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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앞에 정해진 길 (마 2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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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내내 제 입에서 떠나지 않는 찬송이 하나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460장 찬송입니다. 내 힘으로 사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 혼자 걸어가는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 등뒤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바라보며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볼 때, 과연 이 한 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입니다. 내 인생 길을 나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십니다. 내가 기쁠 때에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어려워 낙심될 때에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위로하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아셔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여기서 앗사리온은 로마의 화폐단위로 한 데나리온의 1/16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한 데나리온은 당시에 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하루 일을 해서 HK$ 500을 벌었다고 하면 약 31불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그런데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이라면 참새 한 마리 값은 13불 정도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시려면 계산기 하나쯤은 옆에 두고 계셔야 합니다. 참새 한 마리는 그 값어치가 13불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헐값에 팔려 가는 생명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잊어버리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털 숫자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가치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형편과 사정을 훤히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걱정과 여러분의 눈물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삶의 구석구석까지, 어느 것 하나 하나님께서 모르는 것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푸시고 인도하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니 어찌 찬송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이것이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만큼 또한 우리들도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전도를 할 때에 보통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외로우십니까? 교회에 나오십시오.', '사업에 실패하셨습니까? 교회에 나오십시오.' 그러나 교회는 외로운 사람을 위한 미팅장소도 아니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을 자문해 주는 컨설팅회사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는 것은 첫째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고 지옥 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사랑하고, 용서하고, 베푸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이 다하는 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 받으며 면류관 받아쓰고 천국잔치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이고, 교회에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미 구원을 받고 교회 안에 들어 온 여러분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과거의 일에 매달리지도 말고 미래의 일에 집착하지도 마십시오. 오늘 현재의 삶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채워나가십시오. 더 이상 구원의 문제에 매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말 구원받았을까? 공연히 나 혼자 구원받았다고 우기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문제에 매달려있으면 여러분의 믿음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는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목의 근육이 늘 당기고 아프신 분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는 모습은 아직도 옛날 모습 그대로입니다. 누가 죄를 지으러 가자고 하면 밥 먹다가 숟가락 놓고 달려갑니다. 그런데 발걸음은 죄를 지으러 가고 있지만 뒤에서 자꾸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너 거기 가면 안 된다. 너 가면 혼난다.' 그래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은 죄짓는 쪽으로 가고 있고 머리는 하나님 쪽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늘 목이 아프고 당깁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분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구원의 문제에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너무 미래의 문제에만 매달려서도 안됩니다. 2천년이 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해서 예루살렘에 가서 텐트 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문제입니다.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 오시면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학교에 다닐 때보면 시험이 끝났다고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대부분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시험을 보나 안보나 마찬가지인데 공부 못하는 학생일수록 시험 끝났다고 극장에 가고 파티를 하고 난리입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가 사는 인생이 고달픈 인생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빨리 오시기를 기대합니다. 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날을 고대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에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빨리 주님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지금부터라도 더 열심히 준비를 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은 과거에 이미 지나간 구원의 문제에 매달려서도 안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문제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오늘 내게 주어진 삶과 환경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얼마나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달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민하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정말일까?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일까? 다른 사람은 건강하게 사는데 왜 나는 병이 들어야 하는 것일까? 다른 집 아이들은 똑똑해서 공부도 잘하는데 왜 우리 집 아이는 매일 속만 썩일까? 과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떤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금식하실 때에 마귀가 다가와 이렇게 시험을 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이 시험은 하나님께서 정말로 너를 사랑하신다고 믿느냐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면 그 증거를 보이라는 시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사실에 대해 의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냐 아니냐를 시험해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루 동안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뭐니뭐니해도 '공부해라.' 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자녀가 '아, 나는 데려온 자식인가보다. 내가 좋아하는 전자오락은 못하게 하고 싫어하는 공부만 하라고 하니 진짜 내 부모가 아닌가보다. 내 부모가 진짜인지 아닌지 시험해보자.' 그래서 아파트 옥상 꼭대기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알았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지.' 그러고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당장 뛰어 올라가서 붙잡아 올 것입니다. 물론 아이는 '아, 우리 부모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보니 진짜는 진짜구나.' 확인하는 성과는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2박 3일은 맞을 것입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또한 10절은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아들의 목숨을 내어주셨는데 어떻게 포기하십니까? 절대로 포기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는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신명기 4장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순종을 하면 복을 받되, 불순종하면 다른 나라에 노예로 잡혀가서 우상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버리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우상을 섬기면서 살다보면 하나님이 생각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을 때 벌을 주시기는 하지만 그것까지도 사랑입니다. 복을 주시는 것도 사랑이요, 벌을 주시는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를 결코 포기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날까지 우리 곁에 계시며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로마서 8장 3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더 이상 무엇을 아끼시겠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한없이 사랑하시고 한없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약속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할 걸음 더 나아가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말씀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말씀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군대에 가니까 주일날이 되면 기독교 신자들을 모이라고 해서 교회를 보내줍니다. 그러면 전부 다 기독교신자라고 모입니다. 이때 진짜를 가려내는 방법이 있는데 주기도문을 외워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할 줄 아는가 하는 것으로 신자를 가려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주일날이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거나, 밥 먹을 때 기도를 하고 먹는다거나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제가 얼마나 억울한지 아시죠. 어서 속히 제 억울함을 벗겨주시고 저 원수를 해결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 아직은 멀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억울한 것을 잘 아십니다. 그런데 왜 해결해 주지 않으십니까? 억울하다는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나중에는 '아, 내가 아직도 십자가를 지는 일을 못하고 있구나.' 이것을 깨달을 때까지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세상의 잣대로 재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잣대로 재면 틀림없이 여러분이 억울합니다. 보복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잣대로 재면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내가 훈련을 받아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고달픕니다. 모든 일을 밖에서 푸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풀어야 합니다. 욕을 하고 큰 소리 치는 것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다음에 여러분들이 죽을 때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하면 전부 놀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배를 열어보니 오장육부가 하나도 없고 십자가만 하나 들어있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세상을 사는 것이 고달프면 고달플수록 여러분은 기뻐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지금 좋은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학교와 나쁜 학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가기 싫은 학교는 좋은 학교이고, 가는 것이 즐거운 학교는 나쁜 학교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이 즐겁다고 하면 얼른 학교를 옮기셔야 합니다. 나쁜 학교는 선생님이 늘 인자하게 웃으며 결석해도 웃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웃고, 빵점을 맞아도 웃습니다. 그러나 좋은 학교는 99점을 맞아도 매를 맞습니다. 왜 100점을 맞을 수 있는 놈이 99점을 맞았느냐고 맞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고달픈 것이 복입니다. 세상을 따라 살면 쉽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욕할 것은 욕하고, 미워할 것은 미워하고, 복수할 것은 복수하고, 그렇게 살면 쉽습니다. 그러나 욕하고 싶을 때에 오히려 칭찬해 주고, 미운 마음이 들 때에 웃어주고, 보복하고 싶을 때에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이고,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가지 계명을 마음속에 새기고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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