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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눈 (잠 1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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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잠 15:1-12)-박조준 목사
 
오늘 저녁은 본문 가운데서 3절 말씀을 중심해서 생각하고 기도하십시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우리가 이미 생각한 잠언 5장 2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어요.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리라” 욥기 34장 21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

시편 94편 9절에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 인간을 보십니다. 살피십니다.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을 살피시며 폐부를 시험하시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십니다”

사람은 보통 자기 스스로 자신을 자신을 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간의 문명과 함께 발전되어온 것 중의 하나가 거울입니다. 아주 옛날에는 거울을 동판이나 철판을 잘 갈고 닦아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물론 사람의 얼굴의 모습을 볼 수는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그렇게 분명하게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도 바울이 사랑에 대해서 말해 내려가다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라”고 했는데 아마 오늘날 같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린도서를 쓴 바울 당시만 하더라도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 볼 때마다 희미하게 보인 줄 생각합니다. 요사이는 대개 유리로 거울을 만들어 쓰고 있는데 아주 분명하게 보입니다. 문명할수록 거울이 더 커지는 모양입니다. 호텔이나 상점이나 가정에도 대문짝 만한 거울을 놓은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현대 문명은 거울의 문명 같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사람마다 자기 얼굴을 보기 좋아하고 이것만 가지고 부족하니까 몸 전체를 보려고 그렇게 큰 거울을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보통으로 자기가 잘 생긴 줄 압니다. 그리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보나’ 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대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얼굴에 화장을 하고 몸단장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 잘 치장을 하고 나갔을 때 보는 사람이 칭찬을 해주면 하루종일 기분 좋아합니다.

이것은 개인 뿐만 아닙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국민의 여론을 때때로 조사합니다. 국민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나 알기 위해서 정보원을 각처에 보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나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나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나 스스로 잘난 줄 알고 세상 사람들에게 일시에 칭찬을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사람이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야기입니다만 옛날 바벨론 왕 벨사살이 자기 스스로도 자기를 높이 보았고 모든 신하와 온 국민이 그를 높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청년은 천여 명의 귀한 손님들을 청해서 큰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술과 음식을 장만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쓰던 그릇까지 가져다가 굉장한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담벽에 이상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을 쓰는데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을 써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왕이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 것을 끝나게 하셨다’ 그리고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으로 메데와 파사 연합군이 들어와서 바벨론 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남이 높이 평가하는 것도 사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요는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서 얼마나 중량이 있느냐?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도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 눈은 어떤 눈입니까?

여호와는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어디나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어디나 보십니다. 높은 데, 낮은 데, 먼 곳, 가까운 곳이 없습니다. 어디나 보십니다. 시편 기자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잘 때나 깰 때나 일할 때나 쉴 때나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여행할 때나 언제나 살피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현재만 보시는 것이 아니고 과거도 보시고 미래까지도 보십니다.

그래서 시편 139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태에서 내 형체가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나를 보셨나이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 인간 생활의 모든 방면을 살피십니다. 인간의 역사와 하는 일을 살피십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기름을 부어 장차 이스라엘 왕을 삼으라고 하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베들레헴에 갔습니다. 이새의 집에 갔더니 키가 크고 용모가 잘 생긴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이 왔습니다. 사무엘이 보니까 아주 잘 생겼습니다. ‘아, 이 사람이 왕이 될 사람인 모양이다.’ 그래서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으려 생각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속삭이는 말씀이 ‘외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는 이미 이 사람을 버렸노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람은 보통 외모를 보지마는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사람의 행동만 보시는 것이 아니고 그 행동의 배후에 숨은 동기를 보십니다. 우리 마음 속 깊은데 심리학의 용어대로 하면 Complex obsession,즉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사람, 그 욕망, 야심 사상, 심리의 증상을 보십니다.

에스겔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를 어떤 곳으로 인도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큰 벽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벽에 조그만 구멍이 있어요. 그 구멍으로 아무리 들여다보려 해도 잘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벽을 헐라!” 그래서 에스겔은 구멍을 크게 만들도 그 벽을 헐었습니다. 그랬더니 큰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열라”해서 그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열고 보니까 방이 하나 있는데 그 방안에는 온갖 더러운 짐승, 벌레, 그리고 그 벽에는 우상을 그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깜짝 놀란 것은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그 우상에게 분향을 하고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너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하는 일을 아느냐? 이 사람들이 입술로는 나를 섬기노라 하지마는 실상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더러운 것들이 많고, 실상은 우상을 섬기면서 이 사람들이 내가 이것을 보지 못하는 줄을 알지마는 내가 이렇게 분명히 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담으로 쌓고 문을 꼭 닫은 다음에는 내 속을 누가 알겠는가? 합니다. 사실 사람이야 모르지요. 그러기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 가운데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숨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139편에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에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에 계시나이다” 하나님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노아 때의 사람들의 악한 생각과 행동을 보셨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을 보셨습니다. 이 눈으로 압살롬을 보셨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대로 갚으셨습니다.

