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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의의 하나님 (말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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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일반적인 모임이나 사회단체와 다른 세 가지의 특색이 있습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중심 하여 모이고 생각하고 전파하는 곳입니다. 둘째가 정당한 성례의 집행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처럼 옛것이 다 죽고 다시 사는 세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여 영적 교제와 임제를 뜻하는 성찬식이 집행되는 곳입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징계입니다. 교회의 질서를 흐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전되기 위해서는 징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가 두 가지는 나름대로 바로서는 것 같은데 징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징계가 능사는 아니겠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가르치고 위로하는 곳이기에 사랑의 공동체요,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교회에 무슨 징계가 필요하겠느냐 하겠습니다만 성경의 원리가 상선벌악(賞善罰惡)입니다. 선한 일에는 상을 주고 축복하지만 악을 행하였을 때는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도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하시며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의 하나님이 천국은 만들었지만 지옥을 만들 수는 없다고 하는 잘못된 자들도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 손에는 사랑을 갖고 무한히 베풀어주시겠거니와 또 한 손에는 공의를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시행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자가 어찌 알지 못하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24:12)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악하여져서 깨닫지 못하여 눈앞에 즉석에서 보여지는 것이 없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때로는 주의 일꾼들을 탄식할 때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악한자의 길이 형통하며 핍박한 자가 안락함은 무슨 연고이니이까'(렘12:1) 라고 했고 하박국 선지자도 '왜 의인이 고난을 받으며 공의가 굽게 되었나이까'(합1:2-4)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얕은 인간의 생각일 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라 저희는 풀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요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라'(시37:1-2)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예레미야나 하박국 선지자 같이 경건하게 산 자도 아니요 하나님을 속이고 경멸하는 자들이 악을 행하면서도 양심이 마비되어 거짓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가상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즉각적이라 도둑질하면 손이 잘려지고 욕하면 입이 돌아간다면 겁이 나서 억지로라도 죄짓지 아니할 것인데,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까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리라'(나1:3) 한 나라의 방탕을 막기 위해 술먹는 자의 눈 두개를 뽑는다고 왕이 공포했는데 그 첫번째로 왕이 사랑하는 왕자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왕은 많은 백성 앞에서 왕자의 눈 하나를 뽑게 하였고 자신의 눈 하나를 뽑아서 아버지의 사랑과 법을 지키는 공의를 행하였으니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생각할 때에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공의가 함께 집행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공의의 하나님을 깨닫고 살아야할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가를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생각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분명 하나님 경외심의 결핍이요, 영적인 무지함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합리화시키며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 말 몇 마디 탄식이 아니라 죄지음으로 하나님 괴롭게 하는 것이니(사43;24) 공의의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만 이제 우리는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6:33)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복음전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벧전2:9) 그러기에 우리는 결과에 치우치지 말고 언제나 어디서나 복음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 온다고 공의를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불평하며 하는 소리입니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묘 아직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진정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를 깨달은 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150:6) 라고 하셨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사탄이 성도 공격에 사용하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섭섭한 마음과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찾아오면 과감히 결단하고 성도의 입에서는 감사와 하나님 찬양만 있어야 합니다. (사43:21) 그리고 더 큰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대하20:20-27, 행16:24-31)

3.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함이니라' 죄를 짓고도 양심에 가책도 없이 회개할줄도 모르고 불신하여 외치는 이 말은 하박국,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는 믿으면서 사정하는 질문과는 정 반대입니다. 이들의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어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의인이 왜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에 '이 묵시도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3-4) 하셨으니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땅에 이루며 사랑과 축복 받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무한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깊이 깨닫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무섭기만 하여 겁이 나서 억지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자유 하여 기뻐 섬길 수 있게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으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요, 불평과 불만은 다 제하고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믿음으로 주님 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어 드리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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