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청년의 삶과 신앙 (시 119:9-16)

첨부 1



제가 목사 안수를 받고 '처음부터 개척교회를 시작해야 되겠다!' 그렇게 뜻을 정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그런 지역을 찾아가게 됐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래도 하나 둘은 있어야 그 사람을 붙들고 어떻게 시작을 해보겠는데 예수 믿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산골 시골 마을을 29살 목사 안수를 받고 처음 찾아가게 되었는데, 처음에 그 동네를 답사 갔을 때 3월이었습니다. 아직 날씨가 좀 추운데 그 동네를 들어갔다가 이렇게 나오는 길에 좀 마음이 '과연 이 마을에 와서 내가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참 정이 안드는 이런 곳에 와서 예수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여기 어떻게 와서 선교를 할 수 있을까?' 조금은 '그만 둘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 마을을 이제 버스를 타기 위해서 버스길로 나오는데 그 길옆에 논두렁에서 시골 아이들이 한 열 몇 명이 모여서 불장난을 하고 있는 거예요. 불을 지르고 무슨 깡통에다 불을 집어넣어서 빙글빙글 돌리면서 막 떠들고 불장난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그 아이들 옆으로 다가갔어요. '너희들 그렇게 재미 나냐?' 물어봤더니, 나를 쳐다보더니 평생 못 보던 사람이니까 '아저씨는 누구예요?' '아저씨는 목사님이야.' '목사님이 뭐하는 거예요?' '목사님이 뭐하는지 내가 가르쳐줄게. 너희들 이리 다 와서 앉아라.' 그랬더니 그 아이들이 호기심 있게 논두렁에 주욱 앉았어요. '목사님이 노래를 하나 가르쳐 줄텐데 너희들 배울래?' '네' 시골 아이들이 또 순진한 게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 아이들을 주욱 열 몇 명 논두렁에 앉혀놓고 논바닥에서 「예수 사랑하심」을 가르쳤어요. 잘 따라해요. 몇 번했더니 합창을 하면서 아주 잘해요.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저 뭐하는 것들이야?' 이렇게 쳐다보고 그래요. 그랬는데 '이제 아저씨 목사님이 이 동네 와서 너희들하고 같이 살면 어떻겠냐?' '네∼ 오세요.' 그런데 그때 그 아이들이 '오세요!' 하는 그 목소리가 주님의 음성으로 들렸어요. 그래서 이제 보따리 싸 가지고 그 마을을 찾아가서 어른들은 예수 믿는 게 시간이 걸리잖아요? 이 아이들은 금방 나온다 말이에요. 그래서 '이 마을에 이 많은 어린이들만 전도를 열심히 해 놓으면 성공이다!' 그렇게 생각이 되어서 이 어린이 전도에 유치원서부터 개원을 해 가지고 온통 동네 어린이들을 다 모아놓고 열심히 어린이 전도를 4년 4개월 그 마을에 있으면서 제가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저는 미국으로 가서 오래있다 나왔는데, 일주일 전에 7월 5일날 누가 전화를 했어요. '목사님, 한국에 나오셨다는 말을 제가 들었고, 텔레비전에서 확인을 했습니다. 옛날 옛날 그 옛날, 아저씨 목사님이 우리들을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아무개입니다.' '아, 그래? 기억이 나는데' '그런데 그 어린이들이 지금 다 자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40대 장년으로 다 변했으니까 한번 만나도록 해주십시오.' '아, 그러자구!' 그래서 일주일 전에 만났습니다. 약속한 장소에 가보니까 한 열 몇 명이 왔어요.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그 어린이들 가운데 그 산골 마을에서 거기 온 사람들 가운데 목사만 4명이에요. 목사님 사모님이 셋이 왔고, '야∼ 유치원 때구나, 네가 목사님 사모님이냐?' '네가가 뭐예요? 사모님더러' 뭐, 전도사님이 한 분 오시고, 집사님은 수두룩하고 거의 교회 안 나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모임은 그 농촌 교회는 아직도 농촌 교회라서 다 떠났으니까 너무 약해서 '모 교회 돕기 운동회' 그것을 조직해 가지고 헌금을 해서 모 교회를 돕고 있고 그럴려구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어린이 프로그램만 놓치지 마세요. 가장 확실한 선교의 장이 되니까 말입니다.

오늘은 제가 청년에 초점을 맞춰서 설교를 준비했는데 이 교회가 청년들을 목표로 신앙 교육을 하려고 할 때, 먼저 청년들의 특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청년이 되어서 말썽거리가 될 수가 있고, 기성 세대와 마찰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청년은 어떤 존재인가?' 그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다소 기성 세대가 보기에 좀 불편한 일이 있어도 청년 활동을 교회가 잘 지원할 수가 있습니다.

