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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련한 사람의 삶 (잠 2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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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은 한마디로 미련한 사람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우리는 다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동안 공부한 잠언에 보면 여러 곳에 미련한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몇 곳 찾아 읽어보십시다.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1장 22절에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하였습니다.

7장 22절에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포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여러분이 아십니다. 소년이나 청년에게 가장 범하기 쉬운 성적인 함정입니다.

잠언 7장 1절 이하에 경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전에 사사 삼손이 어릴 때부터 나실 사람으로 하나님의 택한 사람으로 특별히 구별되게 키움을 받지 아니하였습니까? 나라가 어려운 때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계셔서 그를 택해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모든 훌륭한 조건들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반할 정도로 미남으로 생겼었습니다. 힘이 얼마나 센지 썩은 당나귀 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에게는 신앙적인 훌륭한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원수 나라 블레셋 여자 간첩인 들릴라에게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종래는 그의 힘의 상징인 머리를 밀리우고 하나님이 떠나버린 삼손은 아무런 힘도 없이 문자 그대로 쇠사슬에 매어서 두 눈이 뽑히고 연자맷돌을 갈다가 정말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젊은이들에게 경고가 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모든 여자가 다 들릴라 같고 그 결과가 그렇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올바른 남녀관계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잘못된 남녀관계는 이렇게 자신을 쇠사슬로 묶어 버리는 미련한 자의 생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10장 1절을 보세요.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전에 어거스틴이 얼마나 훌륭한 달란트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었습니까? 명석한 두뇌와 감동적인 표현력은 그 당시 많은 사람에게 인기의 절정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잘못 사용하여 육신의 정욕을 채우는 기로 빠져서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편에서 보면 미련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얼마나 근심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였습니까! 종래는 그가 하나님께로 돌아와 큰 일군이 되었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기독교 역사상 큰 공헌을 남긴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사업 잘해서 돈 많이 모으면 그것으로 다 됩니까? 공부 많이 해서 큰 학자가 되면 그것으로 족합니까? 세상에서 출세해서 높은 지위 차지하면 다 됩니까? 사실은 미련한 자의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귀한 달란트를 받아 가지고 이것을 잘못 사용해서 결국 미련한 자의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께 근심거리가 되는 분은 안계십니까? 미련한 자는 악을 행하는 것으로 낙을 삼는다고 잠언 10장 2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자 뿐만 아닙니다. 여자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언 14장 1절을 보세요.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오늘 자기 손으로 집을 허는 미련한 여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 전에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이(李)여인의 사건을 보세요. 우수한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요 미모까지 갖춘 여인이 그만 세상의 사치와 허영에 빠져서 결국은 사기 행위를 거듭하다가 문자 그대로 집을 헐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지 않았습니까? 그 남편되는 검사는 어릴 때부터 가난과 싸우며 오늘의 검사라는 사회적인 지위까지 확보했었는데 그만 미련한 여편네 때문에 완전히 그 집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미련한 여인은 그 집을 헙니다. 그런데 잠언 12장 15절을 보세요.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하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자기 행위가 언제나 바른 줄로만 알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 말하자면 미련한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잘못된 것은 없나? 언제나 살필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 절(12:16)에는 뭐랬어요?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수욕을 잘 참는 사람은 슬기로운 사람이요, 당장에 분노를 내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15장 2절에 기록한대로 미련한 자의 입에서는 미련한 것만 쏟아 놓습니다.

잠언 17장 10절에서 12절까지를 보세요.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입으리라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잠언 18장 2절에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기 말만 말이라고 고집하지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같은 장 6절에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하였고, 그 다음절에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하였습니다. 23장 9절에는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이렇게 되면 큰일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다. 1절에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오는 것과 같으니라”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미련한 사람에게 영예가 부여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전도서 10장 6절에 보아도 “우매자가 크게 높은 지위를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건 단체건 여름에 눈이 오는 것처럼 모순되며, 자연과 계절에 큰 혼란이 일어나는 것처럼 무질서와 혼란이 초래될 것입니다.

악한 자가 권세를 잡으면 흔히 자기 권력을 남용하여 덕을 막고 악을 조장하는데 이것은 큰 비극입니다. 그래서 미련한 자는 까닭없이 남을 저주하기 잘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이 뭐랬어요? 2절에 “까닭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하였습니다.

흥분은 사람으로 하여금 까닭없는 저주를 낳게 합니다. 사람을 오인하거나 사실을 오해하고 좋은 것을 나쁘다 하고 악한 것을 선하다 하고 선을 행한 사람을 나쁜 일을 행한 사람이라고 억측해서 저주합니다.

