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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죤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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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라규 대학교의 학생이었고 후에 저명한 교수가 된 죤 후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위클리프의 작품들이 보헤미아에도 전하여지고 이에 접한 후스는 크게 감동하여 그것을 교재로 사용하였다. 그는 박식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신념과 권위를 가진 설교자였다. 무리들은 그의 설교를 들으러 모였다. 그가 교회의 불의를 비난하였을 때 그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이 그것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중이 그를 영웅으로 받들수록 교회의 고위층 인물들은 그를 무서워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가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였다. 그는 위클리프처럼 이단설의 전파자로 지목되었다. 그는 위클리프가 말한 것처럼 진리는 성경에서 직접 그리스도인에게 전달되며 교황이나 대주교들이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교황은 불의했고, 어떤 이는 과오를 범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는 그것의 진리일 때 “당신들이 내 몸을 불사르기 위하여 내 눈 앞에 불을 놓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당신들에게 순종치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권위자들은 여기에 위험한 반항적 태도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후스는 파문되었다. 민중은 “우리는 당신을 지지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를 지지한 유력한 사람들이 그에게 냉담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콘스탄스시에 교회 회의를 소집하고 후스를 처리하게 하였으며 그를 보호해 주지는 않았다. 후스는 이교도로 고발되었다. 그가 가르친 모든 것을 그로 하여금 취소하고 이단자를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죽음 앞에 직면케 하였다. 그러나 후스의 신념은 확고부동했다. 그는 “악하게 사는 것보다 참되게 죽는 것이 더 낫다. 사람이란 비겁하면 안 된다.”고 옥중에서 한 친구에게 편지하였다. 그가 정죄되어 사형장으로 가서 자기가 화형 될 나무 다발에 불을 지르는 것을 보았을 때에도 그는 “지금까지 내가 쓰고 가르치고 전파한 복음의 진리 안에서 나는 기쁘게 죽는다.”고 말한 후 불길과 연기 속에서 그는 고요히 다시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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