이 청년 존재는 '가능성적인 존재다.' 그렇게 규정을 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에너지가 많아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때다. 그런 'Being of possibility' 라고 하는 단어를 써서 말을 하는데 지난번에 불행하게도 백화점이 무너졌죠? 그래서 제 기억에 확인된 것만 458명이 그 속에서 죽었다고 그랬는데, 세 사람이 377시간을 땅 속에서 견디다가 구조가 되어서 살아났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땅 속에서 377시간을 견디며 살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대답은 하나입니다. '젊었기 때문에 살았다!' 세 명 다 청년이었어요. 그만큼 견딜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성적인 존재이다! 그것을 교회가 바라봐야 됩니다. 40세 된 사람이나 60세가 된 사람을 군인으로 뽑는 나라는 없습니다.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학문도 전쟁도 사업도 모두 가능성 있을 때 일이지 가능성이 없어진 다음에는 쓸데가 없어지잖아요?

요즘 우리 한국 사회는 이러한 가치 판단이 너무 심해져서 제가 서울에 올라와서 들은 이야기 가운데서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십 오세 정년이고, 오십 육세 까지 일하는 사람은 도둑놈이라고 그런 말을 들었는데,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 가능성은 창조성이 있는가 하면 타락성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 교육이란 뭐냐?

이 젊은이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타락성을 배제하고 창조적으로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젊은이는 이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어디엔가 발산을 시켜야 합니다. 그 방향이 어딘가에 따라서 사람이 결정이 됩니다. 청년들의 움직임에 따라서 사회는 좋아지고 나빠집니다. 천사의 도시라고 이름을 지어 'Los Angeles'인데, 그 도시를 망치는 한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십만 명 이상의 젊은이가 갱단 조직에서 활동을 해요. 그래서 죽음의 도시를 만들죠. 거리를 갱단 때문에 마귀의 소굴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 청년들의 움직임이 어디냐에 따라서 그 사회는 결정이 됩니다. 노인들 아무리 몰려다녀도 문제성으로 보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몰려다니면 우선 두려움부터 가집니다. '쟤네들 뭐 하려고 저래?' 얘네들이 잘못 움직이면 사회는 망가지니까! 그래서 무엇인가는 해야되는 청년들에게 무엇인가는 하게 하는 그것이 교회에서의 청년회 사업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청년활동을 장려하고 청년의 의미를 새롭게 한 것은 기독교입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1903년에 교회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청년회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 활동을 했더니 그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서 '이것이 뭐하는 것이냐?' 그래서 관청에 고발이 되었고, 이것이 정치 문제로 비화했던 기독교 역사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 청년회는 유관순 같은 애국 청년을 길러냈고, 1924년 12월 2일에 피어선 성경 학교에서 전국 기독 청년 조선 연합회 창립 총회를 개최해서 전국적인 청년회에 불을 지펴버렸어요. YMCA, YWCA 모두 기독교가 만들어낸 청년 활동입니다.

불교계에서 기독교를 연구했습니다. 그 연구한 내용을 제가 아는 것이 있어서 적었습니다. '왜 불교는 기독교 같이 번영하지 못하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질문을 가지고 연구를 했고, 그 다음에 '왜 절을 찾아오는 사람은 여자뿐인가?' '왜 불교는 기복 종교로 전락을 했는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아는데, 불교인들은 불패설법을 왜 모르는가? 왜 이렇게 됐는가?' 그래서 기독교를 연구했더니 '기독교는 교육기관을 갖고 있다. 교회는 어느 교회나 아주 작은 교회라도 학교 이상의 조직력을 가지고 영아부에서부터 청년회에 이르기까지 교회에서 일년 내내 철저한 신앙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것이 불교와의 차이다!' 기독교의 찬송가를 보고 불교도 찬불가를 만들자고 어느 스님이 열심히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었잖아요? 그분은 기독교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하다가 기독교로 개종을 했어요. 지금은 전도사님이 되어서 간증을 합니다. 내가 이름을 대면 아실 거예요.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 반드시 싹이 납니다. 그 싹은 반드시 자라고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가 달립니다. 때로는 나지 아니할까 염려도 되지만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씨를 뿌리면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뿌리는 것입니다. 많은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청년의 특징은 기성 세대에 적개심, 혹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 특성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전통적 가치관에서 탈피하고 싶은 강한 충동과 조금은 위험스러운 모험을 하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뭐든지 기성 세대의 반대를 시도해 보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60년대는 세계 젊은이들이 세상을 요란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영국의 비틀즈 음악, 첼시족들의 미니스커트, 중국의 홍위병, 미국의 히피족… 이런 것들은 다 전통적 가치관을 뒤엎어 버리는 그런 젊은이의 반항운동으로 세상을 요란하게 했습니다. 당시 우리의 대한민국을 생각해 보십시오. 경찰관들이 길거리에서 이만한 가위를 들고 있다가 장발족이 지나면 머리를 잡아서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잖아요. 그런데 없어졌습니까? 점점 더해 가지고 나중에는 어른들도 장발로 됐습니다. 과거 옛날에 대통령 했던 사람, 국회의원 했던 사람, 정치인들의 요즘 TV에 과거 모습 나오는 거 보십시오. 장발로 다 기르고 그랬습니다. 어른들이 다 장발로 변해버리니까 젊은이들은 어떻게 했어요? 밤송이 같이 해버렸어요. 짧게 깎아버리고.. 어른하고 무조건 반대로 나가고 싶어하는 반감적 시기를 살고 있다!

