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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 (전 0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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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전 3:1∼11)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관심사가 현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자녀가 있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현재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는 또한 미래를 낳는 모체가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현재를 만드시고 또한 현재 일하셔서 우리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1. 현재에서 되돌아본 과거

현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그 길목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후 높은 보좌에 앉아 과거를 되돌아 보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오지 않았다면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애굽으로 오기 위해, 그는 형들에 의해 애굽 사람에게 팔려야만 했습니다. 형들에 의해 팔릴 때 그는 절망적이었고 불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좌에 앉아 그러한 과거를 생각해 보니 과거의 불행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잡아 그의 옷을 벗기고 마른 우물에 던졌다가 이후 아라비아 대상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요셉을 은 20냥에 애굽의 종으로 팔았습니다. 그때는 절망 가운데 캄캄하여 하나님이 어디계신지 알 수 없었으나 이제 보니 형들이 그를 잡아 옷을 벗길 때에도, 마른 우물에 던졌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또한 그가 아라비아 대상에게 팔려 그들에게 끌려 갈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삶의 골목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로 10년을 지낼 당시 그에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이제 국무총리가 되어 그 때의 일을 되돌아 보니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한 10년의 기간은 그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었습니다. 방대한 애굽의 국민들을 다스리는 데에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데, 그 인내의 교육을 그는 10년간의 종살이를 통해 배우게 된 것입니다. 당시 그는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당했습니다. 그 일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그가 오히려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당시에는 세상에 그처럼 억울한 일이 없었습니다. 시위대 뜰 감방에 갖힌 그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그로서는 기가막힌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시를 되돌아 보면 그것은 크나큰 하나님의 은총이요 섭리였습니다. 그가 그 때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었더라면, 그곳에서 술장관과 떡장관의 꿈을 해석하는 기회를 얻지 못했었더라면 그는 애굽의 바로왕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했던 꿈 해석으로 인해 그는 바로왕 앞에서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 시위대 뜰에 있는 감옥에서 3년 동안 옥살이를 한 것은 그 시간을 통해 그가 많은 시간 하나님께 기도하고 묵상하며 그의 영성을 기르고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습니다. 감옥에서 3년간의 기도생활은 그에게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습니까? 그 기간의 기도와 묵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었기에 그는 영안이 밝아지고 영의 귀가 밝아지고, 영의 깨달음이 밝아져 바로왕의 꿈을 명쾌하게 해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로 중동지역의 기근을 건질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불행한 사건들이 이제 애굽의 총리가 된 현재 되돌아 볼 때는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였던 것입니다. 이후 요셉의 형들이 총리가 된 요셉을 알아보고 그가 자신들의 과거 죄로인해 벌할까 두려워 죄를 용서해 달라며 엎드려 빌었을 때 요셉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게 하셨나니 당신은 두려워 마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당시에는 처절한 고통이고 절대절망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황금길이요 은총이요 축복이며 영광의 역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그 일이 일어날 당시에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현재의 시점에서 그것을 되돌아 보면 그 때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셨던 것을, 하나님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 3∼4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는 천지 어디를 보아도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 홀로 고독하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아, 그때 하나님께서 계셔서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이끄셨구나’라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바울 선생은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했습니다.

