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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니엘의 감사 (단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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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말 그대로 보리를 추수하고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홍콩과 같은 복잡한 도시 속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맥추감사주일이라는 말은 별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보리를 추수하기는커녕 보리 구경을 한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보리에 대해 아는 것은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이라는 노래 가사뿐입니다. 그래서 맥추감사주일이라고 하는 것이 별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맥추감사주일은 단순히 보리를 추수한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것보다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신명기 26장은 맥추절을 지키는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1-3절까지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 거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당시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땅'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 이렇게 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맥추절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단순히 보리를 추수하게 되어서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심고 거둘 수 있는 땅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래 자기 소유의 땅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는 열심히 땅을 일구고 가꾸었지만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애굽을 떠나 40년 동안은 정처 없는 광야생활을 하였습니다. 한번도 내 땅과 내 집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비옥한 가나안땅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서 거둔 작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수확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수확할 수 있는 땅을 주신 데에 대한 감사입니다.
저도 비행기를 자주 타는 편인데 언제나 일반석 표를 삽니다. 그런데 제가 생긴 것이 워낙 괜찮게 생겼기 때문에 카운터에 앉아있는 사람이 척 알아보고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비싼 자리에 앉으니까 여러 가지 좋은 것이 많습니다. 첫째는 의자가 크니까 저 같은 사람도 편안히 쉴 수 있습니다. 밥 먹을 때도 종이로 만든 냅킨이 아니라 천으로 만든 것을 깔아주고, 음식도 한꺼번에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으로 나누어줍니다. 또 의자마다 모니터가 달려있어서 영화도 마음대로 골라봅니다. 거기다가 선물까지 줍니다. 여러 가지 좋은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감사를 한다면 무엇에 대해 감사하야 합니까? 좋은 음식을 준 것을 감사합니까? 영화 보여준 것을 감사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자리를 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자리에 앉으면 나머지는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맥추절을 맞이하는 자세도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무엇 무엇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서있는 그 자리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자녀로 대접해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죄짓는 것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주시고 의인의 자리에 세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속을 썩혀드리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그 자리에 서게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지키는 맥추감사절의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니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이스라엘을 세 차례나 공격했습니다. 첫 번째는 주전 605년으로 이때에 왕족과 귀족 중에서 총명한 소년들을 사로잡아갔습니다. 두 번째는 주전 597년으로 이때에는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주전 587년으로 이때에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함락시키고 거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은 첫 번째 왕족과 귀족들을 포로로 잡아갈 때에 바벨론에 끌려온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용모가 뛰어나고 어린 나이에도 학문과 지식을 많이 쌓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시중을 드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느부갓네살왕이 꿈을 꾸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생각이 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꿈을 꾸기는 꾸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꿈의 내용이 생각이 안 나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생각이 안 나는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는데 느부갓네살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점치는 사람, 마술을 하는 사람 다 불러 모아놓고 명령을 내립니다. '지금부터 내가 어젯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알아내어라. 만약 알아내지 못한다면 너희 몸을 두 동강이 내겠다.'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왕이라고 하는 자리는 대단한 자리입니다. 뭐든지 우기면 됩니다. 자기가 꿈을 꾸고 자기가 생각이 안 나는데 다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런데 알아내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왕이라는 자리가 한번쯤은 해 볼만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어떤 분도 왕이 되고 싶어서 부모님의 묘지를 왕이 나는 묏자리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이때에 다니엘이 나섭니다. '내가 그 꿈을 알아 맞추어보겠으니 그들을 죽이지 말라.' 그리고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왕이 꾸었던 꿈을 다니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잊어버렸던 꿈을 가르쳐 줄 뿐 아니라 해석까지 해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번만 있던 것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은 느부갓네살왕이 잔치를 벌이고 먹고 마시는데 어디선가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다 글을 써놓고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글자가 무슨 뜻인지 아무도 해석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왕이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다니엘이 그 글자를 해석해 주었습니다. 이런 일로 인해 다니엘은 왕의 신임을 얻어 바벨론 왕국의 총리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포로로 잡혀온 사람이 총리가 되었으니 다른 신하들이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꼬투리를 잡아서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워낙에 일을 잘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자 이번에는 왕을 찾아가서 이런 제안을 합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왕이 아닌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사자 밥을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왕도 여기에 동의를 해서 전국에 조서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받고도 하루 세 번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감사하다는 말입니까? 생각해 보면 감사할 조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첫째는 조국이 망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았다면 다니엘은 왕족으로서의 명예와 부귀를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와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 결과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모함을 받아 사자 밥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감사할 조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감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단계입니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동부에 출석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는 교회에 안나오는 분입니다. 아이가 교회에서 배운 대로 밥 먹을 때에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막 화를 내면서 '야 인마, 이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먹고사는 것이지 언제 하나님이 너에게 밥 주었냐?'
