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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고 기다리는 생활 (욥 0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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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생각하게 될 말씀은 욥이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그를 찾아온 친구 중의 한 사람인 엘리바스가 계속하여 한 말입니다.
엘리바스는 그 당시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조상이 범한 죄의 값이라고 말했습니다. 악을 심었기 때문에 벌을 거두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반드시 악을 행한 사람에 대한 벌로 고난이 임하는 것만은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면서부터 소경 되어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것이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물을 때 “이것은 본인의 죄도 아니요 부모의 죄도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73편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에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 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왜 사람이 고난을 당하느냐 하는 것은 완전한 대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여기 의인의 고민이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을 들어보세요. 본문 1절에 “부르짖어 보아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너처럼 고통 당하는 자가 누가 있느냐?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너에게 대하듯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분명히 하나님이 보실 때 의로운 자도 거룩한 자도 아니야”하는 말입니다.
“보라. 선한 사람 중에 너와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었느냐? 선한 사람 중에 너처럼 세상에 난 것을 저주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원망하는 사람을 보았느냐? 더구나 어느 성인이 너처럼 고난 당하는 사람을 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표시라고 말하겠는가? 아마 너를 옹호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네가 원하는 사람에게, 선한 자에게 향해 보라. 아마 너는 그들도 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도 모두 내가 말하려는 것에 동의했어”하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되고 형통하고 재물이 더하고 건강하게 지내면 복이라고 생각하고, 무슨 일이 잘 되지 않고 어려움을 당하고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면 저주를 받고 징계를 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되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모여들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서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게 됩니다. 이것이 인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어려운 일을 할 때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했습니다.
시편 37편에도 이와 같은 사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다윗은 자기 스스로를 반성하며, 자기 자신의 혈기를 억제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향하여, 말하자면 설교를 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이렇게 부패한 혈기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 그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시험을 당하게 될지도 모를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을 한번 바라보세요. 행악자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세상에서 융성하며, 번영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소유하며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면 다 행하며 평안히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스스로 뽐내며 자기들 수중에는 세상을 뒤흔들 권력이 주어져 있다고 으스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그런 현상이 있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 일은 이미 예전에 있던 일이요, 지금도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와 같은 현실 앞에서 불평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때로는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악한 사람들이 빈둥거리며 살게 내버려두시고 저희 세력이 우세하도록 허락하셨기에 그들이 세상을 혼란시키며 의를 위해 살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맥빠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투정하기 쉽습니다.
더구나 악한 사람들이 꾸며 놓은 계획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고통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불법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재산을 마구 벌어들이며 저희의 욕망을 마음대로 탐닉하는 자들을 부러워하기 쉽습니다. 바로 살아 보겠다고 애쓰는 노력과 수고가 쓸데없는 것처럼 여겨져서 오히려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유혹을 받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바로 이 점을 주의하라고 우리에게 “불평하여 하지 말고… 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불평과 투기는 그 자체의 형벌을 이미 가지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불평과 투기는 우리의 심령을 불안하게 하며 뼈를 썩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 생활의 힘 쓸 일 중에 하나가 “범사에 감사하며 살자”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불평과 투기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악인들의 번영을 시기할 만한 하등의 이유를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투기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희의 파멸이 문밖에 이르렀고 저희들은 파탄을 향해 급히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풀과 같고 푸른 채소와 같은 무성함에 불과합니다.

