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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이 살아가는 길 (잠 2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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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길(잠언 29:12-27)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 첫 부분인 12-17절까지의 말씀은 공정한 정부와 자식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세요. “관원이 거짓말을 신청하면 그 하인은 다 악하니라” 하였습니다. 거짓말을 신청한다는 것이 큰 죄입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다 같이 해당되는 말씀이지만 특별히 통치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집권자가 거짓말을 귀담아 듣게 되면 그 거짓말에 따라 어느 인물에게나 사건에 그릇된 판결을 내리게 되므로 일이 잘못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거짓된 정보를 제공하는 악한 사람들이 활개를 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대로 우리 나라 이씨조선 500년 동안에 물론 예외도 없진 않았으나 대개의 왕들이 간신배들의 거짓된 정보를 제공함으로 인해서 나라와 임금님을 위해서 충성스럽게 일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비참하게 죽였습니까? 멀리 갈 것 없이 지금 저 노량진에 가면 사육신(死六臣)의 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도자가 거짓말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국민에게 큰 폐가 되고 실상은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집권자나 지도자는 일의 사실 여부를 정확히 판단해서 들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이 3.15 부정 선거한 날입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전에 솔로몬 왕은 기브온에 가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애쓸 때 꿈에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랴? 너는 구하라” 하였습니다.

이 때 솔로몬이 하나님에게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였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습니다(열왕기상 3:4-9).

이 때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이 주의 마음에 맞지 않아서 열왕기상 3장 11절 이하에 보면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하면서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 되어 일을 바로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사건 하나를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어떤 창기 두 여인이 왕에게 와서 송사를 하였습니다. 한 여인이 말하기를 “내 주여, 제 옆에 있는 이 계집이 한 집에 사는데 제가 저와 한 집에 있으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를 낳은 지 삼일 만에 이 계집도 해산을 하고 우리와 함께 있었고 우리들 외에는 우리 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 아 그런데 밤에 저 계집이 잠을 어떻게 잤는지 아들을 깔아 죽였습니다. 아 그러니까 밤중에 몰래 일어나서 제가 잠이 들고 있는 동안에 내 아들을 제 곁에서 살짝 훔쳐다가 자기 품에 넣고 자기의 죽은 아이는 저의 품에 안겨 놓았습니다. 새벽 미명에 제가 일어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려 하니 이 꼴이 되었습니다. 날이 밝은 후 자세히 보니 제가 낳은 아들이 아니지 뭡니까?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 때 다른 여인은 “아닙니다. 산 것이 제 아들이고 죽은 것이 저 계집의 아들입니다” 해서 논쟁을 붙게 되었습니다.

이 때 솔로몬 왕은 호령하였습니다. “듣기 싫다. 조용하지 못할 까? 너희는 서로 산 것은 내 아들이고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는 구나(요사이 같으면 피 검사라도 하면 판명이 날 터인데 그 때는 그런 것이 없을 때이니까) 칼을 내게로 가져 오라.” 이 때 왕 앞에 시퍼렇게 날이 센 칼을 가져왔습니다. 왕이 칼을 든 신하에게 “자, 이제 저 산 아이를 칼로 절반을 잘라라. 그래서 반은 저 계집에게 남은 반은 저 계집에게 주어라”고 호령을 쳤습니다. 이 때 산 아이의 어미가 아들을 위해서 마음이 불이 붙는 것 같아서 왕에게 호소합니다.

“대왕이시여, 산 아들을 저 여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아이는 죽이지 마십시오” 애원합니다. 그런데 다른 여인은 “잘 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이런 때는 그저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게 하셔야 합니다. 칼로 당장 잘라서 나누어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있던 솔로몬 왕은 “이 산 아들을 죽이자 말라는 저 여인에게 주라, 저가 진짜 어머니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얼마나 지혜있는 판결입니까? 그러므로 13절에 “가난한 자와 포악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는 약한 사람은 권세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포악한 자는 강한 자, 권세를 남용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람끼리는 약한 사람, 강한 사람, 권세 없는 사람, 권세 있는 사람,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있지마는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하십니다.

