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수고하는 사람의 이익 (잠 14:23-35)

첨부 1



수고하는 사람의 이익(잠 14:23-35)-박조준 목사
 
이미 봉독한 말씀 가운데서 23절을 중심으로 해서 ‘수고하는 사람의 이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신약 성경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서 1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못하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 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10-12)

아마 데살로니가 교회에 일은 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들어서 문제가 되게 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일을 하니 아니한 이유는 ‘주님의 날이 다가왔는데’ 하면서 교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보면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일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주신 천직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일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일은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일하는 것은 생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모든 일은 신성합니다.

일에는 보통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신적인 일이요 다른 하나는 육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도 엄격히 말하면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정신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육체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서 할 수 없습니다. 또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도 정신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서 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도 정신적인 일을 하면서 일합니다. 이렇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같이 되어야 일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정신운동을 귀히 여기도 반면에 육체노동을 천히 여기는 관념이 있습니다. 옛날 플라톤 같은 유명한 철학가는 ‘육체노동은 노예들이나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과거부터 공부하는 선비만 귀히 여겨 소위 양반이라고 하고, 일하고 노동하는 사람을 상놈이라 하여 구별해 왔습니다.

그런데 육체 노동을 중요시하게 된 것은 성경에서부터 온 사상입니다. 일찍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우리 예수님도 요셉이 하던 목수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때 유대 사람들이 ‘아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 뭐 신통한 것이 있겠느냐?’고 배척하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목수는 사람들이 천시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땀을 흘리시며 손수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을 모세요. 낮에는 전도하고 밤에는 장막 깁는 업을 하였습니다. 육체노동을 하였습니다. 모든 노동을 신성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친 바요 우리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모든 일이 다 신성하다고 하면서 ‘뜰을 쓰는 사람이나 설교하는 사람이나 다 같이 신성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의 하는 일만이 신성한 것은 아닙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 들에서 농사짓는 농부, 가게에서 장사하는 상인, 차를 운전하는 운전기사, 모든 일이다 신성합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일은 하나님과 같이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27편 1절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집을 지어도, 성을 지켜도, 농사를 해도, 의사가 환자를 치료해도, 장사를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정성껏 할 것입니다. 되는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런 권면을 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람의 눈가림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일하는 사람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이익이 무엇입니까?

1. 일하는 사람의 축복은 지식을 얻습니다.

18세기 이후의 구라파를 위시하여 전세계에 소위 이성주의, 합리주의가 휩쓸어서 ‘이성은 만물의 척도’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론으로 이성을 통해서 과학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이성을 통해서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즉 실지로 일해 보아야 그 결과 참된 지식을 얻게 됩니다. 과학도가 실험을 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실험을 해 보아야 이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육에서도 실제로 일해 보는 것을 중요시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교육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들으면 25%를 알고, 눈으로 보면 45%를 알고, 따로 외면 65%를 알고, 손으로 하면 85%를 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믿고 순종해야 기독교의 참 진리를 알게 됩니다. 사랑이 무엇인 것을 아무리 들어도 다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사랑해 보고 사랑을 받아 보면 사랑을 알게 됩니다. 사실 기독교는 이론이 아닙니다. 실지로 행하는 종교입니다.

2. 일하는 사람의 축복은 건강과 성장을 가져옵니다.

우리 몸에 병이 생기는 원인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어떤 병은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병도 있습니다. 대개 육체적인 일을 하지 않는 사람 가운데 몸이 약한 사람을 많이 봅니다.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 치고 몸이 약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몸이 약한 사람은 대개의 경우 운동하므로 건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가까운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건강 뿐만 아니라 성장에도 크게 유익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원리가 사람은 일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원리에서 벗어나 살려 할 때 정상적인 성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손을 주신 것은 일하라고 주셨습니다. 손으로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하게 만들어진 손을 일하지 아니하고, 쓰지 아니하고 가만히 놀려만 두면 그 손은 결국 말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손으로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발도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조사했는데 1층에 사는 사람보다 2층에 사는 사람이 건강하고 3층에 사는 분이 더 건강하고 4층에 사는 사람이 보다 건강하다고 합니다. 왠지 아세요. 발로 걷는 것이 많으니까요. 발은 걸음을 걷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발을 걷는데 도무지 사용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놀려 두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그 발은 못쓰게 되고 맙니다. 우리의 눈도 그렇습니다. 무엇이든지 쓰지 아니하면 자연히 퇴화해 버리고 맙니다. 쓰면 쓸수록 건강과 성장에 유익이 됩니다.

