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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한 자녀를 위하여 (시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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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자녀를 어떻게 정의할까요? 시편 127편을 보면 자녀는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 곧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는 ‘자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의 문제보다 자녀의 문제는 더욱 깊고 심각합니다. 부부는 이혼할 수도 있지만 자녀는 헤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녀의 문제는 두가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육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 마태복음 1장 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예수가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의 혈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영의 혈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녀에는 육의 자녀와 영의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육의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육의 혈통은 다 없어지고 영의 혈통만 남았습니다.
 
창세기에는 자녀문제에 대한 놀라운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인간을 에덴 동산에 두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생식과 번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자녀가 많은 것을 축복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한 자녀 낳기’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원리와는 다릅니다. 일부 사람은 ‘지구는 많은 인구때문에 파멸할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의 원리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에덴 동산에서만 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홍수 이후에 노아와 그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며 동일하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원리는 지금도 적용됩니다. 여러분,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십시오. 이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불변하는 진리 입니다.

창세기 15장 1-5절에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지만, 그 약속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자 고민하며 의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브라함은 믿지 못하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양자를 들이겠다고 하나님께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4절에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줄 것을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겼고 결국 아브라함은 1백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성경을 믿으십시오. 1백살 노인인 아브라함과 경수가 끊어진 사라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이루십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은 해내십니다.

세상의 자녀에는 약속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육신의 자녀입니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들로 그 혈통은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가 번민하고 괴로워 하는 것은 이 육신의 자녀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자녀, 약속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자녀입니다. 이 자녀는 축복의 자녀입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가 다윗의 자손인가 하는 것을 중시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 스도를 믿는 사람인가가 중요합니다. 믿는 이에게는 약속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상속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후사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자녀가 받는 축복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 세가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첫번째, ‘약속의 자녀’란 율법의 아들입니다. 곧 ‘말씀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자녀가 말씀으로 양육을 받을 때 그 자녀는 축복을 받습니다. 세상사람과 하나님의 자녀와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선택받은 사람과 선택받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백성은 선택받은 백성이요, 자녀요, 후사 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방인에 불과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자녀를 율법으로 철저하게 교육을 시킵니다. 그리고 13세에는 ‘미쯔바’라는 성인식을 합니다. ‘바’는 아들이라는 뜻이며 ‘미쯔’는 율법이란 뜻입니다.

이 성인식에서 아버지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율법의 두루마리를 아들에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육받은 대로 이제는 스스로 살아가라고 가르칩니다. 바로 이러한 교육이야말로 수 천년간 나라 없이 유리하던 유대인들이 타국에서도 그 힘을 키워가며 생존했던 비결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율법을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시대에 있습니다. 은혜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의 환경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우리 어린 자녀들은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을 지나치게 가까이 하면서 자랍니다. 컴퓨터 게임과 세상적인 음악 가운데 파묻혀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그저 학교교육에만 맡깁니다. 그곳에서 진화론을 배우고 세상적인 철학과 가치관을 가르친다 해도 우리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녀가 1등만을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부모들도 자녀들을 교회에 보내면 그뿐입니다. 그 아이들의 영혼에 진정한 관심이 없습니다. 아직 상식과 이성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아이들의 영혼을 말씀으로 양육해야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귀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세상을 사는 유대인의 교육은 지혜교육입니다. 지혜를 가르치고 직업관을 가르쳐 철저하게 노동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또한 그들은 철저하게 십계명을 교육합니다. 저는 오늘날 자녀 교육의 회복과 원칙이 바로 십계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계명을 교육하면 세대차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신세대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세대가 있을 뿐입니다.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효’를 말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순결교육입니다. ‘도적질 하지말라’는 정직교육입니다. ‘거짓말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등 모든 교육의 원칙이 십계명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영원한 것입니다. 이 교육은 여러분의 자녀를 복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 것입니다.

두번째,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약속있는 첫계명입니다. 효도교육은 유교적인 교육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교육입니다. 잠언 4장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솔로몬은 자기 아들에게 가르침을 잊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서 왔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배웠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6장 1절-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두 개의 돌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에대한 계명이 새겨진 돌판과 인간에 대한 계명이 새겨진 돌판입니다. 각 돌판에 5개씩의 계명이 적혀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십계명중 하나님에 대한 계명은 네 개이며 인간에 대한 계명은 여섯 개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계명중 하나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 있는 돌판에 함께 적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기도 하고, 동시에 인간에대한 계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도록 만들 책임이 부모에게 있습니다. 억지로, 의무적으로, 야단쳐서 하는 것은 공경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부모를 사랑해서 하는 것이 공경입니다. 이렇게 만들 책임이 부모에게 있습니다. 저는 출애굽기 21장과 레위기 20장에 나오는 말씀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라”고 했습니다. 또한 레위기는 어미나 아비를 저주하는 자는 죽일 뿐만아니라 그 피가 자식에게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거역하고 부모를 거역한 사람은 그 피가 자기에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녀라 할지라도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아는 자녀를 만들지 못했다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세상적으로는 유명하지 않다 할 지라도 부모를 공경할 줄 안다면 성공인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실수는 어떠한 것이든 간에 덮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가 할 일입니다.

창세기의 노아를 보십시오. 홍수 이후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 하체를 드러낸 채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목격한 함은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셈과 야벳 두 형제들에게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이때 셈과 야벳은 뒷 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수치를 가려주었습니다. 이후 함은 노아의 저주를 받았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가 공경받을 만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라는 존재 자체가 권위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부모님께 다음의 세가지를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번째, 부모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녀가 되십시오. 두번째, 부모의 필요를 공급해 주는 자녀가 되십시오. 세번째, 부모의 과거 허물을 덮어 주십시오. 이런 자녀가 축복의 자녀가 됩니다.

끝으로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자녀가 복을 받습니다. 아버지가 가진 최대 특권은 축복권입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한 자녀는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는 비결입니다. 민수기 6장 22-27절 말씀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들려주십시오. 그리고 이 말씀을 여러분의 자녀에게 가르치십시오. 이 말씀대로 여러분의 자녀를 축복하면 자녀에게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해주는 아버지가 되십시오. 사랑을 주는 어머니가 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을 주 안에서 양육하고 훈계하는 축복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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