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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보내소서 (사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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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왕은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대로 이스라엘 남쪽 유대 나라의 10대 왕입니다. 오십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그의 전반기는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은혜와 복을 많이 받고 그의 지위와 명성이 올라가고 열국 가운데 그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라가 평안하며 그의 궁궐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잘 다스렸지만 자기 마음에 일어나는 교만과 싸움에는 실패하였습니다. 교만은 어떻게 뚜렷한 것도 아니고 육법전서에 나오는 것처럼 법조문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대체로 교만이라고 하는 이 적을 관리하지 못해서 넘어지게 되고 불행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고 말합니다. 암 이라고 하는 것이 별로 느낌이 없이 우리를 삼키듯이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밖에 있는 대적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고 내 안에 있으면서 우리는 그 교만이라는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형체에 의해서 가정이 무너지게 되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스려도 이 교만을 다스리지 아니하면 우리는 누구나 웃시야가 될 수 있고 사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그러기 때문에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늘 겸손하도록 힘써야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겸손한 집은 어떤 대적이라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재산이, 우리가 누렸던 모든 영광이, 오랫동안 수고하고 땀 흘리고 얻은 명예들이 다 땅에 쏟아지고 그릇이 깨어지는 것은 대체로 교만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겸손한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면서 전능하신 분이시면서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지시고 더 낮아지셨습니다.
웃시야는 이렇게 해서 한 시대를 끝내게 되고 그와 함께 궁궐에서 온갖 영광을 누리며 웃시야를 섬겼던 이사야라고 하는 하나님의 종이 드디어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웃시야가 죽었으니까요. 이 허무함과 좌절과 견딜 수 없는 공허함에 그는 이것을 극복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사람이 있는 사람이 없을 때, 재산이 떠나갈 때 그 충격은 제 삼자가 생각하는 것과 훨씬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심각합니다. 사람이 인기가 떠나가고 질병이 와서 건강이 떠나갈 때 그 충격은 대체로 삼자들은 잘 모를 정도로 큰 것이지요. 권력의 우산아래 잘 지내던 이 이사야는 드디어 하나님 앞
에 나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냥 위로 받으려고 대체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요. 자신의 허무함을 좀 극복하려고 나가는데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새로운,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그곳에서 크게 세 가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성전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높으신 보좌에 높이 들리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보게 되어 있습니다. 영안이 열려지는 것이지요. 웃
시야가 제일인 줄 알았는데 웃시야 위에 계신 하나님, 높으신 하나님, 보좌에 계신 하나님 무너지지 아니하는 왕국 영원한 왕국 하나님의 왕국에 계신 우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무엇보다도 눈이 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의 옷자락이 주의 성전에 가득한 것을 경험하지요. 제가 지난 주일에 이런 말씀을 다 드렸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모인 줄로 알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우리를 덮는 것입니다. 주의 사랑의 옷자락이 우리를 덮어 주시는 것이지요. 주의 긍휼과 은총의 옷이 우리를 덮어 주시는 것이
지요. 그래서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주의 옷자락을 덮어야 할 피조물인 것입니다. 유명한 파스칼도 말하기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확실한 것입니다. 어떤 피조물로도 우리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천하를 가진 듯한 물질을 가지고 권력과 인기를 가져도 마음만은 늘 비는 것은 이 공간은 하늘의 것으로 거룩한 것으로 신령한 것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것이 채워질 때 행복한 것입니다. 이것이 채워질 때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 가지의 아름다운 선물이 있다고 하지요. 세 개의 집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가정이라고 하는 집이요, 하나는 직장이라고 하는 집이요, 하나는 교회라고 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소의 집인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서로 부부간에 이성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가
