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시간을 거룩하게 사용하라 (사 55:6-9)

첨부 1


오늘은 7월의 첫 주일입니다. 일 년의 절반이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절반을 시작하는 주일입니다. 이때에 우리가 시간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간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인생을 만드는 재료다.”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그것을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명암이 달라진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맛깔스러운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 재료와 양념을 잘 배합하고 숙성시킨 다음에 우리의 가족들에게 김치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멋지고 값지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시간, 그것도 한정된 시간이라고 하는 이 재료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허무 속으로 빠지게 되고 무질서 속에 처박히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 삶이 그냥 무의미하게 끝나는 것은 아닐까? 아무런 뜻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그냥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에 대해 마음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무의미함을 깨뜨려 버리는 원동력이 바로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면 때때로 ‘내가 이렇게 살아왔단 말인가?’ 하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어떤 충격이냐 하면, 우리가 주도적으로 우리 시간을 사용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외부 요인에 우리 시간을 그냥 저절로, 그것도 많이 뺏겨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텔레비전이 우리 시간을 뺏어 버리고, 신문이 우리 시간을 뺏어 버리고, 인터넷이 우리 시간을 뺏어 버립니다. 또 조직체가, 친구라는 이름의 권면 때문에 우리 시간들이 그냥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고 하는 데에 우리는 깊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해서 이끌려 왔다는 것, 그것도 잘못된 습관에 의해서 우리가 사로잡혀 살아왔다고 하는 그 사실이 스스로를 놀라게 만듭니다. 그래서 쳇바퀴 같은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아! 나는 바쁘다.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자기 암시와 핑계를 대면서 살고 있는 것이 대부분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고, 일주일은 168시간이고, 일 년은 365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공평한 선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시간’이라고 하는 선물입니다. 때로는 부모에 대한 불평을 가질 수 있어도, 환경과 여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 있어도, 우리를 불평하게 못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신 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피터 드러커의 말입니다. “시간은 독특한 자원이다. 아무리 시간의 수요가 높다 할지라도 공급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은 모두 소모될 것이고 계속 저장할 수 없다. 어떠한 것도 시간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 모두 누구나 깊이 느끼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간은 우리의 삶의 기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시간은 선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시간을 선택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어떤 시간도 우리의 시간이 될 수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서 55장 6절에서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결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여러 기회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그 시간이 우리의 것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결단을 유보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삶은 선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기회로만 다가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택하지 않는 시간은 그래서 결코 자신의 시간이 되지 못하고, 선택하지 않는 삶은 그냥 존재할 뿐이지 삶을 역동적으로 의미 있게 사는 그런 귀한 모습이 되지 못한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선택한다는 것, 결단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수동적인 방관자의 자리에 머무르기를 멈춘다는 것을 뜻합니다. 능동적인 참여자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말씀합니다. 만날 만할 때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인생을 선택할 때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또 무엇이 필요 없고 버려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가르쳐 줍니다.
이사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찾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 있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약속합니다. 그 미래는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먼저 구하는 것에 있으며, 복의 근원인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옛 습관들을 다 벗어버리고 바벨론에서의 그 습관들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때에야 진정한 새로움이 주어질 수가 있고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가 있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7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가장 우선적인 것, 가장 중요한 것을 택한다는 것은 그것보다 못한 것을 뒤로 미룬다는 것입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을 택한다는 것은 그 우선적인 것을 택하는 데 방해되는 것을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을 선택한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나타났던 잘못된 옛 습관을 과감하게 단절시킬 줄 아는 용기를 갖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비뚤어진 생각, 잘못된 길, 잘못된 습관, 그것을 버려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그것을 버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옛 습관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옛 길, 즉 악과 거짓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오”를 말해야 할 때 “아니오”를 할 줄 모르는 것, 아무 때나 자기 생각도 없이 그저 “예”라고 대답하는 잘못된 습관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오”를 할 줄 모르는 것도 잘못된 습관이지만 아무 때나 “예” 하고 따라가는 것도 잘못된 습관입니다. 외국에서 일어난 일인데, 우리의 가족들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열 살 난 딸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딸이 교육적으로 훈련이 잘 안 되어 상담자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딸아이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제 시간에 학교 갈 준비를 도무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학교 버스를 놓칩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딸을 학교까지 바래다주어야 해요. 도대체 딸 때문에 신경 쓰이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고, 매일매일 한두 시간씩 쓸데없이 시간을 소비해 버리게 됩니다. 이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가 어제 저녁에 했던 숙제가 어디 있는지도 도무지 알지를 못해요. 그래서 아침마다 이 아이와 싸움하는 것 때문에 저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 도무지 달갑지가 않습니다.” 어머니의 고백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 상담자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물었습니다. “딸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좀 기울여 봤습니까?”
