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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일하신 하나님 (미 07: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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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미가 선지자는 조국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그는 조국이 멸망할 것이라는 환상을 보았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2.그래서 미가서의 결론은 희망의 제시다. 오늘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새해를 맞았음에도 사람들은 희망보다는 절망쪽에 촛점이 모아진듯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3.미가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보았는가?

I.구속하시는 하나님이시다(18).
A.남은 백성을 위하여 배려 하신다.
1.미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져주시는 분으로 확신했다. 대속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었다.
2.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죄의 범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확신했다. 하나님에 대하여 적의를 품고 반항한 죄 까지도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었다.
1)사실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이스라엘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배척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적의를 품고 있었다.
2)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의 신분이었다. 그 증거가 이방민족을 통한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미가는 희망이 있음을 보았다.
B.우리의 희망은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혜에서 출발한다.
1.구속은 자신의 능력이 전혀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2.세상에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지배자가 한명 이듯이 특권을 누릴 자는 몇명 없다.
3.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렇게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대속의 은혜 때문이다.
4.대속의 은혜를 입은자는 자신의 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사는 것이다. 사실 자신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자. 과연 이와 같은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 넘치는 하나님의 은헤일 뿐이다.

II.재기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19).
A.다시 한번 불쌍히 여겨 주신다.
1.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헤세드'의 사랑이다. 헤세드의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2.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격려와 소망이 있을 수 있던 근거가 바로 헤세드라는 말씀이다. 당시의 부패한 사회의 정황으로는 도저히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없었다.
3.헤세드의 은총뿐만 아니라 여기에 '레헴'의 은총이 주어졌다.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또 다시 긍휼을 덧입히시는 은혜다. 레헴은 가슴 깊이 느끼는 관심을 말한다.

B.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재기의 사랑이다.
1.하나님은 명령을 거부하는 요나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많은 수확을 체험하도록 배려 하셨다.
2.다윗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나단을 통하여 재기의 은혜를 베푸셨다.
3.우리의 용서가 단 한번 뿐이라면 우리중에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4.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의 은총을 베푸신다.
5.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 죄악을 발로 밟으셔서 바다에 집어 던지시면서 온전하게 용서하신다.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6.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세 가지의 죄에 대한 단어는 1)죄악, 2)허물, 3)죄 이다.

III.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다(20).
A.아브라함과 야곱의 후손에게 베푸실 약속이다.
1.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출애굽의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라 아브라함과의 약속 성취였다.
2.계속적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베푸시는 회개의 촉구 역시 그들 조상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B.우리는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다.
1.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2.그러므로 믿음이 있다는 말은 약속을 믿는다는 말인데
3.과연 우리는 얼마만큼의 약속을 알고 믿고있는가?
4.성경에는 이러 이러한 약속들이 있는데 그것을 믿는가?(나름대로 제시하자)

결론
1.미가가 살던 사회는 극도로 부패한 사회였다. 도저히 소망의 근거가 없는 사회였다.
2.그럼에도 미가는 낙심하지 않았다. 헤세드와 레헴을 알았기 때문이요, 약속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3.지금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다. 이 민족을 향하여 새로운 소망을 제시하는 일이다. 희망을, 복음을 전하자.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소망을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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