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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집을 세우는 여인 (잠 1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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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을 세우는 여인(잠 14:1-11)-박조준 목사
 
이미 봉독한 말씀 가운데 14장 1절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오늘 저녁 생각하고 기도하십시다.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세상에 여자가 많지마는 그저 크게 나누면 두 가지인데 가정을 세우는 여인과 가정을 허는 여인이 있습니다. 건설적인 여인과 파괴적인 여인이 있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가정을 세우는 여인은 지혜로운 여인이요, 가정을 허는 여인은 미련한 여인입니다.

성경에 비취어서 나는 어느 편에 속하는가? 지혜있는 편인가 그렇지 않으면 미련한 편인가 스스로 반성해 보십시다. 그리고 미련한 사람되지 말고 지혜있는 사람되십시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잠언에 어진 아내와 악한 아내에 대해서 여러 곳에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 다같이 한 번 찾아서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잠언 11장 22절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금고리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돼지 코에 걸려 있으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여인이 지혜롭다는 것은 그 몸가짐을 삼가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못한 여인은 그 외모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지마는 자랑이 아니라 수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12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같이 읽어보십시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부인 잘 얻으면 평생에 행복이요 영광이지마는 잘못 얻으면 평생을 두고 뼈가 썩습니다. 헬라의 유명한 철인이요 상자로 손꼽는 소크라테스(Socrates)의 부인은 3대 악처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철학을 하는 사람은 돈버는 직업이 아닙니다. 늘 제자를 몇 사람 모아 놓고는 인생의 깊은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거기서 무슨 돈이 나옵니까? 그러니 그 부인의 사정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지요. 살림은 말할 나위 없이 쪼들려 다음 끼 끓이는 것이 문제인데, 아 남편되는 사람은 그런데는 관심도 없고 그저 밤이고 낮이고 사색이 잠겨 있고 사람을 만나면 돈도 안 나오는 이해도 할 수 없는 철학 이야기만 하니 부인은 부인대로 속이 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하루는 여전히 제자들 몇 사람 모아 놓고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에게 부인이 저녁 끓일 것이 준비되지 않아 걱정을 했더니 소크라테스 ‘아, 그런가’고 하더니 아무런 대책도 안 세우고 그대로 계속 강의에 열중하더랍니다. 그러니 이 여인이 밖에서 별별 불평을 다하면서 세상 말로 하면 아마 팔자 타령을 한 모양입니다. “내 팔자 얼마나 기구하면 저런 걸 남편이라고 맞아 가지고 이런 고생을 하노? 밤낮 철학만 하면 밥이 나오나?” 아무리 밖에서 야단을 해도 소크라테스는 거기에 신경을 쓸 여지가 없이 계속 강의에 열중합니다.

그러니까 이 부인이 몇 가지 안되는 가구를 부수면서 돌아갑니다. 양푼 깨지는 소리, 의자 다리 부러지는 소리, 칼 토막 부엌바닥에 던지는 소리, 손에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야단 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이 소크라테스는 강의를 계속 합니다. 그러니까 한참 떠들썩하더니 그 다음엔 이 부인이 물통에 물을 하나 가득 담아 가지고 남편이 제자들에게 강의하는 방문을 와락 열어 젖히더니 물통의 물을 남편과 학생이 있는데 ‘쏴악’ 쏟아 부었습니다. 자, 그러니 갑자기 물벼락을 맞았습니다.

이때 소크라테스가 물에 젖은 옷을 툭툭 털면서 하는 말이 “뇌성벽력이 대단하더니 소나기가 쏟아지는 군” 하더랍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그의 제자들이 너무 어이없는 일이고 저희들 마음속에 회의도 느끼고 해서 어느 제자 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우리도 앞으로 결혼을 해야겠습니까? 선생님의 경우를 보니 결혼하는데 대한 회의를 느낍니다.” 그 때 소크라테스가 눈을 크게 뜨며 하는 말이 “암, 결혼해야지. 결혼은 반드시 해야 돼. 어진 아내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고 나처럼 저런 아내를 만나면 적어도 철학자가 될걸세” 하였다고 합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창조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부인을 잘 만나야 합니다. 잘못 만나면 소크라테스의 후예가 됩니다. 뼈가 썩습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에 한마디의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여기 기록을 보니까 현대 청년들의 결혼관을 말하면서 상대방의 기준이 여자가 남자를 택할 때는 경제 본위이고 남자가 여자를 택할 땐 외모를 우선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 통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만은 안그랬으면 합니다.