“모든 것을 다 해 보았지요. 대화해 보기도 하고 위협해 보기도 하고, 용돈을 안 준다고 그러기도 하고, TV를 못 보게 한다고 하기도 하고, 아버지한테 이르겠다고 하기도 하고….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상담자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딸이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행동한 결과로 고통을 받게 해야 합니다. 자명종 시계를 하나 사 주십시오. 자명종이 울린 후, 옷 입고 아침 식사를 하는 그 모든 일을 30분 안에 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입을 옷을 미리 준비하게 하고, 숙제한 것도 미리 책상 위에 올려놓게 하고, 출발하기 15분 전에 단 한 번만 경고를 해 주십시오. 만약 아이가 늦게 일어나서 버스를 놓치면 걸어가게 하고, 결석하게 되면 하루를 방에서 그냥 있게 하십시오.” 여러분, 특히 어머니들이라면 이 말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어머니도 우리 어머니들과 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해요? 집에서 학교까지는 10km나 되는데…. 딸아이는 아직 열 살밖에 안됐어요. 불쌍해서 어떻게…. 그냥 제가 차로 데려다 주는 게 어떨까요?” 그랬더니 이 상담자는 단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해 보기 바랍니다. 버스를 못타면 결석하게 하세요. 그건 자기 잘못입니다. 당신은 모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학교를 하루 결석하게 하든가요! 결석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시간 관리를 바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한번 가르쳐 보기 바랍니다.” 어머니는 큰맘을 먹고 상담자가 일러준 대로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첫날은 딸아이가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렇지만 학교를 데려다 주지 않았고, 하루를 결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 스스로 일찍 일어나서 가방도 스스로 챙기고, 자기 스스로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옛 습관을 깨뜨려 버릴 때 때로는 고통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그 옛 습관을 고집하는 것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바뀌게 됩니다. 이 옛 습관은 때로 자기 고집으로 바뀝니다. 때로 자기 고집은 자기 집착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고정관념이 됩니다. 이 옛 습관은 나 자신을 감옥 속에 가두어 두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자신은 고정관념대로 하던 일을 그냥 합니다. 오늘도 반복해서 가는 곳을 또 갑니다. 항상 해 왔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은 환경에 잘 적응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런 반복된 습관이 나 자신을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구나.’ 하고 탄식하는 때가 다가옵니다. 때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옛 습관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기도 합니다. “하나님, 저는 천성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지박약으로 태어나게 하셨지 않습니까?” 때로는 아주 겸손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이렇게 못나게 만드셨습니까?” 그것은 겸손을 가장하여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잘못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시간을 활용하는 것, 시간을 바르게 사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너희가 만날 만할 때에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씀처럼 다른 사람이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잠언 25장 28절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면 인생의 어느 것도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의 활용을 막는 요인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누구에게나 공통적입니다.
첫째는,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은 시간 낭비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겼는데 1달란트 받은 종은 그냥 땅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때에 주인이 돌아와서 어떻게 꾸짖었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악과 게으름은 함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도 죄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을 포기하는 것, 우리에게 주신 삶을 게으름으로 낭비하는 것도 성경에 의하면 명백한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체스터필드(Chesterfield)라고 하는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게으름은 허약한 정신의 피난처이며, 바보들의 휴일일 뿐이다.” 게으름은 삶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생존하게만 하는 것입니다.
