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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에 우선한 고난 (미 0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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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에 우선한 고난(미 4:9∼13)

민족이 포위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급변하여 기적적인 전환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동체가 예배에서 낭독하면서 그들 자신의 현실적인 관심사로, 일종의 통일된 단위로 느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말하는 비유는 그가 꾼 꿈과 같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흐르는 내용은 고난과 구원의 대립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9∼10절에서 나타나는 현재의 고난상황과 이의 전환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이 사상이 11∼13절에 가서는 우주적인 종말론적 조망으로 이어집니다.

1. 바벨론 포로에 끌려갔다가 이후에 고레스의 통치하에 팔레스타인으로 되돌아올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9­10절).

미가 선지자 시대에 바벨론은 앗수르의 속국이었습니다.
이 예언은 더욱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허허벌판에 끌려가서 살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시온의 딸이라고 말합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죄값을 받는 것입니다. 해산의 산모가 구로하여 아기를 출산합니다.
그 고통은 인간의 경험으로 가장 아픔이 큰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 고통을 겪을지라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극심한 위기상황에 있어서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추방하는 하나님의 행위를 통과하는 과정에 불과할 뿐, 더 나아가 하나님은 결국 새 현존의 생성을 돕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고통은 극히 당연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며, 믿음으로서 수긍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점을 10절의 의미심장한 서론이 절박한 해산의 고통의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지적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여호와께서 고통을 전환시켜 그의 백성을 적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어떤 때에 고통을 당합니까?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어도 고통을 겪습니다.
욥은 그러한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의 고통은 극심했었습니다. 재산이 송두리째 없어지고, 10남매가 한 자리에서 죽고, 온 몸에 헌대로 고통을 겪었으며, 마지막에는 아내마저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찾아와서 위로하겠다던 친구들은 그를 비난했습니다.
“네가 죄 없이 고통을 당하겠느냐?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라.”고 합니다.
친구들의 신앙은 고통은 죄값으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죄값만이 아니라 시련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시련으로 오는 고통은 믿음의 인내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고통당한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박해로 인해 순교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내는 참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절망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참았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실 줄로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우상 앞에 절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고통은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11절에서 더욱 심해집니다.
“이제 많은 이방이 모여서 너를 쳐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이것은 조롱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몰려온 민족들은 널리 알려진 종말론적 표상입니다.
특히 이사야서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표상이 미가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예언자는 몰려오는 민족들로 하여금 그들의 입으로 미움과 고소해 하는 말을 하게 합니다.
여기서는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뭇 민족들의 마귀적인 즐거움이 표현되며, 희망한 대로 그들의 권력이 승리했음을 미리 축하하는 것이 묘사됩니다.

2. 예루살렘을 침략한 민족들은 잔인하고 포악했습니다(12­13절).
그들은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는 민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에 의하여 치열한 전쟁 속에서 많은 민족들을 점령했고, 또한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고통의 때가 지나고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라고 하십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패망하여 끌려갔으며, 바벨론에 망해서 포로가 되어 70년 간 고통의 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지나고 이제는 하나님의 때가 왔습니다.

성경에서 심판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수확과 타작의 비유는 13절에서 끝이 납니다.
장차 큰 사건을 극적으로 생생하게 선취한 데서 이 사건은 공동체에서 이미 현재적인 사실로 알려집니다.
시온을 향한 축복의 말은 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완성에 대한 요구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최후 대심판의 최종적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싸움이나 승리가 아니고 민족들에 대한 최후 심판에서 하나님이 그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합니다.
많은 민족들에게서 빼앗은 재물을 하나님께 성별해 바치고, 온 세상의 주권자인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은 매우 어려운 고통의 날들을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앞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민족적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다윗 왕의 전성기를 통해서 강대국의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인해서 다시 여로보암이 일어나서 국가와 민족을 분열시키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는 갈라집니다.
이 아픔은 그들에게 있어서 큰 것이었기에 예루살렘 예배를 통일하지 못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요구에 의해서 신전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 인해서 하나님의 벌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북쪽은 앗수르에게 남쪽은 바벨론에게 패망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남이스라엘은 70년 후 회복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 때부터 우상숭배는 그 민족에게서 사라졌습니다.
회복의 은혜는 죄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데서 얻은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소망이 성도들에게서 성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데, 성도들의 생활에서 나타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시 120:1)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회복의 날이 왔을 때 그들은 말할 수 없이 기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 126:1)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행렬은 승리의 행렬이었습니다.
그들은 황폐한 조국을 일구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호와의 회복은 그의 최대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십자가의 구원이 여기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역사는 곧 영원한 구원입니다. 승리는 부활로 나타났습니다.
승천하셨고 이제 다시 오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새로운 세계로, 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 고통 속에서도 이 희망을 백성들에게 주기 위하여 평생 고통을 무릅쓰고 뛰어다니며 외쳤습니다.

오늘도 외치는 자들의 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전하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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