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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혹자의 칭찬을 뒤로 하고 (아 0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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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아첨의 말과 약속(9,11절)
유혹자 솔로몬은 궁궐에 끌려 온 술람미 여인을 시종을 통해 단장시킨 후 그녀의 힘과 장식을 칭찬하고, 아울러 그녀에게 은 장식이 있는 금 사슬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유혹자는 그녀가 가진 힘을 칭찬한다(9절). 그녀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기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핏 좋은 칭찬 같지는 않게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중동 지역 사람들이 힘있고 훤칠한 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풍습을 볼 때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이 소유한 힘을 칭찬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갖는 신앙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사단과 귀신들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식하고 그들이 가진 ‘거룩한 힘’을 경계한다. 그런데 언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거룩한 힘이 있는 존재로 나타날 수 있는가?

우리 스스로의 힘은 결코 사단이 두려워 하지 않지만,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신뢰하고 행동할 때 두려워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고후 2:14, 4:7).

유혹자는 그녀가 걸치고 있는 장식을 칭찬한다(10절).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이를 흠정역으로 보자. “네 두 뺨은 보석 줄로, 네 목은 금 목걸이로 아름답도다!”유혹자는 먼저 술람미 여인의 자연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궁궐에서 왕의 시종들이 정성들여 보석으로 꾸미고 치장한 그녀를 칭찬한다. 실로 이 세상과 사단은 사람이 본래 창조된 목적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추하고 어리석게 생각한다. 반면에 사단이 제시한 온갖 걷치레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멋있는 인생인 것처럼 속인다. 하나님과 철저하게 무관한 부귀과 세상적인 명예를 가장 아름다운 인생 성공이라고 칭찬한다. 오늘 날도 사단은 온갖 불법과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치장하고, 불륜의 관계가 주는 쾌락이 달콤하다고 TV나 연극, 영화 등 온갖 영상 매체를 통하여 유혹하고 있다.

유혹자는 그녀에게 은과 금 장식을 해주겠다고 약속한다(11절). 성경학자들은 성경에서 ‘은’은 구속 혹은 구원의 상징임을 지적하고 있고, ‘금’은 통치나 주권을 상징한다고 밝히고 있다. 실로 사단은 자신이 하나님인양 속이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만든 하나님을 거짓 종교들과 이단의 가르침을 통하여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온갖 귀신의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이 아니 다른 신들을 통한 구원을 가르치고, 자기 노력과 공로를 통해서 구원에 이른다는 잘못된 구원의 도리를 전하고 있다.

Ⅱ. 유혹자의 칭찬을 뒤로 한 술람미의 목자를 향한 사랑(12-14).
솔로몬 왕이 편안히 앉아서 쉬는 동안 그녀는 틈을 타서 목자를 생각한다. 그때 그녀의 ‘나도 기름’(감송나무 기름)이 향기를 발하였다. 이 ‘나도 기름’은 나드 향나무 뿌리에서 뽑은 값비싼 향유로서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부은 향유이다. 이는 진정 사랑과 헌신의 표시로 주님께 드려진 것이었다(요 12:1-11).

그녀는 목자를 몰약 향낭(다발)이라고 고백한다(13절). 이 몰약은 동방 박사가 주님께 드린 선물 중에 하나로서 흔히 시체에 방부제로 바르거나 마취제로 쓰였다(마 2:11). 이는 성경에서 고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우리가 주님을 결코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분께서 범죄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성도들에게 있어서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실한 표시이다(롬 5;8). 따라서 술람미 여인이 늘 목자의 사랑을 기억하고 사모하듯이 우리 또한 주님을 사모함이 당연하다

그녀는 목자를 ‘엔게디’포도원의 고벨화송이라고 고백한다(14절). 엔게디는 ‘염소의 샘’이란 뜻을 가진 사해 근처에 있는 황량한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샘)이다. 이 샘은 광야에 지치고 목마른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생명의 물을 공급해 주는 곳이었다. 생수가 되신 우리 주님의 아름다운 상징이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진정 엔게디는 샘물(오아시스)였지 ‘신기루’가 아니었다. 주님은 잠시 사람의 눈에 헛것이 보이게 만드는 신기루가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주인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언제나 삶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생명을 제공하는 영생의 샘물이 되신다. 또한 이 장소는 한 때 자신의 목숨을 해치려는 사울을 피해 다윗이 숨은 피난처로서 그에게 생수를 제공한 장소였다(삼상 23:29,24:1).

그녀는 장차 가질 목자와의 혼인을 고대하였다(16절). 결혼식을 올린 뒤 신랑과 더불어 누릴 사랑과 기쁨을 술람미 여인은 생각하고 있다. 성도는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갖게 될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고대하는 자들이다. 그녀는 장차 들어가게 될 견고하고 영원한 처소를 생각하고 있다(17절). 장차 가게 될 그 곳은 백향목의 견고함 같이 성도들의 견고하고 영원한 처소가 될 것이다.

Ⅲ 술람미를 향한 목자의 칭찬(15절)
목자는 그녀 자체의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솔로몬의 칭찬과는 달리 목자는 그녀 자체에 대한 감탄을 적고 있다. 실로 성도도 주님께서 피값으로 산 귀중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아름답게 보신다. 이는 마치 발람의 입을 통해서 실수와 잘못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보신 것과도 같다(민 24:5,6). 목자는 그녀의 순수한 시야를 칭찬한다. 이는 오늘날 주님께서 순수한 신앙과 신령한 시야를 가진 성도들을 칭찬하는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마태복음 6;21-25, 33을 보라!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는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궁전에 끌려와 온갖 말과 화려한 보석으로 유혹받듯이 유혹받는 세대에 살고 있다. 게다가 목자만을 생각하기가 힘든 어려운 환경과 갈등 속에 살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단지 사업이 안되고 살기가 어려우니 좋아질 때까지 언제 까지나 기다리며 생업에만 몰두해야 하겠는가? 아니다. 먼저 하늘의 신령한 시야를 가진 성도는 첫째로 목자를 향한 사랑과 충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불평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힘겹지만 그 가운데서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혹이 많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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