악인의 세도가 당당할 때는 저주나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자기 주위의 사람들의 입을 막아 버리고 자신의 특권인양 착각합니다. 이것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미련한 사람이 아무리 까닭없이 저주한다 하여도 상관할 것 없습니다.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제비나 떠들어대는 참새가 아무런 해를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대로 저주는 받지 않으면 그 저주는 하늘에서 빙빙 돌다가 제 집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을 봅시다. “말에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자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여기서 미련한 사람을 말과 나귀에 비유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짐승과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전혀 이성을 따르지 아니하고 감정에 치우쳐 너무나 제멋대로 하기 때문에 완력과 공포가 아니면 다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죄라는 것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인간을 짐승으로 비교할 정도로 타락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9절에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하였습니다.

길들이지 아니한 말에게는 교정을 위한 채찍이 필요하고 노새에게는 길을 벗어나려 할 때 제지하고 또 바른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자갈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과 이성의 인내와 억제하에 있지 아니하려는 미련한 사람에게 채찍이 내려지고 자갈이 물려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따끔한 매를 맞고야 돌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지혜있는 사람은 매를 맞기 전에 잘못된 길에서 돌아옵니다. 이것이 좋습니다.

이제 4절과 5절을 읽어봅시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이 표현이 얼마나 고상한가를 보세요. 얼른 보면 모순된 표현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지혜로운 자라고 하더라도 미련한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련한 자와 대화할 때 어느 때 침묵을 지키고 어느 때 대답해야 할는지를 아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할 만큼 자기의 분별심을 우매자의 비논리에 동화시키지 말아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가 자랑한다고 너 또한 자랑하는 마음에서 대답하지 말라. 그가 욕설을 퍼붓고 화가 나서 말하더라도 욕설에 응수하거나 같이 성내지 말라. 그가 엉터리없는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너도 뒤질세라 딴 거짓말로 둘러대지 말라. 그가 네 친구를 헐뜯더라도 너는 그의 친구를 비방하지 말라. 그가 희롱하더라도 너는 그가 쓰는 말로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와 그가 같을까 하노라. 너로 말할 것 같으면 보다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으며 보다 분별심이 많고 보다 선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냐?”고 어떤 지혜자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침묵이 네 주장의 불충분함이나 제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표시라고 간주될 우려가 있거든 그에게 대답하라. 네 말이 바로 그 사람에게 대한 대답이 되게 하라. 그를 그 자신의 무기로 쳐부수라. 그리하면 요령있는 대답이 될 것이다. 그가 논쟁 비슷한 말을 꺼내면 그에게 응수하고 네 대답을 그의 경우에 맞추라. 네가 그에게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네가 그의 말에 대꾸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대답해 주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며 승리를 자랑할까 하노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지혜의 자녀들은 지혜의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6-9절을 봅시다.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이라 해를 받느니라.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미련한 자에게는 무슨 일을 맡기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심부름을 보내기도 마땅치 않습니다. 마치 곰에게 애를 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 얼굴에 붙은 파리를 날릴 생각은 못하고 잡아죽인다고 아이 얼굴을 탁 쳐서 파리도 죽었지만 잠자던 어린애도 죽었다고 합니다. 미련한 자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리는 것” 같은 손해가 오는 것입니다.

7월에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사람의 말이란 이렇게 저는 다리처럼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그의 말은 술 취한 사람의 손에 들리운 가시나무 같이 다른 사람을 해칩니다. 뿐만 아닙니다. 11절 말씀에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짓을 거듭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죄를 범하고 그것이 나쁜 줄 알면서도 또 범합니다.

끝으로 12절에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 물어 봅시다. 오늘 저녁 이 성경 강해를 들으시면서 어떻게 마음 속에 생각이 되십니까? “과연 그렇다. 내가 바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가 바로 회개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생각되시는 분 계십니까? 그분은 지혜로운 분입니다. 그런데 “아, 오늘 저녁 그 성경 강해는 아무개가 좀 들어야 하는데...”하고 생각되시는 분 계십니까? 이거 대단히 미안하지만 제 말이 아니라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대로 “그보다 미련한 자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미련한 사람은 없습니다.

금년 일년 동안 아니 우리 일생 동안 미련하게 살지 말고 지혜있게 삽시다. 야고보 장로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늘 저녁 지혜있는 삶을 영위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십시다.
박조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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