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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팀 워크 (느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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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와 예루살렘 거민들은 기적을 만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망해 70년 동안 황폐해 있었습니다. 1차, 2차, 3차 귀환이 있었고 수룹바벨과 여호수아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중건되지 못했습니다.

‘기적’이 ‘상식’이 되는 공동체

느헤미야는 수산성에 있었을 때 예루살렘이 능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깊히 회개하고 울며 헌신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을 하면서 75년동안 불가능했던 일들을 52일만에 이뤘습니다. 2장 18절을 보십시오.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하고 모두 힘을 내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기적이 상식이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할 때 필요한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자 할 때 반드시 이 삼박자를 갖춰야 합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75년동안 불가능했던 일이 52일 만에 가능케 됐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열매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 아래서 탁월한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통해 낙심하고 좌절한 사람들을 일으켜서 기적의 사람들로 만든 것은 느헤미야의 탁월한 리더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지도자를 준비하십니다.
세번째는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든 사람이 힘을 내어 하나님의 역사에 전심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기적을 일굴 수 있었습니다. 기적은 우리가 손 놓고 하늘만 바라 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람들의 리더십과 모든 사람의 온전한 헌신과 순종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람들의 헌신이 함께 있을 때 기적은 상식이 되고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3장은 이런 기적을 만든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돼 있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 성벽이 느혜미야의 지도력 아래 재건되어 가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만든 사람들

당시 예루살렘 성벽 지도를 보면 윗 쪽에는 양문, 하나넬 망대, 함메아 망대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부터 중건을 시작하여 반시계 방향으로 중건해 나가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과정에 참여했던 명단들, 세상 사람들은 여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2천 5백년 전에 이 사람들을 기록한 역사는 성경 외에는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세상이 주목할 만한 굵직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페르시아가 등장하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제국이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하고, 로마가 나라의 기틀을 잡고 있을 때였습니다. 역사를 장식한 수 많은 영웅들, 거인들의 발자국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느헤미야 3장에 기록된 사람들을 기억치 않았습니다. 우리도 느헤미야 3장은 세심하게 읽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야 관심이 있든 말든, 우리가 그냥 지나치든 말든 성경에는 기록돼 있습니다.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데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들만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작은 일이라도 소중합니다. 설령 사람들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일일 지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쉽고 편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도 때때로 낙심합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박수 쳐 주지도 않는 일을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3장을 살펴보면 약 75명 이상의 이름이 있습니다. 직업으로 보면 열 다섯 부류 이상의 사람들이 골고루 등장합니다. 고위 관리 뿐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 기술자들, 여자들의 명단도 포함돼 있습니다. 2천 5백년 전에 여자들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고위 관리와 성직자들의 이름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26절에는 느다님 사람들도 나옵니다. 이들은 레위 사람들의 종이었습니다. 거룩한 성을 재건하는 일에 하나님은 사람을 가려 쓰는 일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당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기에 모든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사역에 좋은 사람들만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 없이 사람을 고릅니다. 내가 일하기 편하고 좋은 사람, 내 눈에 보기 좋은 사람과 일합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은 엘리트들만 뽑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들, 탁월한 사람들만 데려다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얼마든지 엘리트들만 골라서 쓰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쓰십니다. 그분은 탁월한 사람도 쓰시지만 우리가 보기에 형편 없는 사람도 쓰십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금그릇이냐 은그릇이냐가 아닙니다. 준비된 그릇, 순종하는 그릇, 순결하고 깨끗한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능력을 지닌 몇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를 불러 함께 일하기 원하십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봉사자가 되야 합니다.

헌신된 사람과 동역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사람과 동역하십니다. 하나님이 속 편하게 일하시려면 혼자 하시면 됩니다. 천사들을 동원하여 일하시면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홀로 일하시지 않고 우리들과 동역하십니다. 무엇때문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영광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일을 할 때 수준 따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수준을 따지신다면 나 또한 쓰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불러 함께 일하시기 원하십니다. 주차장에 가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안내하는 사람이 태초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서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일에 너나 할 것 없이 동참하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고 우리의 삶에도 풍성함이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먼저 대제사장이 등장합니다. 제사장들이 제일 먼저 헌신했습니다. 이들은 양문과 망대를 세웠습니다. 지도자부터 헌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솔선수범했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누리는 사람, 대접 받는 사람,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장서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양문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이 아니었습니다. 제사 지낼 때 양들이 통과하는 문이었습니다. 이들이 양문을 먼저 세웠던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삶의 우선순위가 예배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파수할 수 있는 망대를 세웠습니다. 여기서 영적 지도자의 두 가지 책임을 살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예배자로 인도하고 파수꾼이 되어 그 백성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영적 지도자에게 맡겨진 책임이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성벽을 중건하는 일에 예루살렘 거민들 뿐만 아니라 타지방 사람들도 동참했습니다. 그들은 드고아 사람들, 여리고 사람들, 기브온 사람들, 미스바 사람들이 었습니다. 내 집을 중건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이 먼저였기에 이들은 기꺼이 헌신했습니다.
27절을 보면 드고아 사람들은 자기 몫 이상을 감당했습니다. 자기들이 살 성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넘치도록 헌신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헌신은 쉽고 편하게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넘치게 하는 것은 큰 복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기쁨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 앞장서야 했던 드고아 사람의 귀족들은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않았습니다. 이들은 많이 소유하고 누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아갈 때 잊기 쉬운 죄가 무책임입니다. 결국드고아의 귀족들은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고

