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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2,000명과 300명의 차이 (삿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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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더니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들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가스펠송이라고 했는데 요즘에는 CCM이라고 하더군요.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무식하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여러분도 CCM이라고 하세요. 탄자니아에서 돌아온 저에게는 처음에 CCM이라는 말이 굉장히 어색했어요. 왜냐하면 CCM은 탄자니아의 집권당 이름이거든요. 스와힐리어로 Chama cha Mapinduzi인데, 혁명당이라는 뜻입니다. 과거 사회주의 시절에 생겨난 당이니까요. 그래서 CCM이라면 무능과 부패의 상징이었는데, 찬양을 CCM이라고 하니 어색할 수밖에요. 그래도 남들이 다 그러는데 나 혼자 어색하다고 안쓸 수는 없잖아요. 어쨌든 옛날에 즐겨 부르던 노래들은 들을 수 없고 새로 나온 신곡들이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유행에 많이 뒤져 있어서 지난 홈그룹에서 요즘 새로 나온 최신 CCM을 한 곡 배워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군요. 역시 우리에게는 흘러간 옛노래가 맞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새로 배운 노래 가운데 하나가 우리도 자주 부르는 '주만 바라볼지라'라는 찬양입니다. 제가 한국에 갔을 때 저랑 같이 선교사 훈련을 함께 받았던 친구 목사님 한 분도 한국에 와 있었습니다. 제가 선교지에 가 있는 동안 이분은 영국과 미국에서 계속 공부를 하다가 한국에 돌아온 것입니다. 영국 신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London Bible College에서 공부를 하고 다시 미국의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왔으니까 한국에서 좀 알아줄 만도 하고, 또 그만한 실력 가지고 선교지에 간다고 하면 후원교회도 많이 나설 법한데, 하필 시기가 IMF로 침울하던 때라서 정말 갈 곳이 없더랍니다. 그런데 이 새로 나온 '주만 바라볼지라'라는 찬양을 부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정말 우리가 바라보고 의지할 분은 주님 한 분뿐이더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이분이 선교지에 나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처럼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어야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가는 데마다 푸른 산이 있어서 정을 붙이고 살만하다는 말이지요. 한국도 그렇고 여기 뉴질랜드도 그렇고, 심지어는 아프리카도 가서 살면 살만한 곳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선교사나 대사관 직원들처럼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사람들 외에는 가서 사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가서 장사하고 사업하면서 사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도 살만하니까 가서 사는 것 아니겠어요? 어디를 가나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있고,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제가 뉴질랜드 올 때 아는 사람이 있었나요? 무슨 연고가 있었나요? 아무것도 없이 그냥 왔어요. 그런데 와서 살다 보니 여러분도 만나게 되고, 이렇게 즐겁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의지하게 되고, 사람에게 기대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구요.

그런데 저는 최근에 사람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사람에게 기대고 의존한다는 것이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서로 지향해야 할 관계는 사랑과 신뢰라고 믿습니다.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관계, 얼마나 좋습니가? 그러나 사람을 100% 신뢰한다는 것은 실망과 상처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부터는 우리가 서로를 경계하면서 살자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서로가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 성실하게 애써야 합니다. 문제는 그 신뢰가 보상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그렇게 실망하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신뢰의 대상이 되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어떤 때 마음이 든든하던가요? 뭔가 믿을 만한 것이 있을 때입니다. 은행에 돈이 많이 들어 있다거나 괜찮은 빽이 있다면 든든하겠지요? 이것이 우리 인간의 아주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기드온이 얼마나 든든했을까요? 나팔을 불었더니 전국에서 지원병들이 몰려왔습니다. 32,000명이나 되는 대군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1개 사단 병력이 약 20,000명입니다. 그 20,000명의 병력이 사단장이라는 막강한 권력과 힘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군대에서는 사단장, 즉 별 두 개가 한번 움직이면 산천이 떤다고 말합니다. 이제 기드온은 32,000명의 군사가 만들어내는 권력과 힘을 갖게 된 것입니다. 기드온이 믿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32,000명의 군대를 믿고 그 힘에 의지해서 기드온은 미디안 군대를 격퇴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기드온의 믿음을 단호히 거부하십니다. 그 권력과 힘에 대한 믿음으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32,000명의 군대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하십니다. 기드온이 믿어야 할 것은 32,000명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기드온으로서는 32,000명의 군대가 결코 많은 것이 아닙니다. 적군의 수는 135,000명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강한 특수부대이거나 혹은 뛰어난 전술이 있다면 몰라도, 적군의 4분의 1도 안되는 병력으로 전쟁을 한다는 것은 모험이지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32,000명이 너무 많아서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너무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만약 이 32,000명의 군대로 미디안 군대를 쳐부수면, 이 32,000명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게 모은 이 군대를 다시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 적군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한 32,000명의 군대, 그나마 그거라도 있어서 죽기살기로 한번 싸워볼까 하는데, 그걸 돌려보내라시니 기드온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겨도 우리 힘으로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제발 이 군대만큼은 가지고 있게 해 주세요. 우리가 이 적은 수로 어떻게 저 많은 수의 적군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이긴다면 그것은 100%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절대로 우리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그런 염려는 마시고 제발 이 군대만은 가지고 싸우게 해 주세요.'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두려워서 떠는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보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카테고리가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집을 새로 짓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해버리면 고생해서 새로 지은 그 집에서 살아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 좋은 일만 시키기 때문입니다. 또 포도원을 새로 만들었는데 아직 과실을 먹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직 맛도 보지 못한 새 포도원이 다른 사람 몫이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지요. 또 여자와 결혼하기로 했는데 아직 첫날밤을 보내지 않은 사람 역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겁이 많은 사람도 군대가 면제됩니다. 참 좋은 법이군요. 얼마 전에 보니까 돈이 많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아들들이 주로 군대 면제가 되었던데 말입니다.

