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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마음을 얻으십시오 (사 6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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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인 의사 하루야마 시게오의 뇌내혁명이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가장 근본적인 병 치료 방법은 '뇌내 모르핀'을 분비시키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이 '뇌내 모르핀'은 각종 질병은 물로 불면, 환청, 우울증까지도 치료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화를 내거나 낙심하면 만병의 원인이 되는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됩니다.
반대로 마음이 평화롭고 긍정적이면 최대 질병 치료제인 뇌내 모르핀이 분비됩니다. 사람들이 흔히 아는 엔돌핀도 20가지 정도 되는 뇌내 모르핀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뇌내 모르핀을 많이 생기게 할까요? 그는 3가지를 듭니다. 먼저 뇌내 모르핀의 성분이 단백질이기에 고단백 저칼로리 음식을 먹으라고 합니다.
둘째로 체지방을 단백질화 하는 맨손체조 같은 부드러운 근육운동을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플러스 발상'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는 우리의 생각은 반드시 화학물질로 변화되어 우리 몸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뇌에서 생각만 하면 에너지가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사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즉 생각하거나 공부할 때는 뇌에서 단백질을 분해시켜 나오는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그때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 뇌의 단백질 분해방법이 달라져 다른 물질이 나옵니다.
좋게 생각하면 그 단백질이 엔돌핀으로, 나쁘게 생각하면 아드레날인으로 분해됩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살려면 좋게 생각하는 '플러스 발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저자는 뇌내 모르핀은 우뇌에서만 방출되기에 우뇌를 많이 사용하라고 합니다. 좌뇌는 IQ와 관련된 이성을 주관하고, 우뇌는 EQ와 관련된 감성을 주관합니다.
또한 좌뇌는 자기가 세상에서 후천적으로 얻은 지식이 축적되어 있는 후천뇌이고, 우뇌는 선대로부터 전승된 지혜가 유전자 정보로 축적되어 있는 선천뇌라고 합니다.
그런데 좌뇌의 정보보다 우뇌의 정보가 10만 배 이상 용량이 많기 때문에 사람이 좌뇌로만 살면 자기 능력의 1%도 사용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뇌를 발달시킬 수 있을까요? 비판적 생각으로 살면 좌뇌가 발달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살면 우뇌가 발달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가만히 그냥 두면 언어능력을 가진 좌뇌가 우뇌를 이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좌뇌를 잠잠하게 만들고 우뇌를 활동하게 만드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것을 위해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고, 숙면을 취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그래도 좌뇌의 기가 꺾이지 않을 경우에는 금식을 하면 좌뇌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아우성치던 좌뇌가 비로소 잠잠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 우뇌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생명력과 창조력이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가 뇌내혁명 1권을 썼는데 무엇인가 한 가지 빠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평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연구에 몰두해 두 번째 책을 씁니다. 그 두 번째 책에서 그는 마음이 평안하려면 무조건적인 봉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즉 사람이 희생정신을 가지고 살 때 뇌내에서 최상의 질을 가진 엔돌핀이 쏟아지고, 그때에는 만병의 근원이 되는 아드레날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결론 내립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쓴 책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원리를 잘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복을 구하십시오 >
하나님은 우리가 '주는 삶'을 살아야 마음이 평안하고 건강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복입니까? 받는 것은 복이 아니라, 받고 주는 것이 진짜 복입니다.
'나의 복'도 중요하지만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복 받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은 다 죽어가도 너는 혼자 복 많이 받아라'고 하실까요?
아닙니다. 같이 행복을 느끼고, 서로 행복을 나눌 수 있어야 진짜 복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돕고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특히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사람을 얻게 됩니다.
최대의 축복은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을 얻으면 다른 축복은 그냥 따라옵니다. 축복을 얻기 전에 꼭 얻어야 할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방에서 사람들이 오는 축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그런데 사람이 오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일반적으로는 물질적인 축복도 뒤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복된 분이 되려면 사람을 얻어야 합니다. 어떻게 사람을 얻습니까?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먼저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사야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선포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빛을 발하면 어떻게 됩니까?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여기에서 '일어나라!'는 말은 '특별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나의 주어진 현실에 마음상하지 말고 '현재의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의 현실을 피하고, 다른 새로운 곳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현재 처한 현실에서 일어나야 기적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내가 처한 현실이 힘들어도 믿음으로 일어나면 그곳에서 기적은 시작될 것입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너무 어둡다'고 말하는데 왜 세상이 어둡습니까?
차라리 말이나 말지, 그렇게 말하면서 희생은 없기에 세상이 어두운 것입니다. 세상이 어두운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마음이 어두운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마음만 똑바로 먹으면 밤은 밤대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릅니다.
