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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의를 하수같이 (암 05: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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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1월 7일, 일본은 강제로 우리 나라와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우리 나라에 일본 통관부를 설치해서 외교적인 모든 업무를 일본이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년 후인 1910년 8월 22일에는 한일합방이라는 조약을 체결토록 하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우리 나라는 일본영토의 한 부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우리 민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도록 했고, 이름도 일본 이름으로 바꾸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민족성을 말살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마지막에는 신사참배를 강요함으로 우리의 영혼까지 더럽히려고 했습니다.
신사참배란 일본의 옛날 천황들이나 무사들의 영혼을 섬기는 신사에 절을 하는 것입니다. 1938년 가을 장로교총회가 열렸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일본경찰은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목사와 장로들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친일파 목사들에게 신사참배를 통과시키도록 사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총회에 모였던 목사와 장로 193명에 일본경찰 97명이 사이사이에 끼어 앉아 찬성표를 던지는가 반대표를 던지는가를 감시하였습니다. 결국 장로교총회는 '신사참배는 종교행위가 아니라 애국적인 국가의 의식이다' 하는 것으로 신사참배를 가결하였습니다. 한국교회의 고결한 신앙이 일본의 총칼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사참배에 끝까지 반대한 주기철목사를 비롯한 50여 명의 목사와 장로들이 순교하였고, 2천여 명의 기독교인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200여 개의 교회가 폐쇄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캄캄한 밤이지만 밤이 깊어 갈수록 새벽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당시에 심훈이라는 시인은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그날이 오면'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라도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우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라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우리 민족은 고난 속에서도 독립의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민족이 자유만 얻을 수 있다면 이 몸의 가죽을 벗겨서 북을 만들어 치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독립의 그 날을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기도를 들으시고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독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역사를 통해서 배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제 36년과 6.25의 비극을 겪으면서 배운 교훈을 다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국민을 단결시키고 화합시켜야 할 정치 지도자들이 오히려 국민을 네 편, 내편으로 갈라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분열되어 서로 싸우고 있을 때 일본제국주의와 6.25의 비극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어느 집에서 아들 돌잔치를 했습니다. 장차 아이가 어떤 인물이 될지 궁금해서 잔칫상 위에 돈과 성경책, 그리고 술병을 올려놓고는 아이에게 고르게 했습니다. 돈을 집으면 사업가가 될 것이고, 성경책을 집으면 목사가 될 것이고, 술병을 집으면 술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상을 한번 둘러보더니 먼저 돈을 움켜쥐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경책을 집어서 겨드랑이에 끼더니 남은 한 손으로 술병을 잡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이 아버지는 한숨을 쉬더니 '이 녀석은 정치가가 되겠구나.'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쓰든지 정당화되는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입니다. 돈을 쓰든, 종교를 이용하든, 술자리를 이용하든, 어쨌든 목적만 이루면 됩니다. 거기에는 국민도 나라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욕심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제 앞으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얼마나 더 물어뜯고 싸우는 일로 날이 지새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옵니다.
최근에는 일제시대에 대통령이 창씨개명을 했다거나 야당의 총재 부친이 일제 때 친일을 했다는 것까지 새롭게 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미련하고 답답한 일도 없습니다.
만약 집에 강도가 들어와서 물건을 다 빼앗아가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도망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앞으로 다시 강도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창문도 새로 해 달고 경보장치도 마련하고 보험도 들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식구들끼리 모여 앉아서 '나는 의연하게 강도와 싸우다가 칼을 맞고 이렇게 부상까지 당했는데 너는 왜 살려달라고 빌고만 있었느냐?' 이런 이야기만 하고 있다면 그것이 미련한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일제 시대에 한반도 땅에 살았다는 것 자체가 친일입니다. 당시에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며, 일본 사람 옆에 붙어서 밥 먹고 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욱이 당시에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민족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누군 더했고 누군 덜했다는 것을 아직까지 따지고 있으면 그야말로 미련한 일입니다. 이제는 이런 쓸데없는 일들을 집어치우고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더욱이 경제는 끝을 모르는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쓰러지고, 직장을 잃어버리고, 가정이 파괴되고, 길거리에 나앉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허탈감에 빠져있습니다.
