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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 거짓말, 그리고 기도 (욘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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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거짓말, 그리고 기도(욘 2:1-9)

우리 인생에는 종종 커다란 위기가 닥칩니다. 그것이 본인의 실수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IMF같은 외부적인 환경에 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속된 말로 재수가 없어서 당하는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음모에 의해 당하는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위기는 종종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반갑지 않은 손님입니다. 이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가 하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오히려 더 든든하게 일어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는 고질화된 병폐를 도려내고 개혁과 개선을 가져오는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사람마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장관 사모님들의 거짓말이 나라를 거짓말공화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짓말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참 가슴아픈 일은 이분들이 같이 성경공부하고 함께 봉사활동하던 독실한 기독교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정권의 핵심부에서는 이 사실을 은폐 내지 축소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습니다. 검찰에서도 사실을 들추어내지 않고 대충 무마해서 위기를 넘기려고 했습니다. 결국 사모님들이 정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으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을 사건을, 거짓말로 감추고 끝까지 잡아떼다가 결국 나라의 도덕수준을 떨어뜨리고,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이름을 부끄럽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거짓말은 위기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이 절대로 아닙니다.

1. 요나가 당한 위기
우리가 이 본문에서 보는 것은 요나가 당하고 있는 심각한 위기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바람에 결국은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던져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뱃사람들에게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던 요나에게서 우리는 대범함과 희생정신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소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희생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거나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가령 두 사람이 죽기살기로 결투를 벌이다가 한 사람이 칼을 놓쳤습니다. 그렇게 쓰러진 사람의 목에 상대가 칼끝을 갖다 댑니다. 그러면 쓰러진 사람이 이렇게 말하지요. '내가 졌다. 그래, 나를 죽여라.'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런 순간에 얼른 무릎을 꿇고 목숨만 사려달라고 애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주인공이 칼을 거두고 뒤로 돌아서는 순간에 얼른 떨어뜨린 칼을 집어들고 뒤에서 공격을 하지요.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요나는 최소한 그런 비겁한 인간은 아닙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자기가 죽어야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다면서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결투에서 진 검객이 '내가 졌다. 나를 죽여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대담하게 죽음을 맞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일까요? 요나가 나를 바다에 들어 던지라고 한 것은 죽음이 두렵지 않거나 아니면 다른 복안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수영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어서 물에 빠져 죽을 염려는 없기 때문에 그랬습니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있던 순간만 해도 죽음이 그렇게까지 두렵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 던져진 순간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그를 둘러쌌습니다. 그가 얼마나 두려워했었는지 보세요. 그는 말하기를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스올이라는 것은 구약에서 '죽음의 장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무덤, 지하세계, 또는 죽음의 상태 등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을 때 자기는 완전히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말이지요.

큰 물이 그를 둘렀다고 요나는 말합니다. 저는 오래 전에 학생들 데리고 강가로 수련회 갔다가 급류에 휘말려 혼난 적이 한번 있는데, 그 성난 파도가 요동하는 바다 한가운데 던져진 요나의 상황은 어떠했겠습니까? 물이 그를 둘렀는데, 영혼까지 둘렀다고 요나는 말합니다. 물이 그의 몸을 짓눌렀고, 그의 영혼까지 뭉개버릴 기세로 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마치 굶주린 사자가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죽음의 공포가 요나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요나가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요나는 자기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또 땅이 그 빗장으로 그를 오랫동안 막았다고 했습니다. 요나의 이 기도는 한 편의 시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시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속 어디까지 내려갔는지 모르겠지만, 요나는 물에 빠져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순간, 마치 죽음의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고 있는 것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마치 산의 뿌리, 즉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빨리 물위로 올라와야 살 수 있을 것인데, 마치 땅이 빗장으로 요나를 가두어놓고 보내주지 않는 것처럼 물위로 올라올 수 없었던 그 고통스럽고 두려운 순간을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요나의 위기는 바로 죽음 그것이었습니다.

2. 요나의 방법
요나가 뭐라고 기도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2절, 내가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다.
6절,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고 땅이 나를 막았지만, 주께서 내 생명을 구하셨다.
7절,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다.
말하자면, 요나는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살려주셨다는 것이지요. 요나가 그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위기 앞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요나는 죽음이라는 위기에 닥쳐서야 기도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들의 호흡과도 같은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통하는 통로가 바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주장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추어가는 과정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우리 주님이 하셨던 기도가 그 샘플이라고 하겠지요? 그래서 기도가 살아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hot line이 개통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요나가 그 전에 기도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그 반대로 나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요나는 엄청나게 기도를 해서 니느웨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한다는 것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도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hot line을 폐쇄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러다가 죽음이라는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그 hot line을 재가동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자기 주장의 포기를 의미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소원했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사람들이 새 차를 사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절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혹시 하나님이 새 차 사지 말고 그냥 헌 차 타라고 하실까 봐서 말이죠. 물론 농담이지만 뼈가 있는 농담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일이 있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 역시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분명히 용서하라고 하실 테니까요. 그러다가 위기가 닥쳐오면 그때서야 다급하게 SOS를 치고 hot line을 찾습니다. 전에 저희가 농담으로 '공부와 아부는 평소에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평소에 내내 놀다가 시험이 닥쳐서야 밤새워 공부하는 사람을 빗대어 하는 얘기지요.

어찌됐든 요나는 그 위급한 순간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그랬더니 정말로 하나님이 살려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들 역시 요나와 똑같은 인간들입니다. 그렇게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하다가 얻어맞고 위급한 상황에 처해서야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하면서 돌아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또 하나님은 마치 쓸개도 없는 분처럼 그렇게 돌아오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고갈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언제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는 공부보다도, 아부보다도 더 평소에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숨을 안쉬고 있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그동안 못쉰 숨을 다 쉴 수 없는 것처럼,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쉬고 있다가 급할 때 한꺼번에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해야 할 일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일이지요. 요나가 고백한 것처럼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위기가 올 때 낙심하고 있을 겨를이 없습니다. 위기 앞에서 넋을 잃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위기에 처했습니까?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위기가 닥쳐왔습니까?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그 위기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걱정하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먼저 기도해야 해요.

우리 주님께서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불의한 재판관에게 늘 가서 애원했던 과부의 이야기를 비유로 해 주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결국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녀들의 애원을 안들어 주시겠어요? 그래서 기도는 우리의 의무임과 동시에 권리이며, 또한 우리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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