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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잔칫날 일어난 일 (단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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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날 일어난 일 (단 5:1-9)

창업과 수성

기업하는 사람들 말에 의하면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창업이 쉽나요? 또 아무나 창업을 할 수 있던가요? 창업을 한다고 하다가 쪽박을 차게 되는 수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리한 통찰력과 분석력, 그리고 추진력이 없이는 창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창업에 성공하는 것이 열에 하나, 또는 경우에 따라서 백에 하나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창업해서 이루어 놓은 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수성을 잘 하기 위해서도 특별한 능력도 요구되겠지만, 수성이 창업보다 더 어렵다는 진짜 이유는 바로 정신자세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창업을 할 때는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잘 무장이 되어 있어서 웬만한 난관 정도는 거뜬히 돌파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업에 성공해서 기업이 안정되고 잘 나가다 보면 창업할 때의 긴장감은 풀어지고 나태와 교만 같은 인간의 못된 본성이 슬슬 드러나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변화와 도전에 올바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업자 당대에는 그래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창업을 했는데 쉽게 무너질 수 있겠어요? 그러다가 어려움과 도전을 모르고 자란 2세가 기업을 물려받으면서 슬슬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요즘에야 대기업들을 보면 일찍부터 후계자를 잘 훈련시키고 경험을 쌓게 해서 그런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자본주의 체제의 경험과 노하우가 많이 축적되지 못했고 또 사회적인 성숙도가 떨어지던 옛날에는 아버지가 어렵게 일으킨 기업을 방탕한 아들이 물려받아서 순식간에 말아먹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했었습니다. 이것은 꼭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 나오는 벨사살 왕이 전형적인 케이스가 되겠습니다. 본문에서는 느부갓네살이 그의 부친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할아버지라는 것이 학자들의 소견입니다. 어쨌든 벨사살이라는 인간은 느부갓네살이 이룩한 바벨론 제국의 영광과 권세를 수성할 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때는 이미 바벨론이 페르시아라는 신흥세력의 등장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성은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연합군에게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5장 맨 마지막에 보면 그날 밤에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다고 나와 있지요? 저 멀리 있던 적군이 그날 밤 갑자기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성을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벌써 성이 포위된 지 2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비록 성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신세지만, 성을 감도는 유프라테스 강이 바벨론 성을 천혜의 요새로 만들어주고 있었고, 성 안에는 20년을 버틸 수 있는 물자가 비축되어 있어서 아직도 벨사살은 태평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의 와중에서 벌어진 잔치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벨사살이 얼마나 소인배인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사실입니다. 나라는 망해 가는데 자기 몸 하나 안전하다고 아무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바벨론이라는 제국을 다스리는 데 합당할 수 있습니까? 적군에게 포위된 성 안에서 거대한 잔치를 벌이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즐긴다는 것이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제국을 다스리고 책임져야 할 왕의 올바른 처신입니까? IMF 사태로 온 나라가 허덕이고 있을 때,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건재하다는 말이 회자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회사가 망하고 직원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는 판국에 정작 그 책임을 져야 할 업주는 그 와중에도 자기 몫을 다 빼돌려 챙겼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현명한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는 행동이지만, 사실은 가장 비겁하고 더 나아가 매우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배반하고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것은 결국 자신을 파괴시키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적군에게 포위된 성에서 거대한 잔치가 벌어졌다는 무대설정 자체에서부터 뭔가 대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벨사살 왕이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했다고 했는데, 지금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판국에 무슨 귀인들을 위한 잔치란 말입니까? 이 잔치가 왜 열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먹고나 죽자는 자포자기성 잔치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입니다. 왕의 생일잔치였을 수도 있고, 또는 즉위기념일 잔치였는지도 모르지요. 혹시나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잔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벨사살의 인물됨이나 잔치의 모양을 보아 그렇게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전투를 준비하고 격려하는 잔치라면 무슨 왕후며 빈궁들이 나오겠어요? 행여 장수들을 위한 잔치라 한들, 지금 성이 포위되어 있는 판국에 장수들이 모두 모여 술을 마시고 잔치를 벌일 수나 있겠습니까? 무슨 자살특공대의 최종 출정식도 아니고 말입니다. 어떤 경우의 수를 대입해도 지금 이런 잔치를 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제 나라가 대부분 적군의 손에 넘어가고 수도만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귀인들, 소위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힘을 모아서 나라를 구할 생각을 해야 할 터인데, 하는 꼬락서니가 언제 나라가 망해 적에게 붙잡혀 죽을지 모르는데 죽기 전에 원 없이 즐겨보기라도 해야겠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무슨 희망이 있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벨사살은 이미 바벨론의 수성을 포기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 결투신청을 하다니...

