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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적들의 음모를 분쇄하는 느헤미야 (느 0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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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의 음모를 분쇄하는 느헤미야 (느헤미야 6:1-19)
 
‘노 페이 노 게임’이란 말처럼 대가 없는 승리는 없습니다. 비전을 가지고 전진하는 느헤미야를 기다리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느헤미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전 때문에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대적자들은 집요하게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끈질긴 기도, 자발적인 헌신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드디어 성벽을 완성합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성벽이 완성되자 대적자들은 당황하고 놀랍니다. 그러나 대적자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전쟁에서 패배한 것처럼 보여도 결코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많은 부주의한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도 끝까지 경계하지 못해 승리를 잃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단의 마지막 전술은 ‘승자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승리자를 희생자로 삼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승리의 여유를 틈타는 사단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조차도 그들의 승리 이후에 방심해서 실족하는 것을 성경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850대 1로 싸워 이겼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겠다는 소문을 듣고 도망칩니다. 그리고 로뎀 나무 아래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가져가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치열한 싸움 가운데 신앙적 위기가 다가온 것이 아닙니다. 성공하고 축복을 누린 다음, 이제 좀 쉬려고 하는 그 마음의 여유를 틈타서 사단이 베일 속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위기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공을 눈 앞에 둔 바로 그때 대적자들이 그를 공격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입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대적들은 공격의 양상을 달리했습니다. 4장과 5장에서 대적들은 총체적으로 공격합니다. 전면전이었습니다. 그런데 6장에 들어오면서 대적들은 공격의 방향을 바꿉니다.
새로운 공격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느헤미야 개인을 공격한다는 사실입니다. 전쟁터에서 저격수가 상대편 지휘관을 저격하는 것처럼 대적자들은 느헤미야를 목표로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두 번째, 공격방법이 다 위장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싸우자는 것인지 도와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평소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잘 따랐기 때문에 이 공격을 대비하고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영적 분별력을 통해 위장된 공격에 빠지지 않고 승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공한 삶을 살고 싶고 다시는 실패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면 오늘 느헤미야의 분별력을 소유하십시오. 성공의 문턱에서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은 믿음의 사람으로 하여금 승리의 깃발을 영원토록 휘날리게 할 것입니다.
대적들이 어떻게 느헤미야를 공격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대적자들이 느헤미야를 만나자고 합니다. 그들은 “사실 우리는 당신을 반대했지만 당신은 우리의 반대를 물리치고 성벽을 완성했소. 이제 우리는 당신을 유대 총독으로 인정하니 정책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떻게 타협할 것인지 오노에서 만나 함께 이야기 합시다.”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피곤하고 지친 유대인들에게 이런 대화와 타협의 제의는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대화란 좋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를 씻고 화합할 때가 됐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성벽은 아직 완전히 재건되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신앙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긴장을 늦추고 승리의 상상에 사로잡혀 오노 평지로 갔다면 십중팔구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음모에 의해 아무도 모르는 외진 곳에서 살해당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벽 재건 사업은 그대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는 그들의 제의를 거절합니다.

행동하기 전에 분별하라

우리는 때로 ‘아니오’라고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했습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 적합한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인 것입니다. 바로 이 분별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분별력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0절은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많은 위기와 난처한 상황 가운데서 행동하기 전에 먼저 분별할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분별해 나갈 수 있습니까? 그 첫번째 원칙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사건을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지혜로 그 상황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자신의 마음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느헤미야는 적들의 지혜가 거짓이라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를 청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유린하고 착취했던 사람들입니다. 단지 경제적으로만 착취한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린했던 사람들입니다. 우상과 간음의 문화로 이스라엘을 온통 더럽혔던 대적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그런 대적자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벽을 처음 재건하기 시작할 때 느헤미야는 그들을 향해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우리는 너희와 함께 하지 않겠다.’ 무너진 성벽보다 더 무너진 것은 이스라엘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이들과 타협하면 성벽은 재건한다 해도 신앙의 재건은 이루어 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함을 회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거룩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거룩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자.’