50년쯤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세 사람의 친구들이 텍사스에서 석유사업을 벌여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존 뉴턴' '루이 웨이터포드' '사무엘 프레스톤' 이렇게 세 사람입니다. 매일 사막에서 석유를 캐내는 작업을 하던 세 사람은 며칠 휴가를 내서 화려한 뉴욕에 호텔 방을 하나 잡아놓고 마음껏 놀다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가장 호화롭다고 이름난 앰배서더호텔을 예약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경치가 좋은 맨 꼭대기 29층에 방 세 개를 잡아놓았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그 날이 다가왔습니다. 세 사람은 설레는 마음으로 호텔 로비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지배인이 나오더니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수리 중입니다. 수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러나 세 사람은 빨리 재미있게 놀고 싶은 마음에 29층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한 10층쯤 올라가니 슬슬 후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올라가면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목욕도 하고 친구들과 카드놀이도 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내서 겨우겨우 29층에 도착했습니다. 이젠 됐다 하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그때서야 방 열쇠를 받아오지 않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이 처해있는 현실이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하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오늘은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서 이제 겨우 살만하게 되었구나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영혼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한문화운동연합이라는 단체에서 전국의 초등학교에 단군상을 세운 일이 있습니다. 이에 개신교에서는 단군상을 철거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몇몇 성질 급한 목사들이 망치를 들고 가서 단군상을 때려 부셨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이들 목사들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 문제로 지금 교회와 정부간에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단군상을 세운 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문제인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분명한 사실이 하나있는데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분명히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단군상을 때려 부신 성급함은 문제가 될 수 있으나 그 순수한 마음은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최근에 통일교의 문선명이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를 소개하고 남북통일 문제에 대해 국회의원들에게 훈수를 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가 어떻게 세워진 나라입니까? 1948년 5월 31일, 첫 번째 국회가 열리던 날, 198명의 초대 국회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임시의장을 맡았던 이승만 박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렇게 독립을 해서 첫 번째 민주국회를 열게 된 것을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 일어나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그래서 당시에 목사로서 국회의원이었던 이윤영씨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림으로 국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국회의 속기록 첫 페이지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기도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세워진 나라의 국회에 문선명이가 당당하게 서서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정신이 썩어가고 영혼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아모스서가 기록된 때는 주전 8세기로 이스라엘이 마지막으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던 때입니다. 이 시대를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맙니다. 따라서 아모스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마지막 경고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도 아모스의 메시지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24절을 다시 봅니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어다.' 점차 망해 가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는 법이 정당하게 집행되어야 하고 언제나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의를 잃어버렸습니다. 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법과 정의가 뒤바뀌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옳은 것은 언제나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언제나 그른 것입니다. 이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노나라에 공무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신부라는 마을의 원님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웃에 있는 제나라가 쳐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공무제는 백성들에게 성안으로 피신을 하라고 했는데 백성들은 누렇게 익은 곡식들이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공무제에게 간청했습니다. '저렇게 무르익은 곡식들을 적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들 나가서 내 것 네 것 가리지 말고 어서 추수를 한 다음 성으로 피신합시다.' 그러나 공무제는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곡식들은 적들의 손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나중에 전쟁이 끝난 후 공무제는 이 일 때문에 재판을 받게되었습니다. 왕이 공무제를 심문합니다. '너는 어째서 곡식들을 그대로 두어서 적을 이롭게 했느냐?' 그러자 공무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일년동안 애써 가꾼 곡식을 적들에게 넘겨주는 것은 물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급하다고 해서 백성들이 내 것 네 것을 가리지 않고 마구 거두어들이게 한다면 그 버릇은 10년이 가도 고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결국 공무제는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입니다. 이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목적이 옳아도 방법이 그르면 안됩니다. 또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해도 과정이 틀렸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근본은 여기에 있습니다.
어머니들이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에 '이 약은 참 맛있다.' 속여서 먹입니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하면 아이를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불신풍조 속에서 자라납니다. 쓴 것은 쓰다고 하고 왜 쓴 약을 먹어야 하는가를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학교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성적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생각이 문제아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직장생활도 그렇습니다. 남보다 먼저 앞서가고 남보다 돈을 많이 벌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업을 하는 것과 정의나 도덕과 윤리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도 물들어 갑니다. 일전에 어느 재판관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방법은 잘못되었으나 그 목적과 결과가 좋은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모스 시대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모든 법과 정의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왜 정의를 하수같이 흘리라고 했는가, 이왕이면 강같이 흘리라고 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하수는 조용히 흐릅니다. 조용하지만 변함없이 흐르는 것이 하수입니다.
그래서 정의를 실천하되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의롭게 살자고 소리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내가 먼저 조용히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요즘에 무슨 시민단체라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정의는 그렇게 소리 지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소리 질러 요구하지 말고 나부터 조용히 실천하는 것, 이것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어다.' 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또 하수는 위에서부터 밑으로 흐릅니다. 위에서부터 정의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거짓말을 하면 백성들도 거짓말을 합니다. 부모가 바르게 살지 못하면 자식도 삐뚤어집니다. 윗물이 깨끗해야 아래 물이 깨끗한 법입니다. 위에서 정의가 실현되어야 아래에서도 정의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아 결국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공법이 물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가 되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 가운데 정의를 하수같이 흘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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