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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시 5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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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를 아실 것입니다. 생후 1년 반 동안은 발육이 좋은 아기였으나 생후 19개월 때 중병에 걸려서 시력, 청력과 언어 발생력을 상실해 버리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한 평생을 장애로 살았으나 비장애인을 부끄럽게 한 사람입니다.
1900년 20세에 헬렌은 하버드대학의 레드크리프 컬리지에 입학했습니다. (점자, 발성을 배워) 그녀는 미국의 사회복지 사업가로 사회복지를 위해서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녀가 점자로 써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단 한번만 저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 볼 수 있었으면, 내가 단 한번만 떨어지는 저 낙엽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 볼 수 있었으면, 내가 단 한번만 저 깊은 산 속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내가 단 한번만 저 아름다운 가르침과 자상한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우리 선생님 샐리반 선생의 아름다운 그 미소를 바라볼 수만 있었으면, 내가 한번만 저 오케스트라의 연주하는 장엄한 그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내가 단 한번만 나에게 그 귀한 감동을 주시는 필립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만 있었으면 ....
내가 한 번만 그 말씀으로 내 삶을 바꾸어 놓았던 그 감동스런 성경말씀의 내용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읽을 수 있었으면, 내가 한번만 지는 해의 그 아름다운 석양의 노을을 직접 내 눈으로 바라 볼 수만 있었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 그럴 수만 있으면 지금 당장 죽어도 한이 없겠다.“

여러분 이 글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현대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감사의 정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2절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마지막 때를 향해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강팍해 져서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서는 말세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말세의 증거가 바로 감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는 분명히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약화되면서 감사가 식어진 것입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과 감사는 서로 비례합니다. 믿음이 충만하면 감사도 충만합니다. 믿음이 동이나면 감사도 동이나는 것입니다.
세브란스 병원 심장병동에 걸린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환자의 고백’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로인해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와지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로인해 인간된 보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모든 일로 감사할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로 하나님과 가까와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 시는 서울연세의료원(세브란스) 심장혈관병동 병실에 부착돼 있는 이 기도시입니다. 이 기도문은 입원 환자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줄 뿐만 아니라 내방객들에게도 신앙적인 도전을 주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수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시를 보는 순간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또 병문안을 왔다가 이 시를 발견, 이 시를 옮겨 적은 뒤 타이핑까지 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평의 눈으로 보면 불평할 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도, 끝도 없습니다. 거울을 보면 자신의 얼굴에 불만이 생깁니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면 키가 작아 불만스럽습니다. 돈 많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비교의식이 생깁니다. 돈 없는 자신에게, 아버지에게 원망을 합니다.
그러나 감사의 눈으로 보면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병원에 가보세요. 나에게 건강이 있음이 감사할 뿐입니다. 고아원에 가 보세요. 부모 없는 사람들을 보면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가정이 없는 시람들을 보면 가정을 주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다 감사할 것 뿐 입니다.

1.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사’ 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합니다.
감사란? 지난날 받은 은혜에 대하여 고마워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하여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가진 사람이나 높은 사람도 누구로부터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우리 인생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문제는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받고도 받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아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요,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요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복 받은 마음”입니다. 감사는 분명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마음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난 별로 감사할 것이 없어, 뭐 더 좋아진 것이 없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은 저주 중에 저주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는 것은 무지해서 감사를 깨닫지 못하거나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내촌감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그리고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면 버린 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면 소망 없는 자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면 가장 불쌍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중 광고 시간에 어떤 중년신사가 일어나더니 며칠전 베트남에서 전사한 아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교육관에 음향시설 설비금 10,000불을 하나님께 드릴 것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뒷자리에 앉아있던 어느 여인이 갑자기 자기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습니다. 우리도 같은 것을 합시다. . .그러자 그녀의 남편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우리아들은 죽지 않았잖아. . . !’ 그러자 아내는 ‘그러니까 더 바쳐야지요!’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죽지 않은 것은 더 큰 은혜인데 . . .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복 중의 복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회복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감사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에는 힘이 있습니다. 칼 힐티라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감사하는 삶은 우리를 젊게 만들고 우리의 생을 보다 싱싱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잘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어디서 만나든지 미소로 대합니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잘 안 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낯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원수 만난 인상으로 옆에 사람이 있어도 눈동자도 돌리지 않고 층수를 나타내는 죄 없는 숫자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재미없게 고충을 올라갑니다. 우리 민족이 고쳐나가야 될 것중에 하나입니다.

감사는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할 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의 마음까지 감동시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잡혀서 많이 얻어맞고 빌립보 옥에 갇혔습니다. 쇠고랑이 찼습니다. 습기차고 냄새나고 . . .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 받을 수 있는 것을 감사 찬송하고 기도할 때 감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뉴잉글랜드 동부연한에 있는 한 작은 어촌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고기잡이를 떠났습니다. 그들이 고기 잡으러 떠난 그 날 오후가 되자 큰 폭풍이 다가 왔습니다. 돌아와야 될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모든 아내들이 모래사장에 나가서 꿇어 엎드려 “하나님이여! 이 심한 폭풍우 가운데서 고기잡이배를 편안히 돌아오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밤새도록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만 그 동네 어느 집 한 채에 불이 났습니다. 남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불을 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아 그 집을 다 태우고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집 주인 된 여인은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아침 새벽녁에 모든 어부들이 무사히 다 항구에 들어왔습니다. 어부들은 처자를 얼싸 않으며 기뻐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돌아오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풍랑을 만나 방향을 잃어버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에 처했을 때 동네에서 모든 아내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한 집에는 불이 났지만 그 큰 횃불을 보고 방향을 잃은 어부들이 방향을 찾고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불이 났다고 온 가족이 슬퍼하고 절망에 처했지만 그 횃불이 남편과 가족을 구원하는 등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게는 불행처럼 보이는 것 조차도 지나고 보면 감사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로, 몸으로, 마음으로 감사에 젖어 살 때 하나님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3. 감사는 믿음과 정비례합니다.
감사는 믿음과 정비례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며 감사가 없는 사람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당장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는 것을 하나님이 채우실 것을 믿는 사람들은 늘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사라지면 그 입에 불평과 비방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화되면 불만과 원망과 불평의 말이 나옵니다. 예수를 믿고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원망과 불만과 불평을 안고 살아갑니다.

