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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만날 기회 (삼상 0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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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날 기회(사무엘상 1:9-18)

옛날에, 어려서부터 함께 친하게 지내던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서당에서도 서로 일등을 다투며 공부하던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점차 나이가 들어 공부를 마치고 한양에 올라가 과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를 하였고, 한 사람은 그만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친구는 나날이 벼슬이 올라가 고향인 평양에 감사로 부임하였고, 낙방한 친구는 낙심과 좌절 속에서 술타령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평양감사가 그 지방의 유지들을 모아놓고 큰 잔치를 베푼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친구가 평양감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 선비는 옛 친구와 함께 즐기고 싶은 생각에 잔치자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잔치 자리에 들어가려고 할 때 느닷없이 평양감사가 '너 이놈, 여기가 어느 자리인 줄 알고 감히 들어오려고 하느냐' 호통을 쳤습니다.
선비는 평양감사인 친구가 사람을 잘못 본 줄 알고 '여보게 날세, 나야.' 하면서 잔치 자리에 끼어 앉았습니다. 그러나 평양감사는 '네가 도대체 웬 놈인데 나를 아는 척 하느냐.' 하면서 '여봐라, 저 놈을 붙잡아다가 매우 쳐라.' 하였습니다. 친구 잔치 자리에 가서 술 한잔 얻어먹으려다가 졸지에 곤장만 잔뜩 맞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달라진 모습을 본 이 선비는 너무 화가 나고 분해서 며칠동안 잠도 못 자고 가슴을 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식구들에게 '앞으로 몇 년만 더 고생하시오, 나도 반드시 일어설 것이요' 하고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3년 동안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시험을 보았는데 일등으로 급제를 하여 평양감사보다 높은 팔도감찰사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벼슬을 받자마자 그 길로 평양감사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친구의 목에 칼을 들이대었습니다. 그러자 평양감사는 태연히 웃으며 '여보게, 자네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네, 나를 죽이는 것은 자네 마음대로이지만, 그전에 자네 집이나 한번 다녀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집을 찾아 가보니 옛날 허름한 집은 간데 없고, 굶주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족들은 좋은 집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감사인 친구가 그 동안 자기 가족들을 돌보아 주었던 것입니다. '내가 자네를 그냥 도와주면 자네가 매일 그렇게 지낼 것 같았네, 자네 실력이 얼마나 아까운가. 그래서 자네를 위해서 그렇게 구박을 했다네.' 그러자 팔도감찰사인 친구가 꿇어 엎드려 감사했다는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얻으려면 봄에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갈지 않고 그대로 버려 두면 잡초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밭의 깊은 바닥을 쟁기로 갈아엎는 과정이 있어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하나님의 쟁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 눈물나게 하는 것들, 가슴이 답답한 일들이 다가올 때에 여러분은 그것을 하나님의 쟁기로 보셔야 합니다. 이 쟁기를 가지고 불순종하는 마음, 교만한 마음, 나쁜 습관들, 게으른 생활태도, 엉뚱한 곳에 신경을 쓰고 정작 하나님의 일에는 무관심하게 살았던, 이 모든 것을 갈아엎으십니다. 그 갈아엎은 밭에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십니다. 그리고 우리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사람은 고통을 만나야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여러분들이 병이 들어서 입원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한 일주일 병원에 입원해 보십시오. 사람이 그렇게 겸손해 질 수가 없습니다. 우선 외모로 보아도 별 것 아닙니다. 아무리 잘 생긴 사람도 헐렁헐렁한 환자복을 입고 일주일 머리 안 감고 병원에 누워있으면 다 별 볼 일 없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역시 인생은 나 혼자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재산도 다 소용이 없고, 명예도 소용없습니다. 옆에서 울고 있는 사람도 내 인생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외로운 것입니다. 나 혼자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다 겸손해 집니다. 다 철학자가 되고 철이 듭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술주정뱅이입니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아내에게 '나가 죽어라. 나가 죽어' 하면서 발길질을 해댑니다. 매일 이 모양이니 아내가 병에 안 걸릴 수가 없습니다. 결국에는 아내가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생각해 보니 큰 일 났습니다. 매일 '나가 죽어라' 그랬지만 정작 아내가 죽으면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그래서 이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미안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한다고, 제발 어서 일어나' 이랬으면 좋겠는데, '야, 죽지 마. 너 죽으면 큰 일 나.' 그랬답니다. 그런데도 그 부인은 그 소리를 듣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큰 일을 만나야 정신이 듭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의 생각을 좁고 깊게 만들어 줍니다. 보통 때는 생각이 넓고 얕습니다. 이것저것 생각은 많이 하지만 깊이 생각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만나면 한 가지 생각만 깊게 하게 됩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이렇게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도 고통을 통해서 성숙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엘가나라는 사람에게 두 사람의 아내가 있었는데 한나와 브닌나입니다. 브닌나는 많은 자녀를 낳은 반면에 한나는 자녀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 여자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엘가나는 자식이 없는 한나를 더 사랑하였습니다. 엘가나가 제물의 분깃을 나누어 줄 때 한나에게는 브닌나보다 갑절을 주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갑절로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심술이 난 브닌나는 한나가 자식이 없는 것을 비꼬며 약을 올렸습니다. 이런 괴로움을 당한 한나는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해서 먹지도 않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이 문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아이를 낳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이때 한나는 하나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하였습니다. 한나는 이 때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쳐서 아픈 마음과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기도하였습니다.