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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이 있는 사람 (수 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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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주간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미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9일부터 10일까지 이틀동안은 LA 파사데나(Pasadena)에 있는 Fuller신학교에서 학위수여식을 가졌습니다. 제가 1989년 봄에 목회학박사과정을 시작했는데 2000년 6월에 졸업을 했으니까 12년이 걸린 셈입니다. 사실 Course Work은 91년 여름에 다 마쳤는데 그해 11월에 제가 홍콩동신교회로 부임해서 바쁘게 지내다보니 논문을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10여년 동안을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논문이 통과되어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상당히 감개무량한 졸업식이었습니다. 그동안 기도해주시고 후원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두 주간동안 한 주일은 LA에 있는 가나안교회에서, 또 한 주일은 New York에 있는 한민교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목회하고 있는 여러 목사님들과 신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사님들을 만나는 시간들이 저에게는 졸업식보다 더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서로가 다른 환경 속에서 목회를 하는 이야기들, 기쁘고 즐거웠던 일들, 그리고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들을 나누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민교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부여해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갈 때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주체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방관자가 될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 역사의 계획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이루는 것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역사를 이끌어 가는 주체자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뒷짐을 지고 서서 역사의 방관자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전 400년경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바사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사나라의 총리였던 하만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몹시 싫어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때에 바사나라의 왕이었던 아하수에로에게 에스더라는 왕비가 있었는데 에스더는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자기민족을 구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됩니다. 에스더는 고민을 합니다. 당시에 왕실의 규례는 만일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을 만나겠다고 찾아갔다가 왕이 거절을 하면 찾아간 사람을 죽이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바로 이 순간이 에스더에게는 역사의 주체자가 되느냐, 방관자가 되느냐 하는 순간입니다. 에스더는 왕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몰살을 당한다 해도 에스더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여전히 왕비로서의 특권과 영화를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자기 민족을 구원하겠다고 나선다면 죽임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누리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는 역사의 방관자의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서 역사의 주체자로 나섰습니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누릴 수 있는 왕비로서의 특권을 버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에스더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미국이 갈 때마다 '역사의 주체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방관자가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르는가 하면, 미국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1620년에 영국의 왕이었던 제임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했습니다. 왕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02명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배를 타고 영국을 떠나 신대륙,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그 해에 44명이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늘의 미국을 건설해 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그들의 조상인 102명의 청교도들을 기억하는 뜻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102층으로 지었습니다.
102명의 청교도들이 누구였는지 지금은 그 이름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역사를 이끄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조국 땅에서 편안하게 살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정든 고향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돛을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미국을 세우게 하셨고 또한 미국교회를 통해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나라에 최초로 성경을 전해준 토마스목사를 비롯해서 우리 나라에 정식으로 입국한 최초의 선교사였던 언더우드와 아펜셀러선교사, 그리고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알렌선교사, 이 모든 사람들이 미국 교회로부터 파송받아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이들의 순교의 피를 밑거름으로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놀랍게 성장하게 되었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체자로 나섰던 102명의 청교도들을 통해서 오늘날 이렇게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질문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역사의 주체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방관자로 살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방관자로 살아간다면 지금까지 누리던 것들을 그대로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인생이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태어나서 일하고 먹다가 죽는 것뿐입니다. 반면에 역사의 주체자로 살아간다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인생은 값진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될 것이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이러한 역사의 주체자가 한 사람 등장합니다. 갈렙이라는 사람입니다. 민수기 14장에 이런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가나안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내서 가나안을 탐지하게 합니다. 40일 후에 돌아 온 12명의 정탐꾼들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과연 그 땅은 좋은 땅입니다. 그러나 그 땅은 성읍들이 견고하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키가 얼마나 큰지 우리가 옆에 서보니까 우리는 메뚜기 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땅이 좋은 땅이기는 하지만 정복할 수 없는 땅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곡을 하며 난리가 났습니다. 이제라도 다시 지도자를 뽑아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나머지 두 사람의 정탐꾼이 나섭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광야로 내모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심하던 사람들이 다 죽을 때까지 광야를 걷게 하셨습니다. 애굽을 떠나왔던 한 세대가 지나가고 광야에서 태어난 다음 세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셨습니다. 그런데 애굽을 떠나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갈렙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에 비하면 무명의 사람인 갈렙이지만 그의 믿음은 여호수아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한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차례차례로 정복해 나갈 때입니다. 헤브론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갈렙이 말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사람들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은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80세가 넘었고 나머지는 전부 40대 이하입니다. 나이 많은 갈렙이 나서지 않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든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민족의 영웅입니다. 이제 와서 갈렙이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였습니다.
무엇이 갈렙을 이렇게 역사의 주체자로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꿈이었습니다. 갈렙은 꿈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꿈,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도 특별히 헤브론을 갖고야 말리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래서 갈렙은 외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리고 결국은 그 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꿈을 꾸는 자의 것입니다. 큰 꿈을 꾸는 자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작은 꿈을 꾸는 자는 작은 축복을 받습니다. 꿈을 꾸지 않는 자는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꿈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꿈은 오직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45년 전, 가나안땅의 입구까지 왔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광야로 발길을 돌리면서 갈렙은 하나의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이 땅에 다시 돌아오리라. 그리고 이 땅에서도 크고 강한 사람들이 살고있는 저 헤브론 땅을 반드시 내 손으로 정복하고야 말리라' 이 꿈이 있었습니다.