할 수 없이 하나님 말씀대로 두려운 사람은 집으로 가라고 하면서 기드온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제발 집으로 가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기를 소원했겠지요? 나라를 구하겠다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인데 설마 두려워 떠는 사람이 있을라고?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돌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거야. 혹시 좀 두렵더라도 좀 참아라. 누구는 안 두렵냐? 솔직히 나도 두렵지만 참고 있단 말야. 제발 가지 마. 나는 너희들을 믿어. 내 운명이 너희들에게 달렸다구!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기드온 만세를 부르고 한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섰던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는 것입니다. 32,000명 중에서 22,000명이 가버렸어요. 기드온이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요? 미디안 놈들을 쳐부수고 민족을 구하겠다는 포부도 그렇게 무너져내리지 않았을까요? 또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까요? 아이고, 내가 저놈들을 믿고 나라 구할 생각을 했단 말이야? 역시 사람은 믿을 게 못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기드온에게 사람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하고 계십니다. 32,000이나 되던 기드온의 힘과 자신감이 10,000으로 푹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계산법이 있습니다. 그 나머지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떠나버린 22,000명 분량은 이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시원하십니까? 이제 죽으나 사나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됐네요. 주님만 믿고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아니다, 10,000명이 너무 많다. 더 돌려보내라.' '뭐라구요, 하나님? 그건 안됩니다. 누구를 돌려보냅니까? 이 남은 사람들 중에는 두려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모두 용감하게 싸울 사람들뿐이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은 가라고 해도 안갈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라. 누가 나가서 싸워야 할지, 누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내가 결정하겠다. 모두 데리고 강가로 내려가거라.'

강으로 가서 물을 마시라고 했더니 어떤 사람들은 엎드려서 물을 마시고, 어떤 사람들은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셨습니다. 그렇게 물 마시는 방법대로 나누어 보니까 엎드려서 마신 사람이 9,700명, 손으로 떠서 마신 사람이 300명입니다. 기드온이 좀 안심을 했습니다. '좋습니다, 하나님. 손으로 떠서 물을 마신 사람들도 다 용감한 사람들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아니다. 엎드려서 물을 마신 사람들은 집에 가라고 해라.' 기드온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믿음이란 칫솔과 같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자기 칫솔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늘 그 칫솔을 사용하지요. 그러나 다른 사람의 칫솔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칫솔이 없다고 다른 사람의 칫솔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이 많지요? 손양원 목사님, 얼마나 훌륭한 분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에 의지해서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내가 위기에 닥쳤을 때 그 위대하던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으로 내가 승리하고, 내 믿음으로 내가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내 믿음으로 내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믿음을 따라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자라서도 부모의 믿음에 의존해서 살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정립되고 그 믿음이 아이들의 인생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모세의 믿음, 민족을 구원했던 그 위대한 믿음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모세의 믿음을 빌려와서 지금 민족을 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믿음이 민족을 구할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지금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어라, 주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32,000명의 군대를 믿는다면, 그만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군대가 10,000명으로 줄었을 때, 군대에 대한 믿음이 줄어든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군대 10,000명 분량의 믿음이 아직도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은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겨우 300명, 135,000의 적군 앞에서 군대라고 할 것도 없고 믿음의 대상도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남게 되었을 때, 비로소 기드온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노랫말처럼 주님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의지하고 붙잡을 것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Dr. Bob Cook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사역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설명할 수 것들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다.' 내가 한 것이지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니지요. 나에게 능력이 있고, 또 믿음직한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에 의해 계산된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왔을 때, 우리는 기뻐하기보다 우리 믿음의 현주소를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능력을 믿었고 사람을 믿었을 뿐이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의 목사님이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셔도 굴러갑니다.' 믿을 게 생기니까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요? 때때로 하나님은 주님만 바라보도록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서 믿을 만한 것들을 다 제거하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실망하게 될 때, 그것은 사람을 미워하고 멀리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살았던 재산을 포기하게 하신 것도 10,000명 남은 군대를 돌려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군대가 있으면서도 그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군대를 돌려보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군대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 군대는 해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믿고 있나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믿고 있는 32,000의 군대를 포기하라고 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할 믿음을 가지고 계신가요? 오늘 이 믿음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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