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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시작, 이제는 희망을 말할 때 (수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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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모세가 죽었다는 것은 집단적인 정신적 공황상태를 유발시킬 정도로 큰 타격이었습니다. 지난 1994년에 북한의 김일성이 죽었을 때 TV 화면에 비친 북한 주민들의 모습 기억나시죠? 그야말로 집단적인 정신적 공황상태였습니다. 어쨌든 지도자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의 조직이나 더 나아가 민족이나 국가도 지도자의 역할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고 여러 가지 이슈로 생각이 달라 전쟁까지 겪어야 했던 미국은 링컨이라는 훌륭한 지도자를 통해 다시 뭉치고 봉합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조지 부시라는 성숙하지 못한 대통령을 지도자로 둔 덕분에 국제적인 깡패국가로 치닫고 있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지요. 스티브 잡스나 아이아코카같은 경영인들은 쓰러져가는 애플컴퓨터와 크라이슬러 자동차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김우중은 대우를 결국 말아먹었고, 김선홍도 기아자동차를 쓰러뜨려 국가부도사태를 초래하게 했습니다.

크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지도자가 죽거나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 프로젝트 역시 무산되는 수도 많습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와 왕이 된 효종 임금은 대대적인 북벌을 계획하여 원수 갚을 날을 준비했지만, 애석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청나라를 정벌하고 동북아시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강대국 조선의 모습은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어서 통곡했다던 알렉산더는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3대륙을 아우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젊은 나이에 죽고 나자 이 헬라제국은 조각조각 쪼개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던 지도자가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 그 빈자리가 너무 커서 상당한 후유증을 앓게 됩니다. 대체로 그 임기래야 1년짜리도 있고 길어야 4-5년에 불과합니다. 물러나는 지도자가 조직과 공동체를 확실하게 장악했을수록 그 리더십 이후의 진공상태는 심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왔던 모세의 죽음은 이 민족 공동체에 어떤 충격을 가져왔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 모세의 주도하에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특히 모세의 리더십 40년은 이스라엘이 절체절명의 위기와 고난을 통과하고 있던 세월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었단 말입니다. 모세 한 사람의 지도력에 의해 민족 공동체의 생존이 좌우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했더라도 결국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는 경험을 40년이나 쌓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집단적인 심리적 공황은 얼마나 컸을까요? 그들이 갖게 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얼마나 컸을까요?

거기다가 이스라엘 민족의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기는 했지만, 아직 요단강을 건너서 그 땅을 정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에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은 세계 최초로 철기문화를 이룩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은 수많은 시련과 좌절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로서는 지금까지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주던 모세의 죽음이 그래서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불확실의 시대를 배경으로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말하는 것이 여호수아의 메시지입니다. 가장 절망적이고 불안한 순간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모세의 리더십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모세가 백성을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이고,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특별히 대우하셨기 때문에 모세의 권위가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고, 모세가 행했던 기적들은 모두 하나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모세가 죽은 후에도 하나님이 누군가를 통해서 그렇게 역사하신다면 모세가 죽은 것 자체는 별로 걱정할 일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모세가 없어도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다면 이스라엘은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없어도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면 어떤 전쟁이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비록 모세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하고 변함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쨌든 모세의 죽음으로 모두 머리가 텅 비어버린 듯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를 통한 언약의 갱신과 지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마치 릴레이 경주와도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이삭에게 와서 다시 갱신되고, 야곱에게서 다시 확인됩니다. 고향과 친척을 떠나 혈혈단신 먼 곳으로 떠나온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약속을 보듬고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달린 아브라함은 겨우 늘그막에 와서야 자식을 몇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에 해당되는 아들은 이삭 하나뿐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에 가슴이 철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삭 하나를 바라보며 아브라함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지쳐 쓰러진 후 그 언약은 다음 선수 이삭이 이어받았습니다. 나이 40이 되도록 장가도 못가고 있던 이삭은 겨우 쌍둥이 아들을 낳기는 했지만, 늘 싸우는 이 쌍둥이 형제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고충과 함께 주름살만 늘어갔고, 유순한 그의 성품 때문에 자리를 잡고 살기보다는 늘 여기저기로 밀려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결국 이삭도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화되는 것은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이삭이 죽자 하나님은 그 약속을 야곱에게 다시 환기시키시고 이루어가십니다.

