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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신 (삿 07: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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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변화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모든 여성들의 한결같은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더 예뻐지고 싶은 것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그런데 이 변화가 궁극적인 선을 지향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변화이고 긍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변화 중에는 도덕적이거나 미적이거나 혹은 가치개념의 측면에서 부정적인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더 예뻐지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인데,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허리가 굵어진다, 얼굴에 주름살이 생긴다,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남지 않았다, 이런 변화는 미적 관점에서의 부정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쌍꺼풀 수술을 하고 콧대도 세우고 머리카락을 심기도 하지 않습니까? 대도 조세형이가 교도소에서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되어 출옥했다, 이것은 도덕적인 면에서의 긍정적인 변화지요? 그런데 그 조세형이가 일본에 가서 도둑질을 하다가 잡혔다, 이것은 도덕적인 면에서 다시 부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 경우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합니다. 그것이 정도를 더하면 변신을 사모하게 됩니다. 변신이란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의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는 뜻입니다. 놀랍게 변신한 사람을 대할 때 괄목상대라는 말을 써야겠지요. 최근에 미적 관점에서 일대 변신을 해서 괄목상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자가 있습니다. 이영자입니다. 90kg이 넘는 육중한 몸을 인기의 기반으로 했던 아가씨가 어느 날 갑자기 60kg대의 비교적 날씬한 몸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변신이지 않습니까? 아름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던 굼벵이가 딱딱한 고치 속에 들어가 겨울을 나더니 봄이 되니까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나비가 되어 날아오릅니다. 얼마나 화려한 변신입니까? 누가 그 굼벵이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다 해어진 옷을 입고 궂은 일만 해야 했던 하녀 같은 신데렐라가 왕궁 무도회에서 스폿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왕자의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대단한 변신이지요? 우리는 이런 변신을 꿈꿉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고 별볼일없는 모습이지만, 언젠가는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는 변신, 세계를 무대로 눈부신 활약을 하는 유명인사로의 변신, 실현가능의 여부를 떠나서 이것이 우리의 꿈입니다.

오늘 우리는 변신에 성공한 한 사나이를 만납니다. 바로 우리의 주인공 기드온이지요. 기드온이 어떻게 변했나 보세요. 물론 그는 이미 크게 변신해 있었습니다. 포도주틀에 들어가 밀타작을 하던 농부에서 온 나라의 존경과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총사령관으로 변했으니 얼마나 큰 변신입니까?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의 변신은 이제야 일어났습니다. 미디안 적진을 정탐하고 돌아온 그날 밤에 기드온의 대변신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비록 군대의 총사령관이긴 했지만 아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자꾸만 약속을 해 주셔도 그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했던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대를 모아 전쟁을 하려고 하는데 그 군대를 돌려보내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이겨놓으셨으니 가서 승리를 가져오라고 해도 믿지 못하고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미디안 적진을 정탐하고 돌아온 기드온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보세요. 돌아오자마자 당장 군대에 출동명령을 내립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출동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저앉은 말처럼 꼼짝도 하지 않던 기드온이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군대에 뭐라고 말하는지 보세요.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아까는 하나님이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말씀하셔도, 그럴 리가 있나요?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요? 저쪽은 135,000명이고 우리는 300명뿐인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던 기드온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 300명 군대를 조직하고 작전을 세우고 명령을 내리면서 '나를 따르라!' 하며 앞장서는 기드온에게서 의심이나 두려움의 그림자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지 않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변신입니까?

