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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공을 관리하십시오 (느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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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관리하십시오 (느헤미야 7:1-7)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는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밥 존스 목사는 “가장 뛰어난 능력은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꿈을 이루어주십니다.
대적의 위협과 방해 속에도 느헤미야는 오십 일만에 성벽을 완성합니다. 그러나 대적들의 위협은 멈추지 않습니다. 느헤미야13장을 보면, 여전히 도비야는 느헤미야를 위협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도비야는 세 가지 방향에서 느헤미야에게 영향을 미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첫째, 암몬 사람인 도비야는 유다의 유력한 지도자 스가냐의 딸과 결혼해 유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둘째, 도비야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유다의 부호들과 상거래를 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나갑니다. 셋째, 그는 자신의 가족들을 유다의 귀족과 결혼시켜 혈연적으로 느헤미야를 공격해옵니다. 느헤미야는 대적들 때문에 성벽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모두 동원해서 완공된 성읍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말씀’으로 마음 문을 지키라

오늘 내용은 삼 단계의 작전을 통해서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회복시켜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7장 1절입니다.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인사는 만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중국인은 자신들을 변방의 민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그 후에도 최소한 네 번의 큰 침략을 당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그때 마다 무너진 것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만리장성을 지키고 있던 파수꾼이 적에게 매수를 당했기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성의 안전과 평화는 성벽이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가장 먼저 성벽과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를 뽑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을 살피게 하고 마땅히 들어와야될 사람만 성을 출입할 수 있도록 경계를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도 자신이 지켜야할 문이 있습니다. 가정과 공동체도 지켜야할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잘 지킬 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땅히 지켜야할 문을 지키지 않으면 도적과 이리들이 넘나들어 우리들의 삶을 착취하고 유린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의 문은 무엇으로 지키고 있습니까? 문지기를 누구로 세워두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성전에서 기도하기보다 자신을 잘 도와주는 친구에게 찾아가거나 심지어 점을 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문지기는 친구요, 점쟁이인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119편 11절에서 자신의 문지기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문지기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말씀에서 ‘나는 양의 문이라’라고 하시며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열망하는 부요하며 참되고 행복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문지기’로 자처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의 문지기가 주님이심을 다시 확인하는 기쁨이 있길 바랍니다.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함

문지기를 세운 느헤미야는 그 다음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인들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성벽의 완성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예배가 그 성읍 가운데서 회복되기를 바라는 그의 열망의 표현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배의 능력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배 없는 삶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삶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때만이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인간의 가장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셔서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가르치신 것도 예배였습니다. 십계명의 초점도 바로 예배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진영의 구조도 하나님 중심, 예배 중심입니다. 각 지파의 진영 가운데 하나님의 지성소와 법궤가 있는 성막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은 모든 삶이 예배가 중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리적인 장막 배치를 통해서 영적인 원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삶의 성은 사람의 힘으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은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이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다윗은 시편 127편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여러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예배는 여러분의 삶을 축복해주시는 주님의 능력입니다.

성공을 나누는 지도자

또한 느헤미야는 예배가 중요한 것처럼 현실적으로 성읍을 잘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느헤미야가 행정의 책임자로 세운 하나니는 그의 동생입니다. 하나니는 느헤미야가 바사의 수상궁에 있었을 때에 그 먼길을 찾아와서 예루살렘의 소식을 전해준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니가 자신의 동생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고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책임자로 세운 것입니다.
또한 하나냐는 예루살렘 성벽 중 북쪽 성채를 맡고 있는 영문의 관원이었습니다. 하나냐를 느헤미야가 전체 책임자로 세운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냐가 작은 성채를 지키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백성 앞에서 거짓없이 진실하게 섬기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그를 지도자로 세워 큰 일을 맡긴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네게 큰 일을 맡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큰 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작은 일에 충성해야할 것입니다.

파수의 원칙

느헤미야는 자격을 갖춘 사람을 분별하고 적재 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역량만으로는 성읍을 잘 세워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는 성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진정한 지도자요, 참된 목자입니까? 성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적당한 자리에 적절한 사람을 세운 느헤미야는 성벽을 지키기 위해 곧이어 수칙을 세웁니다. 3절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거민으로 각각 반차를 따라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 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성문은 해가 뜰 때 열고, 해가 질 때 닫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해가 중천에 뜰 때쯤 성문을 열고 해가 중천에서 지려고 할 때 성문을 닫아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몇 시간만 성문을 열어놓으라는 지시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문을 지나가는 사람을 철저하게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오고 나오는 사람들을 분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느새 세상으로 던져지고 세상에 물들게 됩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21장 34절-36절과 에베소서 5장 15, 16절 말씀에서도 영적으로 깨어 경계하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느헤미야는 파수꾼만이 아니라 백성에게도 함께 성벽을 지키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각각 반차를 따라 자기 집 앞을 지켜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파수꾼이 되어 각자의 영역을 지킬 때만이 성벽이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배웁니다. 우리의 믿음도 지도자가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목자요, 영적인 멘토라할지라도 조력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궁극적이고 최종적으로 사단의 유혹과 공격 앞에서 방어하는 것은 우리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단계의 조처에서 느헤미야는 근심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4절 말씀입니다.

그 성은 광대하고 거민은 희소하여 가옥을 오히려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성읍은 거대한데 거민이 없는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바벨론에서 온 포로들은 예루살렘이 회파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읍에서 살지 못했고 예루살렘 성읍은 대적들의 공격 목표였기 때문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또한 성벽을 짓는 데 너무 주력한 나머지 가옥을 짓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읍에 거민들이 없는 것이 성읍을 회복하는 데 거대한 문제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온전한 주권과 종교적인 독립을 위해서는 많은 백성이 성읍 안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것을 쉽게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어떻게 행동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인들과 민장과 백성을 모아 그 보계대로 계수하게 하신 고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보계를 얻었는데 거기 기록한 것을 보면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라는 말씀으로 느헤미야가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의지했을 때 지혜를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삶의 많은 문제들을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감동으로 해결책을 찾은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첫 귀환자들의 명단을 입수합니다. 느헤미야는 인구조사를 통해 적절하게 백성들을 배치하려 합니다. 명단을 보면 열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지도자, 노예, 심지어는 짐승까지 나옵니다. 이렇게 긴 명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로 규환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히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전진해나간 사람들, 그 하나님의 사람들을 주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해서 그 일을 이루지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역사를 이루어오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개인적인 삶의 바벨론을 떠나서 그분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두려움과 고난과 환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로운 일에 삶을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는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결코 자기의 사람을 잊지 않으신 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 앞에서 염려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어찌 여러분과 함께 싸우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일어나 전진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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