일반적으로 외부적인데 우선을 둡니다. 우선 외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으려는 남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서양 속담에 ‘Beauty is skin deep'이란 말이 있어요. 아름답다는 것이 결국 피부 두께만 하단 말이에요. 가죽 벗겨 놓으면 다 그렇고 그런 거예요. 물론 이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믿는 청년들은 그저 못생긴 여자만 돌아가며 골라 아내로 맞으란 말은 아니에요. 전에 에스더 같은 여인은 우리가 직접 그의 외모를 보진 못했지만 기록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수많은 입후보자 가운데 선택한 것으로 보아 외모가 아름다웠던 것이 짐작됩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왕 앞에 나아가 선을 뵙기 전에 꼭 만 1년 동안을 준비해야 하는데 여섯달 동안은 몰약과 기름을 써서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다른 여섯 달은 향품을 썼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향기롭게 가꾸었습니다.

요사이 어떤 부인들은 밤에는 나이트 크림을 바르고 아침에는 콜드크림으로 닦아 내고, 38가지 화장품을 바르는데 세시간 반이 걸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옛날에는 요사이와 비교할 수 없었던 모양 같아요. 그런데 에스더는 다른 여자들처럼 굉장한 화장은 하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에게 굄을 얻었고 결국 아하수에로 왕의 은총을 받아 왕후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의 정숙함, 그의 신앙심, 그의 애국심, 그의 지혜, 그의 담대함은 어느 여자와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사람이 문제입니다. 외모는 얼마 가지 아니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겉사람은 후패합니다. 여러분의 부인들이 아무리 기를 쓰고 가꾸어도 별 도리가 없습니다. 물론 가꾸면 안가꾸는 것보다 다소 낫겠지요. 그러나 별 차이 없어요. 결국 여자가 25세가 넘으면 자신도 모르게 잔주름에 생기기 시작하고, 30이 넘으면 남이 알게끔 주름이 잡히게 되고, 40이 넘으면 현저하게 노쇠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권면한 말씀이 뭐예요? 베드로전서 3장 1절에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워 외모로 은연중에 그것이 풍길 때 그것이 값진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젊은 여성들은 지나친 허영과 사치는 사회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장래에도 큰 불행을 초래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얼마 전에 어떤 글을 읽는데 이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어느 가정 대학 3학년에 다니고 있는 딸이 느닷없이 시집을 가겠다고 부모를 졸라대기 시작했습니다. 신랑감은 꽤 이름있는 사장의 맏아들, 찬조금을 내고 들어간 학교에서 학점이 모자라 두 번씩이나 유급을 하고 하는 수 없이 외국 유학을 가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에 돈이 많고 할 일은 특별히 없어서 휘청거리는 젊은이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석달 전에 학교 종강파티에서 만나 서로 같은 7번을 뽑아 파트너가 된 것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두 세 번 만나 결혼이란 결론을 내리는데 둘이 다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가 볼 때 이것은 너무나 당치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월급 12만원으로 다섯 식구가 근근히 살아온 형편인데 그런 부잣집으로 딸을 시집보내 평생 어깨를 좁히고 살게 하기는 부모로서는 싫었습니다. 딸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런 학교에선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교수 사이에 능력 있는 학생으로 정평이 있는 딸을 그런 청년한테 시집 보내기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딸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얘야, 너 결혼이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하는 소리냐? 교제한 지 겨우 20일밖에 안됐다며?” 아직도 딸의 모든 것이 어려만 보이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랬더니 딸의 대답이 “엄마, 우리 친구 옥란이는 선보고 약혼해서 결혼까지 하는데 딱 27일 걸렸어요. 약혼 때 받은 240만원짜리 파텍스 시계를 탁 차고 나와서 우리보고 뭐라고 그런지 아세요? 학교 중퇴한 것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데요. 그 애도 일류 학교만 나왔어요. 뭐 머리가 나빠서 그러나요?” 이쯤 되니 어머니가 코너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전략을 바꿔서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얘야, 그 집안이 유명한 바람쟁이야, 너 그거 알고 있니?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할 것 없이 모조리 소문 뿌리고 다닌 지저분한 사람들이야, 그런 집에 어떻게 가니?” “어머니, 남자치고 바람 안 피는 사람 어디 있어요? 소박을 맞아도 아귀 같은 타발을 하고 셋방 구석에서 찔찔 짜는 것보다 미장원에 가서 손톱, 발톱 치장하고 캐디락 자가용 속에 앉아서 우는 편이 훨씬 현대적이에요.”