살룸은 느헤미야 아래서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렸습니다. 이 사람은 얼마든지 지시만 할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뒤에 물러서 있어도 됐습니다. 그런데 온 가족이 함께 헌신해서 섬겼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주를 섬기는 것보다 더 행복한 가정은 없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분문은 쓰레기와 오물을 버리는 문입니다. 기분 좋지 않은 곳입니다. 이 문을 맡은 사람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고위 관리였습니다. 그는 자물쇠와 빗장까지 갖출 만큼 이 일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강형열 집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원래 건축사이시기에 건축을 책임지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남들이 꺼리는 쓰레기 치우는 일에 자원했습니다. 분문이지만 자기집보다 귀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온누리교회가 기적을 일구어 낼 수 있었습니다. 31, 32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고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누에 이르렀고 성 모퉁이 누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고들이 중수하였느니라

이 부분은 마무리 공사였습니다. 이 역사를 맡은 금장색과 상고들은 비교적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최종적인 공사구간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금장색들은 험한 일이 아닌 정교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친 공사 현장에 기꺼이 헌신했습니다.

비전의 사람

이 모든 사람들로 인해 오랜 시간동안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했던 성벽이 기적처럼 재건되었습니다. 이런 기적을 만든 사람들을 이끈 사람이 느헤미야였습니다. 사실 이 일을 가능케 했던 사람은 느헤미야였습니다. 공사비 대부분은 이미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왕에게서 받아왔습니다.
가장 크게 헌신한 사람은 느헤미야였지만 그의 이름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격려하고 세우면서 자기 이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지도자가 있었기에 기적은 가능했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사람이 많을 지라도 지도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를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3장에 나오는 기적을 만든 사람들은 느헤미야가 올 때 새로 영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포기한 사람들, 낙심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망연자실하게 손을 놓고 있는 이들을 격려하고 북돋웠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세운 것이 아니라 낙오자인 이들을 다시 붙들어서 기적을 일구는 사람들로 만들었습니다. 낙심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 하고 자신감을 부여했습니다.

실패한 일을 다시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포기하고 중단한 일에 다시 도전하여 가능케 했던 지도력을 가진 느헤미야. 그는 이 일을 감당할 때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문제를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준비하고 용의주도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방법을 제시하며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는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역사를 꾸렸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집 가까운 곳에서부터 쌓아 가도록 했습니다. 가능한 일을 제시해서 헌신을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내 일이며 성벽을 쌓는 일이 내 안전을 위한 일임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일은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이 곧 내 일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내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내 삶이 가장 자랑스럽고 복됩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일만이 주 앞에 남습니다.
느헤미야가 낙심하고 좌절한 사람들, 75년동안 실패한 사람들을 이끌어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리더가 인정해 줄 때 따르는 사람들은 신바람이 나 밤을 세워도 피곤치 않습니다. 반면 낙심될 때는 수고와 헌신에도 불구하고 알아주지 않을 때입니다. 느헤미야는 수고한 모든 사람들의 섬김 하나 하나를 다 기억하고 알아주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기록한 것들을 하나님이 그대로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를 따랐던 사람의 수고를 잊지 않고 낱낱이 기록하고 소중히 여겼던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을 떠 주는 것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고 상을 주십니다. 히브리서 6장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 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이미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계십니다. 생명책이 있고 우리의 행위를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주 앞에 헌신하고 순종한 일은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기록하십니다.

복중의 복

주를 섬길 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한다는 사실은 큰 감사입니다. 힘든 일을 맡기시면 더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것은 복중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큰 공사를 할 때 총 비용 얼마, 연 인원 얼마를 따집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단지 숫자로만 처리됩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건물을 자랑하고 더 소중히 여깁니다. 헌신하고 수고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웅장했던 예루살렘 성벽도 지금은 북쪽에 있는 통곡의 벽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건물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건물을 짓기 위해 한장 한장 벽돌을 쌓아 올린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하시고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우리는 길지 않은 생을 삽니다. 어떤 사람이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주 앞에 설 수 있을까요? 전도서12장 13절을 보십시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일이 헛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본분을 다하는 삶은 가장 복되고 지혜롭고 행복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서 주의 일을 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같은 작은 재능이라도 하나님 앞에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축사하심으로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기적을 일궈 삶을 영광스럽게 하기 원하십니다. 기적을 만드는 그 일에 우리 모두가 함께 헌신함으로, 주 앞에 섰을 때 우리의 이름들이 기록되는 복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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