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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사람 (사 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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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베스트셀러인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원제:Complications 저자:Atui Gawande』이라는 책은 한 외과의사가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백한 자전적(自傳的)인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소위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모르는가를 중심 테마로 잡았습니다. 부제로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라고 이름지은 이유도 의학계의 무지에 대한 겸허한 표현입니다. 의학이라는 것은 모든 과학을 집대성한 것이지만 병명을 모르는 병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의사들이 수술을 집도할 때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자기의 유한함과 무지를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최근에 미국에서는 광우병(狂牛病) 소동 때문에 소를 기르는 축산농가가 거의 폐업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최첨단 과학 국가가 광우병 하나를 잡지 못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조류독감 때문에 농가에서 근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올 한해동안 우리 가정과 교회에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하심에 비해서 인간의 지식은 유한합니다. 우리가 그 어떤 일을 안다고 하는 그 순간 우리는 실족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살아 계신 주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
새해 첫 주를 맞이하는 우리는 올 한해를 주님의 제단위에 올려놓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도움과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권능을 신뢰하는 사람을 도우십니다(1-2절a).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1절). 이사야서는 '구약 속의 신약'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매우 복음적(福音的, Evangelical)입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은혜를 선포하시기 전에 한 번 더 경고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선민(選民)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이고 종교적으로 치우쳐 있는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종교적인 껍데기를 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자신의 경험, 교리, 아집이라는 틀에 하나님을 가둡니다. 하나님의 견해와 자신의 견해가 일치할 때는 하나님을 따르지만, 불일치 할 때는 자신을 따릅니다. 이들은 실천적인 면에서는 무신론자(無神論者)들입니다. 평소에는 자신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큰 장애물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인생의 찬바람이 불고, 위기가 닥치면 입술의 고백과 삶의 고백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예수를 믿어도 자신의 패러다임(paradigm) 혹은 안목(眼目)을 깨지 못합니다. 머릿속에서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의 틀 속에 하나님을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는데도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패러다임에 따라 부활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자신들을 구원해 줄 구원의 도구로 여기고 열심히 지켰지만 정작 율법의 완성자이신 주님은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율법이라는 틀 속에 예수님을 가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옛 습관과 안목을 벗어버리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9: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2절a). 이 손은 창조의 위대한 능력의 손,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 임을 아브라함은 믿었기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의 베푸시는 능력과 은혜를 의지하십니까?
둘째,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도우십니다(3절).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이 기뻐하실 어린양을 제물로 드렸지만, 주님께서는 그것을 개의 목을 꺾음과 같고 돼지의 피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개의 목을 꺾음'과 '돼지의 피'와 같다는 것은 예배가 그 정도로 실추(失墜)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분향(焚香)하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열려져 있어 기도와 소원이 주님 앞에 아뢰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분향이 변질되어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사법에 따른 좋은 일들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셨던 것은 그들에게 사랑과 믿음의 고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질은 없고 껍데기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형식에는 전혀 이상이 없으나 인격과 정성과 마음이 담기지 않았기에 주님께서 슬퍼하셨습니다. 인격이 담기지 않은 예배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것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출애굽기 19:6).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예배가 변질되었다는 것은 삶 전체가 타락하고 오염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는 드리지만 삶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리는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생각이 바뀌고 삶의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게 되면 그 예배는 참된 예배입니다. 형식은 반복 되지만 삶의 능력은 없고, 형식에는 익숙하지만 삶과 연관되지 않으면 그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성숙한 예배,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지를 알아보는 또 하나의 시금석(試金石)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예배가 우선순위(優先順位/Priority)에 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다 이룬 후 남은 시간에 드리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예배가 우리 삶에서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변질되지 않도록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20:8).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깨뜨리는 사람들을 호되게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은혜와 말씀의 시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시대인 지금은 구약의 율법적인 시대보다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예배의 감격을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예배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닌 우리 믿는 자들에 의해서 예배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고, 그를 도와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참된예배자로 서 계십니까?
셋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사람을 도우십니다(2절, 5절).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痛悔)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 하려니와'(2절b). 권고하신다는 것은 돌아보시고 높여주신다는 의미이며,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이 겸손하다는 의미입니다. 심령에 통회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이나 부덕함, 죄악을 보며 마음으로 아파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펼치고 자존심을 세우는 일에는 재빠르지만 주님의 말씀은 소홀히 여깁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 말씀을 들을지어다'(5절a).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말씀 앞에 떨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하신 말씀이라면 우리의 견해를 앞세울 것이 아니라 아멘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최상의 태도를 견지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3).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자신의 패러다임, 경험, 교리, 아집의 틀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창조의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예배를 삶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우리의 인격과 정성을 담아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삶의 성숙된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참된 예배자가 됩시다. 언제나 하나님을 존중하고 높이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됩시다.
/오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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