시간의 바른 활용을 막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소홀히 하는 것도 올바른 시간 활용이 아닙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혹시 신우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학교에서 기독교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신우회에 열심히 참석한다고 하면서 자기 회사의 업무를 등한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사람은 결코 시간을 올바르게 쓰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조롱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면서 자기의 일만 하고 있고, 회사 업무는 등한시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공동체 안에서 섹트(sect)를 만들어 낼 뿐이고, 공동체의 목표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시간과 정성을 더 내야 합니다.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감동을 받고 동료가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더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놀라는 것입니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집중해서 일을 하고, 맡겨진 일들을 바르게 감당해서 직장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시간의 바른 활용을 막는 요인이 있습니다. 가장 우선적인 삶의 목표인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목표가 상실될 때입니다. 우선권이 없는 시간 대부분은 우리를 무질서 속으로 빠뜨립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는 우리의 일에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러분, 차가 고장 나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자동차 정비 업소에 가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우리의 문제에 가장 전문가를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에 대해 가장 전문가가 누구입니까?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지성을 품게 해 주신 분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감성과 하나님의 의지를 갖게 해 주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우리가 올바로 우리 자신의 삶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주일날 이른 아침에, 이 바쁜 아침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린다는 이 귀한 결정도 우리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그만큼 너무나 귀하고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너무나 잘한 일인 것입니다.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자긍심을 갖고, 우리가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올해 연초에 무엇을 결심하셨습니까? 하나님과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린다고 약속하셨습니까? 기도하겠다고, 성경 읽기를 계속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새벽을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다시 한번 우리에게 주신 이 약속을 되새겨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분입니다. 그분 안에 참된 지혜가 있습니다. 그분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뛰어납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죄와 연약함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간을 거룩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닙니다. 우리 시간의 우선권을 하나님께 두고 우리에 주어진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찰스 스탠리가 『햇빛 찬란한 날들』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날의 일과 중에 빼먹은 시간이 있었다면 주님과의 QT 시간이었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면서 진리들을 발견할 시간을 따로 떼어놓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삶이 흐트러졌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루 일과 중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면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만나게 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라고 노래하는 천사들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과 하나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합시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합시다. 그러면 그때 우리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하게 되면 우리 자신이 거룩해집니다. 우리가 만지는 것, 우리가 서 있는 그 장소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의 시간이 거룩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어떤 것을 해도 괜찮습니다. 깊은 잠을 자도 괜찮습니다. 스포츠 시합을 하면서 즐거워해도 괜찮습니다. 앉아서 공부를 해도 괜찮습니다. 오랜 친구와 담소를 나누어도 괜찮은 것입니다. 직장에 나가서 열심히 땀 흘리는 것도 괜찮은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에게 다가올 모든 날들은 기쁨의 날이 되고 감사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로버트슨(A. T. Robertson)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의 기쁨』(Paul's Joy in Christ)이라는 책에서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7일 한 주간이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 된다고 하면서 요일마다 제목을 붙였습니다.

행복한 월요일(a happy Monday)
복된 화요일(a blessed Tuesday)
기쁨 충만한 수요일(a joyful Wednesday)
즐거운 목요일(a delightful Thursday)
참 좋은 금요일 (a good Friday)
영광스러운 토요일(a glorious Saturday)
천국을 경험하는 일요일(a heavenly Sunday)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을 먼저 찾게 되고, 하나님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면 모든 날들이 기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노래하는 날이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이 시간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먼저 하나님을 모시고 그분과 친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옛 습관을 버리는 그 자리에 들게 되면 어떤 시간도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는 시간도, 남편을 만나는 시간도, 사랑하는 자식과 함께 있는 시간도, 직장에 가는 시간도, 즐겁게 스포츠를 하는 시간도, 다 기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나머지 시간을 그냥 버리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주도적으로 거룩하게 사용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