정의 집을 주셨고 두 번째는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내 주머니를 채우도록 하나님께서 직장과 사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영적으로 신령한 집에서 내 심령을 만족하게 하는 이 세 가지가 다같이 있어야 되도록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땅위에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 개의 집을 갖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가정에서 얻습니다. 물질은 직장에서 얻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는 항상 채워져야 되게 되어 있고 이 세 가지는 항상 짐을 질 때만이 또 채워지도록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서로 나누며 헌신하며 희생하며 끝까지 참고 살아갈 때, 짐을 질 때에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에 아무 것도 없이 두 사람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별장에 가서 잠만 자고 밥만 먹으면 행복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부부간에는 서로 사랑이라고 하는 짐을 질 때 오는 거예
요. 그래서 짐이 없을 때 사람은 허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혼여행 가서 잘 싸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아무 짐이 없으니까요. 놀고 자고 그래서 그만 틀어져서 '왜 늦게 나와? 빨리 나오라니까' 그러다가 올라올 때 비행기도 나누어 타고 오고 벌써 싫어 가지고 왜 그러느냐? 일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직장? 사업이 잘 되어야 합니다. 주머니가 차고 바쁘게 사업이 잘 되는 것 이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즐거움입니다. 거두는 즐거움입니다. 내 주머니가 차는 것, 즐거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채워주시고 항상 가나의 혼인잔치도 채워주시고 항상 채워 주시듯이 여러분의 주머니가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식당? 손님이 없는 식당이 주인이 행복한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바쁘고 밤늦게 열 두시까지도 손님이 많이 왔다가 가야 그 사업에 즐거움이 있는 거예요.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도 와서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멀어도 나와서 예배드려야 은혜 받는 곳이에요.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헌신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또 주님 앞에 최선을 다 할 때 영적인 만족이 오는 거예요. 은혜가 오는 거예요. 그냥 교회를 Go to church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다니면서 가정과 같이, 이 집이 주는 은혜가 다 땀 흘릴 때, 수고할 때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이 영적인 행복이 우리가 돈을 벌어서 집으로 가듯이 영적인 행복은 또 양쪽 가정과 기업을 다 잘 되게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주시는 은혜가 내 영혼에 큰 기쁨과 위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는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높으신 것, 하나님의 옷자락이 나를 덮을 때 이렇게 큰 위로가 되는 것,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이 심령에 이 공허하고 비어있는 마음을 주님이 채워 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송하는 걸 경험합니다. 스랍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봅니다. 경험합니다. 거룩한 것을 보아야 합니다.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내 주여 어둔 영혼을 환하게 하소서♬ 우리의 어두운 영안을 주여 환하게 하소서. 이것만 있다고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우리에게 또 다른 세계, 영원하고 거룩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가 보면서 우리에게 찬송이 있고 감사가 있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우리가 스랍의 위치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경험은 심령의 경험입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이 죄에 대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죄를 억누르면서 감추면서 살아온 자기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이 벌거벗은 모습같이 드러나면서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뜨거운 불에 있는 이 핀 숯을 가지고 내 입에
대면서 정결함을 얻는 경험을 합니다. 첫 번째는 눈이 열리고 두 번째는 마음이 열려졌습니다. 죄사함 받고 난 심령 속에 마음에 큰 기쁨과 소망과 어디서 날아오는지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기쁨이 왔습니다.
죄를 가지고는 우리가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죄의 짐을 짊어지고는 이 세상을 힘있게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누가 내 죄를 정결하게 해 줄 것입니까? 누가 내 죄의 짐을 벗겨 줄 것입니까? 저는 참 죄송한 이야기인데 어렸을 때 중학교 처음 다니다가 낚싯대가 하도 좋은 것을 유혹을 받아 가지고 외상으로 샀습니다. 그리고는 그걸 갚지를 못했습니다. 길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낚싯대에 고기가 걸린 것이 아니라 내가 걸려 가지고 그 집 앞을 못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내 생각에 그랬어요. 저 집이 속히 망하든지 어디로 이사를 가든지 돌아가시든지. 내가 그 학교 앞을 못 가니까요 늘 빙 돌아서 가니까요 그래가지고 항상 걸리는 것 있잖아요. 정문으로 못 들어가고 빙 돌아 가지고 다니면서 그렇게 눌려 있고 그 이후에도 늘 눌려 있다가 어느 때인가 그 집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고요. 이제 내가 마음대로 걸어 갈 수가 있구나 나를 정죄 할 분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몰라요.