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여종을 잊지 마소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고통과 아픔을 거두어 주실 분은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애절한 심령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다가 이런 문제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중한 병이 들어서 고통 당할 때가 있습니다. 사업의 실패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의 문제 때문에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을 하고 내가 애를 써서 해결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서 손을 놓고 주저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주저하지 말고 지체없이 하나님께 나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해 주십니다.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19절은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라는 귀한 아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사무엘뿐만 아니라 두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넉넉히 주시는 분입니다.
저는 요한복음 5장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큰 은혜를 받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가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연못을 휘저어놓는데 이때 일등으로 연못에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 걸렸든지 낫게된다는 전설입니다. 그래서 베데스다 못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연못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38년 동안이나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이 사람이 베데스다 연못에 일등으로 들어갈 확률은 0%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병자가 대답을 하기를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웃음이 나옵니다. '아니, 세상이 이런 바보 같은 사람이 있나? 지금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려고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묻고 계신데 연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다니 이건 완전히 사오정이구나, 눈도 멀었고 귀도 먹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저 같으면 '그래? 마르고 닳도록 기다려라.' 그러고 갔을 것입니다. 저희 집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큰맘을 먹고 장난감 가게에 데리고 간 적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였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사달라고 해도 다 사주리라.' 마음을 먹고 갔습니다. 그리고 고르라고 했더니 작은아이는 담대하게 300불 짜리를 골라 가지고 왔습니다. '아니, 이 녀석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자기 생일하고 예수님 생일하고 같은 날이라고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녀석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이는 50불 짜리를 들고 왔습니다. 손가락 만한 장난감 인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상당히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아니, 이 녀석이 아버지를 어떻게 보고' 그래서 그냥 50불 짜리 사주고 왔습니다. '네 믿음대로 되라.' 그러고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연못에 넣어 주십시오.' 하는 사람에게 '알았다. 마르고 닳도록 그렇게 살아라.' 하지 않으시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보다도 훨씬 더 크게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기도하는 일에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된 기도를 드린다 해도 성령께서 바로 잡아 주십니다. 적은 믿음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도 하나님께서는 기대 이상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넉넉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 여러분을 괴롭게 만드는 것들이 삶 속에 가득한 때, 그때가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의 때는 바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입니다. 나의 이 고통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매달려 간구할 때 응답해 주십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예수님께 나왔지만 한 사람도 그냥 돌아간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오는 자는 다 해결함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마리아라는 여인은 죄의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몸을 팔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 삶에서 빠져 나올 도리가 없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가리켜 더러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놀라운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리의 직업을 가지고 돈은 많이 벌었지만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야 했습니다. 언제나 '내가 이 직업을 그만 두어야지' 하면서도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손가락질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꿔보고 싶지만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여리고에 사는 소경이 있었습니다. 사실 눈이 안 보이는 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습니다. 사람의 몸을 돈으로 환산해서 100불이라고 하면 눈의 값어치는 70불에 해당됩니다. 그만큼 본다고 하는 것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소경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소경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달려오면서 넘어지고 자빠져서 무릎이 다 깨지고 피가 흘렀을 것입니다. 이렇게 간절하게 예수님을 찾아 나와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보기를 원합니다.' 외쳤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온 사람은 다 해결함을 받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빈손으로 돌아간 사람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혹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고통이 다가올 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큰 어려움이 다가올 때 그때가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그때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눈물과 한숨이 기쁨과 감사와 찬송으로 변하는 역사가 여러분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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