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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소망은? (잠 1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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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봉독한 말씀 가운데 12절에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하였습니다. 소망은 이루어지고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생각한 잠언 10장 28절에 보면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하였습니다. 의인이든 악인이든 그 소망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잠언 11장 7절에 보면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은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잠언 23장 17절에서 18절에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사는 사람은 다 소망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장년은 장년으로써, 노년은 노년대로의 소망이 있습니다. 아마 소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 소망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소망 없는 사람은 자연히 낙심하고 절망하고 자포자기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소망을 두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망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세상의 소망이요, 다른 하나는 하늘의 소망입니다. 그러면서 잠언에서 말씀하는대로 하면 의인 즉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 소망을 하늘에 두고, 악인 즉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 소망을 이 세상, 이 땅에 둔다고 합니다.

먼저 이 세상의 소망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십시다. 이 세상의 소망의 몇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가령 세상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대로 될 수도 있고 그대로 안될 수도 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의 바라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마 대학 입학하는 사람보다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니에요? 더구나 대학에 진학한다고 해서 다 학자가 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사관학교에 가는 사람의 소원은 장군이 되는 것입니다. 소원한다고 다 장군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익을 보고 부자가 되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장사만 하면 다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관공서에서 일하는 분들의 소원은 지위가 올라가는 것인데 지위를 소원한다고 다 그 자리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사람이 가지는 세상적인 희망에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실망이 되고, 여기에 인간의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 생활의 한숨과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런 세상의 소망은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리가 본래 기대하던 것처럼 그런 만족은 없습니다. 가령 여기 어떤 청년 실업가가 사업을 해서 ‘내가 꼭 이 사업에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고 소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연구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부지런히 자지 아니하고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과단성 있게 일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러 성공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업에 성공하신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저 사업만 성공하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나 다 되고 그저 만족할 줄 생각했었는데 정작 그렇게 되고 보니 기대하던 것처럼 그런 만족은 없다”합니다.

며칠전 어떤 사업을 하시는 분을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하는 중에 이런 고백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1.4후퇴에 남한 땅에 내려와서 빈손만 가지고 밑바닥에서부터 일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25년간 저는 부지런히 그리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오늘까지 저는 아침 7시 이후에 일을 시작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남보다 먼저 일어나 먼저 일을 시작하고, 남보다 늦게 일을 끝마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업이 많이 커져서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난 가을 6억원 정도 되는 빌딩을 하나 지었습니다. 그것도 제 손으로 직접 물건을 사들이고 감독하고 하느라고 몇 달 동안 식사도 한끼 제대로 못하고 살았습니다. 물론 남의 돈을 1억5천만원 정도 꾸어서 했지만 이제 5월경이면 들어오는 수입으로 깨끗이 다 정리되게 될 겁니다. 그런데 몸이 너무 이상해서 병원엘 가 보았더니 간에 이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세상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희가 처음 사업을 시작해서 집을 하나 짓고 할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사업 장소도 많아지고 자금고도 높아지니 머리 아픈 일이 더 많고, 걱정이 더 많고 여기에 환멸과 비애가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은 바라볼 때는 아주 굉장한 것 같지마는 결국 얻어 놓고 보면 거기에 참 만족이 없습니다.

혹시 여기 결혼할 나이에 있는 젊은이 중에 어떤 이상에 꼭 맞는 상대가 있습니까? ‘아, 내가 이 사람하고 꼭 결혼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되는 분이 계십니까? ‘그저 그이하고 결혼하면 나는 참 행복하겠다.’ 간절히 원하고 사모해서 밤이고 낮이고 그이만을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뭐 그렇다고 다 결혼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혹 결혼이 성공한다고 하여도 보통 경험으로 보면 아무리 이상에 꼭 맞는 사람하고 결사적으로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결혼해서 몇 달 지나면 그것도 별 것 아니에요. 그저 세상엔 천사는 없어요. 그러기에 어떤 청년들은 처음 결혼할 때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식 투쟁을 벌인다, 죽는다, 산다 소문내며 결혼했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는데, 아, 또 얼마 못 가서 이상에 맞지 않는다고 이혼 수속하느라고 가정법원 문에 불이 날 정도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이가 이렇게 말했어요. 바닷물 속에 들여다보이는대로 해초가 밖에서 들여다 볼 때는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몰라요. 그러나 정작 바닷물 속에 들어가서 그 아름답게 보이는 해초를 꺼내 보면 실상은 별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성취한다고 하는 소망은 흔히 마지막에 환멸의 비애를 거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지위도 그렇습니다. 명예도 그렇습니다.