여러분, 사람은 이 세상에 죄를 가지고는 차를 타도 불안하고요 사고 안나나 하고 음식을 먹어도 혹시 무슨 건강에 좋지 않지나 않나 하나님이 주신 걸 성경에 감사히 먹으라 했는데 언제나 질병, 병, 그러고 음식을 먹으니까 전부다 맛으로 먹지도 않고 감사함으로 먹지도 않는 거예요. 여기에는 뭐가 있고 여기에는 칼로리가 얼마나 있고 여기에는 무슨 지방이 많고 전부 이런 눈으로 보니까 음식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이것이 우리가 자유함이 없는 거예요. 잠을 자도 길을 걸어도 비행기를 타도 떨어지지 않나 앞으로 무슨 불경기가 오지 않나 모든 데에 대해서 우리가 불안해하는 거예요. 이것이 어디에서 오느냐? 죄에서 오는 거예요. 죄가 있는 사람의 마음은 닫혀 있습니다. 이 문을 열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너희 죄 흉악하나 기억도 안 하시네 너희 죄 흉악하나 기억도 안 하시네 죄의 빛 흉악하나 희게 되리라 죄의 빛 흉악하나 죄의 빛 흉악하나 눈과 같이 되리라 눈과 같이 되리라♬ 우리의 더러운 죄, 악한 죄 우리 하나님이 기억하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만드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담대히 힘있게 능력 있게 살아 갈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의 마음 문이 열려졌습니다. 죄사함을 받아야 마음이 열립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교회를 나와도 마음을 닫고 있는 것은 죄라고 하는 것이 있는 한 우리의 마음은 열려질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 이사야에게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이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할 일 많은 이 땅위에 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이 많은 사람들을 죄와 멸망에서 건지기 위하여 내가 누구를 보낼꼬 물에 빠져 죽어 가는 많은 영혼을 건지기 위하여 내가 누구를 보내야 된단 말인가 그 때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소리가 들립니다. 귀가 열렸습니다. 눈도 열리고 마음도 열리고 신령한 귀가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교회에 와서 어느 순간 들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주의 종이 전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께서 나에게 오셔서 오늘 말씀해 주시는 이 거룩한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주의 음성을 들을 때의 기쁨은 측량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사야가 고백합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내가 이제 주님의 그늘 아래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들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위대한 선지자로서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사야 6장 7장 11장은 그래서 너무 중요한 장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어떠한 한 선지자에게만 있는 과정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부름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러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높으심과 위대하심과 전능하심과 주의 옷자락을 경험하고 눈으로 볼뿐만 아니라 욥
이 말한 대로 '내가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경험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위대한 선지자의 길을 걸어갑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일군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웃시야 밑에서 있었던 그 영광은 잠간이었습니다. 그 그늘은 잠간이었습니다.