이번 여름에 우리 나이 많은 사람들이, 기성 세대들이 유행을 노출로 한번 삼아봐요. 옷을 입는둥 마는둥 하고 말이에요, 다리가 어떻게 생겼든지 쭈글쭈글 하던지 말던지 노출로 해보세요. 젊은이들은 그 꼴이 보기 싫어서 오버까지 입고 나올 겁니다. 기성 세대들은 무조건 하는 게 보기 싫은 겁니다. 반대로 나가는 겁니다. 젊은이들의 그릇된 유행을 죽이는 방법은 기성 세대가 똑같이 해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50년대∼60년대 미국 사람들의 옷차림을 영화 같은 데서 보세요. 거의 똑같습니다. 머리 모양 단정히 깎고, 거의 99%의 사람들이 중절모자 다 쓰고, 양복은 반드시 더블 반추를 반듯하게, 반짝반짝 구두를 신고, 양복 왼쪽 윗주머니에는 손수건 접어서 껴놓습니다. 이것이 50∼60년대 서구 사회 신사의 멋쟁입니다. 어른들이 모두 그렇게 하고 다니니까, 젊은이들이 그 다음부터 나온 게 블루진 청바지, 티셔츠로 온 세상을 다 뒤덮어 버렸어요. 버클리 대학에서 히피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 히피는 학교 캠퍼스 안에서 사람이 있든 말든 발가벗고 돌아다녀요. 보고 싶으신 분은 가보세요. 지금도 그러는 학생이 더러 있습니다. 교수들의 골칫거리랍니다. '어떻게 막느냐?' 거기서 나온 결론이 뭐냐면 '이것을 막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다! 교수들이 다 벗는 길 밖에 없다!' 요즘 우리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밤 문화를 즐깁니다. 왜 그렇게 됐죠? 밤이 낮이에요. 밤거리 가보세요. 청년들이 대낮같이 움직이고 물결치듯 돌아다니고 놉니다. 기성 세대하고 같은 시간에 놀기 싫은 겁니다. 뭐든지 반대로 가는 그 특성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 그들에게 접근 할 수가 있습니다. 다소 불편해도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동참도 해보고 그곳에 가서 끌고 나와 함께 뒹굴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 청년들의 특징은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소속감'입니다. 서구 사회 갱단원들에게 설문 조사하는 팀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당신은 왜 갱단원을 하십니까? 위험하고 죽을지도 모르고, 얻는 것도 없고, 나쁜 일도 없고, 사회도 하지 말라고 하고… 하나도 유익한 것이 없는데 왜 갱단원이 되어서 사회를 어지럽게 하고 당신도 위험하게 삽니까? 그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거기에 첫째 이유로 '거기 가면 나를 알아주니까' 그겁니다. 소속감을 좋아하는 겁니다. 어떤 조직의 멤버라고 하는 거기서 자기 존재 의미를 발견할 때 살맛이 나는, 그래서 제일 두려운 것은 왕따가 되는 겁니다. 소속감! 대학 청년 시절에는 그래서 서클 활동을 많이 만들게 되지요? 그 서클 안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이 청년들은 소속감을 줘야 합니다. 전문적 연구를 하는 교회 청년 지도자 전도사님 한 분이 각 대학을 다니면서 서클 활동을 조사해서 교회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지금 청년들은 이렇게 소속감을 가지고 이런 일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비한 교회 대책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합시다.' 하고 세미나를 했는데, 우선 그 서클 조직의 이름도 기성 세대다 들으면 다 싫어할 그런 이름들로 다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전도사님이 밝힌 것 그대로 제가 다 적었습니다. '파란만장회' 회장도 뽑는 겁니다. '기절초풍회' '요절복통회' '삼천궁녀회' '경복궁내시회' '용천지랄회'등, 기성 세대가 들으면 다 싫어할 수 있는 것만 골라 가지고 반감으로 나가는 겁니다.