(고후 6:14-7:11)
성벽을 재건하는 것은 거룩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한 느헤미야는 이 분명하고도 확실한 목적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적자들이 만나자고 한 제의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모으고 마음을 집중해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 지켜야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느헤미야를 이끌어 나가는 힘은 하나님을 향한 집중력이었습니다. 우리 일상의 삶에서 우리를 이끌어나가는 힘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에게 거룩한 사명을 맡기셨다는 그 소명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성령에 사로잡혀서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비전을 이루어 나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느헤미야를 은밀하게 제거하려는 음모는 그의 분별력과 집중력에 의해 와해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자 대적자들은 이제 공개적으로 느헤미야를 모함에 빠뜨립니다.
느헤미야 당시에 선동죄는 중죄였습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왕들은 모반을 가장 두려워해서 어떤 반역의 낌새만 느껴져도 대상자를 처형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발랏은 봉하지 않은 편지를 느헤미야에게 보냅니다. 그 내용은 느헤미야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6절과 7절을 보겠습니다.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찌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황당하고도 위험한 소문입니다. 산발랏은 느헤미야에게 ‘이방에까지 네가 모반하려한다는 소문이 났으니 내게로 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함께 의논하자.’하고 다시 만나자는 제의를 합니다. 산발랏은 이 제안을 통해서 느헤미야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궁지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만약 산발랏의 제의 대로 그를 만난다면 그것은 느헤미야가 소문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느헤미야가 산발랏을 만나러 가지 않으면 산발랏은 편지에 언급한 것처럼 아닥사스다 왕에게 느헤미야의 소문을 이유로 삼아서 그를 고발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를 불러 들일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느헤미야는 죽임을 당할 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략의 덫을 가지고 산발랏은 느헤미야를 중상모략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단체나 사람을 헐뜯고 흉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익명의 재치가는 험담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전에 서둘러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하는 뉴스다.’ 때로 우리는 떠도는 험담 때문에 많은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교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어느 한 청교도는 자신이 중상모략의 범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어떤 사람의 소문을 들을 때 다음과 같이 결정하기로 자신의 행동의 원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첫번째, 사실에 근거한 소문인가? 두 번째, 내가 그것을 확인했는가? 세 번째, 소문이 사실일지라도 내가 그것을 듣고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 그 말을 전함으로 해서 다른 형제들에게 유익을 전해줄 수 있는가?’ 그는 이 세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짐으로 해서 자신의 혀로 짓는 잘못을 범치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남의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진정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지 한 번 돌이켜 봐야 될 것입니다.

‘기도’ 억울함을 푸는 열쇠

느헤미야는 소문을 듣고 산발랏에게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정확하고 빠르게 통보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신이 아무리 변명한다고 할지라도 그 소문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변명도 할 수 없고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의 손에 힘을 주십시오’라고 느헤미야는 기도합니다.

난처한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해결해 나가는 두 번째 영적 분별력은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 가운데 주님께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기도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편 32편 8절은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당한 상황이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억울함을 푸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결박을 푸는 능력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함으로써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결정하고 다시 한 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그 능력에 의지해서 선한 목적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세 번째 느헤미야를 향한 공격은 신앙적인 것이었습니다. 뇌물을 받은 스마야 제사장이 느헤미야를 진정 위하는 것처럼 꾸미고 가짜 예언을 합니다. 그는 느헤미야를 유인하기 위해 느헤미야와 함께 일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가 나오지 않자 그의 집을 방문합니다. 10절에서 13절을 보겠습니다.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스마야는 느헤미야를 그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율법, 모세의 율법을 범하도록 교묘하게 꾀고 있습니다. 스마야로부터 ‘오늘 밤에 대적들이 너를 죽이러 올텐데 내가 제사장이 아니냐. 그러니 너는 나와 함께 외소 즉 성소에 가서 몸을 피하자’라는 제의를 받으며 느헤미야는 한 쪽 마음에서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죽는다면 성벽은 누가 쌓을 것인가? 스마야 말을 따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편 그런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율법에는 ‘성소에 가까이 간 외인은 죽이라’고 명령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성소에 가까이 했다가 문둥병에 들린 사실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율법을 깨달은 느헤미야는 “나 같은 자가 어찌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위대하거나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이렇게 말하는 느헤미야의 저의 속에는 내가 내 목숨을 보존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들어있습니다. 나는 사람을 따라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 따를 때 난관 타개

느헤미야는 사람 중심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상황을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오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는 기도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처신해왔습니다.
위기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세 번째 원칙은 바로 ‘말씀’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눈 앞의 상황을 벗어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가 능력인 것입니다. 빛이 어둠을 비출 때 어둠이 사라집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상황을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서 선택해 나갈 때에 난관은 타개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종종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런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교육자나 교회 직분자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그 사람의 사상이나 철학을 말하고 그것을 따라오라고 회유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들으며 정말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잘 알지 못하는데 교회 생활도 많이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이렇게 하라고 하면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럴 때에 사람이 아닌 말씀이 중요한 겁니다. 말씀을 따라 마음을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틴 루터가 카톨릭의 전통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종교개혁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상황가운데서 우리의 행보를 결정하는 원칙은 바로 말씀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십시오. 진리에 순종하십시오. 진리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그렇게 행한다면 진리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을 축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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