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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징계와 지혜의 가치 (잠 0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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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와 지혜의 가치(잠 3:11-26)-박조준 목사

지난 시간에는 지혜의 교훈이 무엇인 것과 그 교훈을 지켜 사는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생각하였습니다. 지혜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을 탐구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비록 그 지혜를 추구하는 가운데 어떠한 고난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라고, 그 까닭은 지혜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1절에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하였습니다. 이 교훈은 지난 시간에 생각한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약속된 번영과 부유와 퍽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9-10절 말씀은 행복을 말했고, 오늘 10-11절에서는 재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든 저 경우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어서는 동일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행복할 때는 봉헌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재난을 당할 때는 복종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94편 12절에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에도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13절을 교독합시다. 오늘 본문 10-11절의 해석입니다.

사람이 징계를 받을 때 잘못을 범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가령 징계를 받을 때 그것을 경솔히 다룰 수가 있어서 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말씀한 것처럼 “세상 근심”에 빠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을 거절하고 자기의 힘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만 하기 쉽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저 그것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으로만 생각하고 아무런 자기 반성도 없이 지내기가 쉽습니다. 이것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는’ 다른 면입니다.

‘그의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고 교훈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할 뿐더러 그의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에는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에 막심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왜요? 12절을 보세요.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취할 징계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아버지의 사랑의 징계’로 알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가정에서는 중학교 학생을 한 달에 몇 만원씩 들여 개인 지도를 받습니다. 그런데 몇 명의 학생이 모여서 공부를 하는데 집에 들어오면 학생의 엄마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얘, 너 오늘 몇 대나 맞았니?” 안 맞았다고 하면 오히려 어머니는 섭섭해하시면서 이튿날은 돈을 얼마 더 가지고 가서 선생님께 드리면서 “우리 아이 좀 많이 때려 주세요”하고 부탁합니다. 그 다음날 아들이 공부하고 돌아오면 또 묻습니다. “얘야, 오늘 선생님에게 몇 대나 맞았니?” 아들 대답이 “열 대 맞았어요.” 하면 “됐다”고 합니다.

나는 세상에 돈 더 주면서 매맞는 것 처음 봤어요. 왜 그럴까요? 여기에 뜻이 있어요. 선생님이 공부를 시키는데 잘못이 있어도 때리지 아니하고 내버려두면 그것은 그 학생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증거요, 관심이 없다는 표시요, 될대로 되어라 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돈을 더 주면서도 선생님의 관심 안에 있는 학생이 되어 매를 맞으면서 바로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자라기를 원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학생들은 세상의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 돈을 내면서 매를 맞아 가면서 애쓰는데 우리는 조그만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 대들고 원망하고 시비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배반하는 경우가 없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은 “주여, 나를 개조하시고 완성시키소서. 당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믿습니다.” 하였습니다. 이 진리는 수천년 동안 환난을 당해 온 모든 성도들에게 위안을 주어 왔습니다.

욥기 5장 17절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은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견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였습니다. 내가 환난을 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도가 당하는 모든 고난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징계들의 일부분이며 또한 그것은 나를 깨끗케 하시는 방법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은 잠시동안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련 가운데서 어쩔 수 없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나 즐거워합시다. 믿음 때문에 시련받는 것은 불로 연단해도 결국 없어질 금보다 귀한 것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명예를 차지하게 됩니다”(베드로전서 1:607 참고).

에가드(Egard)라는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탄의 애무와 사랑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징계하시고 사탄은 우리를 죽게 하려고 애무합니다.”

트랩(Trapp)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려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는지 의심함직 하다”

사실 사랑이 없는 사람에겐 징계하지 아니합니다. 징계 받는 사람보다 징계하는 사람이 더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징계 받을 죄를 범했는데도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이 나를 아들로 대우해 주시는가 말입니다.

그러면 징계를 어떻게 받을까요?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하셨습니다. 징계에 두 가지 사람으로 반응합니다. 멀리 도망가는 사람, 가까이 나오는 사람, 이것은 시금석과 같습니다.

이제 13절 이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3-15절에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하였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무엇입니까?