제가 시골에 있을 때 여름에, 여름 되면 대체로 낮잠을 한 번씩 자는데 어디서 잡니까? 에어컨이 없는 시대이니까 선풍기가 없는 시대이니까 나무 그늘 밑에서 잠을 잡니다. 그래서 그늘을 찾아 가지고 자면 여러분도 다 경험하셨을 겁니다. 한 두 시간만 자면 더 못 잡니다. 왜? 그늘이 바뀝니다. 처음에
는 완전히 그늘이었는데 해가 비춰서 더워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보는 거예요. 사람이 만든 그늘은 잠간입니다. 아름다운 얼굴, 그러나 그 얼굴도 잠간이에요. 해가 지는 거예요. 어두워지는 거예요. 주름이 잡히고 늘어나는 거예요. 우리 교회에도 제가 주례한 분이 수 백 명인데 그저 결혼 할 때 날씬하고 화장을 안 해도 얼마나 아름답고 깨끗한 얼굴이 사 오 년, 육 칠 년 지나 만나보면 벌써 화장이 짙어지는 거예요. 왜? 그늘이 지나가는 거예요. 이 세상의 그늘은 짧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사람의 그늘 직장의 그늘 권력의 그늘 물질의 그늘 건강의 그늘 이것 다 짧은 것입니다. 그 그늘 아래 있는 한은 우리가 불안합니다. 영원하신, 우리를 향하여 끝없이 그늘이 되어 주시는 십자가의 그늘로, 주의 품안으로 돌아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셨어도, 세상의 그늘 아래 들어갔어도 언제나 주님이 보내신 자로 나아가야 됩니다. 주님이 불러 주시고 거듭나고 새 사람 된 마음으로 직장에 가고 일터에 가고 가정으로 가서 무엇을 해도 좋습니다.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어떤 일을 할지라도 주님이 나를 보내신 자로 내가 가야 합니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금년에 노벨상을 받으셨습니다. 지난주에 발표되었지요. 이 년 전에는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노벨상을 받으셨습니다. 이번에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이 끝난 다음에 고향으로 가서 주일학교 교사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지요. 또 목수가 되어 가지고 그 만든 것이 해비타드(사랑의 집짓기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 하나만 보면 이사야 6장이 다 나오는 거예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본을 보여 주신 그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나라 분들도 모두 대통령 마치고 고향으로 가면 얼마나 좋아요?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고향이 얼마나 좋아요? 저도 고향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많아요. 너무 피곤하고 힘들고 그럴 때, 주일날이 참 힘들잖아요? 그래서 내가 저녁에 자다가 여보 우리 고향 가서 살면 어때요? 당신이나 가! 여자들은 시골에 안 가려고 그래요. 힘들거든요. 그래서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집 잘 지을 테니까 해도 당신이나 가
라니까요 해요.
영적인 고향 우리가 겸손하게 그런 일 하고 그래서 목수를 하고 얼마나 아름다워요? 주님을 위해서 주의 품안에 안기운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행복합니다. 사람이 높은 사람, 높은 지위 행복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낮은 곳에서 살아가면서 예수님 모시는 그의 품안에 있을 때에 우리가 참 행복하
게 되어 있는 거예요. 미국에서 방송국에서 한 번 방송을 하면서 그랬대요. 여러분, 정말 이 어렵고 삭막한 세대에 행복하신 분은 방송국으로 메모를 보내주세요. 그랬는데 놀랍게도 그 메모를 보낸 분이 오만 통이나 들어왔대요. '나는 행복하다', 그런데 주욱 그 자료를 보니까 무슨 좋은데서 행복한 것은 하나도 없고 일 하는 행복, 예쁜 꽃 기르는, 강아지 기르는, 어린 아이 기르는 전부 그런 행복이지 무슨 백악관에서 행복하다고 날아오는, 맨하탄에서, 대학총장이 보낸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그런데서 온 거예요. 이것이 기독교의 교인의 삶이잖아요. 카터가 그렇게 사는 것이잖아요. 목수를 하면서 찬송하면서 주와 함께 길가는 것, 주님이 주신 사명, 하늘과 연결된 삶이 행복한 거예요. 오늘 이 시대가 이렇게 행복을 찾아 헤매어도 행복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행복을 그런 데에 안 심었다는 거예요. 그 높은 곳에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어디로 헤매십니까? 저 낮은 곳 봉사하고 섬기고 겸손하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내 영혼에도 만족 또 하나님 아버지도 기뻐하시고 우리의 가는 길도 시온의 대로로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야합니까? 우리 주님의 품안으로 가야, 그의 품안에 안겨야 합니다. 그를 의지하고 그를 가까이 하고 그를 믿으며 살고 그 앞에 바로 서야 됩니다.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 앞에 주여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이런 고백하는 신앙을 서야 합니다. 우리