갈렙의 일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한 채 다시 광야로 나온 후 45년의 세월동안 갈렙은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겪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의 죽음을 보았고 그 뒤를 이어서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단강을 건넜고,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가나안땅을 정복해 들어가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 속에서도 갈렙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저 헤브론 땅을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말리라' 45년의 세월동안 갈렙은 오직 이 생각만을 하며 살았습니다.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아침에 일어날 때나, 일을 하거나 전쟁을 하면서도 갈렙은 오직 하나만을 생각했습니다. '헤브론을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말리라'
이것이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꿈은 오직 하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두 가지 꿈을 꾸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꿈을 꾸십니까? 한 가지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한 가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앞 유리창을, 어떤 사람은 뒷문을, 어떤 사람은 백 미러를 디자인합니다. 평생을 문짝 하나에, 백 미러 하나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몇 해전에 한국에 있는 어떤 자동차 회사에서 새 모델의 자동차를 생산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는데 고속으로 달릴 때 바람이 백 미러 부딪치면서 나는 소음을 제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여지지만 국내에서는 아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독일에서 백 미러 전문가를 모셔다가 겨우 해결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일평생을 백 미러 하나만 만들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한 가지를 해야 합니다. 무슨 꿈을 꾸든지 한 가지 꿈을 꾸어야 합니다. 장로 하다가 중간에 그만 두고 목사 하겠다고 나서지 마십시오. 그래가지고 제대로 하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를 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놀고 있는 사람은 그냥 노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만 더 놀고 있으면 하나님 앞에 갈텐데 새삼스럽게 뭘 하겠다고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얼마나 남은 것 같습니까? 그 시간 동안에 무엇을 이루고 싶으십니까? 지금이라도 꿈을 가지십시오. 꿈을 가지되 한 가지 꿈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항상 그것을 생각하십시오. 갈렙은 45년 동안 오직 한 가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 꿈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가지 꿈을 갖고, 늘 그것을 생각하며 마침내 그 꿈을 이루는 축복을 받게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꿈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금 갈렙은 85세입니다. 본문에서 갈렙은 45년 전보다 지금이 더 강건하고 싸움도 잘 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그것은 갈렙의 생각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40세 때보다 85세에 더 강건할 수 있습니까? 아마 갈렙도 오랜 광야생활과 가나안땅에서의 전투를 치르면서 많이 늙고 지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선택한 헤브론 땅에는 장대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하였습니다. 헤브론 땅에는 가나안에서 가장 크고 강한 민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갈렙은 조금 더 약한 상대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을 정복할 때에 많은 부족들이 스스로 항복하고 나왔습니다. 갈렙은 얼마든지 그런 땅을 손쉽게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나이가 많은 갈렙은 뒷짐을 지고 앉아 있다가 젊은 사람들이 전쟁을 다 치르고 난 다음에 나누어주는 땅을 차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굳이 헤브론을 달라고 합니다. 내 손으로 저 장대한 족속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갈렙에게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45년 전에 가졌던 믿음,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 믿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기서 '혹시'라는 말은 '만약에'가 아니라 '그러나'라는 뜻입니다. '아낙 자손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는 말입니다. '비록 내가 힘이 모자란다 해도, 이 큰 꿈을 이루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꿈이 있는 사람이 가지는 태도입니다.
여러분들이 보다 큰 꿈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꿈이 아닙니다. 여러분 주머니에 500불이 들어있는데 길거리를 지나다가다 멋진 시계를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어보았더니 300불을 내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그 시계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생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아이디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주머니에 500불 밖에 없는데 5천불 짜리 시계를 갖고 싶다고 하면 그것은 꿈입니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나는 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보다 큰 꿈을 가지십시오. 아브라함처럼 큰 믿음을 갖는 꿈을 꾸십시오. 야곱처럼 큰 부자가 되는 꿈을 꾸십시오. 요셉처럼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꿈을 꾸십시오. 다윗처럼 온 땅을 정복하는 꿈을 꾸십시오. 솔로몬처럼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는 꿈을 꾸십시오. 바울처럼 크게 헌신하는 꿈을 꾸십시오.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그런 것들을 여러분의 꿈으로 가지시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큰 꿈을 가진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열왕기하 4장에 이런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선지자의 생도가 있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신학생입니다)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이 신학생에게는 부인과 두 아이가 있었는데 너무도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 빚을 지게 되었는데 빚을 갚을 길이 없자 두 아이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와 살려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사 선지자는 그릇을 있는 대로 다 빌려오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기름병을 기울여서 기름을 붓는데 기름이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언제 그쳤는가 하면 마지막 그릇이 다 찰 때에 기름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여인이 계속해서 그릇을 준비했더라면 자손 대대로 부자로 살 수 있는 넉넉한 기름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편 81편은 말씀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입을 연만큼 채우십니다. 넓게 열면 넓게 채우시고 작게 열만 작게 채우십니다. 안 열면 그냥 내버려두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큰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연약하여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반드시 이룰 것을 믿고 큰 꿈을 가지시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매달려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에 캘리포니아 사막을 자동차로 달리다가 언덕 위에 풍차 같은 것이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풍차가 아니라 바람을 이용해서 전기를 얻는 풍력 발전기였습니다. 그런 자그마한 발전기가 수도 없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물이 없으니 수력발전은 불가능합니다. 나무도 없으니 화력발전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사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람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람을 이용해서 발전기를 돌리고 그 발전기를 이용해서 물을 끌어들이고 그 물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꿈이 무엇입니까? 그 꿈이 사막에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은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꿈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지혜를 달라고 하고 능력을 달라고 하십시오. 큰 꿈이 있는 사람, 그래서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주체자로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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