야곱은 아들을 열둘이나 낳아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시발점이 되었고, 그중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이 야곱의 대가족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후견인 역할을 함으로써 야곱의 자손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같은 여러 주자들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끊임없이 갱신되고 확인되어 결국 성취되는 데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이라는 둥지에서 민족의 형성이라는 약속은 이루어졌지만, 그들의 거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아직도 멀리 있을 뿐이었지요.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고, 이스라엘은 모세와 함께 애굽을 탈출하고 기나긴 광야 40년을 통해서 본격적인 민족공동체와 종교공동체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눈앞에 보이는 곳까지 왔습니다. 요단을 건너기만 하면 바로 그곳입니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순간에 모세가 죽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시 뒤로 돌아 광야로 나가야 하겠습니까? 모세가 죽었으니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야 하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비록 모세가 훌륭한 지도자였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약속의 내용은 모세가 아닙니다. 모세는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뛰는 한 사람의 주자일 뿐이지요. 주자가 자기 몫을 다 뛰고 나면 다음 주자에게 그 역할을 물려줘야 합니다. 이제 모세의 시대가 끝났을 뿐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소임을 다했고 다음 주자가 나와서 뛸 차례입니다. 모세가 죽었다고 하나님의 약속도 물 건너간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죽었다고 함께 주저앉아 울고불고 통곡을 할 때가 아닙니다. 다음 주자를 통해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과정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자세인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이었겠지만, 여호수아의 등장은 그 좌절을 뚫고 솟아나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여호수아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의 요청이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을 앞두고 그들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군대의 지휘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여호수아는 모세의 부관으로서 모든 전쟁을 지휘하고 통솔했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의 등장으로 이스라엘에게 희망의 빛이 비취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죽음으로 절망하고 슬퍼해야 했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매우 구체적으로 약속의 땅을 제시하십니다. 광야와 레바논에서부터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해지는 편 대해, 즉 지중해까지의 땅이라고 명시해 주십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모세를 따라다니며 막연하게 그리던 꿈이 이제 여호수아와 함께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시대는 불안스럽게 닫힌 장막을 활짝 열어젖히고 새로운 꿈과 역사를 이루어가는 희망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가장 어두운 순간,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야말로 내일을 소망하고 희망을 기약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어둡지 않으면 빛을 그리워하지도 않을 것이고, 좌절과 고난이 없다면 희망을 필요로 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2003년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낡고 잘못된 것들을 고치고 변혁해 나가는 새로운 희망으로 새해가 출발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새해의 꿈을 꿉니다. 지난 해 조용하게 시작된 우리 교회가 꾸어야 할 꿈은 무엇일까요? 답답하기도 하고 절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우리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대를 이어가며 갱신되고 확인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결코 잊어버리거나 포기하지 않고 늘 새롭게 갱신해가면서 그 꿈을 이루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그 꿈이 좀더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새해는 꿈이 영글어지고 안개 속에 어렴풋이 보이던 희망이 구체적이고 똑똑하게 나타나 보이게 되기를 바랍니다. 실패와 좌절은 우리의 희망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희망을 더 크고 가깝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이렇게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중심을 못 잡고 갈팡질팡할 때도 있었습니다. 뚜렷한 목표를 세우지 못해 불안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새로 시작하면서 이제는 희망과 꿈을 말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여러분의 가정에 새로운 희망으로 채워주시기를 바랍니다. 더 구체적이고 분명한 꿈을 꾸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시작된 새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더욱 알차고 보람있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좌절과 아픔이 치유되고 늘 감사와 기쁨이 차고 넘치는 삶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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