세계 역사 역시 그렇습니다. 이런 눈으로 뭇솔리니를 보셨고 히틀러를 보셨고 동조를 보셨고 보든 독재자들을 보셨고 보신대로 달아보신 대로 갚으셨습니다.

전에 다윗과 밧세바가 은밀한 방에서 남이 모르게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깨닫고 시편 51편을 고백하였습니다. “주님이시여 내가 주님의 목전에서 이 악한 일을 하였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우리가 무슨 죄를 짓든지 하나님의 목전에서 짓습니다. 전에 아간이 의복과 금은을 감출 때는 남 몰래 감추었습니다. 누구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전에서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중에는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작은 죄나 큰 죄나 하나님의 목전에서 행하는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안과 밖을 꼭 같이 보시기 때문에 우리의 악한 생각을 악한 행동과 꼭 같이 미워하십니다. 그러기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음욕을 품으면 벌써 너희 마음 속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든 죄 가운데서도 외식하는 죄를 특별히 미워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곁은 깨끗이 하지만 그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도다. 너희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모든 죄가 가중하지마는 외식하는 죄는 두 가지 죄가 겸했습니다. 속에 있는 더러운 죄, 그것을 가리우는 거짓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눈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의 눈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땅에서 무고하고 압박을 받으며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의 눈이 이스라엘 민족의 곤고한 것, 슬프고 억울한 사정을 내려다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 민족을 구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오늘 우리 한국 민족의 사정을 다 보시고 계실 줄 믿습니다. 한 나라 한 민족의 사정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형편과 사정도 보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눈이십니다. 전에 나오미와 룻, 외로운 두 여인을 보셨습니다. 도와 줄 사람 없는 불쌍한 이 여인들을 보시고 도와주셨습니다.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가다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과 물을 주어 새 원기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조용하고 은밀한 가운데 무화과나무 아래서 메시아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는 나다나엘을 보셨습니다. 이달리야 대 백부장 고넬료가 은밀히 기도하며 남모르게 다른 사람을 돕는 자선사업을 많이 했는데 주변의 사람들은 군인으로만 보았지만 하나님은 고넬료의 은밀한 생활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청하게 되고 온 가정이 처음으로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행하시며 그를 진심으로 의지하는 이를 찾아서 그를 지켜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필요한 모든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의 외로운 사정을 보십니다. 우리의 억울한 사정도 보십니다. 우리의 배고픈 사정도 보십니다. 우리의 눈물도 보십니다. 우리의 간절한 소원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과 형편을 살펴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선한 사람을 감찰하시고 그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십니다. 주님의 눈은 불꽃같아서 우리의 속마음을 헤쳐 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를 살피시고 나를 보십니다. 내 생각과 내 생활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것은 혹시 없습니까? 하나님의 눈이 우리 하나 하나를 지금 보시면서 우리 양심에 말씀하여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고. 여러분! 스스로 속이지 맙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한 가운데서 깨끗케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자백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우리의 범한 죄를 모르기 때문에 자백하란 말씀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다 아시고 계십니다. 내가 지은 죄를 내가 죄로 인정할 때, 이 죄 때문에 가슴 아파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운데 아직까지도 하나님 보시기에 죄를 자백하지 아니하고 자고새가 알을 품고 있듯이 그냥 죄를 마음 가운데 품고 있는 이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죄를 보고 계십니다. “내가 죄 사하려고 십자가에서 이 시간 그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 앞에 내 놓아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보시고 알고 계신데 우리가 어리석어 아직도 죄를 품고 있으면 이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지체하지 마시고 주님께 와서 모두 내 놓읍시다. 주님은 용서 못할 죄가 없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도 기다리십니다.

주 예수 지금도 기다린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죄짐을 가지고 다 나오라 어서 주 앞에 오라.
지금 오라, 지금 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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