여러분! 우리 학생들 가운데 이런 분 없어요? 여성들의 결혼관, 가치관이 어디엔가 잘못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의 사는 것이 꼭 가산이 넉넉한 데 있는 것은 아니에요. 물질이 우리에게 꼭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 아니에요. 요사이 흔히 부인들끼리 모이면 신랑의 수입으로 그 사람의 점수를 매긴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어요.

현대의 위기는 모든 가치 판단의 전도에 있어요.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가치있는 가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외모의 아름다움이나 보이는 물질 면을 무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 보이는 것에 치중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변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면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한 남자가 바로 살려면 부인을 잘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 있는 여인은 그 집을 세웁니다. 헐지 아니합니다. 가령 우리 가정을 말할 때 남편은 책임자요, 아내는 내조자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이 교훈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6절에 사도 베드로가 아내된 사람에게 권면하면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복종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흔히 남편의 대명사가 주인이란 말로 통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서로가 주인입니다. 아내의 주인은 남편이요, 남편의 주인은 아내입니다. 전에 의젓한 분들이 아내를 향해 말할 때 ‘임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임자는 주인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가정의 질서상 대표가 필요한데 그 대표는 남편입니다. 혹 어떤 부인께서는 속으로 섭섭하게 생각하실는지 몰라요. 왜 여자는 남편에게 순복하고 살아야만 하나? 글쎄 그것이 창조의 원리인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야 여자가 행복한 걸요.

여기 어떤 부인이 가정에서 남편이 있긴한데 모든 책임을 부인이 지고, 결정도 부인이 하고, 부인이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부인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가서 한 번 솔직한 말을 들어보세요! 과연 행복하시냐구요. 아마 그 부인은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행복하냐고요? 말씀 마세요. 나도 남들처럼 남편하는대로 따라 살면 한이 없겠어요.” 그럴 겁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바로 세워 나가려면 가정의 주인 되는 남편을 헐뜯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이 “다투는 여인과 사느니보다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19장 13절에서 14절에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다투는 아내는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이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집이 어떻게 되지요? 결국은 무너지지요. 물이 새는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떻지요? 평안히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앉았다가 저기로 피했다가 해야 합니다.

부인이 너무 남편을 쥐어뜯으면 남편이 자기 구실 바로 하기 어렵습니다. 가만히 사회에 나와 일하는 것을 보면 부인한테 볶이는 사람이 나타나요. 수입이 적다고 너무 바가지 긁지 마세요. 그러다 부정하면 그 책임 누가 질 거예요?

남편을 잘 위해 드리세요. 낙심하려고 할 때 격려해 드리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남편들이 새 용기를 가지고 무슨 일이든지 성공적으로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병든 남편 간호하는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 여러분의 정성이면 됩니다.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은 참 남편을 잘 위한다고 해요. 보통 우리 한국 가정에서 부인들이 애를 낳기 전에는 그래도 잘해 보노라고 하다가도 애를 두서넛 낳게 되면 아예 태만해지기 쉬운데 그러지 마세요. 좀 힘이 들어도 (사실이야 정말 사랑하면 힘들 것도 없지요) 남편이 나갈 때 들어올 때 잘 내보내시고 잘 맞아들이세요.

옷을 입는데도 언제나 깨끗이 단정히 입히도록 옆에서 돌봐 드리세요. 남편이 너절하면 결국 말듣는 것은 그 부인들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한 그 권사님은 얼마나 남편에게 잘하시는지 가는 곳마다 그 동리 부인들이 자연히 따라가게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 빛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려오는 말에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남자다. 그리고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요람을 흔드는 여자의 손이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 가정의 부인의 역할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 믿는 가정의 부인은 가정을 세워 가는 지혜 있는 여성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부인들에 대한 말씀만 하고 남편들에 대한 말씀을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권면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어느 남자가 인류 사회에 크게 공헌했으면 그것 혼자 한 것입니까? 그 배후에 보이지 아니하는 훌륭한 부인이 있은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상급은 꼭 같이 받을 것입니다. 그저 한마디로 말하면 아내를 귀히 여기는 남편이 되면 됩니다. 우리 영락 교회 여성도 여러분은 가정을 세우는 어진 아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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