왕과 귀족들이 술을 마시면서 주흥이 꽤나 올랐나 봅니다. 그래서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금은 그릇들을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호와께 제사드릴 때 쓰는 잔으로 술을 한번 마셔보자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의 수많은 업적과 빛나는 공훈 가운데서도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을 약탈해 왔다는 것은 손꼽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영광과 지혜로 건축되고 채워진 성전 아닙니까? 그 안의 보물들이 또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었겠어요? 그래서 느부갓네살도 그것들을 자기 신의 보물창고에 두었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그 보물들이 어쩌면 머지않아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대단한 보물들을 적에게 빼앗기기 전에 그것으로 술이나 한번 마셔보자는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군요.

사람이 죽으려고 작정을 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이 벨사살이야말로 죽으려고 아예 작정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적군이 포위하고 있는 성 안에서 거나하게 잔치를 벌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신에게 제사드릴 때 사용하던 그릇으로 술을 마시겠다는 엽기적인 행각은 마치 호랑이 앞에서 웃통을 벗어젖히고 술주정을 하는 것과 같군요. 거기 참석한 귀인들, 왕후들, 빈궁들이 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잔으로 술을 마시고 자기들이 섬기는 신상들을 찬양했습니다. 언제 적군에게 붙잡혀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분 좋은 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여호와께 제사드리는 금그릇으로 술을 마셔본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요. 글쎄, 이것을 사형수가 마지막 소원으로 담배 한 대 피우고 싶다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기왕 죽을 놈이니 마지막으로 원하는 것은 들어준다지만, 그렇게 죽으면서 피우는 담배 한 대가 무슨 위안이 되고 의미가 있습니까?

모두들 흥에 겨워 떠들며 좋아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난데없이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다 글자를 쓰는 것입니다. 왕이 그것을 보고는 얼마나 놀랐던지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무릎이 부딪혔다고 했습니다. 흥겹고 즐겁던 잔치자리가 한순간에 소름끼치는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벨사살의 행위는 나라의 멸망과 자신의 몰락을 자초한 어리석은 행위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심대한 모독행위였습니다.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이 여호와와 늘 다투고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똑똑히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눈으로도 몇 가지 사건은 목격했을 것입니다. 지금 밖에 있는 적군과 싸우는 것도 벅찬 일인데, 벨사살은 자청해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싸움을 걸어버린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

여기에 참 재미있는 대비가 있습니다.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했다고 했지요? 이것들은 바벨론에서 섬기는 신들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금은동철목석으로 만든 것들이라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만 지키고 있는 물건들이죠. 반면에 벽에 글자를 쓰는 손가락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신의 계시의 현장입니다. 벨사살이 우습게 보고 그 성전에서 가져온 금잔으로 술을 마셨던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의 출동이지요. 죽어 있는 신과 살아 있는 신이 이렇게 대비되고 있지 않습니까? 가짜 신과 진짜 신의 대비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우두커니 서 있는 무능한 신과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전능하신 신이 이렇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이 다니엘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여려 차례 살펴본 것처럼, 유다가 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약탈될 때 여호와는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고 모두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위세 당당했던 느부갓네살을 때려눕히고 굴복시키면서 여호와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성전의 보물을 약탈해다가 자기 신의 보물창고에 쌓아두고, 벨사살이 여호와께 제사드리는 그릇으로 술을 마시고 자기의 신들을 찬양할 때, 이 여호와 하나님은 가당치도 않은 가짜 신들에게 붙잡혀 온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전에도 한 번 그런 일이 있었지요? 여호와의 법궤가 블레셋에게 탈취되어 그들의 신 다곤의 신전에서 밤을 새워야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여호와가 다곤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보니 다곤 신상이 목이 부러지고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삼상 5장). 여호와를 정복했다고 생각했던 그 금은동철목석 신상 앞에 나타나 벨사살의 심판을 선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등장, 얼마나 통쾌하고 멋진 반전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억울하고 속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은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요? 그렇다고 하나님이 죽었습니까? 힘이 다 빠졌나요? 여호와의 법궤가 다곤 신전에 방치되었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얼마나 놀라고 기가 막혔을까요? 예루살렘 성전에서 뺏어온 금잔으로 술을 마시고 금은동철목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는 현장,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얼마나 쪽팔리는 사실입니까? 그러나 놀랄 일도 걱정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살아 계심을 만방에 알린 사건이 되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혹은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의가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현실에 기가 막히고 놀라 자빠질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일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살아 계심을 온 천하에 선포하는 광고가 될 것입니다. 만일 그런 기막힌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어 의심치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만 해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다곤을 깨뜨리신 것처럼, 가짜 신들 앞에 나타나 심판을 선포하신 것처럼, 이 세상의 악한 세력과 더러운 영들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한 마음을 달래주시고 우리 눈에서 눈물을 씻겨 주실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오늘 우리의 삶이 당당해지고, 피곤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모습이 맑고 아름답게 가꾸어지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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