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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날을 계수하는 지혜 (시 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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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본은 역시 시간이라는 자본입니다. 돈은 은행에 저축을 할 수가 있지만 시간은 저축할 수 없습니다. 오늘 안 쓰고 아껴두었다가 내일 두 배로 쓸 수가 없습니다. 돈은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가 붙지만 시간은 이자가 없습니다. 시간은 절대 늘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또 돈은 필요하면 꾸어서라도 쓸 수가 있지만 시간은 빌릴 수가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것만큼, 꼭 그렇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돈보다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시간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버는 일에 바빠서 돈 쓸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참 이상한 것은 이걸 자랑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면 어느 기업의 임원이 일을 하느라고 일년에 반은 해외출장이다, 집에는 일년에 몇 번 못 들어간다는 것을 자랑이라고 사진까지 내면서 실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세상이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하고 있는 것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돈이 제일이기 때문입니다.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가정도, 윤리도, 한 개인의 삶도 다 저버려도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벌어서 무엇합니까?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어느 날 쓰러져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돈을 가치있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가치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인생의 시간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사람마다 자기 나이를 바로 세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나이에 맞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젊은 사람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패기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마치 인생을 다 산 것처럼 고민이나 하고 앉아있으면 자기 나이를 잘못 세고 앉아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맞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은 청춘이라고 우기는 것만큼 웃기는 일도 없습니다. 저녁에 교회에 오다 보면 가끔 만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도 특이하게 하고 다녀서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분들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한 60은 넘어 보이는 여자 분들인데 무슨 오페라 가수처럼 화장을 하고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닙니다. 뭐하는 분들인지 모르지만 그것만큼 추한 것도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때에는 경험과 지혜와 인생의 모든 것을 체험한 자의 따뜻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과 부모님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자녀들은 자그마한 일에도 신경질을 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모님들은 여러분들이 아무리 섭섭하게 해도 아무 말씀 안 하십니다. 다 이해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의 강점입니다. 저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것은 여러분들이 아무리 속을 썩여도 이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점점 너그러워지고 편안해 지는 것이 나이 드는 것의 장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주름살 제거수술 해서 젊어지려고 애쓰지 마시고 나이든 사람의 따뜻함과 지혜를 갖추기 위해 애를 쓰셔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나이를 바로 세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말씀했습니다. 나이를 아는 지혜, 시간을 아는 지혜가 그만큼 귀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시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원한 시간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은 창조 전부터 존재하였고, 심판 이후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지구가 돌아가든 안 돌아가든, 우주가 있건 없건 존재하는 영원한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요즘에 주위를 둘러보면 역사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천년이 온다고 해서 무엇이든지 갖다 붙이기만 하면 역사적인 일이 됩니다. 심지어는 백화점 같은 곳에 가도 'New Millennium 축제, 금세기 마지막 바겐세일' 이런 광고가 붙어있습니다. 세상은 온통 새 천년이 오면 무엇인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처럼 떠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같을 뿐임이니이다.' 또한 베드로후서 3장에서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말씀했습니다. 하루살이에게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엄청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천년의 시간이 대단한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시간은 우리 인간의 시간으로, 이것은 유한한 것입니다. 이 시간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지 마십시오.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분명히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쯤 와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살날이 더 많습니까? 아니면 살아온 날들이 더 많습니까?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는 데에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모세는 120세를 살았습니다. 상당히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보래 수명은 120세 정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동물의 수명은 성장기의 다섯 배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25살까지 성장한다고 보면 그 다섯 배, 즉 125세가 인간의 수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환경과 음식과 스트레스 때문에 제 수명을 살지 못하고 일찍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20세를 살았던 모세의 인생은 참으로 특이합니다. 그의 인생은 철저하게 덤으로 살은 인생입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 애굽의 왕은 히브리인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세는 마땅히 죽어야 할 목숨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나일강에 버려졌다가 구원을 얻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모세는 덤으로 사는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왕자로 산지 40년이 되던 해, 그는 애굽 사람을 때려죽입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죽지 않고 살아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칩니다. 여기서 다시 덤으로 사는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40년 후에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때 모세의 나이가 80세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한갓 초라한 목동으로 전락한 신세입니다. 이제는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모세는 다시 40년의 인생을 덤으로 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8절,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앞에 두셨으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모세가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지만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죄밖에 지은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앞에,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설 때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죄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생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날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께서 화내실 일만 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삶, 덤으로 얻은 삶이라고 생각하며 충성되이 살려고 애를 썼지만 돌아보면 죄지은 것 밖에는 없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지으셨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인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온갖 죄악을 먹고 마시면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구원해 내시고 새로운 인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이요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고백처럼, 돌아보면 부끄러운 것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이 하나도 없고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일들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게 남은 날들이 얼마나 있는가를 생각하며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간 새로운 각오를 가지시고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여러분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미국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깨어 근신하고 기도하라.'고 열심히 설교를 하는데 교인들은 전부 다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비롯한 당회원들이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는 작전을 짰습니다.