우리가 일하면 심리적인 병을 고칩니다. 소위 이것을 직업 요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얼른 생각하면 ‘아, 그저 우리가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 때문에 일하지만 의식주의 문제가 걱정 없이 보장되어 있다면 세상에서 노는 것 이상 더 편하고 좋은 것이 어디 있겠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일하는 것 없이 사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매이게 되고, 결국은 고민하게 되고, 나중에 육신의 병까지 생기는 것을 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흔히 직업 요법이라고 해서 적당한 일을 시켜서 그 일에 마음을 붙이고 일하므로 병을 고치는 그런 치료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을 하면 우리 몸이 건강할 뿐더러 성장에도 유익하고 심리적으로도 건전해질 수가 있습니다.

3. 일하는 사람의 축복은 도덕적 생활에도 유익합니다.

대개 한가한 사람, 일없는 사람이 극장에도 자주 출입하고 좋지 못한 오락 장소에 가서 어떤 자극을 얻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미안한 말이지마는 무인들 가운데도 어떤 사람이 탈선합니까? 한가한 부인들, 소위 유한마담들이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자기의 일에 바쁜 사람은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부인 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그렇습니다. 일에 바쁜 사람은 곁길로 갈 시간이 없습니다. 한가한 사람이 도덕적으로 문란한 일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유명한 다윗왕을 기억하시지요? 그가 베들레헴들에서 양을 칠 때 시험에 들었습니까? 골리앗 대장과 싸울 때 탈선했습니까? 나라 다스리기에 분주할 때 범죄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나라는 다 평정되고 자기는 일선에 나가서 직접 싸우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나가 싸웁니다. 그는 한가해졌습니다. 낮에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하게 되었습니다.

한나라의 임금으로 더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생각 못할 범죄를 하여 일생에 오점을 찍게 되었습니다. 바쁜 사람은 나쁜 생각할 시간도 없고 나쁜 곳에 갈 겨를도 없습니다. 일하므로 도덕적으로 바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에디슨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아, 내 맡은 일에 바쁜데 언제 시험들 시간이 있나?’ 사실 바쁘게 일하는 사람은 시험에 빠질 시간도 없습니다.

4.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행복이란 말은 기쁘다는 뜻인데 마음이 기뻐야 행복스럽단 말입니다. 좋은 집 쓰고 살면 행복합니까? 좋은 옷을 입으면 기쁩니까? 권세 누리면 행복합니까? 지식이 많으면 행복합니까? 다른 사람 보기에 행복해 보인다고 정말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 행복은 권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공부하여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합니까? 일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합니까? 일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어떤 교호가 부흥합니까? 행복한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부흥합니다. 일은 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사람이 있는 교회는 부흥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기쁨이 없고 언제나 불행 가운데 싸여 있는 분이 있습니다. 가만히 자신을 살펴보세요. 내가 열심히 일하나,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여 봉사하나? 일하지 않으면 자연히 의심이 생기고 기쁨이 없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는 행복할 것입니다.’ 새 역사가 어떻게 창조됩니까? 일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본래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일하고 먹고살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엄히 선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부끄러운 것은 일하지 않고 먹겠다는 생각이요, 일하지 않고 얻어 보겠다는 욕심입니다. 무슨 복권이니 나쁘면 도박 같은 것은 일하지 않고 얻어 보려고 요행을 바라는 생각입니다. 요행을 바라는 것처럼 미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일한대로 갚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도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일해야 합니다. 수고해야 이익이 있습니다.

외국에 가서 한국서 이민간 동포들을 만나보면 거기서 어떻게 열심히 일하는지 모릅니다. 남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부인들도 아침을 간단히 해 먹고 도시락 싸 가지고 공장에 나가 하루종일 일하고 저녁에 청소하느라 밤에 자는 시간도 넉넉지 못할 지경으로 부지런히 일합니다. 그 사회는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 마음 속으로 ‘저 분들이 한국에 있으면서 저만큼 부지런히 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국민을 가진 나라가 발전합니다. 우리 나라가 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졌는지 아십니까?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서 그랬습니다.

여러분! 밀레의 만종이란 그림을 다 보셨지요? 저녁 해가 질 무렵 서산에는 저녁 노을이 빛나고 있습니다. 멀리 예배당에서는 저녁 종소리가 들려 옵니다. 온 종일 밭에서 일하던 젊은 부부는 조용히 일손을 멈추고 머리를 숙여 하루 종일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아무 어려움 없이 일하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이 그림은 참 행복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여기에 참 종교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참 사랑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참 노동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참 행복이 있습니다. 불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림입니다.

우리는 일하는 사람입니다.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할 일 많은 이 강토에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을 힘껏 합시다. 맡은 일이 무엇이든지 부지런히 일합니다. 일 할 수 없는 밤이 오기 전에 힘써 일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