낮은 선이고 밤은 악이 아니라, 낮은 낮대로 의미 있고, 밤은 밤대로 의미 있습니다. 낮은 좌뇌의 활동 시간이고, 밤은 좌뇌의 활동을 대비해 우뇌가 활동하는 시간입니다. 그처럼 생명활동은 밤에 왕성해지기에 밤은 악이 아니라 오히려 소중한 시간입니다. 현실이 어두워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일어나면 됩니다. 일어나면 어떤 상황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어날 때 비로소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일어나 종과 횡으로 걸으라!'고 했습니다(창 13:17).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일어나 걷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요새 부동산 투기가 심합니다. 그러나 땅 없는 분은 땅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땅의 공간보다 더 소중한 것은 미래의 공간입니다. 미래는 누구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땅의 공간은 주인이 있지만 미래의 공간은 주인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면 됩니다. 우리가 일어나면 미래는 우리 것입니다. 미래는 믿고 달리는 사람의 것입니다. 미래는 갖고자 하는 사람 것입니다. 사실상 축복도 갖고자 하는 사람 것입니다.
여러분! 선교의 꿈을 가지십시오. 땅은 없어도 영적인 땅은 아직 많이 있습니다. 북한 선교의 꿈을 가지고, 중국 선교의 꿈을 가지고, 이방인 선교의 꿈을 가지십시오.
여자들도 꿈을 가지십시오. 젖을 먹이면서도 다윗에게 젖을 먹인다고 생각하십시오. 내가 버는 돈은 욕심의 산물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는 희망의 씨앗으로 보십시오.
현실은 초라하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워도 그곳에서 일어나 내일을 준비하십시오.

<가슴이 큰 사람이 되십시오 >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도전정신입니다. 그 도전정신을 가지고 일하십시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일하는 것을 천시해서 사농공상의 계급질서를 만들어 놓고 양반들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고, 농부와 상인과 천민은 죽도록 일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을 준비하고 일어서기보다는 가만히 앉아 운명을 따졌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노동을 신성하다고 가르쳤고, 운명론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운명에 맞서서 담대하게 일어서는 사람을 반드시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가슴이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매력적인 빛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늘 낙관적으로 살고, 늘 신선합니다.
무엇이든지 다 끌어안는 넓은 가슴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꿈을 안고 있으며. 미소가 끊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항상 칭찬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 엔돌핀이 솟아나 우리 온 몸을 적시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분들은 자주 만나고 싶고, 같이 오래 있고 싶고, 안 보면 또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그리스도인다운 빛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예리한 칼과 같습니다. 가까이 가면 겁나고, 어설프게 말을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습니다. 말할 때마다 돈 냄새가 가득 묻어나고,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의 냄새도 진동합니다. 그런 가슴이 좁은 사람, 찬바람이 쌩쌩 부는 사람이 되면 가까이 가기 싫습니다.
여러분! 많은 꿈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꿈을 꾸십시오. 저는 '누가 마귀에게 사로잡혔다!'고 하는 그런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죽든지 어떻든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은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결국 '마귀에게 사로잡힌 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반드시 '나도 잘 되고, 남도 잘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가끔 어떤 분은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 그러나 진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 말이 곱지 않아서 그래!'
성령 충만이란 자기 충만과 감정 충만이 아니라 사랑과 따뜻함의 충만을 말합니다. 그렇게 성령 충만하게 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을 얻으려면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
요새 각 교회마다 전도가 잘 안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선교하면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내 교회만 부흥시키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아주 기쁘게 선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개 교회주의보다는 마음을 넓혀 선교 마인드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내 가족, 내 교회, 내 학교, 내 고향만 사랑하고 남은 배타한다면 아무리 신앙적인 열심이 있어 보여도 그것은 자신의 미성숙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배타적인 분은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수 없고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은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도 인정받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얼마나 이방인들과 잘 지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방인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처럼 여겼습니다.
그처럼 믿는 사람은 믿음 없는 사람 앞에서 유아독존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믿는 사람이 믿음 없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만 구원받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예수님 잘 믿는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누구보다 싫어하십니다. 사실 사람들이 만나기를 피하는 사람에게 더 다가갈 수 있어야 잘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기피하던 창녀, 세리, 병자, 이방인을 다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오만함을 보이거나 사람을 배타하는 비인격적인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예수님 믿는다는 이유로 너무 구분하고 배타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믿음에 방해를 주는데 그것은 진실한 믿음을 가진 모습이 아닙니다.

<이방인 선교에도 힘쓰십시오 >
또한 우리는 믿지 않는 이방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열심히 선교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아프리카를 돕자!'고 하면 가끔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우리 나라에도 선교할 곳 많은데, 꼭 외국에 가야 합니까? 사치 아닙니까?'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만약 우리 나라에 선교사가 안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나라에 온 외국 선교사들도 자기 나라에서 할 일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전을 가지고 한국 땅에 왔기에 우리가 은혜를 입은 것 아닙니까?
