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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때의 권면 (잠 10: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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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봉독한 잠언 10장 11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진리를 같이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 하나는 말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 11절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13절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하였습니다.

14절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려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18절 “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거짓의 입술을 가진 자요 참소한 자는 미련한 자니라”
19절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20절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31-32절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의인의 입술을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11장 30절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15장 1-2절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15장 4절 “온량한 혀는 곧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15장 7절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
15장 23절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15장 28절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16장 20절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길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16장 23-24절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술을 슬기롭게 하고 도 그 입술에 지식을 토하느니라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17장 7절 “분외의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치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18장 4절 “명철한 자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반면에 7절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18장 20-21절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오는 것으로 하며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20장 15절 “세상에 금이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21장 24절 “입의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입에 파숫군을! 입에 재갈을!)
24장 26절 “적당한 말로 대답함을 입맞춤과 같으니라”
25장 11절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 가장 많이 쓰는 것이 말입니다. 사람은 말하는 동물입니다. 이 말을 통해서 우리의 의사를 소통합니다. 세상에 말 못하는 것처럼 답답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말 못하는 사람들만이 모이는 농아 교회가 있습니다. 물론 손짓으로 말을 합니다. 소위 수화라고 합니다. 요사이는 그것도 많이 발전해서 입모양을 가지고 말을 하면 알아듣도록 배워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도가 매우 얕아서 국민학교 수준 이상의 지식을 배우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것도 보이는 데서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 보이지 않는 데서는 의사를 전달할 길이 없습니다. 만일 밤에 방에 불이 꺼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말을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만 다행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언어에 있어서 우리가 몇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을 할 수밖에 없고 하지만 될 수만 있으면 말을 많이 하지 않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경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렵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사실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치고 실수 없는 사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1장 19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3장에 보면 선생된 사람들이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므로 선생되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모두 종종 많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으면 이 사람은 온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말을 부리기 위해서는 그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하면 그것으로 그 말을 끌고 다닐 수 있습니다. 또 배를 보세요. 그렇게 큰 것이 거센 바람이 밀려갈 때도 매우 작은 키에 의해서 조종사가 마음먹은 곳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보세요, 극히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살라버립니다.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가 우리의 지체 중에 하나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는 인생의 수레바퀴를 불에 태워 버리고 혀도 게헨나(지옥)의 불에 타 버립니다. 짐승과 새와 기는 것들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떠한 종류든 간에 모두 인류에게 지배를 받고 있으며 또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혀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혀는 억제하지 못할 만큼 악하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에 가장 편리하고 필요한 것일수록 잘 쓰면 유익하고 잘 못쓰면 그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가령 전기가 얼마나 우리 생활에 편리합니까? 아마 현대 문명 사회에서 전기를 잘 못쓰면 전기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자동차나 기차, 비행기가 교통 수단으로 얼마나 빨라지게 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러이 것이 잘못될 때 얼마나 두렵습니까? 한 번 잘못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갑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 말이 인간 생활에 얼마나 필요합니까? 그러나 이것을 잘못하므로 인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간을 붙이고, 싸우게 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우리의 대화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가령 거짓되게 나타납니다. 진실하지 못한 대화는 나을 해롭게 합니다. 도구나 남을 헐뜯는 대화는 가장 흥미 있는 일이면서도 사실은 남을 해롭게 하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을 헐뜯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해도 더러운 대화는 자신을 더럽히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인간성이 타락한 이래 이와 같은 좋지 않은 인간의 본성이 있는데 이것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한 번 땅에 쏟은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처럼 한 번 나온 말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그 사람의 인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41편 3절에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하였습니다.
잠언 17장 28절에는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고 그 입술을 닫치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느니라”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였습니다.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금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내가 금년 일년 동안 많은 말을 하였는데 안해도 될 말,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한말, 남을 이간 붙이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까? 잘못된 것이 있으면 회개합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미움을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하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7장 1절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17장 9절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17장 14절 “다투는 시각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20장 3절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성경은 거듭거듭 강조하는 말씀이 다투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왜요? 다투는 것은 마귀의 하는 일이요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집안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데 저희를 하나님의 자녀라 일컫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므로 세상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것을 알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무엇으로 증거하겠습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부흥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희는 서로가 사랑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여기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저희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할 때 매력 있는 교회가 될 것이고 서로 미워할 때 그 교회는 이미 교회로서의 매력을 잃게 되고 말 것입니다. 교회당 건물이 문제가 아닙니다. 굉장한 시설이 그렇게 중요한 것 아닙니다. 교회는 서로가 사랑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의 특징은 사랑이 식어지고 신뢰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들리는 말이 사랑이 메말랐다고 하고 서로가 미워하며 불신 풍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을 인용해서 마지막 때가 가까웠는데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노사도 요한도 그 믿음의 자녀들을 향하여 간곡하게 주신 말씀이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족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같은 직장 사람끼리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같은 교인끼리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동포끼리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민족도 초월하고 국경도 초월하고 계급도 초월하고 누구든지 우리와 접촉되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 힘든 것도 추운 것도 모르고 걸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냉정한 사회요 어려움이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사랑하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이 됩니다. 사랑은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사랑하면 서로가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즐겁기만 합니다. 사랑 받는 사람도 행복합니다. 반면 미운 사람이 있으면 내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라는 말은 어떤 사람은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누구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만 사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누구나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을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날이 크리스마스입니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세상입니까? 가치가 있는 세상입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는 세상입니다. 죄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무가치한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이와 같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에겐 허물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다 허물이 있습니다. 약점이 있습니다. 허물이 전연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이지 사람은 아닙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면 그 허물이 다 가리워집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개를 사랑하나? 그렇지 않으면 미워하나? 하는 것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가령 내가 볼 때 그 사람의 허물이 보이지 않으면 그만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허물이 많이 보이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세익스피어가 “사랑은 소경되게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가리웁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쁜 점은 보이지 아니하고 좋은 점만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망나니라고 그의 부모가 그 아들을 볼 때에는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 아니합니다. 왜요? 사랑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서로가 사랑의 눈으로 보십시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이 사랑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 우리 생활의 특색이 아무래도 사랑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이 크리스마스의 계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계절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크신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이것이 나와 내가 사는 길입니다.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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