는 너무 사람을 의지합니다. 피조물을 너무 의지합니다. 육의 것을 너무 의지합니다. 21세기에 우리가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길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십자가 그늘 아래 머무르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기를 때부터 우리는 너무 독립심을 길러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너무 어머니, 부모를 의지하게 만드는 겁니다. 태어나서부터 네 살, 다섯 살이 되도 어머니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섯 일곱 살이 되어도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외국의 아이들 보세요. 낳아서 한 달이 안 돼도 혼자 재워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여름에 영화 같은 것 귀신 나오는 영화에 보면 창문이 흔들리고 흐흐흐하고 문이 열리고 애가 놀래 가지고 엄마! 하고 와도 엄마가 괜찮다 괜찮잖아 또 자라하고는 자기 방에 다시 갑니다. 철저하게 독립심을 길러줍니다. 아무리 재벌 아이라도 학교 기숙사에 보내고 의지하
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믿고 너 홀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우리는 얼마나 의지하게 합니까?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 젖을 떠나지를 못하게 합니다. 저희들 클 때 아이들을 보면 계속 엄마 팔 베고 엄마는 자도 젖은 늘 옆에 있도록, 자다가도 먹어요. 그리고 만지고 확인하고, 한 번도 떠날 수가 없어요. 나가면 또 업어야 해요. 계속 업는 거예요. 가면서도 또 젖을
먹여요. 얼마나 오랫동안 젖을 먹이는지요. 어떤 애들은 걸어가는데 젖을 올려서 뒤로 보내 먹이는 거예요. 그래 밤낮으로 먹이니까 이것이 완전히 방향이 없어요 제 각각 노는 거예요. 제가 시골 목회를 많이 했거든요. 설교를 하다가 보면 교인들 옷에서 전부 아래로 떨어지는 거예요. 너무 의지합니다.
우리가 지금 대학의 문제도 바로 그겁니다. 교수님을 너무 의지하는 거예요. 가르쳐준 그것만 외우고 그것만 배우는 거예요. 교수를 그렇게 의지하면 안돼요. 교수님은 방향을 잡아주고 상담해 주고 토의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가서 연구해 와서 제 뜻을 밝혀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선생님한테
받아쓰고 그냥 그대로 해서 외워 가지고 그러니까 경쟁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대학 나와 가지고도 의지하는 거예요. 너무 물질 의지하고 사람 의지하고 어디 들어가면 의지를 하고 크지를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만드신 곳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면 어디든지 매이지 않습니다. 의지하지 않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힘이에요. 우리는 떠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떠나서 큰 일을 했고 요셉이 부모를 떠나서 총리가 되었어요. 떠난다고 죽는 줄 압니까? 우리 교회 집사님 아이가 군에 갔는데 그럽니다. 목사님 우리 애가 대학을 못 들어가고 삼 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군에 갔습니다. 이 집은 언론계에 오래 전부터 있는 집사님이에요. 지금 국장으로 있어요. 큰 신문사에. 그런데 애가 공부가 잘 안 되가지고 그냥 군에 갔어요. 얼마나 걱정을 하고 얼마
나, 얘가 어떻게 잘못되지나 않나 했는데 군에 가서 얘가 얼마나 은혜를 받고 믿음 생활 바로 하고 얘가 군에 가서 인간이 된 거예요. 그래가지고 편지를 보냈는데 불효자는 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편지가 왔는데 부모님이 깜짝 놀란 거예요. 내가 몰랐다는 거예요. 어머니 품안에 그 그늘에 있으니까 몰랐죠. 군에 가서 보니까 기도해야 되겠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겠고 당당하게 훈련을 받아야 되겠기에 그러니까 완전히 거듭난 거예요.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거예요. 나가면 죽는 줄 알아요? 하나님 의지하면 다 사는 거예요. 꼭 내가 잡고 이 안에 있어야할 사람은 그건 있으나마나 입니다. 아예 그렇게 길러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내어 보내야 됩니다. 위험한 곳도 보내고 어려운 곳도 내 보내고 감당하고 해 보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라도 구원받을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십자가 그늘이어서 나옵니다. 은혜의 그늘입니다. 여기는 세상 부귀 영광 인기의 그늘이 아닙니다. 세상의 그늘은 잠간입니다. 여호와의 그늘은, 여호와의 보좌는 영원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우