요즘, 신앙인들조차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보다 매사에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불평불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이 약화되어서 그렇습니다. 믿음이 약화되면 불만과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이 일어날 때 “아, 내 믿음이 식었구나, 병들었구나”하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참으로 믿음의 사람들은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환경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찬송 495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감사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거친 들도 초막도 천국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추수감사절은 처음 복음이 들어올 때 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들어왔습니다. 그 미국은 약 400년전에 영국의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죽음의 바다 대서양을 건너와서 미 동북부에 도착하면서 시작 된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므로 로마 카톨릭이 무너지고, 개신교가 전 유럽에 전파 되면서 영국에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영국에 수많은 사람들이 카톨릭의 의식과 형식을 벗어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을 주장하자 기독교인의 수가 날로 늘어가면서 당시 카톨릭을 신봉하던 제임스 왕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합니다. 그 때 그 기독교(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102명이 메이플라워라는 는 범선을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무작정 신대륙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청교도 일행은 102명인데 플리머드 항에 1620년 가을에 도착했습니다. 돗 단배를 타고 무려 삼개월이나 걸려서 파도와 싸우고 밤이면 추위와 싸우며, 먹을것도 넉넉치 않은데 그나마 먹은 것을 배 멀리로 쏟으면서 허기지고 질병이 생기면서 환자가 생겨나고 굶주림과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습니다.

삼개월이 걸려 도착했을 때 거의 절반인 44명이 죽었습니다. 도착한 그들은 온갖 악조건과 싸워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울면서 씨를 뿌린 것입니다. 3년째 되는 1623년, 그 해에는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디서 몰려왔는지 조그만 벌레들이 새카맣게 몰려와 곡식을 갉아먹는데,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총동원하여 벌레를 잡았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하나님을 더 잘 믿기 위함이 아닙니까? 믿음으로 시작했으니 끝까지 믿음으로 이기자”고 말하여 모두 밤새 울며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어디서 몰려 왔는지 새떼들이 새카맣게 날라와 벌레들을 모두 잡아먹었습니다. 그래서 큰 풍년이 들었습니다.
죽음과 싸우며 도착한 청교도들은 먼저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자기들의 처소를 지었습니다. 그때 건강한 사람들이라고는 대 여섯 명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중에서도 황무지를 개간하고 인디안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추수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풍속이 온 세계에 퍼져 나가 온 세계적으로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 . .목숨을 걸다니. . .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귀한지 말입니다.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그들은 감사의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죽음의 바다라도 건너가서 마음 놓고 예수를 믿겠다는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뜨거운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신앙과 감사는 비례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 중에서도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미국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뉴욕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102층인데 102층인 이유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의 숫자가 102명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102명을 기념하기 위하여서 102층을 지었다고 합니다.
미국은 30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신앙이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테러의 위협과 위기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분에 넘치는 신앙의 자유를 주시고 넘치는 축복을 주신 것을 온 세계가 다 아는 바입니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복을 받은 나라입니까?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주셔서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사보다는 불평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감사가 식어지니 하나님의 축복도 식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큰 일 납니다.

4.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제사 곧 예배는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성경을 보면 제사를 통해서 복을 받기도 했고 제사를 바르게 드리지 못해서 저주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사를 통해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울 왕은 잘못된 제사를 드림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자기 맘대로 제사를 집례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예배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에 결여된 것은 감사요, 감격입니다. 예배는 감격이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경우 예배에 있어서 예배의 순서는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없는 예배를 드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본문에서 ‘감사’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어떤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은 형식주의에 빠져있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책망하십니다. 이사야 1장 11절 이하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많은 제물을 가지고 나아와 하나님께 드렸지만 자기과시용 제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적인 제사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흉내내기 . . . 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고 계십니까? 혹시 예배흉내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 비슷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관계를 말합니다. 참 예배는 삶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몸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어떤 찬송을 불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새로운 찬송, 새로운 CCM을 불러야만 에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태도로 드리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곧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난 후에 그 죄가 드러났을 때 그대로 무릎 꿇고 통회했습니다. 시편 51편 16절 에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모습을 기뻐하셨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백성에게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회개하는 자의 예배는 언제나 감사가 따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나아오는 사람은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감사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찬송 405 “1.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이런 구원하심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예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감사가 들어가야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에 모든 순서가 다 들어 있어도 이 감사, 구원의 감격이 빠지면 불완전한 예배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 . . . .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 중에 나를 택하여 주셔서 영생을 얻게 하여 주심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감사를 날마다 일깨우시기 바랍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은 은혜의 그릇입니다. 그 그릇이 준비된 사람만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매 주일마다 이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은혜 받으려면 이 그릇을 준비하고 주의 전에 나와야 합니다.

만약에 그런 형식적인 제사에만 마음을 쏟고, 그런 제사 드림에 만족하고, 형식주의 에 빠진다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죄악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찢어 버리신다고 했습니다. 맹수가 먹이를 물어 갈기 갈기 찢듯이 찢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과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넘치는 복을 받았을 지라도 감사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무섭게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감사가 없는 제사는 겁데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예배는 축제가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축제의 예배를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의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2005-06-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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