교회음악사상 가장 뛰어난 작곡가로 평가되는 사람은 요한 세바스찬 바하입니다. 그의 생애는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바하는 10세가 되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도 결혼한 지 13년 째 되는 해 죽었고 자녀 중 한 명은 정신박약아였습니다. 또 그는 노년에 과로로 인해 여러 가지 병을 얻었는데 1750년에는 두 번의 눈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시각장애인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이처럼 억센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처럼 모진 고난과 시련이 거듭되었지만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그는 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고통이 다가올 수록 더욱 많이 기도하고 주께 매달려 늘 성령 충만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영감과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작곡을 한 음악마다 끝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을 반드시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이 바하의 음악을 통해 큰 영감을 받고 감동받습니다. 바하의 인생에 그처럼 쓰디쓴 고난과 괴로움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바하음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하의 생애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때는 참으로 처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고난 앞에서 꿈과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주께 매달렸습니다. 바하에게 고난은 오히려 놀라운 영감을 받는 계기가 되어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 받을 당시에는 그 고난이 너무나 힘들지만 훗날 되돌아 보면, 그 고난은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과 섭리 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인은 “하나님은 두 저울이 있는데 하나는 고난의 저울이요, 다른 하나는 위안의 저울이다. 고난의 저울이 차야 위안의 저울도 찬다”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당한 수많은 고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라며 몸부림쳤지만 그것을 오늘날 되돌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고난의 그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고난을 영광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현재의 고난

현재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 왜 제가 이러한 고난을 받아야만 합니까?”라며 슬퍼하고 탄식합니다. 우리의 눈은 과거를 되돌아 볼 수는 있어도 한 치 앞의 미래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난으로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서 8장 7절에도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전도서 7장 14절에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불행을 겪고 우리가 보기에는 부정한 사람인데 잘 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테러에 의해 죄 없는 어린 아이가 죽어갈 때 우리는 ‘왜 저 죄 없는 어린 아이가 죽어야 하느냐’며 탄식합니다. 술취한 운전자에 의해 치어 죽은 남편을 안고 통곡하는 부인을 보며 우리도 함께 그 억울함과 한스러움에 아파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오늘 이 세상 가운데 수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불공평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부르짖습니다. 전도서 8장 11절에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잠언 24장 19∼20절에는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 145편 20절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 속에 하나님께서는 숨어계십니다. 과거를 되돌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신 흔적을 뚜렷이 볼 수 있지만,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사야 45장 15절에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르짖어 ‘하나님 어디계십니까?’라고 외쳐도 하나님은 숨어서 잠잠하시며 대답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보이지 않지만, 숨어서 내일을 빚고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심는지 그것을 살피시고 오늘 심은 그것으로 내일 거두도록 섭리하고 계십니다.

시편 37편 1∼2절에 “행악자를 위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악자나 불의를 행한 자가 잘된다고 우리는 불평하지만 숨어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시편 37편 10∼11절에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잠잠하시고 숨어계셔서 우리는 안계신 것 같이 느끼지만 하나님은 그런 가운데 모든 것을 살피시고 보응하십니다. 현재 우리의 행한 일들을 통해 미래에 선으로 보상하기 위해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착하고 선한 일을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부모와 형제, 이웃과 친척 등 그 누구도 우리가 한 선하고 착한 일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숨어서 그 모든 행실을 보십니다. 그리고 훗날 우리에게 더욱 크게 보상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행한 일들은 훗날 결국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속에서 내일을 빚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악의 씨를 뿌리면 재앙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의 씨를 뿌리면 복의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씨는 좋은 열매를 맺고 악한 씨는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좋은 말과 생각, 선한 마음으로 살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언어와 심사,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일 우리는 그에 따른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숨어 계시지만 내일을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8장 17∼18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당장에 그것으로 인해 손해를 보고 어려움을 겪는 것 같지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분별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특별한 복을 주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미래는 확실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기에는 어둡고 캄캄하여 좌절되고 절망스러울지라도 주께서 함께 하셔서 미래에 선이 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모든 일들 가운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현재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쉬지 않고 역사하시어 우리가 나중에 되돌아 볼 때 위대한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6∼17절에서 바울 선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현재가 심는 미래