리는 죄사함을 받고 이곳에서 자유를 얻으며 평안을 누리며 이 품안은 영원히 우리를 지켜주는 품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참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소개를 하나 하겠습니다. 인터넷에 나오고 지금 전국에 얼마나 요사이 인기가 있는 '이 지선' 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자신의 홈페이지 '주바라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분은 이화여대 4학년 재학중일 때 2000년 7월에 교통사고를 만났어요. 자기 오빠하고 오빠는 연대에 다니는데 둘이 안양인
데 같이 타고 집으로 가다가 서 있는데 술 취한 사람이 그냥 들이받아 가지고 이 차가 경계를 뛰어넘어 가지고 다른 오는 차를 들이받고 이래서 완전히 망가질 뿐만 아니라 워낙 세게 받아서 얘는 차 뒤 유리창으로 퉁겨 나와서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어요. 그리고 자동차 몇 대에 불이 나서 그대로 불이 붙
어 버렸어요. 그래서 소방관이 오고 오빠가 건져냈는데 이미 의식을 잃고 35%가 3도 화상을 입었어요. 얼굴은 눈 두 개만 남고는 그냥 다 눌러 앉아 버린 거예요. 눈썹도 없고, 그래서 8개월을 눈을 못 뜨고 산 거예요. 왜? 눈썹이 없어 가지고 그냥 해골과 같이 되어 버린 거예요. 그런데도 뇌를 안 다쳐서 계속 참 생명이 유지가 된 거예요. 수술만 열 한 번을 했고, 한 번 수술을 하면 열 네 시간에서 열 여덟 시간이 걸리는 대 수술을 거치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고 한번도 불평을 해 본 일이 없고 그 고통스런 삶 속에서도 늘 믿음으로 이겨내는 거예요. 살을 하나 하나 갖다 붙이면서 새로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런데 얘가 성경을 읽으면서 아, 내 고통이 남에게도, 고통 당하는 분에게도 위로가 되겠구나 하면서 이걸 홈페이지로 만들어 가지고 자기를 실은 거예요. 이 분은 눈썹이 없는데도 이제 눈썹이 없으면서 눈썹의 귀중함은 너무 깨달았다 그러고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고 여덟 개의 손가락인데도 위는 다 없어지고 온전한 것은 엄지손가락 하나인데 엄지손가락 하나 가지고 글을 쓰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귓바퀴가 없어져서 귓바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감사하는 거예요. 이대에 다닐 때 아름다운 아가씨가 말할 수없이 비참한데도 하나 둘 감사함으로 극복하면서 몸이 회복이 되고 좋아지고 걷게 되고 그런 과정을 주욱 인터넷에 전부 알리는 거예요. 모두가 다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도 자기가 아프고 그럴 때는 부모님 면회도 안 하는 거예요. 한 번도 불평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거예요. 이 약한 여자, 학생이지만 이렇게 만신창이 되어도 하나님 앞에 늘 서 있으니 그걸 이겨낼 수 있고 인내도 생기고 희망도 생기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 미
래의 소망까지 생기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조금만 좋은 것 없으면 금방 죽으려고 하는 이런 시대에 오늘 우리에게 이 엄청난 힘이 누구로부터 오느냐 말입니다. 누구의 그늘에서 우리가 쉼을 얻을 수가 있느냐 말이에요.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이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예수님의 품안에만 있으면
그의 품안에 마음이 열려지고 눈이 열려지고 귀가 열려진 심령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는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어려워졌다고 하는 시대이지만 하나님의 품안을 떠나서 우리가 어려운 것입니다. 다른 그늘에, 다른 옷자락에서, 다른 웃시야 밑에서 우리가 어려운 것이지 주의 품안에서 어려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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