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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에게 주시는 은총 (슥 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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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는 아무런 댓가도 요구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이 필요할 뿐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태어난 생명체는 자라나야 한다. 즉, 성장해야 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훈련의 과정도 필요하고 행위도 요구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구분이 명확지 못하기 때문에 '이단'이 근절되지 못한다. 설교자가 출생과 성장에 대한 구분이 없이 본문 6절이하의 설교를 한다면 십중팔구 평신도들에게는 영적인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구원을 전제로 하는 행위요구인가? 아니면 태어난 생명의 성장을 위한 행위요구(훈련, 연단)인가에 대하여 설교자는 사전에 분명히 밝혀둬야 한다. 분명히 갈라디아서를 비롯한 바울서신에는 '오직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무슨 행위가 요구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때 설교자는 당혹하게 된다. 바로 출생과 성장에 대한 구분이 전제되지 않은데서 발생한 문제점들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주창하는 자들은 자칫 잘못하면 무율법주의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나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성장은 행위훈련으로' 이것이 공식이다.
생명은 자라나야 한다. 자라지 않는 생명은 생명이 아니다.

I.성화의 상급을 주신다(6-7).
A.성도는 성화되어야 한다.
1.설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진다. 첫째는 전도설교요, 둘째는 성화설교다. 어린아이가 만일 성장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아이를 '지진아'라고 부른다. 사람이 발육뷰진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2.마찬 가지로 영적인 생명도 자라야 한다.
3.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려면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이 성화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을 섭취해야 하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4.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실천의 표준을 제시해 주셨다. 그것이 성경이다.
5.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성도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길을 걷되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로 걸어야 한다. 만일 자신이 가고싶은 대로 마음껏 걷는다면 그는 육체의 정욕에 노예가 되고 만다.
6.육신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과 원수되는 것 뿐이다.
7.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교훈을 따라 살아야 한다.
8.하나님은 이 어려운 훈련의 과정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상급을 주시는데, '하나님의 집을 관리하는 우두머리가 되게 하고 하나님에게 합당한 제사장직분'을 주신다.

B.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까지 자라야 한다.
1.오늘날 대다수의 성도들이 거듭나는 출생과정에서 만족하려는 경향이 있다.
2.그러나 우리는 자라나야 한다.자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출생은 했는데 자라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육부진아이다.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3.지금 한국의 교회 안에는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실정이 되어버렸다. 대다수가 '미숙아'상태에 머물러 있다.
4.일단 구원받았으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정상이다.
5.성경을 조금 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율법주의'라고 매도하는데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한마디로 영적인 무식의 소치이다. 물론 우리의 구원에는 아무런 공로나 댓가도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출생한 다음에는 정상적인 성도로 자라나야 하는 것이다.
6.성도가 무엇을 영양분으로 자라날 것인가? 허구한날 젖병이나 물고 있으면 자랄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는 말이다. 이제는 거친 음식도 먹을수 있어야 한다.
7.우리 주위에는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사단이 흘려 놓은 불량식품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육신을 즐겁게 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사단의 음식들이다.

II.완전 속죄의 은총을 주신다(8-10).
A.모든 죄를 사해주신다.
1.구약에 있는 모든 의식제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형들이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손가락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표현한다.
2.여호수아 앞에 놓여있는 돌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본문상으로는 이스라엘을 가르치고 있다.
3.이 돌에 일곱개의 눈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서 일곱은 상징으로서 온 세상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을 상징하고 있다.
4.지금 이시간도 하나님의 눈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을 살피고 계신다.
5.그리고 하나님은 이 땅에서 죄악을 단 하룻동안에 모두 치워버리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속죄의 상징이었다.
6.예수 안에서 모든 담은 허물어 졌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된다. 신분의 차별이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된다. 모든 장벽은 믿음 안에서 존재되지 않는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공로 때문이다.

B.중생한 자는 심판에서 옮기웠다.
1.우리는 살면서 허물을 범한다. 비록 영은 거듭남을 체험했어도 죄의 노예된 우리의 육체는 여전히 죄와 더불어 짝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강할 때는 우리가 육신의 유혹을 물리치지만, 그렇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죄에게 종노릇하며 시달리고 있다.
2.사단은 우리의 약점을 알고 우리의 양심에 고자질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연약해지고 갈등을 느끼면서 점점 사단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3.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이미 만세전에 모두 사해 주셨다. 우리를 아예 심판에서 면제해 주셨다.
4.그러므로 우리는 이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결론
1.하나님은 성도에게 성화의 상급과 용서의 은총을 주셨다.
2.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성령의 힘으로 극복하고 성화에 참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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