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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갈색 립스틱 하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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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와서 생일을 잊어 버렸다. 결혼 생활 십개월만에 이십육회 생일을 맞았으나 당연히 축하해줄 줄 알았던 남편이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시당하는 것 같기도 했고 정 없는 사람과 결혼이란 굴레에 매여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일어나고,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던지 친정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 뒤 생일을 맞을 때마다 앙탈도 부려보고 선수도 쳐 봤지만 날짜로는음력 사월십이일이라는 것을 잘도 알면서 왜 그날이 오고 가는 것은 그렇게도모르는지.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 이젠 내 생일을 나도 잊으며 체념해가고 있던 중 큰 딸애가 국민학교에 들어가더니 '엄마 생일이 언제냐'고 묻기에 별 생각없이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생일날 아침에,

'엄마 생일 선물이야!'

하면서 불쑥 그림 한장을 꺼내 놓았다. 펼쳐보니 지면 가득 엄마 얼굴을 그려놓고 밑에는 '엄마 생신 축하해요'라고 서툰 글씨로 써 놓은 게 아닌가. 순간목이 콱 메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큰애를 품에 안고 한참동안 눈물을 삼키고 있는데 '엄마 왜그래? 나 답답하단 말야'하며 빠져나와 고운 눈망울을 들어빤히 내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고맙다, 진아!'

다시 한 번 큰애를 쓸어안고 뽀뽀를 해줬더니 영문도 모르는 작은 딸애는 저도 뽀뽀해 달라고 매달렸고 남편은 슬그머니 출근해 버렸다.

그날 저녁 남편의 퇴근 시간이 늦어져 또 한 잔 하나보다 하고 애들 먼저 저녁 먹이고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술은 전혀 안한 것 같은데 아주 멋쩍은 얼굴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미안해. 그리고 축하해!' 하면서 작은 선물 하나를 손에 쥐어 주고 얼른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게 아닌가.

너무도 의외의 행동이라서 멍청히 서있는데 애들이 와서, '엄마 그게 뭐야? 한번 보자!'하면서 뜯으니 립스틱 하나. 평소에 즐겨 쓰던 갈색 립스틱이었다. 애들은 그걸 보자 '와아'하며 입술에 칠하고는, '엄마 나 예뻐?' 라며 자기들이 더 좋아했다. 두 딸을 안고 조용히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았다. 결혼 후 지금껏 나는 얼마나 많은 불평속에 살았던가. 푸르던 날들의 꿈이 모두 깨어져버린 듯한 허전함, 나혼자 손해보고 사는 듯한 불만들. 이 모든 일들이 다 남편의 탓이라고착각하며 살아왔던 날들. 과연 나는 그런 불평을 할 자격이 있었던가?

내가 낳은 아이에 의해 다시 찾아진 생일, 그리고 결혼 팔년만에 처음으로 아내의 생일선물을 고르느라 고민하며 늦은 시간까지 길거리에서 얇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서성거렸을 남편. 내게 착한 아이들이 있고 성실한 남편이 있음이 나날의 행복이요, 생일처럼축복된 날이었음을 알지 못했던 지난 날들이 부끄러워졌다. 그 뒤 내 생일은 식구들에 의해 기억되었고 그때마다 다양한 선물도 받았지만 나는 그 서른 세번째의 생일날을 잊을 수가 없으며 그날 받은 작은 선물과나 자신의 깨달음보다 더 값진 생일 선물이 또 어디 있으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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