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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행복을 누리는가? (룻 0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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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행복을 누리는가? (룻 4:13-17)

불운과 슬픔으로 시작되었던 룻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눈물과 아쉬움,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더니, 고난의 강을 건너고 팽팽한 긴장의 땅도 지난 다음, 이제는 그치지 않는 웃음소리, 풍성한 축복과 감사의 현장으로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룻기를 읽는 모든 독자들 중에서 이 행복과 축복이 보아스와 룻, 그리고 나오미에게 과분한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이 축복은 보아스와 룻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보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런 축복을 누리기에 충분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지요. 이 룻기의 구성과 내용을 근거로 해서 우리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는 역전의 테마를 추출해 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찾고 그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축복이 약속되고 보장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서 다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을 테마로 하는 이야기들에서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결국에는 행복을 찾게 됩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또는 어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권선징악의 테마에 맞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옛날 이야기에서는 대부분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벌을 받게 되어 있지요. 그러나 실제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진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도덕과 질서를 세우기 위해 선한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많지 않은 예들이 발굴되어 강조되고 또 그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룻기의 내용도 그러한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권선징악의 테마가 교훈으로 사용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일수록 현실세계는 권선징악의 테마와 동떨어진 현상이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주변을 돌아보기만 해도, 복을 받을 자격과 조건을 갖추었는데도 하는 일마다 꼬이고 풀리지 않아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반면에 어떤 사람은 심보가 놀부 못지 않은데, 그 사람이 주식을 사면 오르고, 팔고 나면 폭락하고,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척척 들어간단 말이죠.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원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착하게 산다고 해서 일이 잘되고 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착하고 양심적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이와 똑같은 원리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받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살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하는 말을 우리가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제가 길지 않은 인생 살면서 본 것에 의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말씀대로 성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손해를 당하고, 속임수에 넘어가고, 기회를 놓치고,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의 삶을 보아도 그렇고, 바로 여러분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했다고 해서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이 모든 일에 성공하고 앞길이 훤하게 열렸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데도 일이 안풀리냐고 의문을 갖거나 불만을 가져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이름을 적절히 이용하고, 말씀과 처세를 적당히 배합할 줄 하는 사람들은 성공한 그리스도인으로 부각되고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예수 믿고 복받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한두 사람 그런 경우를 가지고 누구나 예수 믿고 복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 세상은 예수 믿고 더 힘들어지게 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차라리 '예수 믿고 힘들게 살 각오를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보아스와 룻, 그리고 나오미, 이런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앞에서 신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한없는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저의 경험에 의해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보아스나 룻처럼 산다고 해서 그들이 받았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속임수를 당하고 따돌림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보아스와 룻이 받았던 축복을 누리게 되지 못할지언정, 우리는 보아스와 룻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보아스처럼 살면 보아스가 받았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고, 룻처럼 살면 룻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인데, 그런 축복은 보장하지 못하면서 보아스처럼, 룻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안됩니까? 저는 말이 안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말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과 철학에 의하면 말이 안되는 말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가치, 그야말로 세상의 가치와 심하게 충돌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하나님의 방법에 따르면 이것은 매우 당연하고 말이 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의 가치와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와 방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우리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과 양심을 속이며 불의를 행하고 살든지 말든지 내버려두시고 간섭도 안하시는, 또는 못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야말로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축복과 상급을 받느냐, 그렇지 못하고 세상에서 미천한 존재가 되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쳐서는 안됩니다. 만약 우리가 착하게 산 것에 해당되는 만큼 하나님의 상급을 기대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제가 착하게 살았으니까 그만큼 축복해 주세요. 만약 하나님이 안 주시면 내가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나 착하게 안 살아버릴 거예요.' 착하게 사는 것을 볼모로 하나님을 협박해서 축복을 받겠다는 것입니까? 전능하시고 최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아스에게 주신 상급을 우리에게는 주지 아니하실지라도 보아스처럼 살아야 합니다. 룻에게 주신 축복을 우리에게는 허락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룻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는 그 하나님이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축복과 상급을 받지 못할지라도 믿음과 양심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장 우리의 삶에 보상을 안 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때문에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상만 주시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 인생의 영생과 멸망을 결정하시는 심판주이십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사는 우리가 어떻게 감히 눈앞의 이익과 행복을 좇느라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단 말입니까? 당장은 우리의 삶에 합당한 상급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축복에 매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보아스를 한번 봅시다.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습니다. 보아스가 처음 룻을 만났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보아스가 룻에게 맨처음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당시 룻은 그야말로 둥지 잃은 새처럼 기댈 곳도 의지할 것도 없는 가련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고난을 무릅쓰고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온 것은 여호와의 백성이 되겠다는 일념에 의한 것이었고, 그래서 보아스는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것'이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정말이지 룻에게는 그녀를 덮고 보호해 줄 커다란 날개가 필요했습니다. 룻의 형편을 보고서 보아스는 하나님께서 커다란 날개를 펴서 그녀를 품어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누가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까? 누가 날개로 가엾은 룻을 품게 되었나요? 바로 보아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 2:15-16). 그것은 가짜 믿음,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보아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믿고 주장하는 바를 행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그것을 해야 돼!'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주장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에 대해서 분노하고 비난할 줄도 압니다. 그러나 그 부조리를 제거하고 부패를 방지하는 일에 나서기는 극히 꺼려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아니! 당신이 이렇게 헐벗고 굶주리도록 아무도 돌보지 않았단 말이야? 이 못된 사람들 같으니! 또 정부는 뭐하고 있는거야?' 그렇게 사회와 이웃을 책망하고 비난할 줄은 알면서 자신이 그 책임을 수행해야 사람인 것은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야고보 사도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만약 보아스가 '하나님이 그 날개로 품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말만 하고 자기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이 룻기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고 대대로 길이길이 그 이름을 기억할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보아스는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그의 삶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이 그 날개로 룻을 품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보아스 자신이 그의 날개로 룻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보아스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agent, 하나님 대행이 된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산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위임받아 행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대사, 또는 그리스도의 대사(Ambassadors For Christ)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우리 삶에서 행해지는 일들이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들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이 안 하실 일들인가요?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을 대리하고 하나님을 대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들이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찾아서 행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요 사명인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보아스가 하나님의 날개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날개로, 하나님의 손으로 사용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대신 수행하는 하나님의 손이 되고, 하나님이 가셔야 할 곳에 대신 가는 하나님의 발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고 흡족하게 해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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