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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침묵 (합 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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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선지자는 7세기 유다 선지자로 나훔과 예레미야 등과 같이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본서는 아마도 예레미야의 말년 경에 예루살렘 멸망 바로 직전에 기록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러한 때에 하박국 선지자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의문은 하나님께서 왜 악에 대해 침묵하시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유다에 엄청난 불법이 자행되 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유다의 악행, 불법, 강포를 인하여 하 나님의 말씀을 외쳤지만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2절).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율 법에 대한 신실한 반응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 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4절)라고 했습니다. 여기 '율법 이 해이해진다'는 것은 무기력해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왜 무기력 하여 능력이 발휘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의라고는 조금도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 버리기 때문에 의인이 힘을 쓸 수 있는 상황 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가지는 갈등과 의문은 큰 것이었습니다. 솔직 히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시고 가만히 계시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기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악을 허용하시는가 하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잘못하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더 기가막히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의 눈을 이방인에게 돌리게 합니다. 갈대아 사람들(바벨론)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강포를 일으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6-10절).

그 일은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급속히 되어질 일입니다(11절). 하나님의 말씀은 유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불법과 죄악을 자행하는 것을 하나님의 언약과는 반대되는 행위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비언약적 사고방식에 대하여 철저히 심판하시겠 다는 것입니다. 비언약적 사공방식을 가지고 있는 유다를 심판하는 방식은 그 들과 똑같은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비언약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치시겠 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나만 신앙생활 잘하면 된다고 생 각합니다. 열심히 큐티(Q.T)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위해 열심히 기독교 서적 도 봅니다. 어차피 망할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세상에 관심두지 말고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상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산다는 것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 한사 람 잘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생명의 풍성함이 아직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께서 주신 영생은 결코 나 한 사람을 세상에서 건져올리 고자 하는 그런 구원이 아닙니다.

사실 하박국 선지자가 가졌던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 시므로 하나님께서 선택한 유다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12 절).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유다만 망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자기네 나라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잘되는 것은 악인(이방 인)이 자기네 나라를 함부러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악인이 하 나님의 백성들을 능욕하고 노략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항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아니 이스라엘보다 더 강포한 갈대아 사람들을 들어 유다를 치면서도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 다.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만 하나님의 선택된 국가이고 하나님의 선택된 나라이기에 이방인들이 함부러 건드릴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 언약과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죄의 본성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니까 유다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조차도 버리고 아예 하 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마음대로 불법과 강포를 저질렀습니 다.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언제든지 무엇이든 지 마음대로 할 수 있을만큼 죄인입니다. 그 극단적인 모습이 어디까지 드러났 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니 사람들은 그를 죽이지 못해 서 안달이 났습니다. 급기야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침묵하시고 인내하셨습니다. 그것은 인 간들의 죄성이 얼마나 적나라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까지 얼마나 무섭게 적대 시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신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나 겁없이 대항하는 인간이라고 완전히 폭로되고 말았습니다.

아벨이 가인에 의해 살해되고 라멕이 많은 사람들을 죽일 때에 하나님은 뭐 하셨습니까? 하늘 나라에서 천사들과 바둑두고 계셨습니까? 비언약의 계열과 언약의 계열이 서로 통혼(通婚)함으로 홍수 심판을 해야할 지경이 되도록 하나 님은 주무셨습니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은혜를 제한적으로 베 푸셨습니다. 그래야만 죄의 성격이 어떤 것인가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 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 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하셨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죄인들의 고소에 침묵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 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 지 아니하였다'(사 53:7)고 했습니다. 인간들의 죄악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주셨 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승천, 성령강림 재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친히 하나님 편에서 성취하셨습니다. 인간들이 예수님을 십 자가에 죽이는 분노를 하나님을 향해 터뜨리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은 자기 백 성들을 위한 생명의 나라를 다 이루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십 자가에서 만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전면에 나서서 일하시는 것이 하나님답 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한 십자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더 멋있는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 밖의 하나님은 놀라운 이적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능력의 하나 님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통해서 십 자가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십자가를 원하셨 고 그의 아들이 지신 십자가가 유일한 기쁨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율법을 가지고 외친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거기에 동조하 고 세상의 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질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성(性)적인 문제가 청소년에게 심각하니까 성교육을 하고 어느 정도 성을 개 방하면 성범죄가 줄어들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의 본성에 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악된 것을 개방한다 고 해서 죄의 본성이 약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적인 악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그것에 대하여 윤 리적으로 살도록 외치며 바로 잡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었음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 외에는 우리의 죄에 대한 대안이 없었음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들의 건방짐, 항변, 고소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결코 인간들을 향한 저 주와 진노를 새삼스럽게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시 고만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 생명은 십자가 안에서만 밝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란 나의 억울함이 들어설 수 없는 자리입니다. 나의 불편함을 항변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신자란 굳이 큰 소리로 외치지 않더라도 자신이 죽는 조용한 십자 가의 삶으로 세상의 죄를 폭로하는 자여야 합니다. 인간의 사악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침묵하셨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증거합시다.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 님이 침묵하실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십자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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