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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알게 되면 (욥 1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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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에서 우리는, 욥이 어려움 가운데서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그에게 위로와 격려가 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통달하였느니라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한 내가 아니니라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1-3절).
그가 이전에 말한 모든 사실들이 그의 눈으로 본 것이며, 그의 귀로 들은 것이라는 확실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분명히 아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 11장 32-3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가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구약성경 중의 외경인 마카비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의 기사가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안티오커스의 핍박을 받을 때인데, 그들은 그런 말할 수 없이 가혹한 핍박 속에서도 그들의 하나님을 분명히 알았으므로, 수리아 우상들 앞에 절하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강하여지고 크게 용감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은 말할 수 없이 어려운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으며, 어떤 악의 세력도 주의 종들을 악의 세력에서부터 떼어놓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아신 바가 되면 놀라운 일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 자라 가라”고 권면했습니다.

에베소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물론 모든 지식이 우리에게 다 유익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지식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됩니다.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복이 있습니다.
칼빈 선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 중에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 만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얼마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어린이 찬송가 301장에 이런 내용의 가사가 있습니다.
1.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내 나이 비록 어려도 잘 알 수 있어요
2. 온 천하 만물은 그림책 같으니
그 고운 그림 보아서 그 사랑 알아요
3. 저 고운 화초밭 비오다 개이면
하늘에 뻗친 무지개 참 아름다워요
4. 저 푸른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주 하나님의 사랑을 늘 속삭이지요

뿐만 아니라, 특별 계시를 통해서 아직 이 세상에 나타난 바 없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성을 배웁니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주 우리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삼위이신 것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1장의 인간 창조에 대한 기사를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라는 말이 거듭 나옵니다.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삼위이십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전에 지혜와 지식을 자랑하던 헬라의 아덴 사람들은 많은 신을 섬겼는데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경배하기도 했습니다. 알지 못하고 경배하면 안됩니다. 물론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람의 노력을 통해서 자기들이 섬기는 신에게 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우리가 노력해서 우리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 주셨으므로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되셨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성육신의 교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 이것을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특별계시를 통해서 우리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하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을 모르면 안됩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우리는 밝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 가운데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내 구주로 믿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습니까? 그러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고 신앙 생활을 할 때 힘이 나고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씻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아무리 더러운 죄라도 아무리 큰 죄라도 아무리 무서운 죄라도 다 씻어 주십니다. 죄악을 벗은 영혼이 기뻐 주를 찬송할 수가 있습니다. 죄를 용서받지 못할 때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십니다.

1.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2.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 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3.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부정한 모든 것 맑히시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4. 구주의 복음을 전할 제목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날마다 나에게 찬송주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후렴)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더구나 많은 사람 가운데서 나를 택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사실을 알 때 감격한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하여 이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이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으로 되어 영원한 축복의 자리에 들어가게 될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알아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나에게 영원한 언약을 주셨고, 그의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셨고, 그가 나에게 믿음을 주셨고, 그가 나를 매일매일 인도하시며, 이 나와 함께 계셔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 도마는 내가 친히 보지 못하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친구들이 열심히 말하면 할수록 더욱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손을 만져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강해지고 용기를 가지고 힘을 얻어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다니엘 3장에 보면 느브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에게 다 이 신상에게 절하라고 하면서 만일 절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진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청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느브갓네살 왕은 크게 노해서 그들을 불러다 놓고 “이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데,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지만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당장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집어던질 것이니 어떤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진다는 말이냐?”라고 했습니다.
이때 이 세 젊은이는 조용히 머리를 들고 침착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에 왕께서 우리를 풀무불에 던져 넣으시면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거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혹시 그렇게 아니하신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우리가 풀무불 속에서 재가 되어 버린다고 하더라도) 왕이시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 할 줄을 아옵소서.”
이 얼마나 담대한 대답입니까? 이와 같은 담대함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자기 하나님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담대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줍니다. 그리고 이 열린 문을 통해서 우리 주님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것은 주님의 초상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 초상화를 바라볼 때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내가 주님을 모르고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그 위대하심을 다는 몰라도 어느 정도라도 알 때, 그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지금 무엇을 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때 내가 그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고 더욱 알게 되면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소망을 가집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바랄 수가 있습니까? 우리에게 분명한 지식이 생길 때 비로소 거기에 소망을 둘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을 바라게 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됩니다. 여러분, 소망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둘만 합니다. 왜요?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은 절대로 실망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인내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배워서 알기 전에 인내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1장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에 보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욥의 인내를 배우고, 주님의 인내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내를 아는 사람은 우리가 왜 인내해야 하는지를 압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든든히 섭니다.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교회에 편지 하면서 “주 안에 서라”고 했습니다. 든든히 서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쓰십니다. 흔들리는 사람을 쓸 수가 없습니다. 든든히 선 사람이라야 주님의 교회에서 바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흔들거리는 사람은 바로 봉사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차례대로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조심할 것은, 내 생각에 맞추어 읽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로 읽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고 빼 버리지 말아야 하며,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덜어 버리지 말고 모두 읽으셔야 합니다. 전에 어떤 분은 교회는 다니면서도 작은 마누라를 두고 살았는데 이 분은 신약성경은 전혀 읽지 않고 구약만 꼭 읽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아시겠지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중에 깨달은 부분이 있으면 그 성경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의 맛이 더욱 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나 혼자 읽고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는 되면 그러는 가운데 자기 혼자서는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되고 은혜도 더욱 받게 됩니다. 그리고 사귀어야 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의무가 무엇입니까?
아직도 우리가 알게 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 줄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로마서 10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그렇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를 어떻게 전파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을 더 많이 더 깊이 더 넓게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좋으신 하나님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분은 절대로 나를 손해 되게 하시는 일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박조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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