이게 청년회의 특성이에요. 그것을 알고 우리가 청년과 접근을 해야 합니다. 왜 그러느냐? 가족의 일원이라고 하는 문화에서 탈피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사회 일원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강한 소속감을 필요로 하는데 지금까지는 가정의 일원으로 소속감을 즐겨왔어요. 그러나 청년은 이제 탈피해요. 그러니까 바깥의 소속감이 필요한 겁니다. 교회도 이 소속감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분명할 때 즉, 정체성(Identity)을 심어줄 때 '내가 누구냐? 소속이 어디냐?' 베드로전서 2장 9절∼10절에 보면 베드로 사도가 그 당시 박해를 견디지 못해 유대 나라를 탈출하여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를 향해서 편지 설교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핍박으로 인해서 소아시아에 일대 흩어진 나그네로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역사를 살고 있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이 크리스챤의 정체성(Identity)을 정립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이게 소속감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나라의 소속감이 있는 제사장과 같은 사람이다!' 이 강한 영적 소속감을 주어야만 청년들은 거기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크리스천의 분명한 소속!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청년으로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옵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 사로잡힌 청년들에 의해서 세상은 역사가 변천되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30세에 청년으로 인류 구원을 완성시켰어요. 구약 성경 가운데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20세에 이루어져서 야훼 종교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구약의 역사를 우리가 볼 수가 있지 않아요? 바울이라고 하는 청년 하나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바뀌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빙스턴, D.L.무디, 칼빈 선생, 마틴 루터, 그 가장 귀한 업적을 20대에 다 이룬 겁니다. 링컨의 역사를 보면 그가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 갔을 때에 흑인 노예가 하나 팔리면서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 막 눈물 흘리면서 팔려 가는 그런 장면을 봤습니다. 링컨은 그때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나다!' 나는 틀림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굳게 마음을 먹어서 그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흑인 노예 해방의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마음을 먹었던 그때가 19살이었습니다.

한 청년이 어느 날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청년은 그 사회에서 칭찬 듣는 모범적인 청년이었습니다. '선생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원성이 있는 삶의 갈등을 가지고 해답을 구하러 왔습니다. 청년이 영생의 문제의 심각성을 가졌다는 그 자체도 훌륭합니다. '예수께서 계명을 지켜라!' '나는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십계명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성실하게 지키는 청년입니다. 매우 종교적인 청년입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이라고 그랬습니다. 사회적 능력도 남보다 우월해서 성공적 자기 주변을 잘 마련한 모범적 청년입니다. 젊은 나이에 성취를 다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행복이 없습니다. 영생에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와서 심각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청년을 바라봤을 때 그의 마음을 너무나도 많이 차지하고 있는 움직이지 않는 가치관 하나를 발견했어요. 필요 이상으로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을 보셨어요. 주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에서 조금은 자유함을 얻으라! 너무 많은 재물과 그것에 대한 관리에 신경을 너무 많이 허비하고 있으므로 너는 지금 거기에 묶여서 너무 불행하게 살고 있다! 아주 선하게 사용함으로 좀 자유함을 얻어라!' '그것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청년들 마음에는 가치관이 있어요. '이것을 위하여' 그것이 뭐냐면 오늘 14절 말씀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이 말은 '돈을 사랑하는 것만큼만 하나님을 섬기라.' 그런 뜻입니다.

청년의 가치관은 다양합니다. 애정과 성취와 향락! 모두가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건설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 가치관을 신앙 안에서 길을 인도하는 그것이 교회의 장년 사업입니다. 영원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최고의 가치 발견! 삶의 운선 순위가 잘못 결정되면 인생은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맙니다. 청년 시절은 삶의 목표가 설정되는 시기입니다. 가장 젊은 나이에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사람이 징기스칸, 알렉산더 그런 사람이었죠? 알렉산더 대왕의 가정 교사는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어느 날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부를 가르치다가 청년 왕자 알렉산더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왕자께서는 얼마 안 있으면 임금님이 되실 터인데 임금님이 되시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헬라 통일입니다.' '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헬라 통일시키신 다음에 뭐하시겠습니까?' '소아시아 일대까지 점령해야죠.' '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다 점령했다고 합시다. 그 다음에는요?' '나는 저 팔레스타인 가나안 땅이라고 하는 그 이집트까지 나의 정복 목표입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집트까지 다 점령했다고 합시다. 그 다음에는요?' '인도까지 점령하죠!' '아, 그래요. 온 세상을 다 정복했다고 합시다. 그 다음에는 뭐하실 겁니까?' '그때가 되면 나도 죽겠죠!' '그러면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렇게 많은 땅을 점령하지 말지' 그는 자기 야망을 굽히지 않고 그가 말한 대로 전 세계를 향해서 정복의 길을 가다가 너무 일찌감치 33세에 바벨론 원정에서 열병으로 쓰러져 모래밭에 죽고 말았어요.

'무엇을 위해서 내가 살아야 할 것인가?' 그 목표가 확실하여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