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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성들이 죄를 고백하다 (느 0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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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용서하고 중보하시는 하나님 은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니라”

(요 1:1)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깨닫게 되면 우리 자신을 알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될지,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지 잘 알게 됩니다. 말씀은 우리의 축복이고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입니다.
인류의 첫 번째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하고 물었을 때 하와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하고 하나님 말씀을 왜곡했습니다. 좀 더 지혜롭고 싶고 능력을 얻고 싶은 마음의 욕망이 하나님 말씀을 왜곡했습니다. 그로 인해 죄와 사망이 인류 가운데 들어왔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말라”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따르라고 유혹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말씀을 따르기 전에 먼저 세상의 법칙을 따르고 성공하라.”
그리고 이성적으로 말씀을 분별하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해석하도록 끊임없이 미혹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와 같은 사단의 미혹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접하고, 읽을지라도 하나님 말씀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게서 고발당한 자들의 회개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섬기며 계명을 지키라고 교육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실패, 무능력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성읍이 완성되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했습니다.
새해 첫 날, 7월 1일 나팔절에 에스라를 불러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그들은 슬피 울고 뉘우쳤습니다. 그러나 곧 ‘말씀에 기록되었는데 안식일이니 울지 말라. 성일이니 울지 말라’는 명령을 듣고 그 말씀대로 기뻐합니다. 또 그들은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는 율례의 말씀을 발견하고 15일에서 21일까지 초막절을 지킵니다. 나뭇가지로 지은 집에서 7일 동안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8일째가 되는 22일에 다시 성회로 모여 하나님 말씀 앞에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말씀에 갈급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이 지적하는 자기의 죄를 보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초막절기는 지났지만 그들은 일상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모입니다. 9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 달 이십 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고발 당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들으며 자신들이 얼마나 말씀을 떠나 살았고 말씀의 내용과 다르게 생활했는가를 깊이 느꼈습니다. 그들은 금식하고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회개는 몇 가지 특별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자발적으로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나 에스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우리 다 함께 모여 회개하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따랐습니다. 회개는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뉘우침은 마음으로 뉘우치고 생각으로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고발 당해서 회개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자신들이 자기 자신의 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자기를 고발해서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세우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울면서 자복하며 ‘나를 벌하여 주옵소서. 회복시켜 주옵소서. 죄의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간절히 부르짖는 회개를 드립니다.
이들은 말로만 회개하지 않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사람들과 섞여 살았습니다. 그들은 혼인도 하고 사업상의 유익을 위해 친분관계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을 타락하게 하는 여건, 삶, 행실, 관계 등을 끊기 시작합니다. 손해가 올지라도 자기 삶에서 결단하고 끊어냅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의 능력이고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그들 가운데 역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에게서 역사할 때에 우리 삶이 변화되는 겁니다.

두 번째 특징은 말씀과 기도 가운데서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이들은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먼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시간 동안은 회개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이들의 회개는 자신의 감정에 따른 회개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따라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말하는 대로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성령님께서 그 영혼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회개를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자신의 전 생애를 놓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라

세 번째 특징은 이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회개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할 때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았다면 자신의 허무함과 죄 때문에 스스로를 포기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고 지식인이었고 그 시대 출세 가두를 달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열망하고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열망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때 돌로 친 주범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 제사장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을 잡아와도 좋다’는 공문을 받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자신이 그렇게 열망했던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추구했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생명과 온 영혼, 모든 것을 다해서 얻고자 했던, 만나고자 했던 하나님이 자신이 핍박했던 예수였다는 것을 안 사울의 심정은 죽을 수 있다면 죽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 상황 가운데서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사울을 바울되게 합니다.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내 죄와 과거가 지적당하고 하나님이 나를 드러나게 하시는 대로 만 천하 앞에서 내 모든 과거가 다 드러난다면 내 삶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수록 실망하고 낙담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란 우리 자신만을 보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 자신과 함께 우리를 붙잡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나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완전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긍휼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의 회개는 또 다른 회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와 같은 회개의 집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대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한 쪽에서는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또 한 쪽에서는 경악하면서 그 높고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회개 중에 이스라엘 백성은 중요한 진리 두 가지를 발견합니다. 첫 번째는 진정한 회개를 경험하며 모든 것을 자기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보게 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선 이것을 두 가지로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회개할 때 자기의 죄와 자기 열조의 허물의 죄를 자복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조상의 죄와 허물을 들먹일 때는 내가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을 변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모의 죄책을 드러내는 것은 부모의 죄책을 짊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죄인일 수 밖에 없는 것을 변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열조의 죄와 허물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자복하고 회개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죄가 아니라 나의 죄 때문입니다. 내 탓입니다. 내 회개를 들어주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자기 중심,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의 고백을 통해서 가능하게 됩니다.