현재는 미래를 심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낭비하며 지내면 안됩니다. 미래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창조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을 만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과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가 75세임에도 불구하고 꿈과 믿음을 마음에 품자 그 꿈과 믿음이 그를 이끌어 미래의 가나안 땅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2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어린 아기를 잉태한 어머니가 어떻게 아기를 낳습니까? 현재 마음속에 꿈과 믿음이 잉태하지 않는 것이 미래에 우연히 생기지 않습니다. 개인이나 민족의 미래는 현재 그가 어떤 꿈과 믿음을 품고 현명한 행동을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요엘 2장 28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꿈을 품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 대한 미래의 꿈을 심어 주십니다. 지금 마음속에 꿈과 믿음을 품은 사람이 미래를 생산하게 됩니다. 꿈도 믿음도 품지 않은 사람은 미래가 없습니다. 주님은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꿈과 믿음을 마음에 품으면 시련이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꿈과 믿음을 이루어주시기 위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통해 마땅한 그릇을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식에게 좋은 기업을 물려 주려면 먼저 그를 교육시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육받지 않는 자식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큰 꿈을 품으면 그에 적당한 큰 시련을 통과하도록 하시어 그 큰 꿈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드십니다. 우리가 작은 꿈을 품으면 작은 시련을 통해 교육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환난을 통해 우리를 교육시켜서 우리가 품었던 훌륭한 꿈을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먼저 낮추시고 시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고 온유하게 만들며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드신 후에 마침내 복을 주십니다. 야고보서 1장 3∼4절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꿈입니다. 우리가 저 세상에 올라가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 앓는 것이 없는 낙원에서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을 기대합니다. 이 얼마나 장대하고 영광스러운 꿈입니까? 이러한 천국 꿈을 품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많은 시험과 환난을 당하는 것안 당연합니다. 천국에서 상을 크게 받을 사람은 이 땅에서 더 호된 훈련과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적은 상을 받을 사람은 적은 교육을 받습니다. 해 같이 빛날 사람은 큰 시련과 환난을 통할 것이며 달 같이 빛날 사람은 그에 맞는 훈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천국으로 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천국에서의 상급은 극히 적을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상급은 순교의 상급입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순교의 특권을 주시지 않습니다. 순교의 특권을 받은 사람은 이 땅에서 목숨을 잃는 극심한 고난을 겪으나 하늘나라에서는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될 사람입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바울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장차 나타날 영광은 너무나 큰데, 여기 이 땅에서 자그마한 고난을 받고 난 다음 그 훈련으로 인해 우리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18절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고 찬미해야합니다. 지금의 이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기 위한 교육과 훈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미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해야하는데,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을 믿고 주일 성수하며 정직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을 택해야 합니다. 이러한 생활이 괴롭다고 예수님을 믿지않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자신이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좁은 길일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며 영광을 돌리고 살겠다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미래는 영광스러운 미래가 됩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은, 잠시 이 땅에 살면서 쾌락을 즐기며 즐겁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마귀를 따라 살면서 주를 거역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의 결국에 대해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는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시 세상의 안락을 택했을 때 우리의 결국은 영원한 좌절과 절망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 30장 19∼20절에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사망의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복과 저주의 길도 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과 복이 있고 예수님 밖에는 죽음과 저주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심고 거두며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미래를 점칠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를 알려 달라고 여기저기에 가서 손내밀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꿈과 믿음을 심고 거둠을 통해서 또한 올바른 선택을 통해 현재 미래를 계획하고 계십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잠잠하시며 숨어 일하시어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에 불신자나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비웃으며 계시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말고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밝은 마음으로 인생을 한 번 뒤돌아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우리가 살아온 그 뒤안길 구석마다, 길목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보여줍니다. 현재는 하나님이 숨어 역사하시며 미래를 만들어 가십니다. 이렇듯 현재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반드시 미래와 영혼에 열매 맺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며 경건하게 살고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믿는 자에게는 찬란하고 영광스럽고 넘치는 은혜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짧은 세월을 살면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선택한 사람은 그 미래에 형언할 수 없는 좌절과 절망과 영원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과 유황이 들끓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살면서 미래를 심고 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볼 수 있고, 현재는 숨어서 역사하시나 하나님은 과거에 우리가 심은대로 현재 이루어 주십니다. 현재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올바른 꿈을 심고 올바른 믿음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며 나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너무도 영광스런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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