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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심습니까? (잠 1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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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심습니까?(잠 11:7-31)-박조준 목사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18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오늘 저녁 이 말씀을 중심해서 생각하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시편 126편 5절에서 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였습니다.

호세아 10장 1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7-9절에 이와 동일한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야고보 장로도 비슷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하나의 진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지 신령한 의미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입니다. 곡식을 심는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의 매일의 생활은 무엇을 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는 생각, 우리의 하는 말, 우리의 행동,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모두 다 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 매시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은 그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남에게 속아서 손해보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남에게 속아서 손해를 보는 것보다 스스로 속아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신문에서 보셨겠지만 어떤 청년 하나가 인쇄소에서 자기앞수표를 800여장 인쇄해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수표를 만들어 7천2백78만9천1백원 상당의 가짜 수표를 가지고 문공부 장관의 명의로 발행된 가짜 재미 동포 모국 방문 단원증도 가지고 다니면서 나이트클럽이나 쇼핑센터 등에서 그 가짜를 가지고 속여 써먹다가 그만 덜컥하고 말았습니다. 남을 속이려다가 결국 자기가 속았습니다.

물건을 사는 것도 속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의 경우는 스스로 속습니다. 가령 만원짜리 물건인데 만원 주고 사면 괜찮은데 5천원 한다니까 싼값에 매력을 느껴서 삽니다. 이것이 스스로 속는 일입니다. 어떻게 만원 상당의 물건이 5천원 할 수 있습니까? 도둑 물건 아니면 가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지나치게 비싼 것만 찾는 사람도 스스로 속는 일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허영심 때문에 속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 있은 일이지만 고급 보석만을 찾아다니며 사들이는 별난 여자들이 있었는데 물론 어떻게 모은 돈일는지 모르지만 돈 쓸데없으니까 보석 사들이는 것을 취미로 삼았습니다. 그저 “좋은 것이다, 귀한 것이다, 비싼 것이다”고 하면 무조건 사들였습니다. 이것이 법에 벌려 나중에 조사를 다 해 봤더니 물론 진짜도 있었지만 대개는 가짜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스스로 속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반면에 마귀는 모두가 거짓말입니다. 속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진실하면 마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 거짓된 생각을 품고 있으면 마귀는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이 남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속일 줄로 아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입니다.

지난 주일 아침 산상설교의 결론을 읽었습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고 하였습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를 믿는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생활이 따르지 아니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일이요 결국은 하나님을 속이려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누구에게나 심는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공의를 나타내지만 이 인과의 원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가 없습니다. 아무런 씨도 뿌리지 않은데서 무엇을 좀 거둬 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이거 어딘가 좀 잘못된 사람일 것입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지 않습니까? 배우지 않고 알 수 있습니까? 힘써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 가정의 학생들 가운데 대학 입시 시험을 친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이 다 소원하고 지망한 학교에 합격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꼭 기억할 것은 기도만 해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야 합니다. 실력을 배양했어야 합니다. 실력은 기르지 아니하고, 공부하는데는 게을리하고 좋은 학교에만 가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입니다. 심어야 거둡니다.

그리고 심는대로 거둡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는 대개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농촌 생활을 해보신 분이 많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 평범한 진리를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가령 벼 심으면 벼를 거둡니다. 배추씨를 심으면 배추를 거둡니다. 무우씨를 심고 상추를 먹으려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하십니다. 따라서 그 거두는 시기도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것은 일찍 거두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늦게 거두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꼭 기억할 것은 언제나 심었으면 거둘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서 볼 때 우리 사람들은 다 무엇을 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매일매일 심는 것은 반드시 거둘 때가 옵니다. 가령 여기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저 매일매일 말하는 것이 나쁜 말을 씁니다. 생각하는 것은 못된 생각만 합니다. 생활하는 것을 보아도 좋지 못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성품은 자연히 좋지 못하게 될 것은 당연합니다. 개인의 성품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사업도 그렇고, 우리 가정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습니다.

오늘에 심은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언젠가는 거둘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것 심으면 좋은 것 거두고, 나쁜 것 심으면 나쁜 것 거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잠언 29장 2절에 보면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의로운 씨를 뿌려 놓으면 평안과 즐거움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씨를 심어 놓으면 불안과 싸움, 원망과 탄식을 거둘 수 밖에 없습니다.