이미 첫 시간에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이 지혜의 근본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자기 스스로 행복을 얻어 보려고 만족과 기쁨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인류역사 이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참 행복을 얻은 예는 하나도 없습니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지음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품에 돌아오기 전에는 참 행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외쳤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포도주는 기쁨, 젖은 만족을 의미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양식 아닌 것:아마 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상관없는 것. 이것을 위해서 우리 나라에서만 1년에 6천여억원을 달아주고 있습니다) 배부리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배부르게 못할 것: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담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담배가 우려 75년에 528억 4,200만본이며 422만 7,360km, 지구 한바퀴 돌고 남는 길이라고 액수로 환산하면 1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줍니까? 이사야는 말씀했습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지혜는 은보다도 정금보다도 낫고 진주보다도 귀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보화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집에 돌아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그래서 그 보화가 이 사람의 것이 되었습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먼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다 팔아 버려야 합니다. 전에 좋아하던 것 다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한 분을 소유하기 위해서 그가 소유하고 있던 것을 다 분토처럼 여겼습니다. 왜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고상하고, 우리에게 참된 복을 줄 수 있는 이 지혜를 얻기 위하여 과거에 좋아하던 것을 다 버렸습니까? 내 지식, 재물, 지위, 가문, 신앙적 교만을 포기했습니까?

16절에 지혜를 얻은 자가 받을 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그렇습니다. 지혜를 얻지 못한 자의 장수가 복이 될 수 없고 그가 소유한 많은 물질이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얻는 사람에게는 장수가 복이요, 부귀가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영생도 역시 지혜의 열매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이상 더 위대한 존영은 이 세상에 있니 아니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부와 영에를 금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그것들은 ‘좌편 손’에 가져야 합니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셨고,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의 길을 즐거운 길입니다.

진정한 경건은 기쁨을 내포합니다. 모든 감각적인 쾌락은 그 어느 것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하나님과의 교통에서와 그의 착한 일을 통해서 얻은 기쁨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를 얻은 사람에게는 장수와 재물과 영예만 주실 뿐 아니라 지혜는 이 세상에서도 영혼의 안정과 평화를 주십니다. 지혜의 첩경은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길이므로 그 마지막에만 평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참된 지혜를 얻음으로써 주리는 참 평안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그리고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고. 18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즉 낙원의 축복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또한 생명의 샘을 마신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가지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하였습니다. 새 예루살렘 한 가운데 흐르는 생명 강가에 생명 나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평강의 모습입니다. 하늘의 지혜를 얻은 사람은 달마다 열리는 생명 나무 과실을 먹으므로 새 생명을 얻고 힘을 얻을 뿐더러 그 심령이 상할 때 생명 나무 잎사귀로 소성함을 얻는 축복을 받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리고 19절에서 20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기까지는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의 가장 고상한 생애, 가장 깊은 평화, 가장 바른 생각, 가장 훌륭한 노력, 가장 순결한 기쁨은 모두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연합할 때 얻는 축복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기본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만물을 운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우주 만물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작은데서 큰데 이르기까지 제한된 우리 인간이 이성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경이와 세미함에 그저 감탄과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과학자가 현미경 앞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감탄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지혜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로서 우주 만물이 그를 통하여 지은 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다는 것은 이 지혜를 얻는 것을 의미하고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주께로부터 임하는 풍성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오늘 저녁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시므로 약속된 축복을 다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1절에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하였습니다. 또한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시편 1편에 말씀했습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하셨고, 여기 ‘내 말’ 즉 완전한 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완전한 지혜를 언제나 우리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잠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22절에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하였는데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참된 지혜, 완전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 중심에 모셔 그가 우리 안에 거하게 하면 우리의 영혼이 사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였으며”(23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주님이 그 길을 인도하시므로 형통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인생의 가는 길을 보면 길을 잘못 드는 사람, 걸려서 넘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그의 인격과 명성, 가정의 행복과 기쁨이 한 번 실족함으로 인해서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사라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가는 사람은 인생 행로에서 실족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할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리고 24절을 보세요.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잠이 달리로다” 주안에 거하는 사람, 완전한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그 심령의 고요가 없습니다. 마음의 평화가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 공포가 없습니다. 담대합니다. 안심해 보입니다. 아무리 고통과 역경의 심연 속에 있다고 해도 그 환경이 그 마음 속의 평안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오순절에 성령 충만한 사도 베드로가 능력있게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강한 반발을 일으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고 억울한 일입니까? 그러나 베드로의 마음의 평화는 빼앗아 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감방 속에서 평안히 잠을 잤습니다. 천사가 와서 잠을 깨울 때까지 잠을 잤습니다.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잠이 달리로다”

시편 112편에 보면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 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3장 5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25절에서 26절에도 “너는 창졸간에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므로 약속하신 장수와 부귀, 기쁨과 영생, 생명 나무와 평화, 그리고 형통의 축복을 다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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