그 다음 주일 예배시간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재림에 대해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깨어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 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여전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때 목사님이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저기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오고 계십니다.' 그러자 이때를 맞추어서 지붕에 올라가 있던 장로님들이 나팔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창문을 깨고 도망가는 사람, 의자 밑에 숨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오직 몇 사람만이 조용히 앉아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기도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저도 한번 해보고 싶은데 첫째는 장로님들이 올라갈 지붕이 없고, 또 장로님들 중에서 나팔을 불 줄 아는 분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10층에 있으니까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말세가 되었다. 주님 오실 때가 되었다.'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십니다. 그러면 과연 주님을 맞이할 준비는 얼마나 하고 계시는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점검하시고 언제라도 주님 앞에 설 준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이웃을 향한 나의 삶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지은 '시들은 무 한 포기'라는 글이 있습니다.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매우 인색한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좋은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채소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거지가 먹을 것을 달라고 구걸을 하였습니다. 그 넓은 밭에 토마토, 오이, 가지 등 수많은 채소가 널려있는데 이 여자는 쌀쌀맞게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밭 한 귀퉁이에 저절로 자라난 시들은 무 한 포기가 있었습니다. 어차피 빼서 버려야 할 무였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그것을 뽑아서 던져 주었습니다.


나중에 이 여자가 죽었습니다. 어디로 갔겠습니까? 물론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저 위로 천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천사님, 나는 세상에서 좋은 일을 했는데 왜 지옥에 와야합니까?' 천사가 무슨 좋은 일을 했느냐고 묻자 배고픈 거지에게 무 하나를 준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을 안 했으면 그것을 기억하겠습니까? 천사가 하늘 창고에 가보니까 과연 시들은 무 한 포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무를 갖고와서 말했습니다. '자. 이 무를 꼭잡아라. 내가 지금부터 끌어올릴 터이니 꼭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는 잡아당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올라가다 보니까 자기 이웃에서 살던 원수도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여자는 화가 났습니다. '아니 저 원수도 천국에 가다니'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발로 걷어찼습니다. 그런데 걷어차는 순간 시들은 무가 툭 부러지며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지만, 시들은 무 한 포기 준 것도 천국에는 그대로 쌓여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린 소자에게 내 이름으로 냉 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상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다 사용하고 난 다음, 주님 앞에 설 때에 과연 천국에 내가 받을 상급이 얼마나 쌓여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이웃을 향한 자세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해 동안 내가 얼마나 이웃을 생각하며 살았는가, 나만을 위해 살아온 시간들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오직 한번만 이 세상을 지나갑니다. 그래서 이 지나가는 도중에 친절을 베풀 일이나, 누구를 도와줄 일이 있다면 나는 절대로 연기하지 않고 그 즉시 그 일을 행하기에 힘씁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길을 다시는 지나갈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다함께 여기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다음 주에는 이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곁에 가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을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지나가면 그것은 영원한 과거가 되어 버립니다. 오늘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같은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어떤 부인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기차를 타보는 이 부인은 지정된 좌석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겨우 지정된 좌석을 찾아 앉았는데, 기차 안이 너무 더웠습니다. 그래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더니 이번에는 바람이 너무 세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알맞은 양의 바람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조절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여행가방을 선반에 올려놓아야 하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다 놓았다 저기다 놓았다 하면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겨우 자리를 찾아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처럼 여행을 하기 위해 비싼 값을 주고 산 모자가 말썽이었습니다. 모자를 쓰고있자니 바람에 날리고, 그렇다고 창문을 닫자니 너무 덥고, 그래서 선반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기차가 흔들거리면서 자꾸만 떨어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무릎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난리법석을 떨다보니 머리 모양새가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빗을 꺼내서 머리를 단정하게 빗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야말로 편안한 마음으로 차창 밖의 경치를 내다보면서 여행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차안내원이 그녀에게 다가왔습니다. '부인, 다음 정거장이 내리실 곳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모두는 제한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소풍가는 날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시간이 안 지나가는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렇게 기다렸던 소풍날도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영원할 것 같으니 어느 날 모든 것이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릴 날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필요 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맙시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맙시다. 사랑하며 살아도 모자랄 시간에 미워하지 맙시다. 뛰어다녀도 모자랄 시간에 앉아서 걱정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도 모자랄 시간에 세상의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맙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을 계수하여 그 날들을 가치있게 사용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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