백년 된 소나무가 옆에서 자라는 호박 넝쿨을 보고 부러워하면서 “너는 어쩌면 그렇게 빨리 자라니? 그러다가 온 세상을 다 덮을 것 같구나”라고 할까요? 아닙니다. 소나무는 말할 것입니다. “두고 봐라. 네가 아무리 큰소리치며 세상을 다 덮을 듯이 야단하지만 두고 봐라” 할 것입니다. 왠지 아세요? 이 오래된 소나무는 벌써 여러 해를 지나는 동안에 호박 넝쿨이 그렇게 무성하게 자라다가 겨울이 다가오면 다 말라 버리고 마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악인의 번영이 이와 같습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더 빨리 베어질 것입니다. 저희가 의기 양양해 하는 것은 잠깐이고 저희의 애곡과 비탄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생활과 하나님께 만족을 두는 생활을 하라는 권고를 받습니다. 이런 생활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행악자들의 번영을 불평하지 않도록 해 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한다면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 그토록 나쁜 일을 하는 그들을 시기하거나 불평할 이유가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좋은 권면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귀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에게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종교의 생명은 하나님과 그의 은총, 그의 섭리, 그의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의지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일과 선을 행하는 일을 병행해야 합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배부르고 번성하며 출세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세상적인 것의 풍성함에 있지 아니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였습니다. “사람의 사는 것이 그 가산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의 것이 부족할 때 하늘의 것으로 넘치게 얻을 수 있으며, 보이는 것이 적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을 수가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너는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모든 자들에게 스스로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마음의 즐거움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기뻐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침묵입니다. 성경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 할 때에 “조용하여 네 일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조용합니다. 떠들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잘해 주시고 내게 분명히 유익하게 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아도 주님은 조용하셨습니다. 떠들지 않았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 그렇게 떠들며 고소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설명하고 설득하신 것이 아니라 조용히 계셨습니다. 땅에 글을 쓰시고 계셨습니다. 계속 독촉을 하니까 일어나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있으면 이 여인을 돌로 치라” 하시고 또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잠잠히 계셨습니다.
빌라도의 재판석 앞에 섰을 때도 하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잠잠히 계셨습니다. 잠잠한 것이 백 마디 말로 떠드는 것보다 나을 때가 많습니다.

또한 인내하는 것입니다. “참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퉁명스런 얼굴로 참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세로 소망 중에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했습니다.
스펄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릴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유익하게 할 정시각에 도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정한 시각보다 이르게 오시지도 않으시고 늦게 오시지도 않습니다.”
랑게라는 주석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를 핍박하는 악인의 손이 길다 할지라도 성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그들의 손보다 더 길고 힘이 강하십니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들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심령이 피곤하십니까? 모든 일을 끝까지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새로운 인내의 힘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피곤하여 지친 사람에게 소생하는 힘을 주셨습니다. 물과 불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안전하게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 가로막혔을 때 “잠잠하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앞이 가로막힐 때 잠잠할 줄 알아야 합니다. 광야에서 목이 말라 고생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석을 쳐서 생수가 솟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 어려워 맥이 빠지고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집시다.

엘리바스는 욥이 당하는 어려움도 결국은 악인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어조로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인간에게는 고난이 임하게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7절 말씀에 보면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고 합니다. 불티는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사람치고 고난 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도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은 숙명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엘리바스는 욥에게 이 재앙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8절 말씀에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했습니다.
“욥, 내가 너와 같은 경우라면 너처럼 그렇게 역정을 내고 흥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을 것이다”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엘리바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내가 만일 그런 경우를 당하면 나는 이렇게 했을 것인데”하는 원칙적인 말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 있을 때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옳은 것입니다.

우리가 재앙 속에 빠졌을 때 할 일은 원망하거나 시비하거나 불평하거나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저를 건지겠고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했습니다. 환난 때 할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에서는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모든 상처를 싸매어 주고 마음에 평화를 안겨 줍니다.
그리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했습니다. 내가 당하는 일들을 하나님께 펼쳐 놓고 그것을 그의 손에 맡기겠다는 말입니다. 형통하기를 원하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에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다는 것을 보는 것보다도 더 위로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기 소침해 있을 때 우리의 위안을 위해서 큰 일을 행하십니다. 그 내용이 10-16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17-19절까지의 말씀을 보십시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했습니다.
여기에서 엘리바스는 욥이 그의 환난을 인내로써 잘 이기게 되면 그 환난의 결과가 복될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징계를 “대적하지 말라,” “나쁘게 생각지 말라,” “소홀히 여기고 무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며, 깨닫게 하시고 위로하시며, 낮추신 후에 높이시기 때문입니다.

칼라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치료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은 상처는 입히시지 않습니다.” 상하게 하신 그 손이 치료하십니다. 어떻게요? 본문 20절 이하를 보십시오.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즉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네가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 아니할 것은 밭에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친할 것임이라 네가 네 장막의 평안함을 알고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며 네 자손이 많아지며 네 후예가 땅에 풀 같을 줄을 네가 알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재앙이 참기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잘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우리 지각에 넘치는 축복으로 안겨 주실 줄 믿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 여러분은 잘 참으셨습니다. 내년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당한다 해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그분만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 승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조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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