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 백성의 죄악을 담당케 하옵소서 (겔 04:4-8)

첨부 1


오늘날은 적당히, 편하게 신앙 생활하려 드는 교인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러한 때에 열심을 갖고 신앙 생활하는 성도가 있다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런데 열심있는 성도, 적극적인 성도가 흔히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다른 성도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을 향해 정죄하고 심판하려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결코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주신 명령이 단지 선민 이스라엘의 죄악을 담당하라는 것뿐이었다는 사실은, 또한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특이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그 백성의 죄악을 담당한 사실은 이같은 점을 분명하게 표현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자기 주위의 범죄한 자들을 심판하려하기 보다 그들의 범지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그 죄악을 담당하려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여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1. 심판의 두려움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박석에 그린 예루살렘 앞에서 줄로 묶인 몸으로 모로 누워 있기를 430일 동안이나 계속하였습니다(4-8절). 사실 에스겔은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민족의 죄악을 담당하여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심판을 알리기 위해 이같이 고생스런 행동까지도 서슴없이 취한 것입니다. 거듭된 충고에도 불구하고 반역을 일삼던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 에스겔의 이러한 행동이 어떻게 비추어 졌을까요? 본문에 그들의 반응이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무척 당황하고 두려워했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에스겔 이전에 남유다 왕국이 멸망하리라고 하였던 선지자들의 예언의 실현이 임박하였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다른 이의 죄악까지도 함께 통감하며 설령 자신이 고통을 당하여야 한다 할지라도 회개하지 않는 자의 죄악이 얼마나 중한 것이며 그에 따른 형벌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경고하여야만 합니다. 정죄와 심판이 아닌, 에스겔과 같이 남의 죄악을 담당하는 성도의 헌신적인 행동을 볼 때 죄를 뉘우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2. 중보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함입니다.
범죄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이어주는 이를 중보자(Mediator)라 합니다. 하 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범죄한 자들을 위한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선조들 아브라함(창 18. 22-33), 모세(민 14:11-20), 욥(욥42:7-9), 아모스(암 7:1-6)등은 목숨을 내걸고 범죄한 자기 민족의 안위를 하나님께 간구했던 훌륭한 중보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보자의 사명은 성경 시대의 일부 선조들에게 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성도에게, 물론 오늘 우리에게까지도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중보자가 되어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선민 이스라엘의 죄악과 이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하고자 함같이 성도는 주위 사람들의 범죄를 볼 때마다 진심으로 아파하며 그들에게 흑 임할지도 모르는 두려운 징계를 염려하며 중보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범죄한 자들을 깨우치게 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그들이 받을 형벌까지도 함께 감수하겠다고 하는 비장한 각오를 가진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중보자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한 형벌을 결코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는 실로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엄격한 공의로써 보응하십니다. 그러나 범죄한 자에게 마땅히 내려져야 할 형벌이 유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중보자가 있어 그를 위해 간구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때입니다. 일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진을 떠난 사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함으로써 백성 전체가 멸망당할 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 가운데서 지워달라고 하는 모세의 간구로 말미암아 즉각적인 형벌을 유예 받을 수 있었습니다(출 32:1-35). 이렇듯 모세의 목숨을 건 중보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함은 물론 하나님의 크신 자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또한 범죄한 자들의 죄악을 담당하려 하는 성도의 노력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 참으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그의 자비를 구하는 성도 여러분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에게 다른 사람의 죄악을 담당할 수 있는 자격도, 그리고 능력도 있을 리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죄악으로 인해 멸망받아야만 할 존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범죄한 백성들의 죄악을 담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참으로 우리의 분수에 맞지 않는 큰 사명입니다. 이에 우리는 비록 자격은 없지만 멸망할 영혼들을 안타까이 여기며 '내 백성의 죄악을 담당케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진정 그들의 죄악을 담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경고하며 중보자로서의 사명을 다함으로써 범죄한 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중보한 자들에까지 풍성히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를 한껏 맛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