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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섭리가 여기에 (에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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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가 여기에 (에 6:1-9)

여러분이 이 본문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이 이야기에서 누구를 볼 수 있습니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아하수에로입니까? 아니면 하만입니까?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하수에로나 하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입니다. 물론 등장인물로 아하수에로 왕이나 하만, 모르드개 등이 나오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주인공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원하시는 대로 역사하십니다. 즉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날 밤에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원래 아하수에로가 불면증이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나라의 다른 심각한 고민거리 때문에 이처럼 잠을 못 이루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낮에 왕비의 잔치에 갔다가 음식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났거나 아니면 너무 진한 커피를 마셔서 잠이 오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우리가 이성적으로 추측한다면 왕비의 요청이 무엇일까, 왕비가 왕궁의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긴히 요청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해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가 커피를 마셔서 잠이 오지 않았든, 아니면 원래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든, 그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가 그것을 알았건 몰랐건, 혹은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그의 삶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내가 결정하고 내가 행동하고 내가 실천함으로써 일들이 진행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삶이나 인간의 역사는 두 개의 층(레이어)으로 구성되어 진행됩니다. 이 에스더의 이야기에서도 우리가 두 개의 레이어를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레이어에서는 에스더가 금식을 하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형할 계획을 세우고, 왕은 밤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세계에 머물러 삽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또 다른 하나의 레이어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이지요. 거기에는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금식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부르짖을 때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않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 두 개의 레이어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삶의 레이어는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개입하시는 레이어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자, 그럼 이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선 믿음과 불신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다스리시고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과 그것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지요. 또 그 차이는 겸손과 교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의 삶을 이끌어가신다면, 내가 그분 앞에서 겸손하게 순종하고 따르는 것 말고 무슨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하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고개가 뻣뻣해지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교만하다는 것은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대단히 교만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저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왕이 잠이 오지 않으면 무엇을 할까요? 왕은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고 또 아하수에로는 성품이 아주 자애로운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궁중 안의 모든 사람을 다 깨워서 같이 잠을 못 자게 만들 수도 있고, 후궁 하나를 불러서 수발을 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사들을 불러서 잠이 들 때까지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가능성 중에서 왕이 선택한 것은 왕궁의 역대 일기를 가져오도록 해서 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 누가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하수에로가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읽도록 한 것은 어쩌면 잠을 이루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을 보면 금방 잠이 오지 않습니까? 만일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일이 아니었다면 지루한 역사책을 읽을 때 솔솔 잠이 와서 아하수에로가 코를 골고 자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부러 그에게 잠이 오지 않도록 하고 계시는데 별 짓을 한들, 수면제를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한들 잠이 올 수 있나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역행해서 길을 간다는 것은 참 피곤하고 어리석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요나를 보세요. 하나님의 뜻은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 하나님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망갔어요. 처음에는 일이 잘 풀렸습니다. 그래서 니느웨의 반대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잡아타고 멀리멀리 도망을 쳤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잡아다가 기어이 니느웨로 가도록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시고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당할 수는 없어요.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면 반드시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면 우리만 피곤하지요. 그래서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말씀처럼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시종이 역대 일기를 가져와서 읽는데 마침 어디를 읽습니까? 하필이면 왕의 신복들이 아하수에로를 암살하려고 했는데 모르드개의 활약으로 왕의 목숨을 구하게 된 이야기를 읽게 된 것입니다. 시종이 책을 펴자마자 그곳이 나왔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시작해서 거기에 이르렀는지 모르지만, 하필이면 4,5년 전에 있었던 왕의 암살 이야기를 읽었다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우연이라는 말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이성의 능력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우연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에게는 우연이 아니지요.

아하수에로는 모르드개가 자기 목숨을 구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에게 어떤 상을 내렸는지 물어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런 상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질서는 포상과 형벌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의 목숨을 구한 사람에게 아무런 포상도 없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그 암살 사건에 모두 정신이 팔려서 모르드개에게 포상하는 것을 잊어버렸을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러서 이것이 누락되었을까요? 어쩌면 누군가가 고의로 모르드개의 포상을 방해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모르드개가 왕의 목숨을 구하고도 포상을 받지 못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미가 급한 아하수에로는 당장 밖에 누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때는 이제 막 동이 트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하만이 왕궁 뜰에 도착했습니다. 하만 역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보기만 해도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지는 모르드개를 처형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왕의 허락만 얻으면 당장 모르드개를 끌어다가 나무에 매달 것입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왕의 허락을 얻기 위해서 동이 트자마자 한 걸음에 왕궁으로 달려온 것입니다. 마침 아하수에로는 모르드개에게 포상을 내리기 위해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했는데 하만이 절묘하게 때를 맞춰 도착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만은 지금 모르드개를 처형할 계획으로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왕이 하만에게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왕과 신하가 만나는 곳은 왕궁의 뜰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하수에로는 하만에게 왕의 침실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왕의 침실은 비밀과 경호가 가장 철저한 곳입니다. 그래야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암살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이 하만에게 침실로 들어오라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높아진 하만의 마음이 얼마나 또 높아지겠습니까? 그만큼 왕이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겠지요. 그래서 왕이 누군가를 높이고자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에 그 대상이 바로 자신이라고 착각을 하고 교만과 허영을 있는 대로 발산하고 있습니다. 왕이 입는 왕복을 입히고 왕이 타는 말에 태우고 왕이 쓰는 왕관을 씌워야 한다고 하는데, 즉 자기가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무슨 얘기입니까? 왕과 같은 대접을 받고 왕과 같은 지위에 올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만이 신하로서의 금도를 깨뜨릴 만큼 오버를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만은 이 교만 때문에 자신의 무덤을 판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에스더의 이야기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말하고 있지만, 오늘 이 본문은 가장 명확하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분명하게 드러날 때도 있고,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리신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는 순간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이렇게 명확하게 역사하시는 것이 보여야만 믿고 의지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믿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믿음입니까? 명확하게 역사하실 때나 숨어서 역사하실 때나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고 그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그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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