전에 솔로몬이 한 말은 너무도 진리입니다. 전도서 1장 2절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은 세상의 명예와 권력, 지혜와 재물, 부귀와 영광을 한 몸에 지니고 즐겨 본 사람입니다. 만일 보통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자기가 그런 것을 누려 보지 못했으니까 헛소리한다’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솔로몬의 영화는 예수님 말씀처럼 이 세상에서는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 고백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합니다.

그리고 혹시 이 세상의 소망이 이루어져 어느 정도 만족과 기쁨을 얻는다고 하여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의 소망의 성취란 순간적입니다. 잠깐입니다. 세상의 소망이란 문자 그대로 풀의 꽃과 같습니다 안개처럼 잠깐 보이다가 없어집니다. 결국 세상의 소망은 절망의 식은 재로 화하고 말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소망은 썩은 소망, 없어지는 소망, 죽은 소망입니다.

요사이 서양 청년들 중 많은 사람이 물질주의에 휩쓸려서 현실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편하게, 생을 즐기며 살아가나 하는 것만 생각합니다. 장래 일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려 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찰나주의입니다. 현실주의입니다. 이상이란 것을 별로 생각지 아니합니다.

이것은 서양 청년들 뿐 아니고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결혼을 조건으로 서로 좋아서 만나고 사귀다가 결혼하는데 다이아몬드 반지 몇 부짜리 해주겠나 알아봐서 자기 생각대로 안되면 그 시간으로 ‘안녕’하는 청년들, 결혼식을 하려다가도 얼마짜리 집을 사 주겠나 알아보고 계산에 안 맞으면 그것으로 ‘굿 바이’ 하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이니 저는 아무리 이해하고 싶어도 제 머리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세상의 것은 잠깐 입니다. 풀의 꽃과 같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집니다. 세상의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에 소망을 들었다가 그것 없어지면 절망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아서 기다릴지니라 우리들의 돌아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세상의 희망은 보이는 희망입니다. 이것은 잠깐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소망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 이하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이니라.” 우리에게는 하늘에 간직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늘에 간직한 소망은 없어지지 아니하는 소망입니다. 하늘의 소망은 보이지 아니하는 소망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이 하늘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시편 39편 7절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하였고, 시편 62편 5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하였습니다.

시편 71편 5절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니이다.”
시편 146편 5절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71편 14절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시편 119편 49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것은 공상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생생한 삶의 체험에 의지해서 우리에게 솔직히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27절에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부활과 생명이 되셔서 그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사는 까닭입니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셔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만세 반석이십니다. 세상은 흔들리나 그리스도는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소망을 둔 사람은 세상이 변할 때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아니합니다.

로마서 5장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그것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케 하지 아니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1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겉 사람은 낡아지고 있으나 속 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시적인 가벼운 환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큰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오기 때문입니다(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순간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어떤 것입니까? 보이는 소망입니까? 보이지 않는 소망입니까? 세상의 소망입니까? 하늘의 소망입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을 가리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앞에 놓여 있는 희망을 붙잡으려고 피하여 나온 우리들은 이것으로 용기와 격려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에게 안전하고 확실한 영혼의 닻입니다.”

큰 파도가 일어날 때 이 닻이 깊은 바다 밑에 박혀 있어야 파도에 밀리지 아니하고 파선을 면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을 우리 영혼의 닻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의 배후에는 소망의 닻이 있기 때문에 힘써 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소망의 닻을 든든히 던진 사람은 참고 견디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견디기 어려운 시험을 당하신 분 계십니까?
사업의 실패로 다시 일어날 힘이 없으십니까?
중한 병으로 절망 가운데 빠진 분 계십니까?
이 사회에 되어지는 일들을 볼 때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해하는 젊은이가 계십니까?

이런 때일수록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꿈을 계속 지녀야 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리 마음만은 싸이지 맙시다. 답답한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맙시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맙시다. 거꾸러뜨림을 당해서 넘어져도 (Knock down) 아주 쓰러지지는(Knock out) 맙시다.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진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넘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골로새서 3장 1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은 생각지 말라.” 예수님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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