감사를 모르는 이유는 모든 것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일을 해서 내가 성취하고, 내가 이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노력의 대가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가 없으면 그 자리에 원망과 불평이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그 인생이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백두산에 가면 한쪽에는 뜨거운 물이 흐르고 한쪽에는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목욕탕이 있는데 목욕탕 주인은 그냥 앉아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목욕탕 주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참 좋겠습니다. 보일러를 돌리지 않아도 한쪽에서는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한쪽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나오니 앉아서 떼돈을 버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목욕탕 주인이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어디서 비누까지 나오면 더 좋은데 비누는 돈주고 사야 되거든요.'
감사가 없는 사람은 행복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는 것이 늘 짜증나고 불평과 불만이 쌓여간다면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감사입니다. 누군가가 내게 무엇을 주었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감사입니다.
지난주에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로 만나자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만나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중국에 들어와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이 누군 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중국까지 가서 만날 수 있느냐, 누구이며 용건이 무엇인가를 밝히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탈북자이며 18살 먹었다고 했습니다. 순간 제 아들 또래 아이가 고향을 떠나 굶주리고 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가슴이 아파 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하라고 하고는 장로님들과 의논해서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비와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가져다 줄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도움으로 옷가지를 한 보따리 장만해서 장로님 한 분이 중국에 가서 전달해 주고 북경까지 가는 기차표를 끊어서 차에까지 태워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울먹울먹 하면서 '목사님, 참 고맙시요, 참 고맙시요.'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공산주의의 기초는 투쟁과 혁명입니다. 농사를 짓든지 공장에서 일을 하든지 다 투쟁이고 전투입니다. 이렇게 투쟁과 혁명으로 가득 찬 사회 속에서 사는 사람의 특징은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싸워서 얻는 것인데 거기에 무슨 감사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 청년은 감사할 줄 아는 청년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감사가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감사입니다.

세 번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감사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워보아야 철이 든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자기밖에 모르고 삽니다. 모든 것이 자기 중심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낳아서 키우면 비로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배웁니다. 이것을 철이 든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병이 나서 아플 때 부모는 자기가 아픈 것보다 훨씬 괴로워합니다. 자기가 아플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다가도 아이가 아프면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병이 낫게 되면 아이 때문에 감사합니다. 나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에 감사합니다. 이것이 한 단계 높은 감사의 차원입니다.
한국에서 목회하는 제 친구 목사님들의 공통된 고민이 있습니다. 대학 입시철이 되면 합격하는 아이도 있고 떨어지는 아이도 있는데 합격했다고 축하해 주면 떨어진 아이 부모 쪽에서 섭섭해하기 때문에 표정관리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보다 성숙한 감사는 내 아이가 떨어졌어도 다른 집 아이가 합격한 것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누구 집 아이가 이번에 학교에서 일등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 '잘 됐네요, 좋겠네요.' 하면 아직은 멀은 것입니다. '참 감사하네요.' 이렇게 나와야 합니다.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 하루는 요한의 제자들이 찾아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선생님, 전에 우리를 따르던 사람들이 지금은 전부다 예수라는 분을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무슨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자 세례 요한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유대인들의 결혼 풍속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신랑의 친구 중 한 사람이 신랑과 신부 사이에 연락병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결혼날짜를 잡는 일부터 시작해서 결혼식장을 마련하고 초청장을 전달하는 일까지 도맡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혼식을 하는 날 신랑이 밤중에 신부 방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까지 신부 방 앞에서 보초를 서는 일이 있습니다. 간혹 가다가 신랑으로 위장을 하고 신부 방에 들어가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깜깜한 밤중에 보초를 서다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가 신랑인 것을 확인하고 방으로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임무를 완수했다는 기쁨에 들떠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였습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감사입니다. 나는 어찌되었든 네가 잘되었으니 그것으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내 가족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 내 이웃들, 그리고 믿음의 식구들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진 감사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는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내 곁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당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면 나는 그것으로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입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 굴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아침 다니엘은 멀쩡히 살아있었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습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만 내 곁에 계신다면 나는 감사합니다 하는 믿음이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살려내었습니다.
하박국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하나님만 내 곁에 계시면 됩니다.' 이것이 가장 높은 차원의 감사입니다. 이런 사람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다면 내가 어떤 일을 만나도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하루아침이 가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재물도 다 잃고 자식들도 모두 잃었습니다. 거기다가 몹쓸 병을 얻어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지금 내 옆에 계시다는 말입니다. 내 옆에 계셔서 주기도 하시고 취하기도 하신다는 말입니다. 얻고 잃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기 때문에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다니엘처럼 위기를 만난 분이 있습니까? 하박국선지자처럼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욥처럼 고통 가운데 계신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심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위기를 승리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또한 다른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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