무엇이 기드온을 그렇게 변하게 했습니까? 적진에 내려가 확인한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고 있는 것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하나님이 여러 차례 말씀하셨고 이적으로 약속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기드온에게 중요한 사실은 지금 진을 치고 있는 미디안의연합군이었습니다. 바위에서 불이 나와 제물을 태웠다는 것과 135,000명의 미디안 군대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고 그 다음에는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지 않게 하셨다 하더라도 300명의 군대로 미디안 대군을 맞서고 있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군대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 300명을 제외한 군대를 되돌려보내신다는 하나님, 그래서 그 하나님이 많은 군대보다 훨씬 신뢰할 만하고 더 큰 도움이 되시리라는 것도 피부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지금 다른 별 이야기를 해도 기드온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기드온의 모든 관심은 저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는 메뚜기처럼 많은 적군일 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기드온을 적진으로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기드온은 마침내 보았습니다. 바위에서 불이 나오게 하셨던 하나님이 그 적진에서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양털로 자기 말을 확증하셨던 하나님이 그 미디안 군대 가운데서 그들과 싸우고 계시는 것을 기드온이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디안을 자기 손에 붙이셨다는 말씀을 이제야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금 이행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하고 깨달은 기드온은 벌써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 기드온으로 하여금 놀라운 변신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아, 그 사람, 예수 믿고 변했더라' 이런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2년 가까이 바울서신들을 강해하면서 입이 닳도록 한 얘기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믿고 변화된 성도의 삶입니다. 바울서신들의 특징은 교리와 삶으로 그 내용을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렇게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과거와 다르게 살아야 하는지를 강조합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어느 정도로 변해야 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아이들이 진흙을 가지고 이것저것 모양을 만들지요? 강아지를 만들었는데 코도 삐뚤어지고 귀는 짝짝이고 눈은 엉뚱한 데 붙어 있고, 그래서 다시 떼어 붙이고 자꾸 손질을 하는데도 잘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애써 만든 강아지이지만 다시 짓이겨 가지고 새로운 강아지를 만듭니다.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의 개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그렇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예수 믿기 전의 모습과 예수 믿고 난 후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까? 과거에 우리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르며 이 세상 풍속을 좋았습니다.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신입니까? 이런 변신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어요? 그날 밤 미디안 적진에 내려갔다가 놀랍게 변신하여 돌아온 기드온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변신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변신을 우리는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변신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겉모습은 믿기 어려울 만큼 변신해 있었습니다. 그저 적군의 눈을 속이며 목숨을 부지하는 데 바빴던 겁쟁이가 동네의 바알 제단을 헐고 아세라를 찍었다는 것은 엄청난 변신이었습니다. 농부가 군인이 된 것만 해도 커다란 변신인데, 총사령관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변신입니까? 아무리 고통스럽게 부르짖어도 한번도 응답하지 않던 하나님을 기드온은 여러 차례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도 있었을 것이고 선지자도 있었을 것이지만, 이름없는 촌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변신이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내적인 변신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시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명령하고 지시하셨지만, 그는 아직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미디안을 그의 손에 이미 붙이셨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기드온은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예수 믿고 변신했지 않습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과 다니지 않는 사람은 분명하게 구별이 되지 않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표시가 나게 마련입니다. 또 주일만 되면 예배당으로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어 넣는다는 사실은 분명한 변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겉모습과 함께 내적으로까지 온전한 변신이 이루어졌습니까? 혹시 쓴 약에다 껍데기만 설탕으로 입혀놓은 것처럼, 속에는 옛사람의 모습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겉모양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변신한 행세를 하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감동이 없고, 교회에 소속은 되어 있으면서도 마음은 세상으로 향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변화되기는 거부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 눈에는 새로운 피조물로 변신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하나님 보시기에는 의심과 불신, 불순종으로 꽉 막힌 답답한 모습이 아닌가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나 있는 일이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들도 모두 내 관심사가 아니고, 우리가 예수 믿는다며 교회생활하는 것은 그저 늘 해온 것처럼 습관에 의한 것이어서 감동이나 깊은 체험도 없고, 그래서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변화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태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미디안 적진으로 내려가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을 위해 역사하시는 현장을 확인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을 어떻게 보호하시며 축복하시며 격려하시며 인도하시는지, 바로 지금 그것을 확인하고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분의 약속을 확신하게 될 때 우리의 진정한 변신이 가능할 것입니다.

변신한 후에 기드온의 달라진 모습을 보십시오.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던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키고 있습니다. '내가 미디안 군대를 네 손에 붙였느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던 기드온이 이제는 군사들에게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고 확신을 시키기 않습니까? 그리고 용감하게 작전을 세우고 전투에 임합니다. 그러나 잘 보세요. 기드온이 준비한 것은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준비한 무기는 칼과 창이 아니라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싸움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적군은 자기들끼리 서로 적으로 오인해서 자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즉 기드온은 자기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싸우시도록 준비했습니다.

기드온의 승리는 여리고성의 승리와 똑같은 내용입니다. 여호수아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일이란 무기를 준비하고 성벽 오르기 훈련이 아니라 그저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번씩 돌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날에는 몇 바퀴 더 돌고 나팔을 불었지요. 이것은 전투가 아닙니다. 전쟁준비가 아니지요. 그러나 성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싸우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변신했을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멋지게 변신한 모습을 원하지 않으세요? 남들 보기에만 변신한 껍데기, 가짜 변신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속사람이 변하고 믿음이 성장하고 우리의 사랑도 무르익은 참된 변신을 추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에서 그 목격자가 되고 거기에 동참하는 축복을 누리지 않으시겠어요? 오늘 밤 미디안 적진으로 내려가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현장을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변화된 모습으로,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기쁨과 감격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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