여러분! 생각을 넓힐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배척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6장에서 하갈이 사라에게 쫓겨날 때 하나님은 그 하갈을 찾아주셨습니다.사람들은 언뜻 생각하길 사라는 축복하시고, 하갈은 버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갈의 고통을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시야를 넓혀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편만 사랑 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을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금식하며 기도한 후, 시합에도 이기고 시험에도 꼭 붙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시합에서 져야 하고, 다 시험에서 떨어져야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편협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사랑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의 삶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너무나 내 중심으로 살지는 않았습니까? 주는 삶이 없으면 고독하게 되고, 주는 삶이 없으면 인생이 옹졸해집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보다 내 삶에 독약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뭘 그리 많이 가지려고 합니까? 곧 빈손으로 이 땅을 떠나게 될 텐데요. 그러나 열심히 선교의 씨를 뿌려보십시오. 그 씨에서 엄청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천국에 가보십시오. 그러면 세상에서 전혀 보지 못한 분이 나를 반겨 맞을 것입니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말하면 그분이 말해줄 것입니다.
'당신이 파송한 선교사 때문에 제가 구원받아 천국에 오게 되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처럼 우리가 선교사님을 후원한 손길은 놀라운 열매가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작년에 우리는 몽고의 김재호 선교사님 내외분이 3개의 교회와 신학교를 돌보는데 차가 없어서 버스를 이용하고 몇 시간씩 걸어다니면서 교회를 섬긴다는 얘기를 듣고 열심히 봉고차 구입을 위한 선교헌금을 모아서 보내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총 예산의 65% 정도 모았지만 작년 12월 이후에는 거의 후원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가 다시 한번 힘써야지요,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교회적으로 혹은 단체명의로 김재호 선교사님과 직접 교류하며 몽고 선교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목사님들 및 성도님들은 연락 주십시오.
여러분! 선교에 더욱 힘써보십시오. 그리고 구제에도 더욱 힘써야 합니다. 왜 분당에는 걸인이 없고, 오히려 달동네에 걸인이 많은지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마 걸인 생각에 잘 사는 동네인 분당에서는 수입이 더 없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가난한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더 돕는다는 충격적인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잘 사는 동네에 사는 분이 달동네에 사는 분보다 정말 잘 사는 것입니까?

<사랑을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유명한 복음성가 중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사랑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을 주어야지요. 그리고 은혜를 받았으면 함께 나눠주어야지요. 받기만 하면 곧 내 영혼이 시들고, 사람들은 내 주변을 맴돌다 다 떠나버릴 것입니다.
어떤 분이 아들을 낳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아이가 사랑 받는 아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부모와 이웃의 사랑을 엄청나게 받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녀가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정신적 미숙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가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아이가 사랑을 베풀게 하소서!'
여러분! 여러 소원 중에서 이런 소원 가져보십시오. '하나님! 많이 베풀게 하소서!'
지난번 소개한 임병철 목사님 교회 작년 표어가 이렇습니다. '가장 많이 나눠주는 해!'
그런데 그분 교회는 올해 표어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작년보다 더 많이 나눠주는 해!'
얼마나 멋있는 교회입니까? 여러분들도 그런 기도를 해보십시오. '하나님! 제가 많이 베풀게 하소서! 많이 섬기게 하시고, 많이 위로하게 하소서!' 이런 기도가 전혀 없다면 그 기도는 헛된 기도이고 그분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세상이 어둡게 느껴집니까? 눈에 보이는 것마다 못마땅한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만 탓할 수 없습니다. 탓은 그만하고 내가 사랑의 주사를 놓으면 됩니다. 세상만 탓하고, 세상만 '확!' 바꾸어지기를 원하며 몸부림치면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선교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주사를 베풀려는 자세입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우리 민족, 우리 가정, 우리 인생을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 순례 길에 있습니다. 이때 선교의 꿈을 새롭게 해보십시오. 선교의 꿈을 가지면 하나님은 땅도 주시고, 사람도 얻게 하시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성공은 선교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교의 최종 목적지로 가야지 성공의 중간 기착지에 머물면 될까요?
결론적으로 선교를 외면하면 축복된 인생은 결코 주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에 힘쓰면 복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얻게 될 것입니다.
후손이 복될 것입니다. 대개 진정한 축복은 자기 세대보다 다음 세대에 나타납니다.
'재벌 30년!'이란 말을 듣지 않습니까? 돈은 금방 끝나지만 복음은 영원히 갑니다. 세상 축복은 너무 뻔합니다. 아무리 전후사방을 살펴보아도 별로 매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무한합니다. 그러므로 선교를 통해 사람을 마음을 얻고 아브라함처럼 수많은 영적 후손을 가지는 복의 근원의 소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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