예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의인의 밭에나 죄인의 밭에나 골고루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집권자는 누구나 똑같이 대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4절에 있는 말씀대로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해야 그 위가 견고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오히려 약한 자, 가난한 자 편에 서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5절과 17절 말씀은 부모가 자식에 대한 징계를 바로 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네 자식을 경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하였습니다. 13장 24절에도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여기 우리 젊은이들이 많이 계십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책망을 할 때 얼른 생각하면 기분 나빠하기 쉽습니다. 어린 때는 힘이 없으니까 고분고분 하다가 키가 크고 배운 것이 좀 생기면 부모의 책망을 역겹게 듣기 쉬운데 이렇게 훈계를 저버리는 사람은 궁핍과 수욕이 이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9장 18절에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 즉 그를 징계하라”고 했어요.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에게 책망하시는 것을 듣습니까? 소망이 있어 그러합니다. 소망이 없으면 아예 포기해 버리기 때문에 책망하지 아니합니다. 사실 책망을 하는 아픔보다 더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인 면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과 형통한 은혜만 받아야 할 터인데 왜 원치 않는 어려움을 당하곤 합니까? 왜 가슴 아픈 일, 고통을 당하곤 합니까? 물론 그 분명한 이유를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모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의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모든 것이 분명해져서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계시된 말씀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5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언 3장 10-11절의 인용구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경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을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라틴 격언에 Vexatio dat intellectum이란 말이 있습니다. 괴로움은 이성을 예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뜻을 깨닫게 되었나이다”하였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내가 지금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는다고 생각되시는 분이 있습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들으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징계를 잘 받으면 전에 받지 못했던 축복, 전에 몰랐던 은혜를, 전에 누리지 못했던 평화를 맛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세요. 그리고 어려운 징계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가까이 하세요! 그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큰사랑으로 더해 주십니다.

그리고 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홀톤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직접 받은 생생한 환상(Vision)이 없이는 인간 사회를 결속시킬 힘이 없다.”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참된 환상을 받아 가지고 꿈을 지니고, 굳은 신념으로 이 악한 세대에 임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미국의 흑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흑인에게 우상적인 존재가 되어 지도했던 까닭은 그가 말한 대로 그에게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63년 흑노해방 100주년 기념 연설에서 그는 25만의 흑인 대중과 5만의 백인을 모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국민 시위에서 그는 “새 아메리카의 꿈”을 피력했습니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분기하여 만민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진리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맥인 사회에서 박해와 투온 이상 참기 어려운 동족의 중상, 배신, 위험에 부단히 직면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그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꿈이 있어야 신념이 있습니다. 꿈이 없으면 본문이 말씀하신 것처럼 방자히 행합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에 보면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산(환상, Vision, 꿈)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백성은 방자히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방자히 행한다”는데 몇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가령 “벌거벗게 된다”는 뜻도 있습니다. 수치스러운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마귀의 공격의 표적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반역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게으르고, 논다”는 뜻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안 계셔도 물론 학생이 공부를 하겠지만 대개는 게으르게 되고 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해 가면서도 학생들에게 공부하게끔 독촉하고 격려합니다.

신앙생활도 이렇게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격려 받을 때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방자히 행한다’는 말은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진다’는 뜻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리에게 소리쳐서 불러모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래에는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잠언 16장 20절에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하였습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에도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하였습니다.

시편 1편 2절, 3절에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하였습니다.

꿈을 가지고 말씀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축복을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20절과 22절을 생각하고 기도하십시다.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받을 것이 있느니라”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하였습니다.

14장 29절에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하였습니다. 마음이 조급한 자나 언어가 조급한 자나 다 비슷한데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서 남의 말 들으려 하지는 아니하고 자기 말만 말이라고 하고 혼자 지혜로운 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성경은 차라리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기대할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 1장 26절에는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특별히 노하는 것, 분해하는 것 조심하여 범죄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아야겠습니다. 잠언 15장 8절에도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인과 아벨의 경우를 보세요. 그들은 친형제였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분한 마음으로 인하여 안색이 변하더니 결국 동생을 쳐 죽이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살인의 비극을 맞게 된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 마음 속에 분한 마음 아직 가지고 있으면 다 회개합시다 이것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러분! 지혜있는 삶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리고 자식을 바로 징계하고, 부모의 징계를 바로 받는 자녀가 됩시다. 우리 영의 아버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배반하거나 거역하지 말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가지고 삽시다. 말에 조급해서 미련하게 살지 말고, 분한 마음을 품고 있어 범죄하지 맙시다. 여호와를 의지합시다. 그리하면 안전할 것입니다. 사람의 일의 작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박조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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