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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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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은 목가(牧歌)적 노래입니다. 즉, 목동들이 양떼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이기도하고 시냇가로 인도하면서 부르는 목동의 노래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웃 교회 헌신예배에 강사로 초청을 받고 미리 본문과 제목을 전해주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설교 본문은 어디입니까?” “시편 23편 1-6절입니다.” “제목은요?” 그런데 그 때 전화감이 안 좋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목” 뭐라고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 다음은요? “그거면 다지 뭐예요.” 통화를 마치고 주일날 설교하기 위하여 초청받은 교회에 도착하여 주보를 보았더니 유난히 설교제목이 길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다지 뭐예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다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쓴 시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2대 왕을 지낸 사람이기도 하지만 어린시절 아버지 이새의 양떼를 몰고 다니면서 양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양을 잘 알고, 양과 목자의 관계를 잘 알았습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양과 목자로 표현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우리를 양으로 하나님을 목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100편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기르시는 양이란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에도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고 했습니다. 양은 혼자 스스로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동물입니다. 많은 동물들이 혼자의 힘으로 집을 찾아오지만 양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명견(名犬)이 있습니다. 북한의 풍산개와 남한의 진돗개입니다. 몇 해 전에 진도에 사는 할머니가 자식처럼 키우던 진돗개를 차에 태워 멀리 보내게 되었는데 이 개가 3개월 만에 혼자 집을 찾아왔습니다. 이처럼 개나 고양이는 혼자서도 집을 잘 찾아오지만 양은 우리를 떠나면 목자에 의해서만 집에 올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본향 집에 살고 있었는데 이 땅에 잠시 여행을 왔다가 돌아가야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본향 집을 갈 수 없습니다.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양은 고집에 아주 센 동물입니다. 양이 온순하기는 하지만 한번 고집을 피우면 좀처럼 꺾을 수가 없습니다. 앞에 가던 양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뒤에 가던 양도 그곳으로만 가서 자기도 넘어지고 맙니다. 다른 데로 갈 줄 모르고 그곳만 고집합니다. 양은 자기 방어 능력도 없습니다. 많은 동물들이 사나운 이빨이나, 날카로운 발톱이나, 아니면 뿔이라도 있어서 자기를 방어하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은 사나운 이빨도 없고,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뿔도 없습니다. 우리는 양 같아서 사나운 사단이 우리를 공격해 올 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물리칠 수 없습니다. 목자의 도움이 있어야만 합니다. 양은 의존성이 강하여 오직 목자만 의지합니다.
본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목자’도 아니고, ‘한 목자’도 아니라 ‘나의 목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죄를 알게 해주셨고, 회개하도록 깨우쳐 주셨고, 생명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과거에는 에벤에셀로 도우셨고, 현재는 임마누엘로 나와 함께 해 주시고, 우리의 미래에도 영원토록 여호와 이레로 이끌어 주십니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시며, 방법이 없을 때에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길을 살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어려운 고난에서 건짐받으면 감사합니다. 중병을 앓다가 기적적으로 나으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은 더욱 더 감사한 일입니다. 사업에 실패했다가 다시 일어난 사람도 감사하지만 실패하지 않고 순탄하게 지낸 것은 더욱 감사한 일입니다. 돈이나 지식이나 권력은 누릴수록 목마른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사람은 목마름이 없고 언제나 만족합니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 필요를 구하고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2. 지키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
2절에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목동생활을 오랫동안 해 본 경험이 있기에 누구보다도 목동의 하루 일과를 잘 압니다. 목동은 새벽에 일어나 양이 풀을 뜯도록 우리에서 풀어줍니다. 오전 10시쯤이 되면 팔레스타인의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강하기에 피곤해집니다. 이 시간이면 푸른 초장에서 양떼들을 쉬게 해야 합니다. 양들은 초장에 누워 되새김질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즉 휴식과 자기반성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일주일동안 열심히 일한 후 주일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쉬면서 새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혼자의 힘으로 850명의 거짓선지자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왕후가 엘리야를 죽이려 하자 산속으로 도망갑니다. 기진맥진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는데 지진 가운데 계시지 않았고, 불 속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미세한 음성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조용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다메섹에 가다가 빛 가운데 주님을 만났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가 조용히 3일간 시간을 보낼 때에 하나님은 그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양은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양은 흐르는 물을 무서워합니다. 양은 털이 길고 수영을 못하기에 흐르는 물가에서는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이때 목자는 돌로 흐르는 물을 막아 잔잔한 물가를 만들어 주어 양떼들을 인도합니다. 우리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과 능력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시편 121편 3-4절에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고 고백했습니다.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3. 채찍질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
양이 종일 들판에 있으면 목자에게서 멀어집니다.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인도합니다. 양떼들이 목자를 멀리하면 어려운 일들이 생깁니다. 사나운 이리나 곰이 나타나기도 하고 구덩이에 빠지기도 합니다. 목자는 생명을 걸고 맹수들과 싸워 양을 지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는 맹수들도 물리쳤고, 그 경험으로 골리앗도 물리치는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 멀리할 때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는 실패를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영혼의 소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여 눈물로 회개하는 다윗을 용서해 주시고 그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셨습니다. 고난과 슬픔을 당하면 마음의 상처가 생깁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에겐 소생이 필요합니다. 마펫이란 성경학자는 “그가 내 안에 다시 삶을 불어넣어 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잠언 3장 6절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4절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라고 했는데 헨리 워드비쳐는 “시편 23편은 시편의 나이팅게일'이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침울한 계곡이며 인생의 어둡고 추운 때 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는 주께서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인도하십니다. 막대기는 잘못된 길을 가면 때려서 바른 길로 인도할 때 쓰는 도구이며, 지팡이는 끝이 구부러져 양이 골짜기나 구덩이에 빠졌을 때, 건질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면 때로는 환란으로, 때로는 질병의 막대기로 때리십니다. 그러나 절망의 구덩이에 빠졌을 때는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상은 금메달이나 은메달 같은 상이 아니라 밥상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나를 인도하셔서 승리의 잔치 상을 베푸십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으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 했습니다. 양떼들이 풀을 뜯다가 코나 머리를 다치면 목자가 기름을 발라주어야 합니다. 코나 머리에 상처가 생기면 파리 떼들이 앉아 구더기가 생겨 썩게 됩니다. 목자는 양의 상처에 기름을 발라 아물게 하고 구더기가 생기지 않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합니다. 요한복음 10장 3절에는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존재가치 인정해주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마지막절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나의 평생 동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영원토록 동행하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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