두 번째 증거는 ‘주께서’라는 단어가 6절에서 38절까지 51번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서’입니다. 창조도 ‘주께서’이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도, 애굽에서 구해내신 것도 주님께서입니다. 모든 역사의 과정 속에서 주님이 개입하셨고 주님이 이루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회개를 경험하게 되면 내 중심의 사고에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 중심의 사고로 옮겨집니다.

‘주께서 하셨다’

깊은 회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두 번째 변화는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6절부터 38절까지 모든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그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함께 계셨는가 그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6절 말씀은 창조의 하나님이 우주와 만물 가운데 어떻게 계신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 ‘다 보존하시오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에서 여기에만 기록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명들을 실현시키고 나서 그냥 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존하다’는 의미는 ‘다시 살게하다, 더 적극적으로 삶을 유지하도록 돕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회개하고 나서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충만히 임재하고 계시구나’라는 것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높고 영화로우신, 모든 만물 중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민족을 부르셨는지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를 기도로써 고백하고 있습니다.

7절과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서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세상의 법칙은 사랑하는 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선택한 자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를 사랑할 만한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아브라함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시고 선택과 언약에 합당한 존재로 존재 자체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신 하나님, 개인의 삶에 치밀하게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택하시고 사랑하심

이것이 말씀을 통한 회개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의 과거, 우리의 현재,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의 임재로 설명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다면 우리는 우리 과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명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를 묶고 있고 우리를 누르고 있는 모든 억압과 두려움과 절망과 공포가 우리 가운데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왜 내 인생은 이런가?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이 있는가? 왜 우리 민족이 이렇게 멸망하게 되었는가?” 이스라엘 백성은 깊은 회개 가운데서 말씀을 통해 다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임재하셔서 철저하게 역사하시고,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그들을 이끌어내신 것을 고백하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9절에서 1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우리 열조가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홍해에서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이는 저희가 우리의 열조에게 교만히 행함을 아셨음이라 오늘날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주께서 또 우리 열조 앞에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시사 저희로 바다 가운데를 육지 같이 통과하게 하시고 쫓아 오는 자를 돌을 큰 물에 던짐 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셨사오며 또 시내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저희와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저희에게 주시고 거룩한 안식일을 저희에게 알리시며 주의 종 모세로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저희에게 명하시고 저희의 주림을 인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주시며 저희의 목마름을 인하여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또 주께서 옛적에 손을 들어 맹세하시고 주마 하신 땅을 들어가서 차지하라 명하셨사오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대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갈 때에만 함께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 때에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이 곧아지고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떠난 그들 가운데서도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하셨는가를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깨닫게 해주십니다.

16절부터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거역하며 주께서 저희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또 저희가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이르기를 이는 곧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 하여 크게 설만하게 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저희를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사 떠나게 아니하셨사오며 또 주의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로 저희 입에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의 목마름을 인하여 물을 주시사 사십년 동안을 들에서 기르시되 결핍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사오며

이스라엘 백성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이것이 하나님이다. 이것을 섬기자”며 하나님을 동물 취급까지 하며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중보하시며 그 죄악과 반역의 장소를 떠나지 않고 그곳에 머무르십니다. 이들이 그것을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회개란 ‘나는 하나님을 버렸는데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에 감격해서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결심하고, 산 제물로 자신을 헌신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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