을 진 사람이라면 함께 걱정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겠어요? 지금 보아스는 룻의 안전을 걱정하고 책임져야 할 상황입니다. 그래서 새벽까지 거기에 머무르도록 하는데, 룻이 보아스의 곁에 가서 누운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발치에 누웠다가 새벽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혹시 가는 길에 사람을 만나더라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을 때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룻을 보내면서 보아스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않습니다. 나오미에게 보내는 선물로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줍니다. 여섯 번 되어 주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들고 갈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을 재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나오미에게 선물을 보낸다는 것은 나오미의 요청을 거부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표시인 것이지요. 만약 룻이 빈손으로 돌아왔다면 나오미는 자신의 요구가 보아스에게 거절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보아스가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일종의 약혼선물의 성격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이 밤중에 밭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구하겠어요? 진주 목걸이를 만들어내겠어요? 또 끼니 걱정을 해야 할 가난한 나오미에게는 보리처럼 좋은 선물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룻은 모든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하고 어머니에게 돌아왔습니다. 룻은 밤새 한숨도 못잤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지만, 나오미도 편안하게 잠을 자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새벽이 되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보자마자 묻습니다.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히브리어 원문에는 '너 누구냐?'로 되어 있습니다. 새벽에 도둑이 들어온 줄 알고 '누구냐?' 하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내 딸아, 너 누구니?'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너 보아스의 신부냐 아니냐 하는 질문인 거예요. 그래서 번역본 성경들은 '어떻게 되었느냐'로 의역하고 있는 것이지요. 룻이 보아스에게 간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와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는 보아스의 신부가 되기로 했는지 실패해서 못되었는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룻의 말을 다 듣고 또 보아스가 보내온 선물을 보고 나오미는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는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생각나지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고 하늘이 결정해 주기만을 기다린다는 뜻인데, 나오미와 룻의 마음이 바로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 보아스가 할 일이 남아 있고 그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진인사를 다하지 못한 사람은 대천명할 자격이 없습니다. 공부는 통 안한 사람이 좋은 시험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요. 이것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게 자칫 잘못하면 공부는 안 해도 기도만 많이 하면 하나님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나오게 해 주실 거라고 믿게 되는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당장 죽어가면서도 수술을 거부하고 기도원에 갔다가 죽는 일이 허다하지요. 물론 병원에서도 포기한 병을 기도원에 가서 고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원에 가보면 죽어나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살아오는 사람만 보고 거기만 가면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공부 대신 기도만 하면 시험 잘 볼 수 있다는 사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도할 시간 있으면 공부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공부도 할 수 있는 만큼 다 하고 기도도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신 분의 능력을 의지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자기의 책임은 다해야 합니다. 그 예가 누구인가 하면 야곱입니다. 형 에서가 1개 대대 병력을 거느리고 자기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그때 야곱이 한 일은 에서의 공격에 대비해서 가족과 재산을 분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최소한 한 부분이라도 생존하도록,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한 일은 혼자 남아 밤새 기도하는 일이었지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사람은 그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 하늘의 명령이기 때문이지요. 비록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진인사대천명을 말했던 옛사람들은 우리 성도의 살아가야 할 모습을 아주 정확히 말해준 격입니다. 이제 보아스가 일을 처리하게 되었고 어떻게 되든 그 결과가 곧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제 룻과 나오미의 삶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빚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에 이처럼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다 행하고,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기를 구하고 기다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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