일에 따라서 어떤 것은 오늘 심고 내일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현재에 심은 것을 장래에 거둡니다. 봄에 심은 것을 가을에 거둡니다. 모든 곡식이 대개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사에서 보면 부모가 심은 그것을 그 당대에 거두는 경우도 있고 자식대에 가서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심은 것을 현세에서는 거두지 못하고 내세에 가서 거두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으면 언제 거두든지 반드시 거두고야 맙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보면 사람은 대개 두 가지 종류의 씨를 심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잠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이 보시는 그대로 두 가지 종류입니다. 물론 그 표현은 지루한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하지만 결국은 두 가지입니다.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 등....

사도 바울은 육체를 따라 심는 사람과 성령을 따라 심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육체를 위하여 정욕을 심으면 음란과 부패를 거둘 수 밖에 없습니다. 악을 심으면 무자비와 포악을 거둘 수 밖에 없습니다. 미움을 심으면 싸움을 거두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심는대로 거둡니다.

여러분, 구약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라는 인물이 나오지요. 그 사람을 생각하면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아주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속여서 형이 받을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형을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가로챘습니다. 외숙이요 장인을 속여서 자기 양의 수를 늘였습니다. 얼마나 간사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야곱이 자녀를 낳아 키울 때 그 자식들에게 또 속았습니다. 요셉의 일로 얼마나 가슴아파했습니까?

그러니까 이 원리는 어김이 없습니다. 매일 태양이 어김없이 뜨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심는대로 거두는 것은 너무 분명한 사실입니다. 혹 자녀된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면 효도를 심은 사람은 그가 자녀를 키워서 효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못하고 불효의 씨를 심고 자녀에게서 효도를 거두겠다고 하는 것은 천리에 어그러지는 일입니다.

행한대로, 심은대로 거둡니다. 구약 열왕기에 보면 아합왕의 왕후 이세벨이 얼마나 악독한 여인이었습니까? 바알신을 신봉하는 이방 여인으로서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신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핍박하고 학살하였습니다. 더구나 나봇이라는 무고한 사람의 포도원 하나를 빼앗기 위해서 모략 중상하여 누명을 씌워 무참히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이렇게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린 이세벨이 어떻게 되었어요? 자기도 종래는 무참하게 피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이조 500년 역사를 여러분이 기억하시지요? 한 마디로 말해서 당파 싸움의 역사 아니었습니까? 서로 모함하여 죽이고 권세를 차지하고, 또 모함 당해 죽고 권세를 빼앗기고... 이런 악순환의 반복이었습니다. 심으면 그대로 거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 천대하면 내가 또한 천대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 아프게 하면 반드시 내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서의 하만의 모략과 그 결과를 우리가 잘 기억하거니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요 교훈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기억해서 나쁜 씨를 심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씨 심으면, 악한 종자 심으면 반드시 악한 열매 거둡니다.

반면에 성령으로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의를 뿌리면 상이 확실합니다. 선과 덕과 의를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친절을 거둡니다. 자비를 심으면 화평을 거둡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선으로 갚음을 받습니다. 심는대로 거둡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는 말이 있지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사랑과 친절과 웃음으로 대해 주세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기세요.

그리고 양에 따라 심은대로 거둔다고 했는데 영적인 세계에도 꼭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우리가 선한 일을 조금 하여도 하나님은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십니다. 열매는 더 많이 얻게 됩니다.

잠언 19장 17절에 보아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꾸어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꾸인 것만큼 갚아 주실까요? 저는 절대로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그보다 몇 10배 갚아 주실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우리 인간도 자녀에게 꾸었던 것을 그대로 줍니까? 더 보태서 줍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자녀에게 꾸신 것을 그대로 갚아 주시겠습니까? 풍성한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잠언 11장 24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 아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구제를 너무 많이 해서 패가망신했다’ 하는 말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고래로 욕심부리다가 망한 사람은 많아도 남을 도와주고 구제하다가 망한 법은 없습니다. 선을 심으면 선을 많이 거두는 것처럼, 악을 심으면 악을 많이 거둡니다. 호세아 8장 7절에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를 여러분 기억하시죠?

끝으로 우리가 심은 것을 언제 거둡니까? 곡식은 대개 봄에 심어 가을에 거둡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우리 주님 오실 때를 말하는데 그 때를 누구도 분명히 모르지마는 거둘 때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요 분명합니다. 물론 현세에서 거두는 것이 있습니다. 또는 후손대에 가서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세에 가서는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거둘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매일매일 무엇을 심습니까? 육신의 씨를 뿌립니까? 성령의 씨를 뿌립니까? 악의 씨를 뿌립니까? 의의 씨를 뿌립니까? 의의 씨, 선의 씨, 성령의 씨를 뿌리는데 열매가 없습니까?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금년 일년 아니 여러분의 평생 의의 씨를 뿌리세요. 얼른 열매가 안맺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계속 의의 씨를 뿌리세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계속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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